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총을 베풀리라
(사무엘하 9 : 1-8)
미국 피츠버그의 카네기 그림 전시장에 기묘한 그림 하나가 있는데, 이 그림은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엠마오를 지나던 두 제자에게 떡을 떼어주시는 그림입니다. 두 제자 앞에는 화가의 아내를 그렸는데 무릎을 꿇고 주님을 바라보고 있고, 그 옆에 화가 자신의 모습도 그렸는데 그는 뻣뻣이 서서 불신과 교만의 자세로 예수님을 등지고 있습니다. 이는 하나님께 대한 인간의 태도를 두 가지로 보여주고 있습니다. 무릎을 꿇고 하나님을 섬기는 사람과 불신과 교만으로 하나님을 등지는 사람입니다.
인간의 교만이 문제입니다. 잘되는 것 같다가 실패하고, 올라가다 떨어지고, 가다가 넘어지는 이유는 다른 데 있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 앞에서 무릎을 꿇은 자가 복을 받는다는 사실을 망각하기 때문입니다. 모든 죄의 근본이 교만이며, 모든 불행의 원인이 교만이며, 모든 실패의 뿌리 또한 교만에서 비롯됩니다. 앤드류 머레이는 "겸손은 은총의 보금자리이다."라고 말했습니다. 하나님의 은총이 강물이 낮은 곳을 흐르듯이 겸손한 마음에 임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말씀하십니다. 사무엘상 2장 30절에 "나를 존중히 여기는 자를 내가 존중히 여기고 나를 멸시하는 자를 내가 경멸히 여기리라”
사울왕은 다윗의 인기가 올라 가자 이를 시기하여 다윗을 죽이려고 하였습니다. 사울이 다윗을 죽이기 위해 라마 나욧까지 추격해 왔을 때 다윗은 그를 피하여 요나단에게로 갔습니다. 다윗이 요나단을 찾아 간 까닭은 사울이 자기를 죽이려고 하는 마음이 일시적인 광기였는지, 아니면 확고한 결심이었는지를 알아보기 위해서였습니다. 요나단에게 있어 다윗이란 존재는 친구였지만 사실상 자신의 왕위 계승을 방해하는 아주 위험한 존재였습니다. 그러므로 요나단은 사울왕가의 계승자로써 왕권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다윗을 죽여야만 했습니다. 그런데 요나단은 다윗의 부탁을 흔쾌히 승낙하였으며 아버지의 칼에서 다윗을 구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였습니다. 그는 세상의 부귀영화에 대한 관심보다 다윗과의 우정을 더욱 중시하였으며 자기 생명처럼 다윗을 사랑했던 것입니다. 요나단은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로써 이스라엘의 왕권이 사울 왕의 범죄로 인하여 자신이 아니라 이미 다윗에게 기울어져 있음을 알았습니다.
요나단의 은혜를 잊지 않은 다윗은
1. 그사람에게 은총을 베풀리라
본문 1절에 '다윗이 이르되 사울의 집에 아직 남은 사람이 있느냐 내가 요나단으로 말미암아 그 사람에게 은총을 베풀리라'고 하였다. 보통 사람들은 은혜는 쉽게 잊어 버리고 원한은 가슴 깊은 곳에 쌓아두고 오래도록 기억합니다. 다윗이 보통 사람이었다면 자신이 억울하게 당한 핍박과 고통을 보상받기 위해서라도 사울의 짐에 남은 사람을 찾아 죽여야만 했습니다. 그런데 다윗은 과거에 자신이 죽음의 위협을 가한 사울을 기억하지 않고 자신에게 은총을 베풀었던 요나단을 생각했습니다. 다윗은 분노나 원한에 매여 스스로 어떤 행동을 취하기 보다는 그것은 하나님의 주권에 맡기고 자신은 하나님의 말씀대로 순종하며 받은 은혜에 감사했던 것입니다.
다윗은 요나단으로부터 받은 은혜를 갚기 위해 사울의 유족을 찾았습니다. 사울의 종 시바를 통해 요나단의 아들이 살아 있는데 절름발이라는 것과 마길이라는 사람 집에서 지내고 있다는 것을 듣게 됩니다.
다윗은 사람을 보내 그를 궁으로 불러 들이고, 므비보셋은 엎드려 절하며, 주의 종이라 말합니다.
두려워 하고 있는 므비보셋에게 아버지에게 받은 은혜를 베풀려고 한다며 안심시키고, 조부 사울의 밭을 다 돌려 줍니다. 그리고 이제는 자신과 같은 상에서 음식을 먹으라고 합니다.
마길집에 두려움에 떨며 숨어 지낸 므비보셋이 생각지도 못하게 다윗은 은혜를 입습니다. 다윗앞에선 므비보셋의 심정은 어떠했으며, 다윗이 므비보셋에게 은혜를 베푼 까닭은 무엇일까요?
성인이 되어 아들까지 둔 다윗앞에 불려온 므비보셋은 많이 두렵고 무서웠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 당시 고대 근동의 이방 국가에서는 왕조가 바뀐 때 이전 왕가를 완전히 멸족시키는 것이 일반적인 사례였습니다. 므비보셋은 그토록 다윗을 죽이려 했던 사울의 손자였습니다. 그 때는 어린 나이 다섯살이었지만 왕족이었던 그가 이제 성인이 되어 과거 조부의 사건들을 알고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저주를 받아야 할 므비보셋이 생각지도 못하게 다윗으로 부터 따뜻한 말과 함께 큰 은혜를 입습니다.
왜일까?
다윗은 하나님을 신뢰하는자로 사람들의 보복을 두려워 하지 않았습니다. 또 다윗이 죽음을 피해 쫒겨 다닐 때 므비보셋 아버지 요나단이 생명 같이 사랑하는 친구였고, 생명의 은인이었습니다. 다윗은 요나단으로부터 큰 은혜를 입었습니다. 그것은 요나단의 가족을 보호하겠다는 것이었습니다. 전쟁으로 바빴던 다윗이지만 그 약속을 잊지 않았고, 나라가 평정을 찾자 요나단과의 약속을 지킨 것입니다. 다윗이 요나단과의 맺은 언약을 얼마나 신실하게 잘 지켰는지를 보여 준다. 므비보셋에게는 그야말로 저주가 축복이 되었습니다. 아버지 요나단이 다윗에게 베푼 은혜로 저주 받아야할 자가 축복 받는 자가 된 것입니다.
스스로는 궁핍과 가난, 두려움과 고통에서 헤어나올 수 없는 므비보셋이었지만 이러한 므비보셋에게 다윗은 은총을 베풉니다. 다윗의 은총으로 므비보셋은 졸지에 갑부가 되었습니다. 그의 조부 사울이 가지고 있던 소유를 모두 상속받게 된 것입니다. 그리고 왕의 식탁에서 왕과 더불어 식사할 수 있는 특권을 누리게 되었습니다. 이것이 은혜입니다. 스스로는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존재인데 모든 것을 갖게되고 모든 것을 누리게 되는 것을 말합니다.
사무엘상 2장 26절에 “아이 사무엘이 점점 자라매 여호와와 사람들에게 은총을 더욱 받더라”
잠언 22장 1절에 “많은 재물보다 명예를 택할 것이요 은이나 금보다 은총을 더욱 택할 것이니라”
2. 언약으로 은총을 입었습니다.
므비보셋이 다윗의 은총을 입게 된 까닭은 그가 요나단의 아들이었기 때문이다. 다윗은 피난민 시절에 요나단과 언약을 맺었습니다. 요나단은 다윗에게 네 인자함을 내 집에서 영원히 끊어지지 않게 해달라고 부탁을 했고 다윗은 이를 수락했습니다. 므비보셋 스스로는 절름발이요 무능력한 존재에 불과하였지만 요나단과 다윗이 맺은 언약으로 인하여 은총을 입게 된 것입니다.
이는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는 죄인입니다. 죄로 말미암아 죽어야 하고 죄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영원한 심판을 피할 수 없는 존재였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를 죄와 사망에서 건져 주셨습니다. 하나님의 언약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는 구원해 주시고 하나님의 자녀 삼아 주신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구주로 영접하면 우리는 다 그리스도와 더불어 왕노릇하는 은총을 누릴 것입니다. 므비보셋이 왕의 식탁에서 함께 먹었듯이 주님의 식탁에서 우리는 영원한 축복을 누리게 되는 것입니다.
식탁을 같이 하는 행복을 누리는 것입니다.
시바는 다윗이 사울의 유족을 찾자 한 사람이 남아 있는데 이름을 말하지 않고 "절음발이"라고 말한다. 무엇을 의미할까요?
시바는 사울이 총애하던 종이었습니다. 사울의 은덕을 많이 입었을 것입니다. 패망한 왕족사울이었는데 종인 그는 살아 있고, 거기다가 아들이 열 다섯명, 종이 스무명이었다고 10절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 기록으로 봐서 시바는 사울의 종이었지만 사울가가 망하고 나서도 누리고 산 자입니다. 이제는 새로운 왕 앞에 자기가 은혜를 받았던 사울의 손자를 그저 “절름발이, 즉, 다리를 저는자"라고 말합니다.
왜 였을까요?
나의 생각으로는 보잘 것 없는 존재로 무시당하는 것으로 보여집니다. 왕위 계승권도 잃어버린 채 불구자로서 하나님의 은총을 받지 못할 뿐 아니라 소망 없이 살아간 므비보셋은 자기 집안의 재산을 관리 했던 종에게 조차 보잘 것 없고 버림받은 존재로 비참한 취급 받고 있다는 느낌을 받습니다.
8절에서 자기를 "죽은 개 같은 나"라고 다윗에게 말하고 있는 걸로 봐서 자기는 할아버지 사울의 죄로 저주 받아야 하고, 평생 개같이 살아도 되는 사람으로 스스로 생각합니다. 그런데 다윗의 은혜를 입어 사울이 가지고 있던 소유를 모두 상속받게 되고, 왕의 식탁에서 왕과 더불어 식사할 수 있는 특권을 누리게 되었습니다.
스가랴 4장 7절에 ”큰 산아 네가 무엇이냐 네가 스룹바벨 앞에서 평지가 되리라 그가 머릿돌을 내놓을 때에 무리가 외치기를 은총, 은총이 그에게 있을지어다 하리라 하셨고“
잠언 8장 35절에 “대저 나를 얻는 자는 생명을 얻고 여호와께 은총을 얻을 것임이니라 그에게 있을지어다 하리라 하셨고“
3. 회복시켜 주시는 은총을 주십니다.
다윗과 므비보셋의 모습을 보니, 마치 하나님께서 우리를 부르시고 회복시키시고 대접하시는 것을 떠올릴 수 있습니다.
다윗이 하나님의 사람이 되었을 때, 그가 한 행동들은 하나님의 뜻에 합당한 것들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랑하고 품으시고 환대하시는 분이십니다. 연약한 자를 돌보시고, 감싸 안으시고, 회복시키시고, 존귀히 여기시는 분이십니다. 다윗은 이러한 하나님의 모습을 그대로 드러낸 것입니다.
우리 주님께서 우리를 이처럼 회복시켜주셨습니다. 자격없는 우리를 구원하여 주시고, 의로운 의복을 입혀주시고, 주님의 자녀로 불러주셨습니다. 우리가 받은 은혜와 사랑이 지극히 큽니다.
우리 또한 이러한 사랑의 삶, 환대의 삶을 살아야 합니다. 주님의 뜻대로 기꺼이 연약한 이들을 품고 사랑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주님은 그러한 우리의 모습을 통해 당신의 얼굴을 이 땅에 보이실 것입니다.
하나님은 탕자와 같은 우리를 두발 벌려 받아주시고 다시 자녀로 삼아주신 분이십니다. 아버지보다 아버지께서 주시는 유산에 더 큰 관심이 많았고, 아버지와 더불어 함께 지내는 것보다 낯선 세상에 더욱 관심이 많았으며, 아버지의 뜻을 따르는 것보다 내 욕심, 내 자랑, 내 기쁨을 따르기를 좋았던 탕자와 같은 저희들을 다시 자녀로 받아주시는 분이 바로 우리의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을 만나도 힘들고 어려운 일이 여전히 있습니다. 내 마음이 달라 집니다. 그까지것 뭐 힘들어! 아버지, 해 주세요. 하나님은 멀리 있는 것이 아니라 내 가까이 계셔서 나를 살피십니다. 아버지께서 해 주세요. 힘드니까 저 못해요. 아버지께서 해 주세요. 하나님께 맡기세요.
시편 30편 5절에 ”그의 노염은 잠깐이요 그의 은총은 평생이로다 저녁에는 울음이 깃들일지라도 아침에는 기쁨이 오리로다“
사무엘하 9장 7절에 ”다윗이 그에게 이르되 무서워하지 말라 내가 반드시 네 아버지 요나단으로 말미암아 네게 은총을 베풀리라 내가 네 할아버지 사울의 모든 밭을 다 네게 도로 주겠고 또 너는 항상 내 상에서 떡을 먹을지니라 하니“
하나님께서는 탕자 같은 우리를 버선발로 달려와 안아주시고, 거룩한 새 옷을 입혀주시고, 아버지의 자녀됨을 상징하는 반지를 다시 끼워 주셨습니다. 하나님, 우리가 받은 큰 은혜와 사랑, 그 환대를 우리가 깊이 깨달을 수 있도록 인도하여 주옵소서. 다윗이 므비보셋에게 베푼 은총이 다름아닌 우리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베푸신 사랑이라는 것을 바라보게 됩니다. 너는 크게 은총을 입은 자라로 인정받고 사랑받고 환대받으며 회복되는 은총이 넘치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