ㅡ[덤벙 주초]ㅡ
어느날 오랫만에 내 얼굴을
본 할머니가 물으셨다
“얼굴이 왜 그렇게 어둡냐?”
할머니는 한 쪽 눈을 실명 하셨고,
목소리를 통해
사람을 분간하실 정도로
다른 쪽 시력도 안 좋은 상태였다.
그런 할머니의 눈에
손자의 힘든 얼굴이 비친 모양이다.
“너무 걱정마라…
때가 되면 다 잘 풀릴 거니께…
세상은 덤벙덤벙 사는 거니라…”
어떤 위로의 말도
귀에 들어오지 않을 정도로
지치고 힘든 나였다.
하지만 덤벙덤벙 살라는 말은
꽤 인상적으로 마음에 꽂혔다.
물론 그게 어떤 삶인지는
정확히 알지 못했지만….
몇 년이 흘렀다.
책을 읽다가 우연히
‘덤벙 주초’란 것을 알았다.
강원도 삼척에 “죽서루”라는
누각이 있다.
특이한 것은 그 누각의 기둥이다.
터를 반반하게 고르는 대신
터에 맞게 기둥의 길이를 달리한 것이다.
길이가 다른
17개의 기둥으로 만들어졌다.
숏다리도 있고 롱다리도 있다.
이렇게 초석을 덤벙덤벙 놓았다 해서
‘덤벙 주초’라 불린다.
순간 할머니의 말씀이 떠올랐다.
“세상은 덤벙덤벙 사는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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터를 반반하게 고르는 대신
터에 맞게 기둥의 길이를
달리 놓을 줄 아는 여유가 놀랍다.
그렇다면 할머니의 말뜻을
이렇게 풀 수도 있겠다
세상은 평탄하지 않다.
반반하게 고르려고만 하지 마라….
‘덤벙 주초’처럼 그 때 그 때
네 기둥을 똑바로 세우면 그만이다…
그렇다.
세상은 언제나 흔들거린다.
흔들리는 세상에서
중심을 잃지 않으려면
마음의 기둥을 잘 세워야 한다.
모든 것은
마음먹기에 달렸다
한국인의 덤벙주초(柱礎)와 그랭이
1. “덤벙대다” “덤벙거리다”는 아랫사람에게 하는 말로 어린 시절 어른들로부터 많이 들었을 것이다.
부사 “덤벙”에서 나온 말로 ‘들뜬 행동으로 아무 일에나 자꾸 함부로 서둘러 뛰어들다’는 뜻이다. 한자성어 천방지축(天方地軸)이 여기에 속할 것이다. ‘덤벙’이란 ‘들뜬 행동으로 아무 일에나 함부로 서둘러 뛰어드는 모양’으로 다듬어지지, 정제되지 않았다는 의미이다.
2. 한옥의 덤벙주초는 이와 관련된 용어로 자연석을 가공하지 않고 주춧돌로 사용한 돌로 산이나 들판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울퉁불퉁한 자연석의 형태를 가공하지 않고 그대로 사용해 주춧돌로 사용하는 전통적인 건축공법이다.
성질이 거친 덤벙 돌은 그대로 두고 나무를 돌 모양에 맞추어 세워놓은 것이다.
3. 강돌은 쓰지 않고 산돌을 쓴다. 강돌은 미끄러울 뿐만 아니라 돌의 성질이 차고 음이라고 생각해 사용하지 않았다.
덤벙주초는 서민들의 살림집에서 주로 사용하지만 사찰 대웅전과 같은 큰 정전건물에서도 쓰인 예를 많이 볼 수 있다.
3. 덤벙주초라 할지라도 때에 따라서 기둥이 놓이는 주좌면만을 살짝 가공하기도 한다. 한국 전통건축의 특징적인 수법이며 중국에도 비슷한 주춧돌이 남아있지만 드물다.
4. 여기서 의문이 생긴다.
덤벙주초에 나무 기둥을 어떻게 세울까. 이를 해결한 것이 한옥의 “그랭이질”이다.
기둥이 생긴대로 자연석 주춧돌 위에 세워지는데도 흔들리거나 밀리는 법이 없다. 주춧돌의 생긴 모양에 따라 나무 기둥의 밑동을 정밀하게 파내서 밀착시켰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랭이질 만큼은 최고 건축 책임자인 도목수가 맡는다.
5. “그랭이”는 얇은 대나무로 만든 집게 모양의 연장으로, 집게의 한쪽 다리에 먹을 찍어 선을 그릴 수 있도록 되어 있다. “그랭이칼” 또는 “그래자”라고도 부른다.
그랭이를 사용해 부재의 울퉁불퉁하고 불규칙한 모양을 그대로 다른 부재에 옮겨 그리는 일을
“그랭이질” 또는 “그래질”이라고 한다.
“그랭이질”은 기둥을 초석 위에 세울 때, 벽이나 문설주가 배흘림 기둥과 만날 때, 도리에 추녀를 앉힐 때와 같이 한 부재의 모양에 따라 다른 부재의 면을 가공해주어야 할 때 필요한 작업이다.
6. 가령, 기둥을 초석 위에 수직으로 세우고 “그랭이”의 두 다리 가운데 먹물을 묻힌 쪽은 기둥 밑둥에, 나머지 한쪽은 초석의 윗면에 닿게 해 초석의 높낮이를 따라 상하로 오르내리면서 기둥을 한 바퀴 돌면 기둥 밑둥에 초석의 요철에 따른 선이 그려진다.
이를 “그랭이선”이라 하는데 기둥을 다시 뉘어 “그랭이선” 아랫부분을 끌로 따내고 다시 기둥을 세우면 기둥 밑면과 초석이 밀착되어 기둥이 기울어지지 않는다.
7. 그랭이를 처음 개발한 국가는 고구려다. 고구려의 성들은 대부분 자연 지세(地勢)를 활용해 지어졌는데, 이들 성이 장대한 세월을 견뎌 낼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이 공법을 활용한 독특한 축성술 덕분이라는 것이 역사학자들의 공통된 의견이다.
8. 고구려 성들의 가장 큰 특징을 살펴보면, 성을 쌓는 땅에 있는 암반을 제거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고구려인들은 성을 쌓는 돌을 암반의 모양에 맞게 다듬은 다음, 암반위로 성을 그대로 쌓아 올렸다.
땅에 깊게 묻혀 있는 암반들이 성곽을 단단하게 지지해준다는 점을 일찌감치 파악하고 있었던 것이다.
9. 당시 고구려인들은 아무리 울퉁불퉁하고 불규칙한 모양을 가진 암반이라 하더라도 이를 그대로 다른 돌이나 나무에 옮겨 그릴 수 있는 대나무로 만든 집게 모양의 연장을 만들어 사용했다.
한쪽 다리에 먹을 찍은 뒤 다른 재료에 그대로 옮기도록 한 것인데, 이 연장이 바로 ‘그랭이’다.
고구려는 700년 가까이 중국을 위협한 ‘성의 나라’로, 부여성에서 발해만의 비사성에 이르기까지 쌓았던 천리장성이 대표적이다.
강변을 끼고 깍아 지른 듯한 절벽이 있는 곳이면 여지없이 고구려 성이 존재하고 있었다.
10. 그랭이의 구조는 오늘날에 사용하는 컴퍼스와 흡사하다. 기둥을 자연석 위에 수직으로 세우고그랭이의 두 다리 가운데 먹물을 묻힌 쪽은 기둥 밑에, 나머지 한쪽은 자연석의 윗면에 닿게 해 윗면의 높낮이를 따라 상하로 오르내리면서 기둥을 한 바퀴 돌면 기둥 밑둥에 자연석의 요철에 따른 선이 그려지는 것이다.
11, 나당연합군에 의해 고구려가 없어진 후 그랭이 공법은 아이러니하게도 통일신라에 의해 꽃이 피워졌다.
신라시대 건립된 불국사와 석굴암, 그리고 첨성대 등이 본래의 모습을 보존한 채 오늘날까지 전해져 내려오고 있는 것은 그 때문이다.
이들은 자연석을 서로 맞물리게 촘촘히 쌓은 뒤, 그 위에 세우는 기둥의 밑면을 자연석의 형태대로 정밀하게 깎았다.
12. 요즘에도 한옥의 그랭이를 생각하면 고구려가 생각게 된다.
고구려와 신라의 접경지였던 구라산성은 구녀산성으로도 불리는데 이 산성은 고구려산성이라는 뜻에서 구려산성(句麗山城)이었다가 고구려와 신라의 산성이란 뜻으로 구라산성(句羅山城)이 되고 이와 별도로 사용되는 구녀성(九女城)은 구려산성에서 나온 말이 아닐까 한다.
13. 구녀성이란 명칭이 생기니까 구녀(九女)란 전설이 만들어졌을 것으로 보인다. 여기서 재미있는 것은 “구라의 한자명이 통일신라 이후에는 句羅에서 謳羅로 바뀌었다.“라는 사실이다.
출처 : <‘한’연구가/과학저술가 자연경 신충우>
[출처] 한국인의 지혜(덤벙주초(柱礎)|작성자 공수래공수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