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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 16: 13 진리의 성령이 오시면 - 요 16: 15 내 것을 가지고
요 16: 13 진리의 성령이 오시면 - 그러나 진리의 성령이 오시면 그가 너희를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시리니, 그가 스스로 말하지 않고 오직 들은 것을 말하며, 장래 일을 너희에게 알리시리라. ( 그러하나 진리의 성령이 오시면 그가 너희를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시리니 그가 자의로 말하지 않고 오직 듣는 것을 말하시며 장래 일을 너희에게 알리시리라. )
성경에서 "진리"란 오직 "성령"을 가리킨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
사람이 스스로 진리를 만들어 내거나 사람 어떤 가르침이라고 해도 그 가운데 진리가 있는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보내주시는 성령만이 진리이다.
1] 그러나 진리의 성령이 오시면
혹자는 이 표현에 대해 성령이 진리를 가져와서 세상 사람들의 양심에 그 진리를 심어 주시는 것으로 설명한다(Bernard).
이와 비슷하게 바렛(Barrett)도 이 말이 '진리를 전달하시는 성령'을 의미한다고 단언한다. (이에 대해 자세한 것은 14: 17 주석을 참조하라.)
2] 그가 너희를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시리니,
(1) '진리 가운데로'란 표현이 사본에 따라 두 가지로 각각 다르게 나타난다.
① '엔 테 알레데아'(*)
시내산 사본(*)과 베자 사본(*)을 비롯한 몇몇 대문자 사본(L, W, * )과 소문자 사본이 이 독법을 따른다.
이 독법을 지지하는 학자들은 본 구절을 '진리의 전 영역 안에서의 인도하심'으로 해석하거나(C. K. Barrett), '모든 진리 안에서 교훈하심'으로 해석한다(Farrar, Fenton).
② '에이스 텐 알레데미안'(*)
몇몇 대문자 사본 (L, W, * )과 많은 소문자 사본이 이 독법을 따른다. 그리고 터툴리안(Tertullian)과 바실(Basil) 그리고 크리소스톰(Chrysostom)과 같은 교부들도 이 독법을 지지한다.
이 독법을 지지하는 학자는 헬라 고전 문학에서처럼 '에이스'가 항상 역동적인 의미를 지니고 있으므로 본 구절을 '성령의 활동하에서 그리스도의 전체 진리 안으로 뚫고 들어가는 것을 매우 잘 묘사해 주는 것'이라고 주장한다(Dela Potterie).
모리스(L. Morris)도 이 독법을 지지하면서 '시간이 경과 함에 따라 성령은 제자들을 점점 더 깊이 진리에 대한 지식 안으로 인도하실 것이다'라고 본 구절을 해석한다.
여기서 어떤 독법을 취하든지 중요한 것은 성령이 진리와 관련해서 성도들을 인도하신다는 사실이다. 포치(Porch)의 진술대로 예수는 이 세상에 오심으로 스스로 진리를 계시하셨으며 보혜사 성령은 이 진리를 드러내 보이시며 성도들을 위해 그 진리 안으로 들어가는 입구를 만드셨다.
이런 의미에서 진리의 성령이 오신 목적은 그리스도를 세상에 증언하는 일이다(15: 26). 성령은 세상을 책망하시는 반면(16: 8-11) 제자들과 성도들은 그리스도에게로 인도 하신다.
(2) '인도하다'(*, 호데게오)는 70인 역(LXX)에서 시편에 자주 등장한다.
"인도하다"oJdhgevw(호데게오) "길을 보여주다, 이끌다, 안내하다"로 세상에서 방황하는 우리를 진리중의 진리로 이끄신다. 이 단어는 구약의 히브리어 (hj;n: 나하)를 70인 역(LXX) 옮긴 것으로 시편에서 많이 나타난다(시 5: 8. 18: 19. 23: 2-3. 27: 11. 31: 3. 42: 4. 60: 9. 73: 24. 78: 14, 16, 52. 80: 1. 81: 10. 105: 37. 107: 7, 14, 28, 30. 136: 11-12, 16. 143: 10 등).
대부분의 시편이 하나님의 인도를 바라고 있음을 보여준다.
시편에서 이 용어는 현재의 문제에 대한 해결뿐만 아니라 궁극적인 구원을 갈구하는데 사용되었다. 다른 곳에서 이 용어는 인도하고 가르치시는 하나님을 표현할 때 사용되기도 했다.
* 출 13: 17 - 바로가 백성을 보낸 후에 블레셋 사람의 땅의 길은 가까울지라도 하나님이 그들을 그 길로 인도하지 아니하셨으니 이는 하나님이 말씀하시기를 이 백성이 전쟁을 하게 되면 마음을 돌이켜 애굽으로 돌아갈까? 하셨음이라.
* 수 24: 3 - 내가 너희의 조상 아브라함을 강 저쪽에서 이끌어 내어 가나안 온 땅에 두루 행하게 하고 그의 씨를 번성하게 하려고 그에게 이삭을 주었으며
이처럼 '호데게오'는 '인도하다'는 의미와 '가르치다'는 의미를 함께 지니고 있으므로(Kittel) 본 절에서도 '가르치다'란 의미를 취할 수 있으나 이 단어 뒤에 이어지는 전치사 '에이스'와 잘 조화가 되지 않으므로 '인도하다'가 적당하다.
3] 그가 스스로 말하지 않고
예수는 자기의 의도대로 말씀하지 않았다.
* 요 8: 26 - 내가 너희에게 대하여 말하고 판단할 것이 많으나 나를 보내신 이가 참되시매 내가 그에게 들은 그것을 세상에 말하노라. 하시되
* 요 12: 49 - 내가 내 자의로 말한 것이 아니요, 나를 보내신 아버지께서 내가 말할 것과 이를 것을 친히 명령하여 주셨으니
* 요 14: 10 - 내가 아버지 안에 거하고, 아버지는 내 안에 계신 것을 네가 믿지 아니하느냐? 내가 너희에게 이르는 말은 스스로 하는 것이 아니라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셔서 그의 일을 하시는 것이라.
이처럼 성령도 자기 임의로 말씀하시지 않고 오직 '듣는 것'을 말씀한다. 비록 듣는 사람이 다 이해하지는 못했지만 예수는 자신이 해야 할 모든 말씀은 다 드러내셨다.
* 요 4: 25 - 여자가 이르되, 메시야 곧 그리스도라 하는 이가 오실 줄을 내가 아노니, 그가 오시면 모든 것을 우리에게 알려 주시리이다.
성령이 말하는 것은 예수가 선포하셨던 말씀에 대한 단순한 보충이 아니라 성부께서 계획하셨고 성자가 선포하고 실행하셨던 전 구속 사역에 관한 말씀의 의미를 풍부하게 드러내는 것이다.
4] 오직 들은 것을 말하며,
여기서 '듣다'는 현재 시제로 언급되어 성령이 끊임없이 성부와 성자로부터 말씀을 듣고 사역하심을 의미한다.
이는 성부, 성자, 성령의 삼위 하나님이 함께 사역하심을 암시하는 말이기도 하다.
5] 장래 일을 너희에게 알리시리라. ‘
장래일'(*, 타 에르코메나)은 문자적으로 '다가오는 일들'을 뜻하는데, 혹자는 이것을 장래일에 대한 예언으로 해석한다(Bernard).
그러나 이 용어는 본서에서 유일하게 한 번 사용되었으므로 성령의 사역에만 이 용어를 적용시키는 데 어려움이 있다. 여기서 우리는 이 용어를 두 가지로 생각할 수 있다.
(1) 예수가 잡혀 가신 날 밤의 시점에서 본다면
'장래 일'은 곧 닥칠 예수의 십자가상에서의 죽음과 그의 부활을 의미한다.
(2) 세상을 책망하는 성령 사역의 관점에서(8절) 보면
'장래일'은 죄와 의와 심판을 선포하는 종말론적인 사건으로 받아들일 수 있다. 사실 양자를 다 받아 들인다 해도 무리는 없는 것 같다. 왜냐하면 하나님 나라에 관한 종말론적인 사건은 단지 미래의 역사에서만 기대되는 것들이 아니기 때문이다.
종말론적 사건은 이미 복음서 안에서 시작되었다.
* 눅 7: 19 - 요한이 그 제자 중 둘을 불러 주께 보내어 이르되, 오실 그이가 당신이오니이까? 우리가 다른 이를 기다리오리이까? 하라. 하매
예수의 죽음과 부활 역시 종말론적 사건에 포함되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버나드의 견해대로 성령은 하나님의 뜻과 계획을 모두 아시므로 제자들에게 장래 일을 깨닫게 하실 수 있다. 그리고 이러한 성령의 사역은 요한의 계시록에서 절정을 이루었다.
이 예언의 기능 역시 예수의 말씀과 별개가 아니라 철저히 그의 말씀과 결부되어 주어진 것이다. 따라서 '장래 일'은 전체 구속사 중 남은 부분에 대한 것으로 예수가 이 세상에 오신 이후 성취될 일들이다.
성령은 과거, 현재, 미래의 모든 일들에 대하여 다 알고 계시므로 그의 사역을 단지 어떤 한 사건에 대한 예언으로 제한시킬 수 없다.
요 16: 14 내 영광을 나타내리니 - 그가 내 영광을 나타내리니 내 것을 가지고 너희에게 알리시겠음이라. ( 그가 내 영광을 나타내리니 내 것을 가지고 너희에게 알리겠음이니라. )
그가 성령을 말하는 것으로 '책망하는 역할'(8절)과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는 역할'(13절)은 모두 예수의 영광을 나타내는 것이다.
성령 자체가 예수님의 사역을 돕기 위한 영이라는 것이다.
1] 그가 내 영광을 나타내리니
앞에서 성령의 역할은 세상을 책망하며(8절), 제자들을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는 것이라(13절) 소개되었거니와 여기서는 예수의 영광(Glory, NIV)을 나타내는 것이라 덧붙여 소개된다.
넓게 보면 본 절의 이 역할은 앞에 언급한 두 역할과 직접적으로 연결될 뿐만 아니라 거의 동일한 의미를 시사한다.
본 구절의 의미에 대해서는, 일차적으로 예수의 부활을 증거하시는 성령의 사역을 떠올릴 수 있다. 예수는 비천한 말구유에서 탄생하심부터 시작하여 공생애 기간에 줄곧 머리 둘 곳도 없을 정도로 외관상 초라한 생활을 하셨다.
* 눅 9: 58 - 예수께서 이르시되, 여우도 굴이 있고 공중의 새도 집이 있으되 인자는 머리 둘 곳이 없도다. 하시고.
특히 영광과 위엄 가운데 지상의 메시야 왕국을 건설하리라는 제자들과 그들을 위시한 추종자들의 기대와는 정반대로 십자가에서 처절한 모습으로 죽음을 당하셨을 때, 모든 사람들의 눈에 그 십자가는 수치와 무기력과 절망으로 보였을 뿐이며, 예수의 영광은 어디서도 찾을 길 없어 보였다.
왜냐하면 제자들은 예수의 영광이 고난과 죽음의 관문(關門)을 거친 후 비로소 얻어지는 것임을 알지 못하고 단지 죽음 자체만 보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예수의 부활에 대한 생생한 목격과 강림하신 성령의 증거를 통해 예수의 위엄과 영광은 확연히 드러나게 된 것이다. 아울러 본 구절의 의미는 '이유'를 나타내는 접속사 '호티'(*)로 연결되는 본 절 하반절에 의해 뒷받침된다(15절 참조).
즉 이러한 부활에 대한 증거 사역을 포함하여 성령은 창조주와 구속주이신 예수의 신적 본성과 신분 및 장래 재림주로 임하실 사실 등을 증언함으로써 예수 당시에는 제자들이 이해하지 못했던 부분들을 명확히 밝혀 예수의 영원하신 영광을 충만히 드러내셨고 또 앞으로도 드러내실 것이다.
요컨대 성령이 증언하는 예수의 복음은 영광의 광채이다. 왜냐하면 예수의 존재 자체가 하나님의 영광을 충만하게 드러내고 있기 때문이다.
* 고후 4: 4, 6 – 4 그 중에 이 세상의 신이 믿지 아니하는 자들의 마음을 혼미하게 하여 그리스도의 영광의 복음의 광채가 비치지 못하게 함이니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형상이니라. 6 어두운 데에 빛이 비치라. 말씀하셨던 그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의 얼굴에 있는 하나님의 영광을 아는 빛을 우리 마음에 비추셨느니라.
또한 본문은 성령의 사역이 철저히 그리스도 중심적(Christocentric)임을 나타낸다. 즉 아들이 아버지와 하나임에도 불구하고 아버지께 철저히 순종함으로써 어버지의 영광을 드러내고 자신의 역할을 온전히 완수했듯이 성령의 사역 또한 예수의 사역 위에 기초하며 또 예수 사역의 결실을 맺는 일에 초점을 맞춘다.
성령께서는 예수 그리스도를 영화롭게 하실 것이다. 왜냐하면 그는 예수 그리스도의 것을 가지고 제자들에게 알리실 것이기 때문이다. 그는 결코 예수 그리스도와 관계없는 일을 하지 않으실 것이다. 여기에 예수 그리스도와 성령의 밀접한 관계가 있다.
또 아버지께 있는 것이 다 내 것이라는 말씀은 예수 그리스도의 참된 신성(神性)을 보인다. 하나님의 것은 피조물의 것이 될 수 없다. 하나님 아버지의 모든 소유물을 자신의 소유물로 여길 수 있는 분은 오직 하나님의 아들뿐이시다.
또 예수께서는 7절에서 “내가 그를[성령을] 너희에게로 보내리라”고 이미 말씀하셨다. 하나님의 영은 곧 예수 그리스도의 영이시다. 그가 바로 사도시대에 교회에 오신 성령이시다.
요 16: 15 내 것을 가지고 - 무릇 아버지께 있는 것은 다 내 것이라. 그러므로 내가 말하기를 그가 내 것을 가지고 너희에게 알리시리라. 하였노라. ( 무릇 아버지께 있는 것은 다 내 것이라. 그러므로 내가 말하기를 그가 내 것을 가지고 너희에게 알리리라. 하였노라. )
성부, 성자, 성령이 이와 같이 한 구절에 잘 표현되어 있는 곳을 찾아보기 어렵다. 본 절은 삼위일체를 제일 잘 대변하는 구절이다.
이 세 구별된 인격은 한 하나님이시다. 완전한 신성(神性)을 가지신 세 구별된 인격이 본질과 본체에 있어서 한 하나님이시다.
이것이 성경에 밝히 계시된, 그래서 정통 교회가 역사적으로 믿고 고백해온, 하나님의 삼위일체 신비이다.
1] 무릇 아버지께 있는 것은 다 내 것이라.
예수는 17: 10에서 '내 것은 아버지의 것이요, 아버지의 것은 내 것'이라고 가르치신다.
따라서 본문에서 성령이 나타내시는 것은 성자에게 속한 것을 근거로 하지만 결국 그것은 성부의 것이다.
* 요 3: 35 - 아버지께서 아들을 사랑하사 만물을 다 그의 손에 주셨으니
* 요 5: 20 - 아버지께서 아들을 사랑하사 자기가 행하시는 것을 다 아들에게 보이시고 또 그보다 더 큰 일을 보이사 너희로 놀랍게 여기게 하시리라.
2] 그러므로 내가 말하기를 그가 내 것을 가지고 너희에게 알리시리라. 하였노라.
삼위 하나님은 구속(救贖) 사역에 있어서 상호 협동적이다.
(1) 성부는 구속 사역을 계획하셨다.
* 엡 1: 3-5 – 3 찬송하리로다. 하나님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하늘에 속한 모든 신령한 복을 우리에게 주시되 4 곧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 우리로 사랑 안에서 그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 5 그 기쁘신 뜻대로 우리를 예정하사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기의 아들들이 되게 하셨으니
* 벧전 1: 2 - 곧 하나님 아버지의 미리 아심을 따라 성령이 거룩하게 하심으로 순종함과 예수 그리스도의 피 뿌림을 얻기 위하여 택하심을 받은 자들에게 편지하노니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더욱 많을지어다.
(2) 성자는 성부의 뜻에 순종하여 구속을 완성하셨다.
* 엡 1: 7 -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그의 은혜의 풍성함을 따라 그의 피로 말미암아 속량 곧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3) 성령은 구속 사역의 의미를 드러내시며 동시에 예수가 완성하신 그 구속을 각 사람들에게 적용시키는 역할을 담당하신다.
* 엡 1: 8-9 – 8 이는 그가 모든 지혜와 총명을 우리에게 넘치게 하사 9 그 뜻의 비밀을 우리에게 알리신 것이요, 그의 기뻐하심을 따라 그리스도 안에서 때가 찬 경륜을 위하여 예정하신 것이니
* 벧전 1: 12 - 이 섬긴 바가 자기를 위한 것이 아니요 너희를 위한 것임이 계시로 알게 되었으니 이것은 하늘로부터 보내신 성령을 힘입어 복음을 전하는 자들로 이제 너희에게 알린 것이요 천사들도 살펴보기를 원하는 것이니라.
그렇기 때문에 결국 성령의 역할을 본문에서 성자의 것을 가지고 사람들에게 알리는 것으로 나타난다.
예수가 소유하신 '내 것'은 자신이 성취하신 전체 구속 사역을 의미한다. 그리고 그 구속 사역을 바탕으로 한 '장래 일'(13절)도 여기에 포함될 수 있다.
왜냐하면 '장래 일'은 그리스도가 성취한 구속 사역을 근거로 전개될 것이며 또한 그 일은 성부가 계획하신 것이므로 역시 그리스도의 것이기 때문이다. 바울이 '그리스도의 풍성'(엡 3: 8)이라고 표현한 것도 이 말씀을 근거로 비롯되었다고 본다.
3] 진리의 성령이 오시면 (요 16: 12-15)
예수님은 성령이 오셔서 하실 사역으로 “죄에 대하여, 의에 대하여, 심판에 대하여 세상을 책망하시리라”라는 말씀을 하시고 이 같은 사역을 이루실 성령의 인도하심에 대하여 말씀하셨다.
예수님은 아버지께로 가셔서 보내실 성령이 오시면 그가 하실 놀라우신 구원 사역에 대하여 세세히 알려 드리지 못함을 안타깝게 여기셨다.
“내가 아직도 너희에게 이를 것이 많으나 지금은 너희가 감당치 못하리라”라고 하신 말씀에서 그 뜻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주님은 성령이 오시면 그가 너희를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시리라고 하셨다.
(1) 진리로 인도하시는 성령의 인도하심
성령이 하시는 가장 위대한 역사는 인간의 구원에 있어서 죄인들을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신다는 사실이다. 성령이 우리를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신다는 말씀에는 여러 가지 뜻이 함유되어 있다.
① 성령은 진리를 증언하신다.
진리의 증언자는 성령이다. 모든 성경은 성령의 감동으로 기록된 책으로 성령이 그 증거 자이시다.
* 딤후 3: 16-17 – 16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17 이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하게 하며 모든 선한 일을 행할 능력을 갖추게 하려 함이라.
② 성령은 진리를 깨닫게 해 주신다.
“진리가 무엇이냐”는 물음은 빌라도가 죄인으로 자신의 재판대 앞에 선 예수님께 던진 질문이다. 예수님은 분명 그에게 진리에 대하여 증언하였지만, 빌라도는 깨닫지를 못했다.
예수님은 유대인들에게 이르시기를 “내가 진리를 말하므로 너희가 나를 믿지 아니하는 도다”라고 말씀하셨다(요 8: 45).
진리란 곧 생명이신 예수를 말한다. 예수님은 “내가 곧 길이요 잔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라고 하셨다(요 14: 6). “은혜와 진리는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온 것”이라고 말씀하였다(요 1: 17).
③ 성령은 진리를 믿게 하신다.
진리에 대한 믿음은 성령이 주신다.
* 살후 2: 13 - 주께서 사랑하시는 형제들아. 우리가 항상 너희에 관하여 마땅히 하나님께 감사할 것은 하나님이 처음부터 너희를 택하사 성령의 거룩하게 하심과 진리를 믿음으로 구원을 받게 하심이니
믿음은 하나님의 선물이다.
* 엡 2: 8 - 너희는 그 은혜에 의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으니 이것은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누구든지 진리가 되시는 그리스도를 믿지 않으면 영생을 얻을 수 없다. 그런데 이 믿음은 우리의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요 순전히 성령이 주시는 하나님의 선물이다.
④ 성령은 진리로 거듭나게 하신다.
진리로 사람을 거듭나게 하시는 역사는 성령이 하시는 사역이다. 이 일에 대하여 예수님께서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느니라”라고 하셨다(요 3: 5).
(2) 장래 일을 알게 하시는 성령
성령께서는 우리에게 장래 일을 알리신다고 말씀하셨다. 장래 일이란 “장차 올 일들”을 말한다. 이것은 성령의 계시로써 우리들에게 나타나셨다.
① 장래 일은 부활의 소망을 말한다.
그리스도인에게 부활이란 큰 소망임과 함께 장래에 올 일이다. 성령은 우리들에게 끊임없이 이 부활에 대한 소망을 견고히 하도록 하신다.
② 장래 일은 천국에 관한 일이다.
우리는 성령의 계시로 말미암아 천국에 대한 뚜렷한 믿음을 가지고 있다. 천국에 대한 일은 오직 성령만이 알게 하실 수 있는 영적 계시이다.
장래 일이란 그리스도의 재림에 관한 일이다. 성령께서는 특별히 사도 요한을 통하여 종말에 관한 계시로써 ‘요한 계시록’을 주셨다. 성령께서는 장래 일에 대하여 기록된 말씀을 통하여 이미 완전히 계시하셨다.
성령이 우리에게 말씀하시는 모든 계시는 자의로 말씀하는 것이 아니라고 하셨다. 예수님의 사역도 스스로 말씀하신 일이 없으셨다. 주님은 언제나 아버지께 들은 것을 말씀하신다고 밝히셨다.
* 요 8: 26 - 내가 너희에게 대하여 말하고 판단할 것이 많으나 나를 보내신 이가 참되시매 내가 그에게 들은 그것을 세상에 말하노라. 하시되.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은 그 본질에 있어서 한 분이시다. 세 분은 오직 한 본체를 이루고 계시기 때문이다. 성령은 아버지와 아들과 대화하신다.
하나님의 창조 사역에 있어서 서로 의논하셨던 것처럼 인간의 구원 사역에 있어서도 의논하신다. 성령께서는 이 같은 하나님의 전능하신 지식으로 우리에게 장래 일을 말씀하신다.
(3) 그리스도의 영광을 나타내시는 성령
성령이 오시면 그가 그리스도의 영광을 나타내시리라고 말씀하셨다. 성령은 그리스도의 영광을 나타내시는 하나님의 영이다. 그러면 성령께서는 그리스도의 어떤 영광을 나타내시는가?
성령은 그리스도께서 바로 영광의 창조주 하나님이심을 나타내신다. 성경은 그리스도가 하나님과 동등하신 분이심을 증언하며, 그가 바로 만물의 창조주이심을 밝히고 있다.
이것은 성령이 그리스도의 영광을 나타내시는 계시이다. 그리스도의 영광에 대하여 그리스도는 태초부터 하나님과 함께 계셨던 말씀이시며 그 말씀은 곧 하나님이라고 증언한다.
* 요 1: 1 –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
그리고 그리스도는 아버지의 독생자 영광이라고 말씀하셨다.
* 요 1: 14 -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의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
모든 만물이 그리스도에 의하여 창조되었으며 그리스도를 위하여 창조되었다고 말씀하였다.
* 골 1: 16 - 만물이 그에게서 창조되되 하늘과 땅에서 보이는 것들과 보이지 않는 것들과 혹은 왕권들이나 주권들이나 통치자들이나 권세들이나 만물이 다 그로 말미암고 그를 위하여 창조되었고.
성령이 하시는 일은 그리스도를 높이시는 일이다. 그의 무한대한 영광을 드러내는 일이다. 우리가 분명히 알아야 할 일은 사탄이 하는 일은 그리스도를 피조물의 자리까지 내리는 일이요, 성령이 하시는 일은 그리스도를 하나님 영광의 자리까지 끝없이 높이는 일이다.
본문의 교훈은 무엇인가?
첫째, 성도에게 고난이 있다.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성도에게 고난과 핍박이 있고 심지어 순교를 당하는 일이 있겠으나 그는 그 고난 중에 낙심치 말고 범죄치 말고 변절치 말아야 한다. 그것이 예수 그리스도께서 제자들에게 미리 교훈하신 목적이며 성령을 보내주신 한 목적이기도 하다.
바울은 “제자들의 마음을 굳게 하여 이 믿음에 머물러 있으라 권하고 또 우리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려면 많은 환난을 겪어야 할 것이라”라고 말했다(행 14: 22).
또 그는 “그리스도를 위하여 너희에게 은혜를 주신 것은 다만 그를 믿을 뿐 아니라 또한 그를 위하여 고난도 받게 하려 하심이라”라고 말했고(빌 1: 29), 또 “무릇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경건하게 살고자 하는 자는 박해를 받으리라”라고 말하였다(딤후 3: 12).
우리는 고난과 핍박과 순교를 각오하며 살자.
둘째, 고난을 이기자.
우리는 성령님께 감사하고 그를 의지하며 고난을 이겨야 한다.
성령께서는 이미 세상에 오셨다. 그는 지금 교회 가운데, 성도들의 육체 속에 함께 계신다. 성령님을 모시고 사는 것은 성도가 지상에서 누리는 놀라운 복과 특권이며 고난과 핍박을 이기는 힘이 된다.
셋째, 성령의 인도하심으로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따라야 한다.
성령께서는 죄에 대해, 의에 대해, 심판에 대해 세상 사람들을 깨우치시고 특히 예수 그리스도와 그의 속죄 사역을 증거하실 것이다.
성령은 진리의 영이시며 우리를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시며 장래 일도 알게 하신다. 성령께서는 주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하시며 그를 높이시고 영화롭게 하신다. 즉 그는 구원의 복음을 증거하시고 적용하시고 열매를 맺게 하신다.
오늘날에도 구원받을 자들은 성령의 역사로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구원을 받는다. 그는 우리 속에 영원히 거주하시는 보혜사로 오셨다.
우리는 성령의 역사로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 구원받았으므로 성령의 깨닫게 하심으로 성경을 읽고 성령 안에서 기도하며 성령의 인도하심으로 죄성을 극복하고 성화를 이루며 성령의 위로와 힘으로 고난을 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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