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에서 본 바티칸 박물관...정면에 보이는 곳으로 들어가서 오른쪽 아래에 있는 시스티나 성당으로 나오게 되는데 맨처음 들어
가면 조각정원이 나온다.
솔방울 조각품이 있는 곳으로 들어가면 조각 정원이 나오는데 이 조각품들은 그리스 시대부터 로마시대의 조각품들이 진열되어
있는데 이곳에 진열된 조각품 중에서 가장 유명한 것은 라오콘 군상과 벨베데레의 토르소이다. 다른 조각품들은 설명을 하지 않지
만 이 조각품에 대해서는 아주 자세하게 설명을 해 준다.
조각정원으로 들어가면
이런 조각들이 전시된 홀이 나온다.....흉상과 입상들로 그리스 시대와 로마 시대에 만들어진 것이다.
그 유명한 라오콘 군상(群像)이다....바티칸 박물관을 있게 한 주인공이다.
라오콘 군상은 그리스 · 헬레니즘 시기의 조각으로 트로이아 전쟁 말기, 그리스군의 목마 계락을 안 트로이의 신관 라오콘이 두 아
들과 함께, 신들이 보낸 상대방과 내통하는 큰 뱀에게 습격받는 모양을 나타낸 대리석 군상이다. 뱀에게 옆구리를 물려 빈사 상태
인 아버지를 중심으로 왼쪽에는 이미 숨을 거둔 아들, 우측에 뱀과 싸우는 둘째 아들을 배치하였다. 격한 움직임과 사실적인 육체
묘사로서 인간 죽음의 순간을 극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기원전 3세기경 만들어진 이 작품은, 바티칸 박물관에 있는 작품들 중에서도 걸작으로 손꼽히는 작품이다. 두 아들의 죽음 앞에서
고통스러워하면서 아들을 구하지 못하는 무기력함까지 그대로 드러나는 표정과 놀란 근육의 표현이 압권이다
플리니우스의 기록에 의하면 제작자는 로도스 섬 출신의 조각가인 하게산드로스, 폴리도로스, 아타노도로스 3인이며, 로마의 티
투스 황제(재위: 기원후 79~81)의 궁전에 있었다고 한다. 1506년 1월14일 로마 에스킬리노 언덕에서 발견되어 르네상스 미술가
와 빈켈만, 레싱, 괴테 등에게서 격찬을 받았다. 르네상스 시대 이후의 보수는 1960년경에 이루어졌고, 당시 본체보다 늦게 발견
된 라오콘의 오른쪽 팔이 정상으로 복원되었다. 제작 연대에 관해서는 기원전 150년에서 테오도우스 황제 시대까지라는 설이 있
다. 높이는 1.84m이고, 바티칸 미술관에서 소장하고 있다.
라오콘에 관한 일화는 다음과 같다. 아폴론의 신관이었던 라오콘은 독신에 대한 의무가 있었고 이에 대해 맹세했으나 쌍둥이 아들
을 낳아 아폴론의 노여움을 샀다. 아폴론은 제비를 뽑아 맡겨진 임무에 따라 아들들과 함께 포세이돈 신의 제단에 황소를 제물로
바치려던 라오쿤에게 포르케스와 카리보이아(또는 쿠리시아나 페리보이아)라는 두 마리의 큰 바다뱀을 보냈고, 그는 바다뱀의 공
격에도 불구하고 아들을 지키려고 발버둥치다가 결국 무게에 깔려 그의 쌍둥이 아들인 안티파스와 팀브라이우스(또는 멜란토스)
와 함께 죽었다.
라오쿤이 이러한 벌을 받은 이유에 관해서는 다른 설도 있는데, 이는 라오쿤이 트로이 전쟁 때 그리스인들이 놓고 간 목마를 성내
에 들여서는 안 된다고 트로이인들에게 경고했던 것이 당시 그리스인들의 편에 서 있었던 포세이돈의 심기를 건드렸기 때문이라
는 것이다.(인터넷에서 발췌)
2천년 전의 작품으로 행방불명이 되었다가 1506년에 발견되었다고 하니....그 사이에 이 조각상을 찾으려고 많이도 노력을 했다
고 한다. 왼쪽의 아들은 이미 죽었고 오른쪽의 아들은 애처럽게 아버지를 보고 있지만 아버지도 어쩔 수가 없다. 나중에 찾은 오
른쪽 팔은 나중에 찾은 것이다.
라오콘을 배경으로 사진을 많이 찍는다.
메두사의 머리를 들고 있는 페르세우스..나폴레옹이 아폴로를 프랑스로 가져갔을 때, 그 작품을 대신해서 선물한 작품이라고 한다.
비너스 펠릭스 : 이 비너스상은 라오쿤, 아폴로 조각상과 함께 1509년에 이미 전망대 정원에서 아주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었
다. 기원전 4세기경에 프락시텔레스가 만든 비너스상을 모방하여 만든 작품이다. 이 조각의 얼굴은 2세기경의 한 여왕후로 마르
쿠스 아우렐리우스의 부인인 파우스티나이거나 혹은 코모두스의 부인이며, 파우스티나의 며느리인 크리스피나의 모습으로 추정
된다
벨레데레(전시관??)로 들어가는 문... 이 안에 이 박물관의 걸작 중의 걸작이라고 하는 토르소가 있다.
조각품 하나만 해도 소위 억만금이 나갈 터인데...그 수가 헤아릴 수가 없을 정도이니..
그 유명하다는 토르소이다....뒷면 가이드가 열심히 설명을 하고 있다.
그리고 벨베데레의 토르소는 이 작품 역시 바티칸에 소장된 작품들 중에서 걸작으로 손꼽히는 작품이다. 몸통만 발견되었기 때문
에 당시 미켈란젤로에게 이 작품의 상태를 복원해 달라고 요청했지만, 그는 이 상태 그대로 완벽하다고 이야기했다고 한다. 미켈
란젤로는 〈최후의 심판〉을 그릴 때, 이 몸을 그림에 모델로 넣었다. 또한 로댕의 〈생각하는 사람〉도 토르소가 모델이 된 작품이다.
네스토르의 아들인 아테네의 조각가 아폴로니오스의 서명이 들어 있어서 오랫동안 BC 1세기의 것으로 생각되었으나 지금은 아
폴로니오스가 2세기의 원품을 모사한 것으로 여겨지고 있다. 이 작품의 동적인 자세는 미켈란젤로의 힘찬 조각 양식을 발전시키
는 데 큰 영향을 주었으며, 그 뒤로 마니에리스모 시대나 후기 르네상스 시대 및 바로크 시대의 많은 미술가들이 이것을 깊이 연구
하였다.
토르소라는 단어는 이탈리아어로 '몸통'이라는 의미로 몸통만 있어서 토르소로 부르게 되었다고 하며뜻에서 유래되었으며, 고대
그리스나 로마의 유적지에서 발굴해 낸 조각상 중 몸통만 남은 것들에서 독자적인 아름다움을 발견한 근대의 조각가들이 이를 본
떠서 몸통만 만드는 조각을 하게 된 시초가 되었다고 한다.(인터넷에서 발췌)
앞면 ...미켈란젤로에게 팔 다리를 만들라고 하자 이 자체로 완전하다고 하여 거절하였다고....
문외한이 봐도 팔다리를 붙이면 몸통의 강조가 삭감될 것 같은 생각이 든다.
이곳의 주인공은 토르소로 모든 사람들의 시선이 집중되고 있다.
원형의 방... 판테온의 모습을 모방해서 만들어 놓은 이 방에는 네로의 궁전에서 가져온 엄청난 크기의 대리석 욕조가 있다. 또한
바닥의 모자이크 역시 아름다운데, 아무리 오랫동안 사람들이 이 모자이크를 밟아도 돌이 워낙 깊숙히 박혀 있어 없어지지 않는다
고 한다.
네로가 쓴던 목욕탕이라고....
시스티나 성당쪽으로 가는 길..
석관??과 조각상들....일일이 읽어보지도 못하고 지나간다.
이곳도 특이한 곳이기는 한데....설명서를 제대로 보지 못하였다.
카피트의 방으로 가는 길의 주변 조각들
촛대의 방[Gallery of the Candelabra]의 다산,풍요의 여신 아르테미스상
조각품들이 포도잎으로 중요부위를 다 가리고 있다.
색깔이 다른 것을 보아 나중에 가린 듯...
하도 많아서 눈길도 주지 못하고 지나간다.
관람을 할 때 역방향으로는 갈 수가 없다....카피트의 방으로 가는 중이다.
바티칸의 박물관에 진열된 예술품들을 보려면 며칠을 봐도 다 못 보기 때문애 예술품을 볼 사람들은 개별적으로 올 수밖에 없고
패키지 관광객들은 그냥 조각상들이 무지 많구나 하는 느낌으로 지나가게 된다.
https://youtu.be/mQ801d4P6Q0...바티칸 조각상 유투브
첫댓글 자세한 설명과 사진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