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 보리 이삭
최 병 화
“장거리 정거장 뒤에 있는 밭을 팔기로 했다.”
이러한 말을 처음 아버지에게서 들은 것은 작년 봄 일이었다. 어머니께서는 전부터 여러번 들으셨는지 아주 태연하지만 막동이는 그때까지 아무것도 모르고 있었으므로 깜짝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밭을 팔다니 우리집이 그렇게 어려워졌나?
하고, 근심이 되어서 어머니께 슬며서 여쭈어보았더니 어머니께서는 웃으시면서
“아니 그런 게 아니라 우리 밭 옆에 있는 김 선달네 밭을 서울 부자한테 파는데 우리 밭까지 팔라고 한단다. 김 선달 아저씨가 오셔서 우리 밭을 껴서 팔아야지 값을 더 받는다고 부득부득 팔라고 하시므로 아버지가 그 아저씨한테 신세진 일이 좀 많으나. 그래 아버지께서도 싫단 말씀을 못하시고------”
어머니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시고 나서 또 말씀을 계속하셨다.
“그 밭은 집에서 동떨어지고, 형도 없는 지금 가지고 있어봤자 별수없지 않으냐? 작자가 난 김에 팔아버리는 것이 한푼이라도 더 받지 않겠니? 아버지께서
도 점점 나이를 잡수시구------”
“그건 그렇지만.”
막동이는 퉁명스럽게 한마디 대꾸를 할 뿐 잠잠하였다.
사실 말하면 너무 멀고 쥐꼬리만한 밭이라 팔아버리는 편이 좋겠지만 그 밭은 형이 좋아하던 밭이고 그뿐 아니라 멀고 힘이 드신다고 아버지를 못 가시게 하고 언제든지 형 혼자서 일하던 밭이었다. 막동이는 형의 모습을 생각할 때는 언제나 그 밭에서 일하는 언니의 모습이 떠올랐다. 그래 섭섭하고 아깝지만,
“형 대신 내가 밭일을 하겠어요.”
하기에는 막동이는 너무나 어렸다.
그런데 그 후에 그 이야기는 어떻게 되었는지 아무 소식이 없이 그냥 그대로
여름이 되고 가을이 되었다. 그래 아버지는,
“밭을 그냥 내버려두어서 풀만 길길이 자랐더라. 김 선달네 체면을 보느라구 공연히 지금까지 참았지 보리라두 심어야겠는걸.”
하고 늦가을에 막동이와 함께 보리를 뿌렸다. 그런데 그 보리가 파렇게 자란 3월 그믐께쯤 되어서 또 밭 파는 이야기가 나왔다. 전에는 어떻게 되었는지 어린 막동이는 알 까닭이 없지만 이번에는 뭐라고 하는 공장이 들어앉는다고 한다.
“아버지, 보리를 어떻게 해요.”
막동이가 아버지를 쳐다보았다.
“벨 때까지 참아준대요?”
“웬걸, 즉시 공장을 짓는다더라. 보리는 다 먹었지.”
아버지께서는 쓴웃음을 지으셨다.
“이럴 줄 알았으면 공연히 땀 흘리고 일을 했죠. 에이!”
“전보다 한 명에 1 원씩이나 오르고 그리고, 또 보리값까지 주더라.”
아버지께서 이렇게 말씀하신 지 며칠 안되서 막동이집 밭 있던 곳에 판장 뺑 둘러쌌다. 그리고 공사에 쓸 재목이 쉴새없이 판장 안으로 들어갔다.
-----우리 보리는 어찌 되었나?
막동이는 몹시 궁금하였다.-
-----공장집을 지으면 보리는 쌉쌀냥이가 되겠지.
이렇게 생각하니 보리가 퍽 가없은 생각이 들어서 참을 수가 없었다.
학교 선생님에게서 식량증산이란 말을 들은 막동이는 공장에다 보리밭을 팔아버린 자기 집이 새나라 건설하는데 죄나 되는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저어 아버지, 장거리 밭을 공연히 팔았어요. 밭이 부족해서 빈 터전에는 모두 푸성귀를 심지 않아요. 우리 밭에다가 공장을 세우면 그만큼 우리나라 곡식이 줄어들지 않아요?”
막동이가 퉁명스럽게 말하니까,
“네 말도 옳은 말이지만 그 공장은 무슨 방적회사라더라 우리 옷감이 부족한데 옷감도 많이 만들어내야지 않니?”
“옷감 만드는 공장예요?”
막동이 눈은 이상스럽게 빛났다.
“그래 정용가서 죽은 네 형도 그 밭이 옷감공장이 된다면 기뻐할 게다.”
그러나 장거리 밭만큼 우리 땅이 줄어들었으니 그 밭에서 나는 만큼 다른 밭에서 더 거두도록 해야겠다.
4월 어느 일요일에 막동이는 아버지 심부름으로 장거리에 갔다가 돌아오는 길에 불현듯 공장이 된 밭이 보고 싶어서 정거장 뒤로 갔다.
“어유, 공장을 퍽 크게 짓나보다.”
-----막동이는 판장 뚫어진 구명으로 안을 들여다봤다. 그러나 작은 구멍으로는 눈앞에 가리는 것이 있어서 조금도 보이지 않았다. 그래서 판장을 끼고 돌아가니까 다행히 한곳에 판장 하나가 쓰러진 곳이 있다.
---이런 곳으로 잠자코 들어가서 말 듣지 않을까?
하고 막동이는 염려가 되었지만 벌써 저녁때가 되어서 공사장에서 일하던 사람들은 다 돌아갔는지 안은 쥐 죽은 듯 조용하였다. 그러나 자기 집 밭을 보고 싶은 마음은 누를 수가 없었다.
---뭐 도둑질하러 들어가는 것이 아니고 우리 밭만 잠깐 보면 그만이니까.
막동이는 저 혼자 변명을 하면서 공장 안으로 살짝 들어갔다. 그러나 모처럼 안으로 들어선 막동이는 어리둥절하였다. 까만 쇠기둥을, 그 안으로 재목이랑, 양철이랑, 양회부대랑 길길이 쌓여서 자기 밭커녕 자기가 서 있는 곳이 예전에
어느 곳인지 짐작이 가지 않았다.
---우리집 밭이 어느 쪽인가------
하고 구석으로 가려고 할 때 어디서 별안간,
“요놈, 어디로 가니?”
하는 큰소리와 함께 누가 어깻죽지를 꽉 쥐었다. 키가 후리후리하고 회색양복을 입은 사람이었다.
“요놈, 너 뭐 훔치러 들어왔지?”
“아------아------아예요.”
막동이는 얼굴이 해쓱해지면서 더듬거렸다.
“저------저------우리 보리밭을 보러 왔어요.”
“요놈, 거짓말 마라. 어저께도 양회 두 푸대나 잃어버렸어.”
“거짓말 아예요. 이곳은 우리 밭이 있던 곳이에요. 우리 보리를 보러 왔어요.”
“뭐 보리?”
그 키큰 사람은 그때서야 비로소 〈보리〉란 말을 듣고 어깻죽지 잡은 손을 놓고 말하였다.
“보리 심은 곳이 너희 밭이냐?”
“네.”
막동이는 고개를 끄덕였다.
“아버지하구 저하구 심었어요.”
“그래.”
그 키큰 사람은,
“이리 온.”
하더니 막동이 앞서서 갔다.
--어디로 데리고 가나?
막동이는 겁이 나는 것을 참고 뒤를 따라가니까 얼마 안 가서 그 사람은 걸음을 멈추더니 막동이를 돌아다보면서 한편 구석을 가르켰다. 막동이는 그 편을 보자,
“아, 보리다.”
하고 반가운 동무나 만난 듯이 뛰어갔다. 막동이네 밭은 집속에 다 들어가고 세 평 가량 되는 곳에 싱싱하게 자란 것은 벌써 이삭이 나온 푸른 보리였다. 그 사람은 한참 막동이를 보더니 껄껄껄 유쾌히 웃으면서,
“이것이 너희 발의 보리다. 그렇게 싱싱하게 자라나는 보리가 가없어서 겨우 이것만 이곳으로 옮겨 심었단다. 나도 어렸을 때 우리집이 농사꾼의 집이었으므로 이런 것을 보면 그냥 내버려둘 수가 없단다. ”
그 아저씨는 이렇게 말하더니 보리 옆에 앉아서,
“얘, 너 이것 좀 맡아봐라. 좋은 냄새가 날 테니.”
막동이는 안심을 하고 생긋 웃으면서 아저씨 옆으로 가서 나란히 앉았다.
“자, 좋은 냄새지? 이게 시골냄새란 거야.”
막동이도 푸른 보리 이삭 위에다가 코를 대었다.
“냄새가 구수하지?”
“네, 그러나 풋내가 나요.”
아저씨와 막동이는 유쾌한 얼굴을 서로 마주보면서 함께 웃었다. 그리고 날이
벌써 저문 것도 잊은 듯이 푸른 보리 이삭 냄새만 맡고 있었다.
---1947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