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본 영화, Memoirs of a Geisha
소위 ‘헐리웃의 미다스’라고 불리는 미국감독 스티븐 스필버그에 의해서 다이아몬드가 되어버린 여배우가 있다.
곧 중국 배우 장쯔이 그녀를 두고 하는 말이다.
그가 소녀티의 장쯔이를 다이아몬드만큼이나 빛나는 세계적 스타로 빚어냈다.
딱 영화 한 편으로 그랬다.
‘게이샤의 추억’(Memoirs of a Geisha)이라는 영화였다.
스필버그 그의 손을 거친 영화는, 기본적으로 꿈과 감동과 경이로움이 늘 풍성하게 담겨있었다.
백상어 아가리 하나가지고 세계 영화 마니아들을 열광케 해버린 영화 ‘죠스’, 고고학자 인디아나 존스의 채찍으로 어린아이들의 동심을 옭아매어버린 영화 ‘인다아나 존스’, 동네 꼬마들의 모험심을 보석처럼 빛나게 꾸며놓은 영화 ‘구니스’, 컴퓨터 그래픽의 경이로움을 선보인 영화 ‘백 투 더 퓨쳐’, 관객들을 하여금 마치 공룡시대에 같이 들어가 있는 듯 착각에 빠뜨려 버린 영화 ‘쥬라기 공원’, 유태인에 대한 히틀러의 만행을 고발한 영화 ‘쉰들러 리스트’, 로마 막시무스 황제시대 어느 검투사의 삶을 그린 영화 ‘글래디에이터’, 설복 있는 리더십을 깨우쳐준 영화 ‘라이언 일병 구하기’ 등, 금세기 들어 세계적 명성을 떨쳤던 영화들이 바로 그의 작품들이다.
그런 그가 비록 우리와는 편치 않은 일본문화를 통해서이긴 하지만, 우리 동양인보다도 더 동양인적 감각을 가지고 만든 영화가, 바로 ‘게이샤의 추억’이라는 그 영화였다.
내가 그 영화를 본 것은 15년 전쯤으로 거슬러, 31년 9개월의 검찰수사관 생활을 끝낸 그 직후의 일이었다.
그 즈음에 나는 이미 장쯔이에 매료되어 있었다.
너무나 산뜻한 무협영화 ‘와호장룡’(臥虎藏龍)과, 중국 최고의 감독인 장이모 감독이 어느 할머니의 사랑 이야기를 그려낸 ‘집으로 가는 길’(Road to Home), 그 두 편의 영화를 보고 그랬다.
‘와호장룡’에서는 날렵한 흑두건의 여 검객 역을 맡았던 그녀의 깜찍한 모습에 반했었고, ‘집으로 가는 길’에서는 산간 벽지인 시골에 부임해온 총각 선생님을 먼발치에서 훔쳐보면서부터 사랑하기 시작한 ‘쟈오 디’라는 18세 시골처녀의 역할을 감당해낸 그 천연덕스러운 모습에 반했었다.
영화 ‘게이샤의 추억’은 가난한 어부의 아홉 살짜리 딸 치요가 오사카 게이샤(藝人)인 사유리로 재탄생하는 과정을 그리고 있었다.
치요의 엄마는 신비스럽게도 파란 눈을 가진 딸 치요에게는 물과 같은 아이라고 했고, 언니 사츠에게는 땅에 뿌리를 내린 벚나무 숲과 같다고 했다.
가난을 이기지 못한 아버지가 돈 몇 푼에 치요와 사츠 그 두 딸을 인신 매매상 다나카의 손에 넘겨주고, 다나카는 그 두 자매를 게이샤의 대모인 니타부인집 하녀로 팔아 버린다.
치요는 그 집에서 하녀로 지내면서, 스스로 깨우친 것이 있었다.
상실의 의미에 대한 깨우침이었다.
그 깨우침, 곧 이랬다.
‘상실은 읽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느낄 수만 있는 것이다.’
언니 사츠와 단장의 이별을 하면서의 일이었다.
그 이별로 치요는 크게 상처를 받고 깊은 좌절을 경험하게 된다.
그러던 어느 날, 다리 위에서 엎어진 치요의 코앞에 ‘회장님’이라고 불리는 키가 훤칠하게 크고 잘 생긴 젊은 남자 하나가 나타난다.
그 남자는 치요의 신비스런 눈빛에 감탄하면서 빙수를 사주고 손수건에 용돈 몇 푼 싸서 선물해준다.
한마디 덕담까지 보탠다.
곧 이 덕담이었다.
‘엎어져 무릎이 깨져도 울지 말고 일어서는 용기를 가져야 하는 거야.’
치요는 이렇게 다가온 그 남자를 가슴에 묻는다.
그 상징으로 그 남자로부터 받은 손수건을 고이 접어 심장이 있는 왼쪽 가슴 깊숙이 집어넣어 간직한다.
바로 이때 아홉 살짜리 치요는, 어찌하면 그 남자에게 다시 다가갈 수 있을까 하는 생각에 빠져들게 된다.
그동안 아무런 꿈과 희망도 없이 그저 하녀로만 살아온 치요였다.
그 치요에게 이제 꿈이 하나 생긴 것이다.
곧 게이샤로의 꿈이었다.
그것이 그 남자가 속한 세계로 나아가는 가파른 상승 길임을 어렴풋이 깨닫게 되었기 때문이었다.
곧장 달음박질로 기도소로 달려갔고, 그 기도소에서 그 남자로부터 받은 용돈을 몽땅 바치고 생전 처음으로 기도를 한다.
딱 한 가지 기도였다.
곧 이 기도였다.
‘게이샤가 되어 언젠가는 그 남자를 다시 만나게 해 주세요.’
퇴물 게이샤 마메하와의 운명적 만남이 뒤이어 있고, 그녀로부터 게이샤가 갖추어야 할 덕목을 하나하나 배워 가기 시작한다.
절하는 법, 일어서는 법, 걷는 법, 차 마시는 법, 춤추는 법, 곱게 자는 법, 화장하는 법 등등, 손님을 기쁘게 하는 예법 모두를 배운다.
‘게이샤는 몸을 파는 것이 아니라 기예를 파는 거야. 게이샤는 움직이는 예술품이야.’
게이샤의 철학이 녹아있는 마메하로부터 그렇게 정성스런 지도를 받아, 어린아이 치요는 오사카 최고의 게이샤 사유리로 재탄생된다.
바로 그 사유리 역을 장쯔이가 맡은 것이다.
초 일류게이샤 하츠모모의 끊임없는 시기와 질투를 견뎌낸 끝에, 드디어 게이샤 최고의 자리에 서는 영광을 얻게 되지만, 치요의 그 영광은 잠시였다.
삐친 하츠모모의 흉계에 빠져, 또 다시 좌절의 늪에 빠져야 했다.
그 좌절의 늪을 빠져나가는 치요의 삶이 너무나 눈물겹다.
그 영화를 또 봤다.
바로 어제인 2020년 3월 2일 월요일 오전 7시쯤의 일로, 케이블 TV ‘INDIEFILM’에서였다.
출근하려고 막 일어서려는 순간에 언뜻 본 TV 화면에서 낯익은 장면이 방영되고 있기에, 발걸음을 잠시 멈춰서 봤더니, ‘게이샤의 추억’이라는 바로 그 영화가 방영되고 있었던 것이다.
다시 주저앉을 수밖에 없었다.
역시 감동이었다.
치요의 그 애틋한 파란 눈동자가 또 다시 내 가슴에 뭉클 하는 감동으로 담겨들고 있었다.
또 하나 더 감동인 장면이 있었다.
게이샤가 된 사유리가, 치요라는 그 어린 시절에 그 남자를 처음 만났을 때의 마음을 고백하는 대목이었다.
그 고백, 곧 이랬다.
‘모르시겠어요? 다리 위에서 만난 순간부터 제 발길은 언제나 당신만을 향하고 있었어요.’
https://tv.kakao.com/v/CzF6r4CgMJk$@m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