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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시아 역사 토론장 오호(五胡)의 쟁패 5 - 석륵과 유요
야스페르츠 추천 0 조회 1,113 09.02.27 09:25 댓글 4
게시글 본문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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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 09.03.03 09:37

    첫댓글 지도자 개개인의 능력도 만만치 않지만 석 륵의 성공은 역시 그 당시 역사 흐름과도 무관하지 않겠지요. 서한대까지는 관중 등 서부의 땅을 차지한 쪽이 우세를 점했지만(예, 서주⇒은상, 서한⇒항초) 동한대부터는 하남 등 동부의 땅을 차지한 쪽이 족족 우세를 점했고 석 륵의 시대에는 그러한 경향이 최근의 일이었으니까요. 여러 요소들이 있겠지만 기본적으로 이러한 흐름이 주요한 요인이 되었으리라 봅니다. 인재 수급 등의 문제에 있어서도요.

  • 작성자 09.03.03 11:37

    그런가요. 그런데 꼭 그렇게만 볼 수도 없는게... 수나라는 관중에서 출발했고, 당나라도 관중을 장악하는 것이 사실상의 출발선이었죠. 꼭 흐름이라 보기 보다는, 결국은 정황의 변화에 따라 관동이 유리할 때도 있고, 관중이 유리할 때도 있는 것 같습니다. 뭐, 송대 이후로는 관중이 완전히 마이너가 되기는 합니다만...

  • 09.03.05 08:06

    네, 동의합니다. 다만 북주의 건국 이전까지는 관동 쪽이 우세를 점한 기간이 길었다는 이야기를 했어야 했는데 설명이 부족했습니다. 여러 변수도 있었지만 역시 관동 쪽이 '인재 수급'에는 유리했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었습니다. 장기적으로 보면 말이지요.

  • 09.05.15 13:28

    유익하게 읽고 있습니다. 늦게나마 감사드립니다. 혹시 유주의 왕준에 대한 기록이 더 있나요? 궁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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