먹구름 사이사이로 언뜻언뜻 보이는 푸른 하늘은, 누구의 얼굴일까요. 오락가락하는 비를 맞으며 일행은 갑티재를 넘어 호젓한 삼국유사의 산실인 인각사를 찾아가고 있었다. 흩날리던 가랑비도 멎고 삼국유사로 화수 삼거리에서 기린봉이 바라보였다. 기린봉 관련하여 두 봉우리 사이에 절을 앉혔다고 하여 인각사라고 했다는 전설, 일행인 림 교수는 차를 세우더니 내려서 사진을 찍는다. 운전을 하던 서울서 온 인월담 강대표는 그럴듯하다며 관심을 보인다. 우뚝 솟은 기린봉의 산세가 눈에서 가슴으로 다가온다. 기린은 상서로운 짐승이니 인각사는 무슨 상서로운 유래가 전해오는 듯. 기린은 본디 예부터 상서로움을 드러내는 신령한 짐승이었으니까. 위천 내를 거슬러 굽이도는 길을 십여분 가다니 바로 고즈넉한 화산 기슭에 인각사라는 돌비가 길섶에 얼굴을 내민다. 반가웠다. 길손은 삼국유사를 공부하는 서생이 아닌가. 절로 옷깃을 여미며 절의 경내로 들어섰다. 국보이면서 지난해 세계 기록문화 유산이 된 삼국유사와 고려대장경을 남해에서 마무리한 일연국사께서 95세 병드신 노모를 모셨던 곳, 절로 고개가 수그러진다. 길손은 병마로 힘들게 사시다가 56세로 생을 마감하신 어머니 생각을 하니 가슴이 먹먹할 뿐. 먼저 국사전에 들러 간단하게 예불을 하고 나와서 종무소 쪽으로 향했다. 예상치도 못했던 호암 주지 스님이 나와서 반갑다며 어서 오라면서 손을 잡는다. 서울 총무원의 일로 내일이나 되어야 내려간다고 했던 스님을 만난 것이다. 고마웠다. 새벽같이 일어나 요사채 공사도 볼 겸하여 선생님 오신다기에 날짜를 당겨서 왔다고. 차를 나누며 스님은 절간 복원 공사에 다른 생각할 겨를이 없다고. 극락전 옆에 두 개의 우물이 있는데 하나는 고려시대, 길섶으로 있는 다른 우물은 조선 시대의 것이란다. 너무 뜻밖의 이야기. 고려시대의 우물이라면 아마도 일연국사께서도 이 우물의 샘물로 극락전에 정화수를 드리면서 학소대 앞 냇물에 샘물을 뿌리면서 몽골의 침략으로 온갖 탄압과 고통에 허덕이며 굶주리고 목말라 했던 중생들의 아픔을 치유하고자 절절한 기도를 했을 터. 한편으로는 병드신 구십오 세 노모의 병 고침을 위하여 빌었고 돌아간 뒤 왕생극락을 빌며 이른바 쇄수게(灑水偈)라는 아미타여래를 기리는 노래인 게송을 부르면서 이 우물의 샘물을 감로수 삼아서 예불을 하지 않았던가. 쇄수게의 게송은 이러했다. [관음보살은 대의왕이시니 정병 속 감로수가 향기롭도다. 마의 구름을 씻어내어 서기 일으키시고, 뜨거운 번뇌 사라지게 하시니 청량함을 얻게 하시네(觀音菩薩大醫王 甘露甁中法水香 灑濯魔雲生瑞氣 消除烈惱獲淸凉) -釋門儀範灑水偈歌詠)] “스님, 지금 공사 중에 두 개의 우물을 복원하셨다고요. 하나는 고려정, 다른 하나는 조선정이라고요?” “그렇습니다. 우물 주위를 돌로 쌓아서 우선 만들었는데 뒤에 다시금 마무리 손질을 할 겁니다. 무슨 새로운 사실이라도 되는가요?” “전에 없던 관심이 갑니다. 고려정이라면 일연국사께서도 이 샘물을, 수년 전 유물 발굴할 때 나왔던 정병에 담아서 이를 감로수 삼아 국난극복과 어머니 병 치료와 왕생극락을 위한 기도를 아미타불과 관세음전에 올렸을 것으로 보입니다. 어떠세요?” “그럴 수 있겠네요.” 스님은 그럴 수 있겠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인다. 스무 해 가까이 이 절에 다녔으나 고려정 우물이 있다는 사실은 처음으로 들었다. 그럼 이 고려정과 극락전과는 무슨 걸림이 있는 것일까. 감로수로 그 연결 고리를 삼으면 어떨까. 앞에서 쇄수게의 게송에서도 살펴보았다. 병마와 온갖 번뇌를 씻고 물리치게 해달라는 발원이 깃든 게송이 아닐까. 그처럼 아미타불은 현세의 온갖 고통을 치유하는 부처였다. 그가 다스리는 육욕천의 도리천 세상에서는 아주 영험하고 달콤한 감로수가 있다는 말, 감로수 한 방울만 마셔도 모든 괴로움은 사라지고 오래 살며 죽은 이도 되살아난다는 신령한 샘물이다. 치유의 대상이 나라와 겨레이든 개인이든 극락정토로 인도하는 부처가 곧 아미타여래인 것을. 길손이 보기에는 여기 감로수는 현실적으로 고려정의 물을 뜻함이요, 물을 뿌릴 때의 도랑은 학소대 앞으로 흐르는 위천 냇가로 보인다. 일연국사의 부도탑인 경내의 정조지탑(보물428호)에는 극락정토를 상징하는 꽃봉오리가 위로 놓인 앙련과 불꽃 무늬의 비천이란 아름다운 금시조 새로 보인다. 꽃피고 새우는 도리천의 고통이 없는 누리, 자유와 평화가 어우러지는 곳. 그러니까 일연 국사가 입적했을 당시에도 극락전일 개연성이 있지 않은가. 연이 자란다면 물에서 자란다. 그 물도 흙탕물 곧 고통을 당하며 올 날의 희망이 없는 중생의 세상을 상징함으로 볼 수 있다. 그 희망도 없는 흙탕물에 한 줄기 맑고 깨끗한 샘물이 바로 감로수인 것이다. 이름하여 정토신앙인 것을. 극락정토. 우물 옆으로는 삼국유사에 실려 전하는 조신의 꿈을 노래비로 세워 놓은 노래비가 있다. 인생의 모든 것이 무상한 것임을 노래한 것이다. 마지막 구절에 ‘바야흐로 수고로운 인생이 한 순간의 짧은 꿈이었음을 깨달았노라(方悟勞生一夢間)’라고 읊고 있다. 같은 절의 경내이나 약 백여 미터쯤 동쪽에 자리한 일연국사가 입적하고 난 뒤인 충렬왕 21년(1295)에 세워진 보각국존비명을 재구성한 빗돌과 그 뒤로 몇 분 큰스님들의 부도가 영원한 선정에 들고 있다. 일행은 차 머리를 돌렸다. 날씨는 쾌청. 테마파크의 신 팀장의 전화, 언제 오느냐고 기다리고 있노라고. 지금 의흥면 삼거리쯤이니 곧 들어간다고. 개장한 지 한 삼 년 정도 되었는데 들어가는 길목이며 경내가 많이 다듬어져 있었다. 처음 삼국유사테마파크를 지었을 때 와보고서 언제 물건이 되겠나 싶었는데. 일연평전 책에 올릴 화보 찍으러 왔다니까 어서 오라고 한다. 일행은 테마파크 입구에 세워 놓은 커다란 신단수를 바라보며 그 옆으로 백두산의 천지 못 물인 양 맑은 폭포 물이 펑퍼져 흘러내린다. 이어 지증왕 시절 울릉도를 평정한 이사부의 나무 사자상이 큰 몸집으로 보는 이의 눈길을 끌고 압도한다. 이사부는 진흥왕 때 병부령 곧 국방장관을 지낸 신라의 대장군이다. 지난봄에 새로 부임한 김 대표와 이 본부장이며 신 팀장이 나와서 함께 밥때가 늦었으니 우선 구내식당으로 들어가자고. 인사를 나누며 이런저런 삼국유사테마파크 발전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김유신 장군의 윷놀이나 연날리기, 축국 공차기며 진정사의 주먹밥 만들어 먹기, 신단수 앞의 환웅과 웅녀 사이에 어린 단군상 보완, 신단수 위에 두루미나 까치와 까마귀며 그 둥지를 얹어 놓으면 좋을 듯하다는, 다양한 단군의 영정 전시는 어떻겠느냐는 이야기를 나누었다.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현재 테마파크에는 유물이나 유적이 없고 놀이 위주의 시설이다. 가늠하건대, 십여 킬로 떨어진 인각사와 일연 수변 공원, 일연국사 효의 길, 일연국사의 어머니 묘소까지 그 일원을 답사하고 지난날의 현대적인 의미를 되새김질하는 계기가 되었으면 어떨까. 아울러 삼국유사 생수를 소량으로나마 주문식 생산을 하여 널리 삼국유사를 알리고 일연국사가 지은 삼국유사 전편에 일관된 주제라 할 홍익인간의 마을로 가는 길을 생각하게 하는 문화 교육 공간으로 발돋움하면 좋지 않을까. 삼국유사 재단에서는 새마을 버스나 셔틀을 활용해서 테마파크와 인각사 사이의 교통편의를 제공함으로써 역사적 현장성과 콘텐츠의 교육문화적인 융복합화를 꾀할 수 있을 듯하다. 십오 년 전에 삼국유사테마파크 제안을 했던 길손으로서는 테마파크를 중심으로 한 우리의 역사 문화 교육의 극락 정토의 꽃피고 새우는 날을 기대해 본다. 고려정의 감로수가 모든 이가 고통과 번뇌에서 벗어나 참되고 행복한 삶이 어떤 것인가를 떠올려 보는 디딤돌이 되면 얼마나 좋겠는가. 산 고개를 넘어 돌아오는 길목, 산비둘기 소리가 들려오고 푸른 하늘의 구름이 연꽃무늬로 수를 놓는다. 졸졸졸 골짜기로 흘러내리는 감로수의 맑은 샘물에서 무지개라도 피어오를 듯하건만.
첫댓글 https://youtu.be/y9U2eJ3pxc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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