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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리 이해
목 차
제 1 장 서 론 -수술과 무술등- · 1 목차
제 2 장 형성과 기원- 무속과 수술은 하늘과 땅으로 통하는 원천이다.
1. 원시사유 - 신비적, 원논리적 ‘서로 스밈’ 2. 교감무술 ·
3. 신비한 ‘수’ 4. 복서,《주역》, 팔괘와 음양오행학설
5. ‘땅과 끊어지고 하늘과 통함’과 ‘예의가 무너지고 음악이 파괴됨’
제 3 장 옛날 천문학- 위로 하늘을, 아래로 사물을 살핀다
1. 천문학과 별점 보는 법 2. ‘하늘과 인간은 서로 감응한다’
3. 별자리의 구역과 땅의 배분 4. 별자리로 운명 보는 법
제 4 장 옛날 역법학- 좋은 날이란 어느 때인가?
1. 역법과 역법에서의 꺼림 2. 옛날 역법의 바뀌기
3. 간지의 처음과 끝 4. 좋은 날 고르기
제 5 장 옛날 풍수 보는 법- 용 ․ 맥 ․ 사 ․ 혈은 감여 이다
1. 풍수의 뿌리 2. 용·혈·사·수·기타
3. 집과 도시 자리와 묘자리(양택과 음택) 4. 풍수의 미분성
제 6 장 옛날 운명 보는 법 - 운명은 뽕나무 밭이 바다가 되는 것이다 ·
1. ‘운명’의 불확실성 2. 납갑으로 괘를 만든다 - 옛날의 점치는 법
3. 네 기둥과 여덟 글자 - 운명의 비밀 번호 4.옛날 관상 보는 법- 관상을 보면 사람을 안다
5. 옛날 이름 짓는 법- 글자속에는 하늘의 괘와 땅의 괘가 있다 6. ‘숙명’의 불확실성
제 7 장 옛날 꿈 점치는 법-꿈속에는 스스로 현묘한 기밀이 있다
1. 꿈 점치는 법의 연기 - 신령적인 계시
2. 꿈 점치는 법의 옛날 끌어옴과 이론화 - ‘주공이 꿈을 풀이하다’
3. 꿈 점치는 법의 정치화와 세속화 4. 꿈 점치는 법의 내용과 방법
제 8 장 수술과 예의 제도-예의와 수는 늘 하늘과 땅의 질서이다
1. 예의의 연원 - 예의와 수는 본래 같은 뿌리였다
2. 수술과 예의의 정치화- ‘여덟 줄의 춤’ 3.수술과 예의의 이론화- ‘삼년상’의 이치
제 9 장 수술과 악율- 율려는 음과 양을 조절하고 하늘과 땅을 화합시킨다
1. 옛날 음악의 근원 - 음악은 신과 통한다
2. 음율의 수 -운율은 부는 것이고 소리는 듣는 것이다
3. 시로 요사함을 알고 노래로 미래를 예측한다
제 10 장 수술과 중국 의학- 약으로 쓰이는 자황은 목숨을 늘이는 법이다
1. 무술과 의술은 뿌리가 같다 2. 의술과 역술은 이치가 같다
3. 의료상의 거리낌 4. 의료전문가는 점복을 친다
제 11 장 수술과 수학-구구계산 법을 가볍게 보지 마라
1. 점치는 것과 계산의 뿌리 2. 구구계산 법 3. 점치며 계산하는 수학
참고 문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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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장 서론
청나라 말기, 관운이 형통하여 대권을 장악했던 원세개袁世凱(1860~1916)는 조정의 시기를 당하여 결국 병권을 빼앗기고 쫓겨나게 되었다. 이 야심가는 자신이 쫒겨난 이유를 이해하지 못했다가 돌연 자기 선조 묘역의 풍수와 관계가 있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그리하여 당시 유명했던 풍수대사(지관)를 초청하여 선조 묘역를 살피게 하였다. 그 결과는 선조 묘역이 장룡와호藏龍臥虎의 명당이라는 것이었다. 그러면, 어디에서 문제가 생긴 것인가? 그원인은 원세계 집안 묘역을 높고 웅장하게 만들어 조망이 편리하도록 특별히 두 갈래의 높은 담벽을 쌓은 데 있다는 것이었디. 그 후에 다른 지관도 여기에 동의하였다. 비록 용맥龍脈이 있더라도 이런 담벽을 둘러침으로써 용신龍身이 제약을 받고 기맥氣脈이 방해를 받았다는 것이다.
원세개는 그 말을 듣고 당장 그 담벽을 허물도록 했다. 과연 얼마 지나지 않아 그는 다시 조정에 기용되고 진경晋卿으로 작위까지 받았다. 곧 이어 새로 탄생된 중화민국 대통령을 얻게 되었다. 그러나 ‘홍헌洪憲’ 황제가 되려고 했으나 전국적인 반대에 부딪쳐 뜻을 이루지 못했다. 이후 83일이 지난 뒤에 원세개는 이를 걱정하고 두려워하다가 결국 황천으로 가고 말았다. 이 이야기는 여기서 그쳤으므로 과연 그와 선조 묘역의 풍수가 연관되는지 물어볼 방법은 없다.
여기에서 소개하려 하는 것은 원세개 이야기의 실제와 이야기에 나타난 풍수관념뿐만 아니라 거기에 포함된 내적인, 깊고 넓은 의미의 ‘수술數術’ 관념 및 조작 행위에 관한 것이다. 이를 수긍한다면, ‘수술’이란 도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소위 ‘술’이란 고대에서의 원래 뜻은 도로道路를 말하고 뒤에 방법과 기술로 전의되었다. 그런데 ‘수술’ 가운데 소위 방법과 기술이라는 것은 무술巫術을 가리킨다. 이러한 무술의 특징은 지닌 신비주의적 방법과 기술로 일반 사람들이 미지의 세계와 접할 수 있었다. 간단하게 말한다면, ‘수술’의 ‘술’은 신과 인간의 통로通道이자 중개仲介인 것이다.
소위 ‘수’는 일반적으로 사물의 양적 규정 및 그와 연관되는 계량 활동을 말한다. 그러나 고대에 있어서 ‘수’의 의미는 그리간단하고 명료한 것이 아니다. 옛날 사람들 마음에서 ‘수’는 우선 하늘과 땅과 같이 공존하는 신이 준 물건이었다. 그런 까닭에 자연법칙의 의미뿐만 아니라 사람들의 외경과 숭배를 받았다. 그 구체적 표현 기술은 일종의 신비화된 ‘정수定數’ 관념이었다. 옛날 사람들은 항상 ‘하늘의 수가 이미 정해졌다’고 생각했다. 즉 천수(지수와 대응하는 수로 정현鄭玄(127~200)에 의하면 오행의 수水·목木·토土이다. 이에 비해 지수는 화火·금金이다)가 이미 정하여 있어서, ‘수를 밝히는 것이 피하기 어렵다’고 했다. 또한 ‘기수氣數 즉 운명이 이미 다했다’고 보았다. 이런 부류의 말하기는 일부 사실적 확정성을 기술하고 사물의 발전을 표명하는 것인데 그로 인하여 그 날부터 기정화되는 과정을 겪는 것이다.
전하는 바에 의하면, 당(618~907) 나라 덕종 이적德宗李適(742~805 재위 779~805)은 태어날 때 얼굴이 못 생겼다고 한다. 그래서 그의 할아버지 숙종 이형肅宗李亨(재위 756~762)과 아버지 대종 이예代宗李豫(재위 762~779)가 몹씨 좋아하지 않았다. 다만 증조부 현종 이륭기玄宗李隆基(685~762 재위 712 ~756 )는 각설하고 ‘진짜로 나의 후대로구나! 너희들 두 사람의 기수 즉 운명은 모두 그보다 못하다!’라 했다 한다. 과연 숙종은 5년간, 대종은 15년간, 덕종은 27년간 황제로 있었다. 현종의 말이 응험했던 것이다. 이것이 ‘숙명론宿命論’ 사상으로 바로 ‘정수’의 형식을 빌어 표현되었던 것이다.
이와 같이 ‘수’는 신성한 성질을 띠고 신의 의지 표현으로 성립된 것이다. 옛날 사람이 이르기를 ‘신이 비록 수는 아니나 수로 인하여 나타난다’라고 했다. 바꾸어 말하면 사람들은 ‘수’를 통해서 신의 의지를 꿰뚫어 자기의 행위로 하여금 길함을 추구하고 흉을 피할 수 있는 것이다. ‘수’의 계량성이 둘째의 위치로 밀려났지만, 신과 통하는 성질은 오히려 일급의 위치로 올랐다. 이것이 ‘수술’의 ‘술’에 내포된 의미와 일치하는 점이다. 이로 인하여 ‘수술’의 ‘수’는 신과 사람이 교통하고 중개하는 것이다.
고대의 ‘수’와 ‘술’은 내포된 의미가 일치한다는 뜻이다. 이것이 바로 ‘수술’의 기본적 규정規定이다. 다시 말하면 하늘의 명은 어기기 어렵고, 신은 가히 측량하지 못한다. 다만 신의 의지가 의외로 ‘수술’ 중에서 사람들에게 나타나고 아울러 인류의 생활에 영향을 주게 된다. 바꿔 말하면, ‘수술’은 신과 사람 사이의 통로이자 중개인 것이다. 구체적으로 말하면, 고대 수술은 ‘하늘과 사람은 마음을 주고 받는다’는 관념 즉 하늘과 인간이 서로 통한다는 관념과 음양오행생극제화陰陽五行生克制化의 수리數理를 기초로 한다는 사실이다. 종종 신비한 색채의 매개이자 행위나 작위의 겉옷인 것이다. 이로부터 일상생활의 길흉을 추측하여 판단하며 복을 추구하고 화를 회피하는 문화형태를 지니게 되는 것이다.
일종의 전통문화 형태인 수술 관념과 그 조작 행위는 역사와 같이 유구한 것이고 고대 문화의 발전과 발자취를 같이 했다.
일반적으로 고대문자에서 고증할 수 있는 역사는 상商(약 BC 17세기~11세기) 시대부터이다. 상 나라 역사의 인식에 대한 옛날 책자 기록을 제외하면, 제일 주요한 전거는 지하에서 발굴된 상 나라 갑골문이다. 갑골문은 ‘복사卜辭’로 불렸고 당시 갑골을 사용하여 점복占卜의 문자 기록으로 남긴 바였다. 점복은 바로 이른 시기 수술 활동의 일종으로—가능한 명칭이 ‘술’인 것이다. 그럼, ‘점복’은 또 어떻게 된 일인가?
점복은 일종의 ‘술’이다. 다시 말해서 점복은 신과 사람이 교류하는 하나의 수단으로 완성된다. 점복은 주로 갑골(껍질과 뼈)을 사용한다. 그 중 ‘갑’은 거북이의 배 껍질과 등 껍질을 가리킨다. ‘골’은 소 ‧ 양 ‧ 사슴 ‧ 멧돼지 따위 동물의 뼈를 가르치는데 주로 어깨뼈이다. 갑골은 점복하기 전에 톱으로 깎고, 갈아서 윤이 나게 하고, 구멍을 뚫는 따위의 손질을 거쳐야 한다. 손질을 거치면, 갑골은 규격에 부합되는 잎 모양이 된다. 위의 면은 원형 혹은 타원형의 홈이 생긴다. 점복할 때, 달구어진 금속 기구로 구멍이 뚫릴 곳을 지진다. 그리하여 그 지짐으로 인하여 파열이 생겨 홈과 그 주위에 각종 무늬가 생기게 된다. 그 무늬를 ‘조兆’라 한다. 전하는 바에 의하면, 이것은 신령이 사람에게 주는 계시이다. 사람들은 이를 근거하여 일상생활의 성공과 패배 또는 길함과 흄함을 물으며 예측하게 된다. 엄격하게 말하면 점복은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사람들은 점으로 날짜를 잡고 이름자를 점쳤다. 물어볼 내용 및 점의 응험 결과 따위의 기록이 조문兆紋의 부근에 있었던 것이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오늘날 보는 바 갑골문 즉 점의 말씀이다.
점의 말씀을 통하여 우리는 상 나라 사람들 점치는 내용이 지극히 광범하다는 것을 알았다. 대개 제사, 정벌, 혼인과 상복, 풍년의 기원, 수렵, 기상氣象, 풍수지리, 집짓기, 꿈과 한상, 질병, 재해 따위의 크고 작은 일이다. 거의 점으로 치지 않는 것이 없었다. 바로 이렇기 때문에 복사의 기록과 도구는 중요한 역사적 가치가 있는 것이다. 당시 사람들은 무엇 때문에 점복에 대하여 이와 같이 신뢰하였는가? 점복을 무엇 때문에 신과 사람이 교통하는 일종의수단으로 보았는가? 일반적인 수술 관념을 따지지 않고 행위를 지속하고 사람들이 점복의 재료인 갑골을 보는 법과 관계가 있기 때문이다.
소, 양, 사슴, 멧돼지 따위의 동물은 고대에서 항상 신령에게 대한 희생으로 바쳐졌다. 이런 동물은 신과 사람을 교통하고 중개하는 가능성을 갖추었던 셈이다. 거북을 보면, 옛날 사람들 마음에서 일종의 신령한 동물이란 생각이 일었을 것이다. 거북이의 형체를 보라. 거북이는 등 껍질이 둥근 모양이고 네 다리가 네모 모양이다. 그러므로 ‘하늘은 둥글고 땅은 네모졌다’는 관념을 지닌 옛날 사람을 대변했던 것이다. 거북이의 머리 모양은 사람의 생식기와 같아 사람을 상징할 수 있다. 따라서 거북이의 몸은 하늘, 땅, 사람의 삼재를 구비하고 있다. 이는 얼마나 신기한 현상인가! 더욱이 거북이는 장수 동물의 하나이다. 이런 것들은 옛날 사람들이 거북을 일종의 통신하는 동물로 파악했던 것이다. 사람들은 갑골 위를 지져서 형성된 복조로 신령의 계시를 읽었던 것이다. 이런 근거로 일상생활 일을 물어 성공과 실패, 길함과 흉함을 예측했던 것이다. 이는 쉽게 이해될 것이다.
주목해야 할 가치는 점사 가운데 고대 수술의 나머지 형태를 돌아보거나 혹은 새싹와 그 영향을 확인할 수 있다는 것이다. 예를 들면, 하늘의 현상으로 점치는 별점술을 이야기하고, 지리로 점치는 풍수술을 이야기하고, 꿈과 환상으로 점치는 꿈점술을 이야기하는 따위이다. 이것은 수술의 초기 형태라 할 수 있는 것들이다.
제일 늦은 서한西漢(BC 206년~AD 8년) 시기에 이르면, 수술의 주요 형태는 이미 출현하여 비교적 명확한 구별과 분류가 생겼다. 예를 들면, 저명한 역사학자인 사마천司馬遷(BC 약145 ~ 80)은《사기》<일자열전>에서 한漢 나라 궁정에서 흥성했던 한 장면들을 소개했다.
효무제[BC 141~87] 때 점가들이 모였다. 어느 날이 아내를 맞이하는 날로 가능한가를 물었다. 오행가五行家는 가능하다고 대답했고, 감여가堪輿家는 불가능하다고 대답했다. 건제가建除家는 불길하다고 대답했고, 총진가叢辰家는 크게 흉하다고 대답했고 역사가歷家는 조금 흉하다고 대답했다. 천일가天一家는 조금 길하다고 대답했고, 태일가太一家는 크게 길하다고 대답했다. 변송辯訟 즉 시비의 변별이 끊이지 않았다. 이를 듣다가 물리치고 가로대 죽음과 금기의 날를 피하여 오행으로 주를 삼겠다고 결론을 내렸다.
이 고사는 한 나라 무제(BC 154~87 재위 BC 141~87) 때 각파의 술수가를 모아 놓고 어느 날에 아내를 맞이하면 합당한가고 묻던 자리였다. 결국 어떤 자는 된다. 어떤 자는 안 된다. 어떤 자는 이롭다. 어떤 자는 불리하다고 말하였다. 그래서 일치된 결론을 내릴 수 없어 사태가 지나친 정도에 이르렀다. 최종에는 그래도 예제에 근거하여 오행가의 의견을 청취하였다.
이밖에도 서한(BC 206~AD 5) 경학의 스승이던 유흠劉歆(? ~AD 23)의《칠략七略》(《칠략》의 원서는 잃어버린 지가 오래됐다. 그 주요 내용은 반고班固(32~92)의《한서》<예문지》에 기술되어 있다.) <수술략數術略>에 당시 수술에 관한 서적이 소개되어 있다. 이런 서적은 ‘천문天文’(별점술과 관계가 있다), ‘역보曆譜’(역법학과 관계가 있다), ‘오행五行’(위에서 서술한 대로 한 무제가 취한 바 일곱 종류의 점술가의 총명이다), ‘시구蓍龜’(점복과 점서가 포함된다)와 ‘잡점雜占’(이상 각종 점법 외의 기타 점법. 꿈풀이술과 각종 구사술驅邪術 따위가 포함된다)과 ‘형법形法’(풍수술과 각종 관상술 따위과 포함된다) 따위의 여섯 종류였다. 이밖에《칠략》<방기략>에 기록된 ‘의경醫經’(의학 이론에 해당된다), ‘경방經方’(약제학과 더불어 박물학과 관계가 있다), ‘방중房中’(즉 방중술, 성학과 더불어 우생학과 관계가 있다), ‘신선神仙’(방중술을 제외한 기타 양생술이 해당된다) 따위의 대다수가 수술 관념과 그 조작 행위와 직간접으로 관계가 있다는 뜻이다.
이런 기록에서 당시 수술 활동의 복잡성과 그 내용의 풍부성을 짐작할 수 있이다. 이런 활동의 구체적 정황은 이미 고증할 수가 없다. 다만 긍정적인 것은 그것들의 많고 적은 변이 형태가 후세까지 별로 소실된 적이 없다는 사실이다. 그것들의 기본 관념은 중국인의 의식 형태에 잠재된 것이다. 이로 말미암아 전통문화를 관통하는 하나의 독특하고 사람을 미혹시키는 모습으로 형성되었던 것이다.
수술은 고대에 많은 구체적 형태가 존재했다. 예를 들면 천문학, 역법학, 풍수술, 추명술, 관상술, 측자술, 꿈풀이술 따위가 그것이다. 이들은 각기 다른 생각과 형태로 서로 영향을 주고받았다. 고대의 예악제도, 정치, 군사, 의학, 수학, 종교, 철학 따위의 문화 형태 내지는 사람들의 일상생활에 영향을 미쳤던 것이다. 이론상으로 말하면, 수술은 당연히 사회과학 혹은 인문과학의 연구 범위에 속한다. 그러나 수술의 내용은 직접적으로 현대천문학, 지리학, 식물학, 동물학, 광물학, 화학, 의학, 수학 따위의 자연과학 기초학문이며, 간접적으로 농예학, 공예학, 군사기학 따위 기술학과의 각 방면에도 해당된다. 털만치도 과장하지 않고 말하여, 이러한 수술에 대한 생각과 그 구체적 형태를 포기한다면, 전통문화의 이해가 전혀 불완전해진다는 것이다.
수술은 일종의 전통문화의 잔재로 오늘날에도 완전히 종적을 감추지 않았다. 명백한 보기로 근년에 풍미했던 ‘숫자로 길함과 상서로움을 나타내다’가 있다. 그것은 무술 관념과 전통적인 신비주의인 숫자 관념이 서로 결합했던 것이다. 이는 ‘팔八’과 ‘발發’의 동질적인 구성은 비슷한 음성의 연상으로 인한 것이다. ‘發전하려면 八과 떨어질 수 없다’는 관념을 만들어낸 것이다. 이러한 현상은 ‘八’을 숭상하는 의식으로 굳어진 것이다. 이것은 현대 남아 있는 수술 관념의 전형이라고 할 수 있다.
우리는 고대의 많은 마을에서 허다한 수술 활동의 살아 있는 ‘화석化石’을 만날 수 있다. 가정에서 집을 지으려면 여전히 ‘풍수 선생’을 불러 집터와 주위 환경을 관찰하여 집의 배치를 확정하고 기공해야 한다. 마을 어구의 마을지킴이인 큰 나무 아래에서, 길가에서, 심지어는 저자 거리에서 관상을 보고 손금을 보고 팔자를 추명하는 ‘산명算命 선생’이 있다. 경건하거나 의심스러워하는 얼굴을 한 마을 사람들에 둘러싸여 가운데 손가락을 꼽으며 그럴 듯하게 입으로 중얼중얼하고 있는 것은 흔한 일이다.
지은이의 고향에서도 청년 남녀들이 결혼하기 전에 없어서는 안 될 절차가 있다. 남자 쪽에서 여자 쪽 집으로 가서 쌍방의 사주팔자生辰八字를 교환해야 한다. 이 풍속의 이름을 ‘개생경開生庚’이라 한다. 만약 ‘생경生庚’을 열지 못하면 이 혼사는 성립될 수 없다.
주목되는 것은 수술이 현대 많은 과학가의 관심와 흥미를 일으킨다는 점이다. 그중에서 가장 주목되는 것은 서방 사람에 의거해 제기된 ‘동방마부東方魔符’라는 ‘태극도太極圖’이다. 과학자들의 놀라운 발견이나 과학사상의 많은 발견이 이루어진 것이다. 예를 들면 컴퓨터 기술의 이론 기초인 2진법 수리數理, 빛의 파립 2상성波粒二象性, 유전자 비밀번호로 불리는 DNA, 분자사슬의 암모니아의 배열, 우주대폭발 기원설…… 뜻밖에도 이런 사항들이 태극도에서 음양의 줆과 늚, 합치고 나뉘는 수리數理를 설명했던 것이다. 유명한 덴마크 과학자 파이玻爾가 노벨 물리학상을 받은 뒤 태극도를 그의 가족의 휘장으로 정하고 또한 ‘대립으로 상보를 삼는다’는 명문銘文을 주석한 것이다……
그러나 옛날 사람과 현대 사람의 사유방식은 확연히 구별된다. 수술의 바탕이 과학이라고 말할 수는 없으나 비약된 논리를 가질 필요도 없다. 고대 사회는 ‘과학이 없다’, ‘종교가 없다’, ‘철학이 없다’고 할 수는 없다. 손쉽게 긍정하거나 부정하지 말고, 합리한 태도와 방법으로 응당 실사구시의 입지에서 연구한 후에 결론을 내려야 할 것이다.
이 책은 계통적 연구의 일부이지 술수의 전문서는 아니다. 단지 많고 복잡한 수술 형태에서 일부 중요하고 대표성이 있는 화제를 취하여 설명했을 뿐이다. 바라는 것이 있다면, 이 책의 독서를 통하여 수술의 기본 관점과 조작 행위를 대응했으면 하는 것이다. 그리하여 고대문화의 위상과 영향에 대하여 요해와 인식이 있기 바란다. 마치 신비한 수술 세계는 경치가 풍부한 한 곳과 비교된다. 사람들을 현혹시키는 유람의 승지라면, 이 책은 기껏해야 하나의 방향을 제시하는 입문서가 될 뿐이다.
그럼 우리의 여행을 시작하자. 먼저 그 아득하고 황량하고 쓸쓸한 시대부터 출발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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