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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무지 맹세하지 말라는 주의 말씀의 뜻
마태복음 5:33~37
오늘 우리는 맹세에 관한 주님의 가르침을 살피게 되었습니다. 33절에서 이르기를
“또 옛 사람에게 말한 바 헛 맹세를 하지 말고 네 맹세한 것을 주께 지키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라고 하였습니다. 옛 사람에게 말한 바라는 것은 구약 율법의 가르침을 말합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언급하신 것은 십계명 중에 제 3계명과 제 9계명을 배경으로 하신 말씀입니다.
제 3계명은
“너는 네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을 망령되게 부르지 말라 여호와는 그의 이름을 망령되게 부르는 자를 죄없다 하지 아니하리라”
라는 것이요 제 9계명은 “네 이웃에 대하여 거짓 증거하지 말라”
라는 것입니다. 제 3계명은 하나님의 존엄하고 거룩하신 이름을 함부로 사용하는 경거망동한 언행을 금하는 계명이요 제 9계명은 거짓말을 통하여 이웃을 해치는 행위를 금하는 계명입니다.
예수님께서 이렇게 3계명과 9계명을 언급하신 이유는 당시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의 가르침이 본래 율법의 근본정신에서 벗어나 있었으며, 당시 유대인들의 내면과 말의 진실성이 땅바닥에 떨어져 있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은 하나님의 성품을 닮아 진실하며 자기의 말에 대하여 책임을 지는 성실한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은 자기 입으로 낸 말을 반드시 지키시는 신실하신 분이기 때문입니다. 그리하여 하나님께서는 그 입술로 말씀하신 바를 지키지 아니한 것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그의 백성들은 하나님의 말씀은 예외없이 다 믿어야 하고 결코 의심하지 말아야 합니다. 맹세가 아닐지라도 하나님은 진실하신 분이기에 그의 모든 말은 다 진실한 것이기에 언제든지 의심없이 그대로 믿을 수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자기 말을 믿게 하도록 맹세하실 필요가 없는 분입니다.
그런데도 하나님께서 자기의 하시는 말씀을 특별히 강조하시기 위해서, 그의 백성들이 마음이 연약하고 믿음의 부족함을 아시고 그들의 믿음을 도와 주기 위하여 종종 스스로 맹세하기도 하셨습니다. 예를 들면 아브라함이 그의 아들 이삭을 모리아 산에 바치라는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였을 때에 친히 약속하실 때 맹세하셨습니다. 창세기 22:16,17 말씀입니다.
“이르시되 여호와께서 이르시기를 내가 나를 가리켜 맹세하노니 네가 이같이 행하여 네 아들 네 독자도 아끼지 아니하였은즉 내가 네게 큰 복을 주고 네 씨가 크게 번성하여 하늘의 별과 같고 바닷가의 모래와 같게 하리니 네 씨가 그 대적의 성문을 차지하리라 또 네 씨로 말미암아 천하 만민이 복을 받으리니 이는 네가 나의 말을 준행하였음이니라 하셨다 하니라”
여기서 하나님께서 영원 불변하시는 자기 이름을 걸고서 맹세하시어 아브라함의 후손들의 번성함과 그 땅을 차지함과 만민 구원의 복의 통로가 된다는 것을 약속하셨습니다.
에스겔서 33:11 말씀에도 하나님께서 맹세하는 것이 나옵니다.
“너는 그들에게 말하라 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나의 삶을 두고 맹세하노니 나는 악인이 죽는 것을 기뻐하지 아니하고 악인이 그의 길에서 돌이켜 떠나 사는 것을 기뻐하노라 이스라엘 족속아 돌이키고 돌이키라 너희 악한 길에서 떠나라 어찌 죽고자 하느냐 하셨다 하라”
하나님도 자기의 말씀의 진실함을 강조하기 위하여 이렇듯 자기 삶을 두고 맹세함으로 그의 말씀을 인치고 있습니다.
아브라함도 자기의 늙은 종에게 아들 이삭을 위하여 고향 땅에 가서 그 아내를 데려오라고 시킬 때에 자기 허벅지 안에 종이 손을 넣고 맹세하도록 시킵니다. 야곱도 죽기 전에 자기의 열한째 아들 요셉을 불러 자기를 애굽에 장사지내지 아니하고 애굽에서 메어다가 조상의 묘지 팔레스타인 헤브론 땅에 묻으라고 말하면서, 요셉에게 맹세하라고 요구하니 요셉이 맹세합니다.
예수님께서도 체포되었을 때에 가야바 대제사장이 그에게 하나님의 이름으로 맹세시킬 때 거절하지 않고 그 맹세의 요구에 응답하였습니다. 마태복음 26:63 이하에 이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예수께서 침묵하시거늘 대제사장이 이르되 내가 너로 살아 계신 하나님께 맹세하게 하노니 네가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인지 우리에게 말하라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가 말하였느니라”
예수님은 재판정에서 하나님의 이름으로 맹세하게 하는 재판장 대세장의 요구를 거절하지 않고 그 맹세를 인정하면서 자기가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라고 인정하신 것입니다.
사도들도 그들의 편지 속에서 분명한 자기의 진실성을 강조할 때에 하나님 앞에서의 맹세 형식을 받아들여 말하곤 하고 있습니다. 고린도후서 1:23 말씀에서 사도 바울이 이렇게 말합니다.
“내가 내 목숨을 걸고 하나님을 불러 증언하시게 하노니 내가 다시 고린도에 가지 아니한 것은 너희를 아끼려 함이라”
히브리서 기록자도 역시 맹세의 유용성을 이렇게 짧지만 분명한 문장으로 썼습니다. 히브리서 6:16 말씀입니다.
“사람들은 자기보다 더 큰 자를 가리켜 맹세하나니 맹세는 그들이 다투는 모든 일의 최후 확정이니라”
그렇습니다. 만약 두 사람 간에 진실 논쟁이 벌어졌습니다. 그런데 한 사람이 자기의 말이 거짓없는 진실이라는 것을 확고하게 하고자 할 때에 “나는 하나님의 이름을 걸고 그 때 그 자리에 없었다. 나는 하나님의 이름을 걸고 맹세하노니, 결코 내가 그 사람을 죽이지 않았다.”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한 경우에, 자기의 말에 증인으로 하나님을 모시는 것입니다. 만약 그의 말이 거짓이라면 그 일에 대한 무서운 책임을 송두리째 다 짊어지겠다는 고백인 것입니다. 그래서 맹세라는 것은 진실의 최후 보루인 것입니다. 맹세하면 그 논쟁의 진실 여부는 이제 사람간의 검증 과정을 뛰어넘어버립니다. 그것은 이제 하나님 앞에서 다루는 신의 영역으로 들어가게 됩니다. 그래서 출애굽기 22장 배상에 관한 율법 규정에 보면 이런 대목이 나옵니다. 출애굽기 22장 10절, 11절에 이르기를
“사람이 나귀나 소나 양이나 다른 짐승을 이웃에게 맡겨 지키게 하였다가 죽거나 상하거나 끌려가도 본 사람이 없으면 두 사람 사이에 맡은 자가 이웃의 것에 손을 대지 아니하였다고 여호와께 맹세할 것이요 그 임자는 그대로 믿을 것이며 그 사람은 배상하지 아니하려니와”
라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아무도 본 사람이 없지만 짐승을 맡은 이웃이 다른 사람이 맡겨준 그 나귀나 소나 양을 잡아 먹거나 팔아먹거나 다른 누군가에게 건네준 것이라고 하는 의심이 들지라도 만일 그 사람이 재판정에서 자기는 그 짐승에 대하여 전혀 손을 대지 않았노라고 하나님 앞에서 맹세로써 말하면, 그 임자는 그대로 믿어야 하고 배상을 요구하지 않고 재판관도 그 맹세로써 맡은 자에게 배상을 요구하지 않고 판결을 끝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만큼 여호와의 이름으로 한 맹세는 심지어 강력한 증거 능력까지 인정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이름으로 맹세한 자는 자기가 한 발언의 진실과 거짓 여부에 대하여 책임을 하나님 앞에서 영원히 져야 하기 때문에, 잠간의 이익을 얻고 손해를 면하려고 하나님의 이름으로 거짓으로 맹세했다가는 이 땅에서나 장차 주님 앞에서 무서운 징벌을 받는 각오를 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맹세는 신성한 것입니다. 맹세는 믿음의 선진들인 아브라함, 이삭, 야곱, 요셉, 바울 그리고 우리 하나님 아버지와 구주 예수님까지도 행하신 신성한 일입니다. 그래서 만약 사람이 맹세하려면 하나님의 이름을 걸고 맹세하라고 성경은 말씀합니다.
신명기 6:13 말씀에 이르기를
“네 하나님 여호와를 경외하며 그를 섬기며 그의 이름으로 맹세할 것이니라”
고 하였습니다. 이사야 65:16 말씀에서도 이르기를
“이러므로 땅에서 자기를 위하여 복을 구하는 자는 진리의 하나님을 향하여 복을 구할 것이요 땅에서 맹세하는 자는 진리의 하나님으로 맹세하리니 이는 이전 환난이 잊어졌고 내 눈 앞에 숨겨졌음이라”
고 하였습니다. 맹세란 가장 신성한 존재 앞에서 행하는 일이기에, 만약 맹세를 우상의 이름으로 행하거나 어떤 사람의 이름으로 행하거나 한다면, 그것은 하나님의 자리를 대신 차지하는 것이 될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백성은 바로 여호와 하나님의 이름으로 맹세하는 자인 것이며,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맹세하는 자인 것입니다.
이렇듯 맹세 자체는 이처럼 신앙의 진면목을 보여주는 매우 신성한 행위이기에, 결코 비난할 만한 것이 아닙니다. 이는 매우 중요한 일이요 맹세라는 그 맹세하는 자의 삶의 운명까지도 결정하는 매우 중대한 일인 것입니다. 누군가 여호와의 이름으로 서원을 했다면, 그 서원이 그 사람의 진로와 운명을 붙잡아 인도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하나님 앞에서 행한 서원이나 약속에 대하여 매우 자세한 지침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민수기 30장에서는 하나님 앞에서 서원한 것, 결심한 것에 대하여 잘 이행하라고 가르치면서, 만약 그 서원을 하고 실행하지 아니하였을 때에 그 죄를 누가 책임을 지는가에 대하여 자세한 규례가 나와 있습니다. 민수기 30:2 말씀에 이르기를
“사람이 여호와께서 서원하였거나 결심하고 서약하였으면 깨뜨리지 말고 그가 입으로 말한 대로 다 이행할 것이니라”
고 하였습니다. 그러면서 여자가 어릴 때 친정 아버지 밑에서 하나님께 서원하거나 결심한 일이 있으면 아버지에게 말씀드렸는데 아버지가 아무 말을 하지 않으면 그 서원을 그 소녀가 행해야 합니다. 그러나 그 말을 듣는 순간에 아버지가 허락하지 아니하면 그 서원을 지키지 않아도 됩니다. 그러나 아버지가 듣고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가 나중에 서원을 행하려고 할 때 막으면 그 아버지가 하나님 앞에서 서원 불이행의 죄를 지게 됩니다.
예를 들어 하나님의 성전에 처녀로 헌신하겠다는 결심을 했다면 아버지가 듣는 날에 가만이 있으면 그 소녀는 그 서원을 실행할 것입니다. 그런데 아버지가 그 말을 듣는 날에 막으면 소녀가 그 서원을 했더라도 지키지 않아도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서원하여 말한 날 아버지가 아무 말 없다가 나중에 서원을 지키려고 이제 하나님의 집에 올라가겠다고 그 소녀가 아버지 어머니께 말할 때 막으면 그 불이행의 죄는 고스란히 아버지가 지게 되는 것입니다.
사람이 결혼하기 전에 마음에 서원한 것이나 결심한 것이 있을진대 결혼하여 그 남편에게 말한 경우도 동일한 원리로 이행 책임이 있습니다. 남편이 들은 날 막으면 안 지켜도 되고 책임도 없어지지만 남편이 듣고도 가만히 있다가 나중에 이행을 막으면 그 불이행 책임이 남편에게 주어지는 것입니다. 그러나 과부나 이혼당한 여자의 서원이나 결심한 서약은 아무도 직접적인 방해할 자가 없기 때문에 그런 서약은 다 지켜야 합니다.
신명기 23:21 이하의 말씀에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네 하나님 여호와께 서원하거든 갚기를 더디하지 말라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반드시 그것을 네게 요구하시리니 더디면 그것이 네게 죄가 될 것이라 네가 서원하지 아니하였으면 무죄하리라 그러나 네 입으로 말한 것은 그대로 실행하도록 유의하라 무릇 자원한 예물은 네 하나님 여호와께 네가 서원하여 입으로 언약한 대로 행할지니라”
서원하고 결심한 것을 미루면 그것도 죄가 됩니다. 만일 하나님께 바치기로 작정한 예물이 있는데, 그것을 드릴 여건이 다 되었는데 드리는 것을 미룬다면 그것들이 죄가 된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야곱의 경우가 그러합니다. 야곱이 밧단아람에서 돌아올 때에 그는 이전에 형 에서를 피하여 고향 헤브론에서 도망쳐서 외갓집으로 달려갈 때에 벧엘의 길가에서 선잠을 자던 중에 갑자기 꿈속에서 하나님께서 나타나셔서 조부 아브라함과 부친 이삭의 하나님으로서 야곱에게도 누운 땅을 주며 자손이 티끌같이 되어 퍼저나가며 모든 족속이 야곱과 그 후손으로 말미암아 복을 받으며 하나님께서 그와 함께 해주시고 그 땅에 다시 돌아오게 해주겠다는 약속을 베풀어주시는 것을 들었습니다. 그 꿈속의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벌떡 깨어나서 그는 놀라서 머리를 대고 자던 돌베개를 기둥으로 삼고 기름을 붓고 서원을 합니다.
“하나님께서 나와 함께 하시어 나를 지키고 먹을 떡과 입을 옷을 주시고 평안히 아버지 집에 돌아오게 하시면 여호와께서 내 하나님이 되시고 기둥에 세운 이 돌이 하나님의 집이 되고 하나님이 주신 것의 십분의 일을 하나님께 바치겠습니다.”(창세기 28:20~22)
이렇게 하나님께 서원을 하였지만 그가 20년 동안 밧단아람 외삼촌 댁에서 머슴살이할 때에 하나님께서 그를 도와 아내들과 자녀들을 주고 물질적인 복을 주사 큰 거부가 되게 하시어 고향으로 무사히 돌아오고 형 에서의 칼날에서도 지켜주셨는데, 야곱은 서원을 지키지 않았습니다. 그는 서원대로 벧엘로 곧장 올라가야 했지만 그 반대편 서북쪽으로 올라가 숙곳과 세겜에서 우릿간을 짓고 머물고 땅도 사고 오래 머물려고 했습니다. 그 결과 세겜에서 큰 화를 당하여 온 가족이 몰살당할 위기를 맞기까지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에게 나타나셔서 벧엘로 올라가서 거기서 하나님께 제단을 싸우라고 말씀하심으로 그는 자기의 잘못을 뒤늦게 깨닫고 집안 식구의 모든 우상을 버리고 장신구도 땅에 파묻고 벧엘로 올라가서 하나님께 경배함으로써 서원을 뒤늦게라도 지켰습니다. 그랬더니 벧엘에서 하나님께서 그에게 다시 나타나시고 복을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서원한 것을 미루지 말고 갚기를 더디하지 말아야 합니다. 결심과 서원한 바를 여건이 되는 대로 서둘러 실행하는 것이 복입니다.
바로 이러한 취지에서 맹세는 매우 엄숙한 것이며 신성한 것이라는 것을 알게 됩니다. 또한 하나님의 백성은 함부로 서원하지 말아야 할 것이며, 또한 하나님의 이름으로 일단 서원한 것은 반드시 지켜야 한다는 것을 성경 전체가 일러주는 귀중한 가르침이라는 것을 기억해야 하겠습니다.
그런데 예수님 당시의 종교 지도자들은 이러한 구약 성경의 가르침을 모르지 않는데도 불구하고 그 가르침을 교묘하게 지키지 않기 위하여 꼼수를 부렸습니다. 그들은 여호와의 이름으로 맹세한 경우에는 지켜야 하나, 여호와의 이름 대신에 다른 존귀한 것들을 들어서 맹세하게 되면 안 지켜도 된다는 이상한 논리를 개발했습니다.
예를 들면, 그들은 여호와 하나님 대신에, 하늘을 두고 맹세한다든지, 땅을 두고 맹세한다든지, 성전을 두고 맹세한다든지, 자기 목숨을 걸고 맹세한다든지 하면, 그런 맹세는 진실성을 보장하는 확실한 근거가 된 것같이 거창하게 보이지만, 실제로는 여호와 하나님의 이름으로 맹세한 것은 아니기에 진실 아닌 것이 섞여 있고 서원을 했다 해도 안 지킨다고 해도 죄가 되지 않는다고 말하곤 하였던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 당시의 유대인들은 걸핏하면 하늘을 두고 맹세한다고 말하거나 땅을 두고 맹세한다고 하거나 성전을 두고 맹세한다고 하거나 예루살렘을 두고 맹세한다고 하거나 자기 목숨을 내놓고 맹세한다면서 거짓말을 진실처럼 말하고, 없는 말을 지어서 증언하기도 하는 등 악을 행하였던 것입니다. 그리하여 사람들은 교묘하게 하나님의 이름을 피하면서 거짓을 진짜처럼, 진실치 않은 서원과 서약을 진짜처럼 말하는 악을 행하곤 하였던 것입니다.
바리새인들이 또 다시 하나님의 말씀을 교묘하게 뒤틀어서 그 율법의 본래의 뜻을 저버리고 그릇된 교훈으로 사람들을 이끌어간 또 하나의 사례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십계명의 제 3계명 하나님의 이름을 망령되어 일컫지 말라는 가르침과 제 9계명 네 이웃에게 거짓 증거하지 말라는 가르침의 본래의 의도를 살려내시어 당시의 그릇된 풍조를 책망하여 고쳐주시려 한 것입니다.
그래서 34절에서 이렇게 예수님은 말씀하십니다. 함께 34절을 읽겠습니다.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도무지 맹세하지 말지니 하늘로도 하지 말라 이는 하나님의 보좌임이요 땅으로도 하지 말라 이는 하나님의 발등상이요 예루살렘으로도 하지 말라 이는 큰 임금의 성이요 네 머리로도 하지 말라 이는 네가 한 터럭도 희고 검게 할 수 없음이라”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이름 대신에 하늘을 두고 맹세한다고 해도 그 하늘이 바로 하나님의 보좌가 있는 신성한 곳이요 땅도 하나님의 발을 두고 있는 발등상이요 예루살렘도 큰 임금이신 하나님이 그 성소를 둔 성읍이요 사람의 머리의 머리털 하나까지 하나님께서 희게 하시고 검게 하시는 존재이기 때문에, 사람은 하늘이나 땅이나 예루살렘이나 자기 머리를 두고 맹세한다 하면 그것은 곧 하나님을 두고 맹세한 것과 다름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늘이나 땅이나 예루살렘이나 머리를 두고 맹세한 것은 하나님의 이름으로 맹세한 것이 아니니까 지키지 않아도 죄가 안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맹세한 것과 똑같아서 지키지 않으면 죄가 되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하나님의 이름을 두고 맹세한 자가 거짓으로 진실을 가장하고 불성실하게 서원하고 지키지 아니한 것과 똑 같아서 결국 하나님으로부터 무서운 심판을 이 땅에서와 저 세상에서 받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산에 올라온 그 사람들에게 “도무지 맹세하지 말라”고 엄숙하게 명령한 것입니다. 예수님의 이 말씀은 재판석상에서 증인으로 맹세하게 될 때에 맹세의 요구를 불응하라는 것이 아닙니다. 정말 중요한 상황에서 그 명령이나 그 각오와 결심이 지극히 중대한 것이어서 맹세가 필요한 경우에도 절대로 맹세하지 말라는 의미도 아닙니다. 그렇다면 믿음의 족장들이나 예수님과 사도들이나 하나님 당신 자신까지도 맹세하셨으니, 이 명령과 충돌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 도무지 맹세하지 말라는 뜻은 진실성 없이 거짓을 진짜처럼 맹세하는 일을 하지 말라는 강력한 요청인 것입니다. 일상 생활에서 자기 말을 과장하려고 “내가 하늘을 두고 맹세하는데, 나는 거기 안 갔다”라든지, “내가 거짓말하면 내가 내 성을 간다”라든지 하는 맹세와 같은 부풀린 말을 절대 해서는 안된다는 경고의 말씀인 것입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은 그들의 말과 인격이 동일하게 진실해야 하는 것입니다. 성도의 말이 곧 그 사람의 보증인 없는 약속어음이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아무런 보증인, 보증물 없이도 그 사람의 말이면 그대로 믿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 사람이 말이 곧 보증수표가 되는 사람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무엇인가 거짓말을 진짜처럼 보이게 하는 과장하는 말이 섞이고 무엇인가 진짜처럼 보이려고 하나님과 하늘과 땅을 부르고 부모님의 이름, 심지어 아들의 이름을 불러가면서 말의 진실을 확보하려고 하는 것은 다 정죄되어야 한다고 주님은 말씀하십니다. 그 뜻으로 하신 말씀이 37절 말씀입니다. 함께 읽겠습니다.
“오직 너희 말은 옳다 옳다, 아니라 아니라 하라 이에서 지나는 것은 악으로부터 나느니라”
오직 우리의 말은 예할 것은 예라고 대답하면 되고, 아닌 것은 아니라고 말하면 된다는 것입니다. 자기 말의 진실함을 입증하려고 이것 저것 과장할 필요 없이 담백하게 있는 그대로 대답하면 족하다는 것입니다. 만일 이것을 뛰어넘어 거짓을 진짜처럼 보이게 하려고 화려한 언변을 구사하거나 기교를 섞은 말을 하거나 한다면 그것은 결국 “악으로부터 나온 것이다”라고 예수님은 말씀하십니다. 여기서 “악”이라는 것은 타락한 인간의 본성, 혹은 타락하고 부패한 세상 풍조를 가리키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더 깊이 들어가면 이 악은 성경에서 자주 나온 대로 악한 자 마귀를 가리키는 것입니다. 악한 마귀는 거짓의 아비요 속이는 데에 능수능란한 자입니다. 마귀는 사람들의 마음 속에 거짓을 심어놓아 거짓을 통하여 자기 자신이 속아넘어지게 하고 다른 이들도 속여서 넘어뜨려 결국 함께 수치와 패망의 길로 밀어넣는 가장 사악한 존재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오늘 본문 말씀에서 우리의 모든 언행에서 거짓을 물리치고 정직하고 진실한 자가 되기를 힘쓰라는 주님의 강력한 경고를 듣게 됩니다. 그 당시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이 여호와의 이름으로 맹세하는 것은 두려운 나머지 하나님의 이름으로 맹세하는 것은 조심스러워하면서도 정작 일상적인 생활 속에서는 하늘이나 땅을 들먹이며 예루살렘을 들먹이며 성전의 제단을 들먹이고 제단의 제물을 들먹이며 자기의 목숨을 들먹이면서 자기 말이 진짜라고 사람들에게 자기를 믿으라고 강요하였던 것입니다. 하지만 그들은 실상 그러한 말과 달리 그 마음에 아무런 진심이 없었던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러한 불성실한 언행, 말과 삶이 불일치한 인격을 아주 싫어하시는 것입니다. 그렇게 불성실하고 안과 밖이 맞지 않은 사람, 거짓을 진짜처럼 말하고 약속을 손바닥 뒤집듯하는 사람은 사실은 거짓의 아비 마귀와 친한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오늘 본문 말씀에서 주님께서 언급하신 바 “헛 맹세를 하지 말고 네 맹세한 것을 지키라”는 3계명과 “네 이웃에게 거짓 증거하지 말라”는 제 9계명의 진정한 의도가 무엇인가를 마음 깊이 새깁시다. 이는 하나님의 성전에서 함부로 서원하고 맹세하는 것과 같은 일이나 법정에서 거짓 알리바이, 거짓 증인으로서 진실을 바꾸는 거짓 증인이 되지 말라는 것에 그치지 않습니다. 주님의 의도는 우리의 모든 삶의 현장에서 예라고 말할 것은 꾸밈없이 예라고 말하라는 것입니다. 아닌 경우에는 아니라고 말하라는 것입니다. 내게 이익이 있건 없건 목에 칼이 들어와 나를 위협하든 하지 않든지 간에, 우리는 말이나 생각이나 행동이나 모든 것에서 정직하고 진실하고 성실한 사람이 되라는 것입니다. 우리 주님께서 이 땅에서 십자가에 매달리시는 그 순간까지 그렇게 사셨듯이, 우리 믿음의 선배들과 사도들이 그러하셨듯이, 우리도 더욱 작정하고 정직하고 진실하는 마음과 언행의 사람들이 됩시다. 말과 행동을 화려하고 거룩하고 대단하게 꾸미지 말고 도리어 진실하고 정직하고 담백하게 살아갑시다. 거짓의 아비 마귀, 거짓 영 귀신이 일체 우리에게 틈을 타지 못하게 합시다. 그리하여 오직 성령께서 우리 안에서 빛으로 드러나 세상의 모든 어둠을 환하게 물리치는 빛의 아들들이 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