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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 사 이 슈 사 설 】 스크랩 문창극과 보훈처, 독립운동가 문남규 선생을 능욕하다
김하준 추천 0 조회 149 14.09.01 14:54 댓글 1
게시글 본문내용

 

주간경향, 문창극 조부는 독립운동가 문남규 선생과 불일치

조선일보 보도는 대형 오보

문창극, 남평 문씨 족보에도 없다

문창극, 보훈처, 박근혜정권은 독립운동가를 능욕한 중대 범죄행위의 공범

;대한독립단 문남규 선생은 삭주에 들어와 일본군과 전투 중에 사망했다는 역사적 사실관계와 3.1운동 때 만세운동하다가 사망했다는 문창극 조부와 전혀 동일 인물이 아님을 알 수 있다. 

 

 

 

▲원문주소(http://weekly.khan.co.kr/khnm.html?mode=view&dept=113&art_id=201406241449561)

 

 

 

 

 

'주간경향'이 문창극 가계도에 대해서 심도있는 언론검증을 했군요. 그런데, 점입가경인 것은 문창극 조부가 독립운동을 했다는 그 어떤 자료나 근거도 없다는 것이고 특히 문창극 아버지의 이름도 불명확하다고 보도했습니다.

 

총리 지명자였던 문창극은 주변에  “아버지와 어머니는 1948년 평안북도 삭주군에서 기독교 신자라는 이유로 숙청된 뒤 만삭의 몸으로 월남해 나를 낳았다”고 했으나, 어제 사퇴 기자회견에서는 갑자기 독립운동을 한 조부로 둔갑을 합니다.

 

문창극은 어제 "저의 가족은 문남규 할아버지가 3·1운동 때 항일운동을 하셨다고 문기석 아버님으로부터 듣고 자랐습니다. 사실 우리 당시 민족가운데 만세를 부르지 않은 사람이 누가 있겠습니까. 그렇지만 돌아가셨다 했기 때문에 저도 사실 당당한 조상을 모신 사람이구나 생각하며 살았습니다. 저에 대한 공격이 너무 사리에 맞지 않기 때문에 검증 과정에서 저의 가족 이야기를 했습니다."

 

"검증팀이 보훈처에 자료를 가지고 알아봤습니다. 뜻밖에 저희 할아버지가 2010년에 애국장이 추서된 것을 알았습니다. 저의 자녀도 검색해봤습니다. 여러분도 검색창에 ‘문남규 삭주’ 이렇게 검색 해보십시오. 저의 원적은 평북 삭주입니다. 그리고 이 사실이 실려 있는 1927년 상해 발행 독립신문 찾아보시라. 이거 언론재단에 다 있습니다. 저희 가족은 밖에 알리지 않고 조용히 처리하기로 했다고 어제 말했습니다."라며, 자신의 조부가 독립운동가임을 기정사실화 하는 만행을 저지릅니다.

 

그런데 '주간경향'은 문창극이 펴낸 단행본 <문창극칼럼>에서도 위와 동일한 내용, “1948년 가을 나의 아버지는 만삭인 어머니와 함께 일가를 이끌고 38선을 넘었다. 너무나 다행스럽게 나는 이 자유의 나라에 들어서자마자 탄생할 수 있었다.” 대목이 있다는 것을 찾아 냈습니다.

 

또 재미있는 것은 문창극이 스스로 '4~5대째 기독교 집안'이라는 대목도 문제가 상당히 있는 것 같다는 보도입니다.  

 

기사에서는 이 문제를 한 교계 인사는 “한국 기독교의 전래과정을 보면 통상적으로 1884년 로스 선교사가 서간도에서 한국사람 75명에게 세례를 준 일이나 알렌 선교사의 활동을 기원으로 보는데, 그 때부터 아무리 세어봐도 4대, 5대가 되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문 지명자의 말대로라면 극초기 기독교를 받아들인, 말하자면 뼈대 있는 기독교 집안이라는 이야기인데….”라며 절대 4,5대째가 될 수 없다는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한마디로 어불성설이라는 소립니다.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문창극이 대대로 기독교 집안이라고 했는 데, 실상은 문창극 가계도만큼이나 미스테리한 부분입니다.

 

문창극 부친 성명 불명확

문기호, 문기석이라는 두개의 이름 사용

문창극 아버지 1913~14년 출생(1989년 사망)

독립운동가 문남규 선생 1920년도로 추정한다는 민족문제연구소와 정면 배치

현 정권(보훈처)은 왜 문창극 가족사 세탁이라는 작당모의를 했을까?

 

 

▲1921년 상해판 독립신문(빨간 부분이 문남규 선생 관련 순국 내용)

 

 

 

주간경향 기사에 따르면 문창극 부친의 이름도 불명확하다고 합니다.  과거 기록에는 "문기호(文基鎬) 또는 문기석(文基錫)"을 사용했는 데, 주간경향 기자사 과거 신문을 검색해본 바 문창극이 "1976년 12월 13일 부인 채관숙씨와 결혼한다는 동정 단신이 나온다. 당시 경향신문에 실린 기사에 따르면 중앙일보 기자 문창극씨는 아버지 문기호(文基鎬)씨의 장남이다. 그런데 다시 1989년 1월 18일 그의 아버지 부음 소식이 다른 신문에 실려 있다. 이때의 이름은 문기석(文基錫)이다."라고 되어 있어, 문창극 아버지 이름 역시 미스테리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결정적으로 문창극조부에 대한 부분인 데, 주간경향은 문창극 아버지가 1989년 1월 18일날 사망한 것으로 당시 76세라고 했으니까 1913년~14년생으로 추정한다고 했습니다.

 

문창극이 자신의 조부로 조상세탁하려 했던 문남규 선생은 민족문제연구소가 밝힌 내용대로라면 일본군과의 전투과정에서 1920년경에 사망했다고 했습니다. 7살짜리 문창극 아버지 문기석씨가 말했다는 만세운동도 문창극이 만든 소설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듭니다.

 

독립운동가 문남규 선생은 문창극이 사퇴 기자회견에서 밝힌 “할아버지가 3.1운동 때 만세를 부르시다가 돌아가셨다는 가족사를 아버님으로부터 전해 들었다”는 대목과 '대한독립단' 활동으로 순국한 문남규 선생과는 전혀 상관 관계가 없다는 말이 성립됩니다.

 

이런 객관적인 명백한 증거가 많음에도 왜 문창극은 문남규 선생을 욕보이고 자신의 조부로 만들려 했을까요? 왜 현 정권(보훈처)은 이런 천인공노할 일에 작당모의를 했을가요?

 

 

조선일보의 문창극 오보와 왜곡, 천인공노할 파렴치

보훈처, 일부 언론들의 기정사실화에도 적극적으로 판단하지 않음

보훈처의 "추정한다"라는 의미는 문맥상으로 문남규 선생과 동일시

 

 

 

▲조선닷컴 캡쳐

 

 

 

조선일보는 지난 6월 23일자 기사에서 “문씨의 조부가 독립유공자 문남규(文南奎) 선생이라는 것이 확인되었다”는 고의적이고 의도적인 초대형 오보를 낸 바 있습니다.  

 

이에 보훈처는 문남규 선생이 “1921년 평북 삭주에서 돌아가신 것으로 알려진 문남규 선생과 동일인으로 추정된다고 만 이야기했지, 문남규 선생의 원적지가 확인되었다고 하지 않았다”라며 언론의 오보가 잘못됐음도 인정했습니다. 그러나 보훈처는 적극적으로 문남규 선생이 문창극 조부가 아님을 인정하는 것이 아닌 조부로 착각하게 만드는 오류를 범했습니다.

 

"추정한다"라는 의미는 사실일 수도, 아닐 수도 있다는 것으로 확정된 말은 아닌 데, 문맥상으로는 동일인이라고 볼 수 있다는 것을 강조한 보훈처의 의도된 문창극 가족사 세탁작업에 공식적으로 동참한 것으로 판단됩니다.

 

결론적으로 문창극 가족사 세탁작업에 현 정권(보훈처)가 적극적으로 개입한 것입니다. 보훈처장 박승춘은 이번 사태에 대한 법적, 정치적 책임도 져야 합니다.

 

 

보훈처의 추측은 문창극 독립운동가 후손 만들기였나?

;故 문남규 선생 본적, 주소가 명백하게 '미상'임에도 보훈처는 고의적으로 "독립유공자 문남규의 전사?순국 지역과 후보자 조부 문남규의 원적지가 평북 삭주로 동일하다"고 판단했습니다. 이는 명명백백히 범죄행위로 '날조'에 해당합니다. 

 

 

 

▲고 문남규 선생 공적조서

 

※ 고 문남규 선생공적 조서에서는 문남규 선생 본적이 '미상'으로 나와 있다. 주소 역시 '미상'으로 나와 있고, 소속 및 직위란에는 '대한독립단' 소속임을 밝히고 있다. 또한 활동지역은 평북 삭주, 수형 내용은 '전사순국'으로 되어 있다.

 

고 문남규 선생 공적 개요 부분에서는 "1921년 평북 삭주에서 대한독립단 대원으로 일본 군대와의 전투 중 전사 순국한 사실이 확인 됨"이라고 되어 있다.

 

그런데 민족문제 연구소는 1921년 사망한 것이 아니라 1920년경에 사망한 것으로 보는 것이 합당하다는 견해를 밝히고 있다.

 

 

 

보훈처는 그 근거로 “부친 문기석이 7세 당시 조부 문남규가 사망했다”고 진술한 내용이 독립신문 1921년 4월 9일자의 문남규 순국년도와 일치한다”고 하여 "추정한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제적등본에 기재된 조부의 성함과 독립신문에 게재된 한자까지 동일 ▲독립유공자 문남규의 전사?순국 지역과 후보자 조부 문남규의 원적지가 평북 삭주로 동일 ▲제적등본 상 1931년 후보자 부친 문기석의 호주 상속 당시 조부 문남규가 사망한 상태이므로, 1931년 이전 사망 확인이 됐다면서 문창극 조부와 문남규 선생이 동일인임을 사실상 인정한 것으로 오도될 개연성이 있습니다.

 

당시에 사망한 문남규 선생은 “또 모지방기관으로부터 출동된 토벌대장 주○○씨 이하 일 소대는 전국내를 통하야 토벌하기로 계획을 정하고, 출동한 바 삭주군에서 적군과 개벌되야 기개의 적을 참하고 다소의 승리를 득하였스나 종군하였든 이선찬 문남규 양씨가 순국하다.”라고 하여, 본적지, 원적지를 말하는 게 아니라 일본군과의 전투장소를 언급한 것이라고 주간경향은 말합니다.

 

핵심은 문창극 조부가 독립운동가 문남규 선생과 동일 인물일 가능성이 거의 없다는 말과도 같습니다. 그런데도 보훈처는 고의적으로 故 문남규 선생의 본적지, 주소지가 미상임에도 "독립유공자 문남규의 전사?순국 지역과 후보자 조부 문남규의 원적지가 평북 삭주로 동일"하다는 날조 만행을 저질렀습니다.

 

친일반민족 극우성향의 문창극을 구하기 위해 보훈처가 이런 파렴치한 짓을 했다는 것은, 친일정권인 현 정권이 문창극 가족사를 세탁해 자신들의 치부인 친일반민족 독재 세력에 대한 국민적 반감 여론을 잠재우기 위해 야비한 술책으로, 전 국민을 상대로 사기극을 펼친 것입니다.

 

그리고 남평 문씨 족보에도 없는, 뿌리없는 자가 총리 자리를 넘봤다는 사실에 분노가 치솟고 더더욱 독립운동가 문남규 선생을 자신의 조부로 세탁하려 한 그 불순한 의도마저 가증스럽습니다. 설사 족보에서 누락됐다고 해도 남는 의문은 눈덩이처럼 커 보입니다.

 

문창극이 오만방자하게 사과 한마디 하지 않고 자진사퇴하며 박근혜를 돕겠다는 궤변을 쏟아냈지만 문창극 문제에 대한 논란, 특히 독립운동가 문남규 선생을 자신의 가족으로 세탁하려 했던 반인륜적이고 패륜적인 파렴치한 범죄행위를 한 현 정권(보훈처)과 함께 반드시 밝혀내야 할 부분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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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 14.09.12 21:00

    첫댓글 좋은 자료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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