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둣빛 잎새들이 산자락마다 다투어 피는데 수배자의 몸으로 말랑한 흙 한 번 디디지 못하고 있는 현대자동차 비정규직지회 최병승 조합원을 만났다.
지난 2월 23일 대법원은 현대자동차의 불법파견 사실을 인정했고 현대자동차비정규직지회 최병승(불법파견 관련 소송 당사자) 조합원은 2005년 2월 현대차를 상대로 부당해고와 부당노동행위 소송을 제기한 이래 7년 만에 최종 승소했다.
최종 판결이 나자 울산 현대자동차를 비롯한 전국의 제조업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술렁거렸으나 아직 불법파견 판결에 따른 정규직화 움직임은 가시화되지 않고 있다.
최병승 조합원에 대해 정규직 노동조합인 현대자동차지부는 최병승 조합원이 정규직 노조의 조합원임을 인정했고, 최병승 조합원은 조합비 납부 등의 후속절차를 거쳤다. 하지만 해고 기간 생계비를 조합비로 지급하는 '신분보장'에 대해서는 지부와 당사자 간의 합의로 대의원대회에서 심의하지 않고 연기한 상태다.
최병승 조합원을 만나 대법 판결 이후 불법파견 정규직화 투쟁 방향에 대한 생각을 들어봤다.
최종 판결 후 회사쪽 공식 입장은?회사는 대법 판결문을 받고 합리적 판단을 하겠다는 게 공식입장이었다. 대법 판결 자체가 내가 정규직이고 해고가 돼 있는 상태가 맞다는 것이다. 그러나 현대차는 하청업체의 해고 정당성을 따져야 한다며 심문회의를 요청했고 이를 중노위가 받아들여 심문회의가 잡혀 있다.
중노위 진행 과정은 어떤가?17일 심문회의가 열렸지만 연기됐다. 보통 대법원이 중노위 처분을 취소하는 취지의 판결을 하면 심문회의를 거치지 않고 재처분 결정을 하는 것이 관례다. 그런데 중노위가 예외적으로 심문회의를 잡은 것은 시간끌기로 보이며 대법 판결을 무시하려 한다는 의구심이 든다.
정규직 노조인 현대차지부와는 어떻게 정리가 됐나?지부는 대법 판결에 따라서 조합원임을 인정했고 조합비 납부 등 후속절차를 거쳤다. 현재 신분보장심의요청서를 접수한 상태며 대의원대회에서 신분보장 대상인지 결정하게 돼 있는데 이번 대대에서는 노조와 내가 합의해서 심의하지 않고 연기하는 것으로 결정했다.
원하청연대회의에서 어렵게 단일 요구안이 도출됐는데 지켜보는 입장에서 어떤 생각이 들었나?불법파견 당사자와 지부의 입장이 다르고, 요구안을 만들어 가는 과정은 '다름'을 통일적으로 만들어 가는 과정이었다고 본다. 처음 지회 입장에서는 요구안이 부족하다고 느꼈을 거고, 지부에서는 무리하다고 느꼈을 것이다. 몇 차례 협의를 거치면서 서로에 대해 이해도를 높이는 과정이었다고 생각한다. 아마도 투쟁 국면으로 올라갈수록 '다름'은 또 나타날 수도 있을 것이다.
"전국 제조업 사업장에 불법파견 만연, 모두 없애야"
'다름'이란? 노동조합은 기본적으로 불법파견이나 비정규직 철폐를 주장하고 있지 않나?회사가 모든 사내하청을 정규직으로 전환하지 않겠다고 버틴다면 정규직은 '범위'에 대해서도 고민할 수 있을 것이고 지회는 '범위'를 정하는 것에 대해 고민스러울 것이라고 본다. 요구안 단일화 과정 초기에는 제한적인 규정이나 이런 걸로 의심될만한 문구들이 존재했었는데 과정에서 시선을 통일시켜나가며 지부가 많이 수용했다.
뭐가 가장 큰 문제라고 보는가?대법원 판결을 받은 노동사건도 노동조합이 힘이 없다면 법원에서 승소한 노동자만 혜택을 보게 된다. 심지어 승소자도 투쟁하지 않으면 판결로 얻은 권리를 확보하지 못하는 경우도 수두룩하다. 우선은 지회 지도부의 지도력이 우선돼야 하고, 조합원 조직을 재정비하고 정규직 노동자들을 설득해 나가야 한다고 본다.
모든 사내하청의 정규직화가 가능할 것이라고 보나?법을 해석한다면 범위를 설정하는 등 각각의 차이가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이 문제는 법률적인 문제로 얘기돼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이번 대법판결 의미는 사내하도급이라는 제도가 특히 제조업 사업장 내에서는 없어져야 하는 판결이라고 생각한다. 법률적 기준이나 가치판단 잣대로 어떤 건 되고 어떤 건 안 된다고 판단할 문제가 아니다. 제조업에서의 파견은 불법이기 때문에 원청사 입장에서는 노동자 전부를 해고하거나 모두 정규직으로 채용하거나 해야 하는 판결이다. 즉, 이번 판결은 제조업 사업장에 양질의 일자리 확대로 이어져야 한다는 것이다.
자본이 그대로 수용하겠는가?자본은 이미 파견법을 확대하거나 개정해서 사용하겠다는 생각을 버린 느낌이다. 새누리당에서 3월 27일 발표한 '가족행복 5대 약속 과제'를 보면 비정규직 차별 개선을 위해 사내하도급 노동자에 관한 법률을 제정하겠다고 발표했다. 이 법안이 단순하게 이번에 나온 이야기가 아니라 작년 연말에 제출됐었는데 심의가 안 된 상태였다. 지금 사내하도급은 민법상의 하도급법에 포함된 것이며 특별법을 제정하겠다는 것은 하도급법을 인정한다는 의도다. 비정규직을 보호한다는 명분 하에 특별법을 제정한다는 건 비정규직을 합법화한다는 의미다. 비정규직은 폐기돼야 할 조항이라는 걸 사회적으로 만들어 나가는 것이 현대자동차 원하청은 물론 노동계가 집중해야 할 과제라고 생각한다.
"처음 소송 당시 개인이 아닌 지회에서 기획한 일"
최병승 조합원은 불법파견 소송 당사자이고 울산 현대자동차는 그 소속 사업장으므로 전국의 노동계와 자본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부담스럽지는 않은가?현재 자동차산업에 26만 명 정도가 고용돼 있다. 현대기아가 자동차공업 시장점유율 70% 이상을 차지하고 있다. 한국에서 절대적 강자인 현대자동차에서 그런 모델을 만들면 전체 자동차산업으로 확대될 것이다. 또한 자동차 현장에서 전체 제조업 사업장으로도 확대될 가능성이 높다. 이번 투쟁은 사내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위치를 어떻게 결정할 것인가에 대한 투쟁이다. 현대차지부도 전체 노동자를 대변하는 위치에 서게 된 것이다. 지회도 마찬가지다. 노동계가 이 문제를 현대자동차만의 문제로 보지 말고 전체 비정규직 노동자의 위치를 결정하는 것이라 보고 접근해야 한다.
공동요구안이 어떤 형태로든 합의됐을 때 의결을 어떻게 할 것인가? 투표를 정규직과 같이 하게 되는가?지회는 3개 지회, 지부는 1개 지부가 공동협상에 임한다. 3지회는 별도로 의결했으면 하는 의견도 제출되고 있고, 지부는 확대운영위원회에서 논의할 것으로 보인다. 한 축에서는 '비정규직 철폐' 조항이 정규직지부 요구안에도 있었던 만큼 정규직화 요구안은 공통되지 않느냐는 의견도 있다. 의결에 관해서는 조금 더 논의가 필요해 보인다.
회사는 최병승 개인에 관한 판결이라고 주장하는데 고민이 있다면?개인적이 될 수 없다. 이번 판결은 최병승 개인에 대한 판결이 아니고 처음 소송을 제기할 때도 노동조합(지회)에서 고민해 기획해서 진행한 사항이다. 현대자동차를 잘 보면 노동자는 취업과 동시에 현대자동차의 필요에 의해 자동차를 만들었기 때문에 현대자동차가 사람을 고용한 것이지 업체가 고용한 것이 아니다. 그런 속에서 불법파견에 대한 진정을 하게 됐고 이것은 법률적 기대가 아니라 부당하기 때문에 정당한 지위와 위치를 찾겠다는 문제제기였다. 즉 현대자동차 현장에서 일하는 노동자는 원청사가 책임져야 한다는 것이다. 법원 기준에 따른다고 이 문제가 해결되겠나.
지회 조합원들은 '모든 사내하청의 정규직화'에 대해 확신을 가지고 있을까? 자신이 정규직 대상이 되느냐 아니냐을 가늠하며 계산하지는 않을까?동지들은 누구누구가 정규직 대상이라고 예상하며 어느정도 계산을 할 수도 있다. 그건 어쩌면 당연한 일일지도 모른다. 자신의 인생사에서 이번 정규직화투쟁은 복잡한 일이고 자신의 이해관계가 있어야 투쟁도 한다. 이 이해관계를 개인으로 풀어야 할지 모든 현장의 비정규직을 봐야 할지 잘 이해시키고 설득시켜야 할 과제가 지회에 있다.
|
▲ 불법파견철폐 투쟁을 어떻게 할 것인가를 논의하는 4월 28일 현대차비정규직 울산, 아산, 전주 3지회 공동수련회. [출처: 울산노동뉴스] |
"같은 생산라인에서 일하면 똑같은 정규직이라는 건 지극한 상식"
지회 조합원뿐 아니라 일반 시민들에게도 이해시켜야 하는 부분도 있어 보이는데...한번만 생각하면 답은 분명하다. 대법 판결 해석 순서를 보자.
최병승은 파견근로자다. - 그런데 파견법 5조 1항은 제조업 파견을 금지하고 있다. - 그래서 최는 불법파견 노동자다. - 구 파견법 6조 3항 적용을 받는다. - 따라서 최병승은 2004년 3월 13일부터 불법파견 2년을 넘겼으므로 2004년 3월 13일부로 정규직 지위를 갖는다.
이건 무얼 의미하는가? 불법파견이 사내하도급이라는 이름으로 포장된 것이다. 이는 근절시켜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은폐된다. 누가 정규직 될 것이냐가 아니다. 기간과 라인에 따라 정규직 대상이 되느냐가 아니라 현대자동차 생산라인에 근무하는 모든 노동자는 똑같이 정규직 지위를 갖는다는 것이다. 이게 돼야 사회적 기준이 생긴다.
제조업 비정규직 외에 서비스업 비정규직 문제도 심각하다. 상대적으로 그들에 비해 제조업은 임금조건이 낫지 않냐는 물음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는가?우리 스스로 고립되지 않기 위해서라도 큰 틀에서 투쟁해야 한다. 우리보다 더 열악한 사업장이 많다. 제조업만 정규직화하는 것이 더 열악한 최저임금 노동자들에게 동의받을 수 있느냐? 이기적이라고 볼 여지가 있다. 그렇기 때문에 더욱 선별과 선택이 아닌 '모든 사내하청의 정규직화'를 걸고 싸워야 한다. 제조업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10년째 투쟁한 과정이 있다. 규모 있는 비정규직 사업장이 사회적 관심을 받고 있는데 그런 것에 부응해 전체 노동계의 의제로 확장해야 동의받을 수 있을 것이다.
솔직히 비정규직 노동자들 정규직 성과급 받을 때 욕하지 않았냐? 똑같은 상황이다. 우리보다 열악한 노동자들이 많은데 그들이 부탁한다면 어떤 선택을 하겠느냐? 그들과 함께할 수 없다면 정규직 노조를 비난할 자격이 없는 거다. 스스로 이해관계가 커서 열망이 크고 왜곡될 수도 있지만 더 크게 바라봐야 올바른 투쟁을 할 수 있다.
"현대차 원하청 공동투쟁에서 전국으로 번져 나가길"
현대자동차 원하청 말고 노동계가 책임질 부분도 있는데 잘 될것 같은가?
정말로 힘든 사람은 노동조합 오지 않는다. 이걸 고민하지 않으면 노동자 조직률은 10% 넘기 어렵다. 노동조합 위기론이 왜 나오겠는가? 가치와 삶의 방향을 가지고 함께해야지 조직을 지키는 것이 우선이 아니다. 그런 의미에서 지부는 지회와, 지회는 더 열악한 서비스업 비정규직들과 함께 투쟁해야 하고, 이번 원하청 공동투쟁은 투쟁하니까 되더라는 모델을 보여주며 가능성을 현실에서 보여주는 투쟁이 됐으면 좋겠다.
희망적으로 봐도 될까?전체 노동자들의 정규직화를 요구하면서 투쟁을 조직하고, 우리가 승리하면 바로 옆에 있는 효문 부품사 노동자들도 투쟁하지 않겠나? 작은 자본에 있는 노동자들도 우리도 한 번 해보자는 자신감을 가질 수 있다고 생각한다. 우리의 싸움으로 시작해서 그들과 함께하는 것, 양정동에서 효문으로, 효문에서 달천이나 경주로, 이렇게 확대되어져야 비정규직 철폐는 가능할 것이다.
|
▲ 2010년 11월 16일 현대차비정규직지회 현대차 1공장 CTS 점거파업 당시 모습 |
2010년 대법원은 ▲ 자동차 조립생산작업은 컨베이어벨트를 이용한 자동흐름 방식으로 독립된 업무의 완성을 목적으로 하는 도급과는 거리가 멀고 ▲ 정규직과 사내하청이 혼재돼 배치되고, 원청의 작업지시서에 의한 단순업무가 반복되고, 하청업체의 고유기술이나 자본투자가 없고 ▲ 현대차가 사내하청노동자에 대한 작업배치권을 갖고 ▲ 정규직 결원시 하청노동자가 대체 투입되고 ▲ 현대차가 하청노동자에 대한 근태상황과 인원현황을 파악하고 있는 점으로 봤을 때 현대차가 직접 사용자라는 판결을 내렸다.
2010년 현대차 시트사업부는 하청업체인 동성기업을 대체할 청문기업과 새로 도급계약을 맺었고 새로운 하청업체인 청문기업이 기존 동성기업 조합원들의 고용승계를 조건으로 조합 탈퇴와 근로계약 체결을 요구했다. 동성기업 노동자들은 사측의 새로운 근로계약서 작성을 거부하고 위장폐업에 맞섰다. 동성기업 투쟁으로11월 15일 현대자동차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CTS 점거파업이 시작됐다.
현대차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출입증 반납하고 사원증 패용하자", "불법파견 반대한다", "비정규직을 정규직화하라"는 요구를 걸고 25일 동안 점거파업을 벌였다. '모든 사내하청 노동자의 정규직화 쟁취'를 걸고 벌인 현대차 비정규직 3지회의 파업에 대해 회사는 해고 111명, 정직 1000여명의 징계를 내렸다.
현대차, 불법파견 정규직 전환 태풍의 핵 될까
2010년 파업 이후 비정규직지회는 어려운 과정 속에서도 '모든 사내하청의 정규직화'를 위한 싸움을 포기하지 않았고, 현대차지부는 지난해 문용문 지부장 당선과 함께 원하청공동투쟁으로 비정규직을 철폐하겠다고 약속했다. 원하청연대회의는 '현대자동차에서 노동하는 모든 노동자를 전원 정규직으로 전환한다'는 내용을 골자로 하는 원하청 공동요구안을 마련했다.
현대차 원하청 노조의 이러한 움직임이 전체 노동계에 미칠 영향력을 생각하며 올해 현대차 노사가 어떻게 불법파견 문제를 정리할지 관심이 쏠린다.
2010년 투쟁 이후 17개월째 수배생활을 하고 있는 최병승 조합원은 "하늘만 보면 눈물이 난다"는 이야기를 웃으면서 했다. 어느날 밥 먹고 나오다가 하늘을 보니 언제 또 저 하늘을 자유롭게 볼 수 있을까 싶어 서글픈 맘도 들더라는 얘기다. 비정규직 투쟁의 역사와 류기혁 열사의 이야기 등 많은 이야기들을 다 쓸 수 없어 어느 파견노동자의 편지를 소개하며 인터뷰 글을 마친다. (기사제휴=울산노동뉴스)
파견근로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
파견법이라 한다.
파견법 시행 14년, 파견 노동자 보호한 적 있습니까?
보호 받은 자 누구입니까?
끝내고 싶은 지난 세월이었습니다.
고독과 슬픔보다 더한 것은
내가 사랑하는 동지들을 하나 둘 떠나보내는 것이 가장 큰 고통이었습니다.
가슴에 뭉친 응어리 아무리 쓸어내려도 맺힌 분노 삭힐 수 없었습니다.
격하게 살아왔던 세월,
나뭇가지에 걸린 마지막 잎새가 팔랑거리며 헐떡대는 것처럼
우린 아마도 갈기갈기 찢어진 낙엽일 겁니다. - 어느 파견노동자의 편지
월 1백만 원이 조금 넘는 박봉이지만 안정된 직장이라 여기고 감사하며 열심히 살겠노라 다짐하며, 건강하게 자라나는 자식들을 위해, 당뇨병으로 고생하시는 어머니를 위해 딴 생각 않고 지금까지 야근도 휴일도 마다하지 않고 열심히 일에만 매달려 왔단다.
그러나 그는 한순간 온 몸이 굳어버리는 전율(소름)을 느껴야 했다.
퇴근 후 집에 돌아와 보니 노란 봉투가 배달되어 있었다.
개봉,
"귀하께서 지난 2년 동안 회사를 위해 열심히 근무한 점을 높게 평가하고 치하하지만 정부가 시행하고 있는 파견법으로 인해 어쩔 수 없이 해고 예고됨을 유감으로 생각합니다." - 어느 파견노동자의 편지
출처 http://www.newscham.net/news/view.php?board=news&nid=65981&page=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