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가 사라지고 있다
/허 열 웅
남자로 태어나서 한평생 멋지게 살고 싶었다. 옳은 것은 옳다고 말하고 그른 것은 그르다고 말하며 떳떳하게 정의롭게 사나이답게 살고 싶었다. 오늘이 어제와 같을지라도 내일은 오늘보다 나으리란 희망으로 하루를 걸어온 길 끝에서 피곤한 밤, 희미한 달빛아래 쓴 소주잔을 기울이면 소주보다 더 쓴 것이 인생살이더라는 말을 꾹꾹 씹어 삼킨다. 아버지는 절대 눈물을 보여서는 안 된다는 다짐을 하는 것이 주어진 숙명이다.
그러나 이제 아버지는 손님이다 못해 그 이름 존재마저 지워져야할 위기에 처해 있는 것이 오늘의 현상이다. 최근에 주로 우리나라에서 연예인으로 활동하고 있는 일본인 사유리라는 여성이 결혼하지 않고 아이를 출생하여 장안의 화제가 되고 있는 상황이다. 그 전에도 방송인 허수경이 정자를 기증받아 시험관 아이를 출산한 적이 있다. 그 때는 사회적 여론은 물론 진보의 경향을 띠고 있는 사람들조차 동조하지 않았으나 이번 사유리의 출산에 대해서는 모두가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것 같다.
그 동안 아버지는 한 가정의 가장이 아니라 손님과 같았다. 다음과 같은 에피소드가 있다. 객지에서 공부하는 대학생 아들이 거의 매일 어머니와 전화로 소식을 주고받아 아버지는 늘 무관심하게 지냈단다. 아들이 어느 날 갑자기 이런 생각을 하게 되었단다. 아버지가 열심히 일해서 내가 이렇게 대학까지 잘 다니고 있는데 제대로 감사 인사 한번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
어머니만 부모 같았지 아버지는 손님처럼 여겨졌다고 후회를 하면서 오늘은 아버지께 고맙다는 말을 해야겠다는 마음으로 전화를 걸었다. 마침 아버지가 받았는데 받자마자 “엄마 바꿔줄 께”하더란다. 밤낮 교환수노릇만 했으니 자연스럽게 나온 것이었다. 그래서 아들은 아니오, 오늘은 아버지하고 이야기하려고요, 라고 말했다. 그러자 아버지는 “왜 돈 떨어졌냐?” 하고 물었다. 그러니까 아버지는 돈 대주는 사람에 불과했던 것이다. 아들은 다시 “아버지께 큰 은혜를 받고 살면서도 너무 불효한 것 같아서 같아서 오늘은 아버지와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고 싶어요,”라고 말했다. 이에 아버지는 “너 술 마셨니?”하면서 엄마를 바꿔줄게 하더란다.
내가 어렸을 때 이웃집에 아버지가 세상을 떠나고 엄마가 홀로 키우는 친구가 있었다. 나와 비슷한 개구쟁이였는데 똑 같이 잘못한 일을 했을 때 그 친구한테는 사람들이 “애비 없는 후레자식”하면서 더 혼내는 모습에 그 이유를 잘 몰랐다. 그 시절은 아버지란 존재는 자식의 잘 잘못은 물론 모든 지식의 전달과 행동의 모범을 보여주는 하늘같은 존재였던 것이다.
그 때나 지금이나 아버지의 마음이란 변변한 옷 한 벌 없어도 번듯한 집 한 채 갖지 못했어도 내 몸 같은 아내와 금쪽같은 자식을 위해 이 한 몸 던질 각오로 살고 있는 것이 아버지의 마음이다. 그래서 고달프고 고독한 사람이라는 것을 들키고 싶지 않은 것이다. 가정을 지키는 수호신이라는 사명감에 울어도 소리가 없고 소리가 없으니 목이 메일 수밖에 없다.
나는 두 아들에게 어떤 아버지일까? 아담의 원죄이거나 호메로스의 신화 오이디푸스 때문인지는 몰라도 부자父子관계가 원만한 경우보다는 불편한 경우를 많이 보게 된다. 부자는 생태적이거나 문화적으로 남자끼리 의사소통이 많지 않았다. 과거 아버지들은 아들을 강하게 키워야한다는 신념에 따라 다정하기보다는 교훈적이고 엄격하기만 했다. 도움보다는 자립을 권하는 것이 사랑이라고 믿어왔다.
이와 같이 행동하며 살아온 탓에 아들들과 거리감은 물론 때론 원망을 받는 경우도 있었다. 아버지 마음은 다정하고 순수해도 그 전달방법이 서툰 경우가 많아 오해를 불러올 수도 있다. 참으로 답답하고 안타까울 뿐 서로 매듭을 풀지 못하고 있다. 아버지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는 시기는 아버지가 떠난 다음에 아들의 가슴에 닿는 아주 멀고 먼 길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이런 아버지조차 모르고 살아야하는 시대가 오고 있다. 세상의 모든 아이가 그러하듯 아이가 자라서 정체성을 가질 때 생물학적 아버지에 대한 질문을 어떻게 해소시켜줄 수 있을 지에 대한 기초적 의문 때문이다. 종교와 철학적 질문으로 연결될 수밖에 없는 생물학적 아버지의 존재 자체를 모른다는 것이 아이의 삶에 부정적인 영향을 끼치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이다. 그 동안 해외로 입양되었던 많은 고아들이 성장하여 낳아준 부모를 간절하게 찾는 사연을 많이 보아왔다.
아이에게 반드시 사회문화적 역할로서의 아버지의 존재가 있어야 한다는 생각 자체가 고루하고 낡은 가치라는 비판을 받을 수도 있겠지만 그래도 반쪽의 생명을 준 뿌리에 알고 싶은 것은 본원적 가치이기 때문이다.“아빠는 어떤 사람이었어?”라는 종교와 철학을 포함하는 생물학적인 뿌리에 대한 질문에 ‘하늘나라에 계셔’ ‘이혼 했어’가 아니라 ‘어떤 사람인지 몰라’ 즉, 아버지의 在가 아닌 知는 아이에게 좋은 대답이 될 수 없을 수 있다는 걱정을 떨칠 수가 없다. 하지만 그래도 사유리 씨의 비혼과 출산의 선택엔 작은 지지와 응원은 보낸다. 이 또한 오롯이 그녀의 삶이기 때문이다.
말馬 / 강만
등짐 노동을 하면서도
말은 평생 서서 잠을 잔다
서서 잠을 자고
서서 꿈을 꾼다
마지막 날
비로소 등짐 내려놓고 누운
아버지 !
첫댓글 너무 슬프게 생각마세요. 지금 잘계시니 믿고 있는것 입니다. 아버지를 찾지 않는것은 잘 지내고 있는 증거입니다. 저희들 잘 살면 효도하는 것입니다. 그들을 위해서 기도나 하면서 사시면 됩니다 언젠가는 고맙습니다. 수고 많으셨습니다 할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