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청난 고통과 어려움을 겪고 있지만, 그 누구도 내게 위로자가 될 수 없는 상황은 그야말로 최악의 상황입니다(16절, 17절, 21절). 그래서 마음에 깊은 병이 든 것처럼 고통스럽게 울부짖습니다(20절, 22절). 그래서 눈에서는 눈물이 물처럼 흘러내려 그치질 않습니다(16절). 이것이 바로 예레미야의 탄식이며 호소였습니다. 예루살렘의 멸망을 바라보는 자들은 마치 강 건너 불구경하듯이 방관하고 있음도 탄식합니다(12절). 나는 괴롭고 고통스럽지만, 주변 사람들은 그 아픔과 고통을 함께 공감(共感)해 주지 않는 것도 고통을 더하게 합니다. 물론 하나님의 백성인 예레미야가 다른 민족 그 누구에게 그러한 위로와 공감을 기대하겠냐마는 그러한 것조차 예레미야에게는 슬픔이었습니다.
그러나 유다와 예루살렘에 찾아온 이러한 고통과 괴로움은 하나님께서 주신 것이기에 예레미야는 탄식만 할 뿐 어찌할 도리가 없다는 것에서 더욱 비통할 수밖에 없었을 것입니다. 만물의 주관자이신 창조주 하나님께서 주신 것이라면 하나님의 백성된 자들에게는 고스란히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것이기 때문입니다(12절, 14절, 15절, 18절). 그리고 하나님께서 유다 백성을 향해 그렇게 하신 것은 유다 백성이 하나님 앞에 죄악을 저질렀기 때문임을 알기에 의로우신 하나님의 심판을 그대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는 것을 고백합니다(18절, 20절).
그러면서 예레미야는 유다와 예루살렘의 파멸을 보며 기뻐하는 자들에게도 하나님의 진노를 내리셔서 그들도 하나님의 심판이 임하며, 하나님의 재앙이 임하길 간구합니다(21절, 22절). 유다 왕국을 심판하시기 위해 하나님께서는 바벨론을 사용하셨고, 때로는 주변의 여러 족속들을 통해 어려움을 겪게도 하셨지만 그들도 하나님 앞에 악을 행하는 자들이니만큼 그들에게도 그 죗값을 치르도록 유다 왕국을 향해 하나님께서 재앙을 내리셨던 것처럼 그들에게도 하나님의 재앙을 내려달라고 간구합니다. 그만큼 하나님의 거룩한 도시, 예루살렘이 멸망하여 파괴되는 것은 예레미야에게 있어서 크나큰 아픔과 마음의 병이라고 고백합니다(22절).
하나님 앞에 죄악을 저지른 자들은 하나님의 심판을 피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내리시는 재앙은 엄청난 고통이어도 지은 죄에 대한 마땅한 대가를 치르는 것이기에 하소연조차 할 수 없다는 것을 알기에 고통 속에 눈물을 흘리며 슬픔으로 탄식밖에는 할 것이 없는 예레미야의 슬픔은 깊어만 갑니다. 더구나 하나님께서 유다 백성을 향해 계속 경고하시며 돌이키라는 메시지를 전했던 예레미야이기에 예루살렘의 비참한 멸망은 더욱 마음 아팠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경고하시며 말씀하셨을 때 돌이켰다면 좋았을 것이라는 마음이 들었을 테니 더욱 마음이 고통스러웠을 것입니다. 우리에게도 이러한 때가 찾아올 수 있음을 기억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가감(加減) 없이 그대로 전해야 하고, 사람들이 빨리 돌이켜 하나님께로 돌아오도록 전해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도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온전히 살아가도록 해야 합니다. 오, 주님, 우리에게 주어진 돌이킬 기회가 사라지기 전에 하나님을 기억하고, 하나님 앞에 신실한 삶을 살아가게 하옵소서. (안창국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