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 28일(연중 제13주일, 교황 주일) 사도
그리스도인은 모두 선교사다. 세례 성사를 통해서 하느님 말씀을 전하는 예언직, 하느님과 인간 사이 중재 역할을 하는 사제직, 사람들을 하느님께로 이끄는 봉사 왕직을 받았다. 예수님이 제자들을 불러 모으신 것은 당신이 받은 선교 사명을 그들과 나누어 수행하게 하기 위함이었다. 더 많은 데에 복음을 전하시기 위해서 그들을 파견하셨다. 처음에는 열두 명, 그다음에는 일흔두 명 그리고 지금은 우리들을 당신의 사도로 파견하신다.
사도의 조건은 이러하다. 부모보다, 자식보다 예수님을 더 사랑해야 하고, 제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따라야 하며, 예수님 때문에 목숨을 잃을 준비가 돼 있어야 한다.(마태 10,37-39) 글자 그대로 들으면 사이비 종교 교주의 명령 같다. 그런데 예수님이 먼저 그렇게 살다가 돌아가셨다. 그분은 하늘나라 시민이라서, 이미 이 세상 사람이 아니셨다. 예수님은 하늘나라에 대해 너무 전격적이어서 융통성이나 세속과 타협은 없었다. 그것은 예수님이 고집불통이거나 고지식해서가 아니다. 아버지 하느님 사이 관계만이 영원하기 때문이다. 사실, 이웃보다 못한 가족 관계가 있는 건 놀랄 일이 아니고, 나라의 독립과 정의와 평화를 위해서 목숨을 내놓는 사람도 있다. 예수님이 하느님의 아들, 구세주라고 믿는다면 예수님의 그 전격적인 말씀은 그리 놀랄 일이 아니다. 세상은 그런 예수님을 받아들이기 쉽지 않았다. 예수님도 그럴 줄 이미 아셨고, 당신을 따르는 이들도 같은 운명을 겪게 될 거라고 예고하셨다.
입소문이 가장 확실한 광고인 거처럼 복음은 사람을 통해서 가장 잘 전해진다. 말이 아니라 그의 사랑으로 말이다. 예수님이 사람들에게 하셨던 거처럼 그분의 제자인 우리도 그렇게 한다. 자신이 주님께 거저 받은 걸 거저 전한다. 그렇다고 모든 그리스도인이 사제, 수도자, 선교사 생활을 할 수는 없다. 그들은 예수님을 더 철저히 따르기 위해 하늘나라의 복음 전파에 온 삶을 투신한다. 다른 그리스도인 선교사들은 그들을 돕고 그들의 일에 부분적으로 참여한다. 어느 날 오랜 친구가 조심스럽게 내게 물었다, 돈은 어떻게 버냐고. 나는 돈 벌지 않는다. 하느님이 교우들을 통해서 나를 먹여 살리시고, 일하게 하신다. 물심양면으로 나와 수도회를 마치 우리에게 무슨 빚이라도 진 거처럼 헌신적으로 도와주는 은인들이 있다. 그들에게 늘 감사하고, 그들을 위해 기도하는 걸 잊지 않는다. 오늘 첫째 독서에서 그 부인은 엘리사 예언자를 하느님의 사람으로 알아보고 그를 잘 대해줬다. 엘리사는 그런 그에게 아들을 약속했다. 예수님도 분명히 약속하셨다. “이 작은 이들 가운데 한 사람에게 그가 제자라서 시원한 물 한 잔이라도 마시게 하는 이는 자기가 받을 상을 결코 잃지 않을 것이다.”(마태 10,42)
사도는 ‘파견된 사람’이란 뜻이다. 예수님이 하늘에 계신 아버지에게서 파견되신 거처럼, 사도들은 예수님에게서 파견된다. 파견된 이는 파견한 이의 권한을 갖고 일한다. 가장 작은 이들에게 해 준 게 곧 예수님에게 해드린 거처럼, 사도들에게 협조하는 건 예수님에게 협조하는 거다. “너희를 받아들이는 이는 나를 받아들이는 사람이고, 나를 받아들이는 이는 나를 보내신 분을 받아들이는 사람이다. 예언자를 예언자라서 받아들이는 이는 예언자가 받는 상을 받을 것이고, 의인을 의인이라서 받아들이는 이는 의인이 받는 상을 받을 것이다.”(마태 10,40-41) 생업을 포기하고 복음 전파에 헌신하지 않지만, 사도들과 한마음으로 기도하고 응원하고 도우면 그들이 받을 상을 똑같이 받는다. 우리 그리스도인은 모두 이렇게 하나의 선교체, 그리스도의 신비로운 몸이다.
예수님, 저희를 돕는 이들을 축복하시고, 모든 위험과 시련에서 그들의 신앙을 지켜 주십시오. 영원한 도움의 성모님, 제가 가는 곳마다 좋은 사람들을 만나게 해 주신다고 믿습니다.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