꿈은 라헬, 현실은 레아(3)
창29:17을 보자. “(라헬은) 곱고 아리따우니”의 히브리어는 “예파트 토아르 뷔파트 마르에”(יְפַת־תֹּאַר וִיפַת מַרְאֶה)로써 우리말로 직역하면 “깔끔하고 환상적이니”라는 뜻이다. 아마도 야곱은 이런 환상적인 모습에 미쳐서 외삼촌에게 7년 무임금 노동을 제안했던 것으로 보인다.
야곱은 꿈 같은 신혼 밤을 보냈다. 평생의 소원을 이루었다. 그러나 아침에 눈을 떠보니 옆에 누워있는 사람은 백설공주 라헬이 아니라 꼴도 보기 싫은 레아였다. 얼마나 큰 충격을 받았을까?
외삼촌은 라헬을 미끼로 사용했던 것이다. 그리고는 넌지시 이렇게 말했다. “야곱아, 우리 풍습에 언니가 결혼하기 전에 동생이 먼저 결혼하는 법이 없어. 그러니 라헬하고 결혼하고 싶다면 7년을 더 머슴살이해”
라반은 악덕 주인이었다. 그러나 야곱은 라헬을 얻기 위하여 7년 머슴살이를 더 했다. 결국 한 여성을 얻기 위해 14년을 머슴살이했다. 그런데 그렇게 해서 소원을 성취한 야곱의 결혼생활은 행복했을까? 창30:1~2을 보자.
“라헬이 자기가 야곱에게서 아들을 낳지 못함을 보고 그의 언니를 시기하여 야곱에게 이르되 내게 자식을 낳게 하라. 그렇지 아니하면 내가 죽겠노라. <야곱이 라헬에게 성을 내어 이르되> 그대를 임신하지 못하게 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니 내가 하나님을 대신하겠느냐”
라헬과의 결혼은 영원한 행복을 가져다줄 줄 알았다. 그러나 그것은 환상이었다. 살아보니 라헬도 그냥 부부 싸움 하는 보통 여인이었다.
레아는 첫아들을 낳고 이름을 “르우벤”이라고 지었다. 그 뜻은 “보라. 아들이다”라는 뜻이다. 그러나 그녀가 이름을 그렇게 지은 이유가 창29:32에 나온다. “여호와께서 나의 괴로움을 돌보셨다”는 뜻에서 이름을 그렇게 지었다고 설명되어 있다. 그녀는 아이의 옹알이를 들으며 마음속의 괴로움을 씻으려고 노력했다.
둘째를 낳았을 때는 “시므온”이라고 지었는데 그 뜻은 “들으셨다”는 뜻으로 하나님께서 내 소원을 들으셨다는 뜻이다. 셋째의 이름은 “레위”라고 지었는데 남편이 나와 “연합하게 되었다”는 뜻이다. 넷째의 이름은 “유다”라고 지었으며 그 뜻은 하나님을 “찬양한다”라는 뜻이다.
여기서 유의 깊게 보아야 할 부분은 레아가 자녀를 낳을 때마다 그녀의 신앙도 함께 성숙해갔다는 것이다. 첫아들을 낳았을 때는 자신의 괴로움, 즉 자신에게 초점 맞추었지만 넷째를 낳았을 때는 하나님을 찬양하는, 즉 하나님께 초점을 맞추었다고 하는 것이다.
레아는 남편에게 사랑을 받지 못하고 오히려 미움의 대상이 되자 “발상의 전환”을 했다. 남편의 문제는 나의 노력으로는 안 되니 “하나님께 소망을 두자”라며 하나님 쪽으로 눈을 돌렸다.
고대시대에는 여성이 아이를 낳지 못하면 사람들에게 손가락질을 당했다. 라헬은 아이를 낳지 못했다. 그렇다면 초점을 하나님께 돌려야 마땅하지 않았을까? 그러나 라헬은 그리하지 못했다. 오히려 야곱에게 초점을 맞추고 “아이를 낳지 못하면 죽겠노라”며 남편에게 협박을 했다.
꼴도 보기 싫다며 미움을 받았던 레아, 동생 라헬에게 원플러스원이 되어 결혼했던 레아... 그렇게 살아가는 그녀의 모습이 얼마나 초라했을까? 그러나, 그럴 때에 그녀는 자신에게 초점을 맞추지 않고 하나님께 초점을 맞추었다. 이런 레아의 모습을 보고 하나님께서 얼마나 사랑스럽게 보셨을까?
이런 레아를 보시고 하나님은 그녀의 아들 “레위”를 제사장의 가문으로, 넷째 아들 “유다”는 왕의 가문으로 또 예수 그리스도의 가문으로 만들어주셨다. 이런 영광과 축복이 세상 어디에 있을까?
p.s.
사53:2을 보자.
“그는 주 앞에서 자라나기를 연한 순 같고 마른 땅에서 나온 뿌리 같아서 고운 모양도 없고 풍채도 없은즉 우리가 보기에 흠모할 만한 아름다운 것이 없도다”
예수님의 성화를 보면 완전히 서양 사람이다. 중동 사람의 얼굴이 아니다. 거기다가 꽃미남이다.
그러나 성경은, 메시아는 마른 땅에서 자란 식물처럼 “풍체가 없다”고 했다. 그러면 메시아의 체구는 작았을 것이다. “흠모할 만한 아름다운 것도 없다”고 했으니 꽃미남은 절대로 아니다. “마른 땅에서 자란 식물”과 같았다면 메시아의 외모는 “라헬”을 닮은 추남이었을 것이 분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