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 은하수 사랑>/구연식
지상의 휘황찬란한 문명의 불빛이 하나둘씩 잠들어 가면 하늘에서는 은하수가, 숲 속에서는 자연의 별들인 개똥벌레들이 여름밤을 지키고 있다. 이렇게 반딧불이가 날고 은하수가 하늘 가운데로 흐르는 여름밤이면 옛날의 가물거리던 은하수의 추억들이 별똥별 섬광처럼 머리위에서 번쩍거리며 되살아난다.
하늘에 살고 있는 수많은 은하수들이 푸른 하늘 초원에 양 떼들처럼 몰려와서 풀을 뜯기도 하고 냇가에서 물을 마시기도 한다. 우리 인간 세계에 보내는 윙크의 반짝거림은 영겁의 광년(光年)에서 보내주지만 언제나 변함이 없다. 해님은 너무 정열적이고 뜨거워서 바라볼 수 없다. 달님은 한 달 동안 뵐 수 있는 날이 너무 들쑥날쑥하여 보기 힘들다. 은하수는 주위의 별들과 더불어 밤새도록 볼 수 있어 그리도 좋다.
나는 은하수의 푸른 풀밭 하얀 양 떼들을 헤집고 마냥 돌아다닌다. 양 떼들이 머무는 언덕에 작은 오두막을 짓는다. 울타리에는 사랑의 장미꽃을 심는다. 장독에는 온갖 꿀을 단지마다 가득 담아 놓는다. 예쁜이를 데려다가 견우와 직녀처럼 살고 싶은 꿈을 꾸어보기도 한다.
그 어린것이 죄가 있다면 곱디고운 예쁜이와 얼토당토않은 누추한 오두막에서 살자고 했던 천진난만한 죄뿐이라는 생각이 든다. 인간의 가장 순수함은 이른 봄에 돋아나는 새싹과 같은 것이다. 어린이의 행동은 허울 좋은 합리적 이성이 개입되지 않으며 덧칠과 가미(加味)가 안 된 순수한 본능의 행동이다.
1960년대 부상 마을에는 전깃불이 들어오지 않아서 호롱불로 밤을 밝혔다. 문화시설은 잘 사는 집은 간혹 트랜지스터 라디오가 있었다. 그 외의 집은 유선방송시설을 가입한 가정에는 스피커를 설치하여 들었다. 유선방송을 운영하는 동네 아저씨 집에는 스튜디오를 설치하여 라디오 연속방송극이나 음악을 들려주었다. 그 시절에 라디오 연속방송극 『은하수 사랑』의 주제가는 방송극 내용과 결부시키며 들으면, 사무치게 애절하여 틈만 있으면 사람들은 자기 노래인 양 따라 불렀다.
멀고 아득한 내 고향 하늘 그 하늘 밑 그리운 그대 언제 그 언제나 만나 볼거나 바라보고 또 바라봐도 돌아갈 길 막막하여라 밤이면 은하수 다리를 건너 너를 찾아 헤매는 사무친 순정 아 꿈속에서 맺어보는 은하수 사랑
그 당시 농촌에서 처녀들의 농한기 부업으로는 일본 홀치기 원단 의뢰품을 주문받아서 가공하여 납품하는 것이 마을마다 유행했다. 춘궁기에 농촌 수입으로는 꽤 짭짤한 수입이었다. 홀치기를 집단으로 모여서 일하는 사랑방에는 어김없이 유선 방송 스피커가 설치되었고, 트랜지스터 라디오도 구비되었다.
방송극 주제가 ‘은하수 사랑’을 귀로 듣고 입으로 따라 불으며 손으로는 홀치기 틀 앞에서 열심히 일하는 것이 홀치기 방의 모습이었다. 그 ‘은하수 사랑’의 다음 줄거리가 해피 엔딩으로 이어지기를 청취자들은 모두 다 한마음으로 기원했다. 유선방송 아저씨는 주제가를 틈만 있으면 귀가 따갑도록 들려주어도 싫지 않았다. 언제인가 나는 은하수 사랑에 푹 빠져서 앵두나무 우물가 처녀가 되어 설레는 마음을 억누르지 못해 방황한 적도 있다.
여름방학 때 은하수가 반짝이는 시골 밤이면 또래끼리 삼삼오오 쏘다니면서 주제도 없는 이야기를 동네 모정(茅亭)에 모여서 노닥거린다. 낮에 눈여겨보아 두었던 아직 익지도 않은 참외 수박 서리를 하여 두어 번 베어 먹으면 쓴맛이 나서 그냥 뱉어 버리곤 한다. 동네 앞 시내에서 왜장을 치면서 미역을 감으면 밤 메아리가 동네 고샅까지 울려 퍼져 갑자기 놀란 멍멍이들도 일제히 합창으로 멍멍거린다. 동네는 순간 시끌벅적하여 곤한 잠을 깨운다. 그렇게 말썽꾸러기들의 은하수 밤은 깊어간다.
밤이 얼마나 깊었는지 집에 돌아오니 식구들의 코를 고는 소리가 요란하다. 어머니가 지어주신 삼베 잠뱅이는 내깔 물에 젖어있고, 등거리는 이슬에 젖어 축축해졌다. 모두 벗어서 빨랫줄에 걸쳐 놓고 방구석 빈 곳을 찾아 그냥 잠이 든다. 아침에 방학이면 늦잠 자는 나에게 어머니는 성화를 댄다. 나의 모든 것을 보셨는지 이곳저곳에 묻어있는 시궁창 흙, 그리고 옷에 붙어있는 참외 씨를 발견하고 아버지 몰래 나무라신다. 성격이 소심하고 내성적인 나를 잘 알고 계시기에 자기 아들의 흉은 모르고 친구 사귐에 역정을 내신다.
밤새 친구들과 쏘다니던 것은 후회스러워도 은하수 하늘에 그림을 그리고 이야기를 써넣던 것은 다시 그리워진다. 이 모든 것은 60여 년 전의 그림과 이야기들이다. 그렇다고 어느 철부지 소년의 풋사랑, 첫사랑 그리고 짝사랑으로 치부해 버리기에는 너무 아쉽다. 순수함의 꺾임을 당하는 자에게는 가장 큰 고통 일수도 있기 때문이다. 나의 은하수 사랑은 천연색으로 채색되지 않고, 포토샵도 안된 흑백사진이기 때문이다.
어느 때부터인가 잊어버릴 만하면 꿈속에서 예쁜이와의 은하수 사랑이 들추어진다. 꿈에서 깨어나면 허전하기도 하지만, 그래도 반갑고 고맙다. 은하수 세상에 사는 사람들은 늙지도 않는가 보다. 나와 예쁜이는 언제나 소년 소녀 모습이다. 내가 그 시절로 돌아간다면 천하에 바랄 것이 없을 것 같다. 머리맡의 메모지에 간밤의 꿈을 그대로 옮겨 글로 남겨두기도 한다.
은하수 맞이 꽃은 없어서 대신 달맞이꽃 한 아름을 창가의 꽃병에 꽃아 두고, 은하수를 바라보며 예쁜이와 꿈속에서 간절한 만남을 기대한다. 어느 사이 『은하수 사랑』을 흥얼거리며 스르르 눈을 감는다. (202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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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글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