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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마경훈목사의 설교 카페 원문보기 글쓴이: 마경훈목사
노아가 받은 은혜의 혜택/ 창세기 6:8
(설교자: 마경훈목사, 비전교회)
제가 지난 두 시간 동안 예수 복음의 10대 요소를 설교 했습니다. 한 시간 더 해야 하는데 제가 아직 성경에서 근거를 찾지 못한 부분이 있고 또 여러분에게 더 쉽게 전달하기 위하여 그 부분은 다음에 하겠습니다.
인류의 조상은 누구입니까? 아담과 하와죠. 맞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담을 창조하시고 아담이 독처하는 것이 좋지 않아서 아담의 갈비뼈로 하와를 만드셨습니다. 그리고 두 사람이 부부가 되게 하셨습니다. 인류는 그 두 분의 조상을 통해서 세상에 오게 된 것입니다.
아담과 하와는 가인과 아벨을 낳았습니다. 그런데 가인이 아벨을 죽였습니다. 물론 다른 자녀들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 자녀들도 경건한 자녀들은 아니었던 것 같습니다. 아담은 130세에 셋을 낳았습니다. 그동안 아담의 자녀들은 하나님을 찾지 않았습니다. 창 4:26입니다. “셋도 아들을 낳고 그의 이름을 에노스라 하였으며 그 때에 사람들이 비로소 여호와의 이름을 불렀더라” 셋이 아들을 낳을 때까지 사람들은 하나님을 찾지 않았습니다. 셋이 에노스를 낳은 후에야 비로써 사람들이 여호와의 이름을 불렀습니다.
아담의 후손은 크게 두 계열로 나눕니다. 하나님을 떠난 가인의 계열과 하나님을 찾는 셋의 계열입니다. 제가 볼 때 셋의 계열은 많지 않았을 것 같습니다. 언제나 하나님을 찾는 무리는 소수입니다.
노아의 때에는 가인의 계열과 셋의 계열이 섞이게 되었습니다. 경건한 사람들이 불경건한 사람들에게 물들은 것입니다. 창 6:2입니다. “하나님의 아들들이 사람의 딸들의 아름다움을 보고 자기들이 좋아하는 모든 여자를 아내로 삼는지라” 여기서 ‘하나님의 아들들’에 대한 해석이 몇 가지가 있습니다.
①천사들로 보는 견해입니다. 욥기에 보면 하나님의 아들들과 사탄이 하나님 앞에서 하나님과 대화하는 내용이 나옵니다. 학자들 중에는 욥기에서 언급한 ‘하나님의 아들들’이라는 말에 근거해서, 이들이 초자연적 존재 곧 천사들일 것이라고 주장합니다. ②폭군들로 보는 견해입니다. 이 이론은 ‘하나님의 아들들’이 여러 아내를 원하는 대로 취함으로써 일부다처를 행한 폭군들이라고 주장합니다. ③셋의 후예로 보는 견해입니다. ‘하나님의 아들들’은 하나님을 경외하는 의로운 셋의 자손이었고, ‘사람의 딸들’은 부패하고 불경스런 가인의 후예였다고 보는 견해입니다. 저는 이 견해를 받아드립니다. 성경은 의인을 ‘하나님의 아들’로 지칭합니다.
하나님의 아들들을 셋의 자손들로 볼 때 경건한 셋의 계열이 불경건한 가인의 계열과 섞였기 때문에 이 세상에 경건한 사람들을 찾기 어려웠습니다. 하나님이 보시니 그 당시 사람의 죄악이 세상에 가득했고 그들의 마음으로 생각하는 모든 계획이 항상 악했습니다. 하나님은 땅 위에 사람 지으셨음을 한탄하셨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사람을 지면에서 쓸어버리시기로 결심하셨습니다.
하나님은 많은 사람들 중에서 노아를 선택하셨습니다. 하나님은 노아를 통해서 새로운 세상이 만들기 원하셨습니다. 하나님은 노아에게는 홍수로 세상을 멸망시키실 것을 말씀하셨고, 방주를 예비하게 하셨습니다. 노아는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해서 방주를 만들었습니다. 방주가 완성되자 하나님은 노아와 노아의 식구들을 방주로 들어가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모든 정결한 짐승은 암수 일곱씩, 부정한 것은 암수 둘씩, 공중의 새는 암수 일곱씩 방주 안으로 들어가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노아가 6백 살 되던 해 2월 17일부터 40일 동안 땅 속에서 깊음의 샘들이 터지게 하셨고 하늘의 창을 여셨습니다. 대홍수가 난 것입니다. 그래서 지면의 모든 것은 물에 잠겼고, 방주에 들어가지 않은 사람들과 짐승들은 전부 멸망했습니다. 물은 150일 동안 지면을 덮었으며, 노아는 홍수가 시작 되고 377일 만에 방주에서 나왔습니다.
대홍수 전과 대홍수 때, 노아는 그 당시 사람들과 달랐습니다. 하나님과의 관계가 달랐고, 홍수 심판에 대한 대처도 달랐습니다. 왜 노아는 멸망했던 다른 사람들과 달랐을까요? 여러 가지 요인이 있을 것입니다만 저는 그 중에 가장 중요한 요인을 본문에서 찾았습니다. 창 6:8을 함께 읽어봅시다. “그러나 노아는 여호와께 은혜를 입었더라” 노아는 하나님의 은혜를 입었기 때문에 그 당시 사람들과 달랐습니다. 노아가 인간적으로 뛰어나서가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 때문이었습니다.
신앙생활에서 은혜는 굉장히 중요합니다. 사람은 하나님의 은혜를 입어야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를 입었기 때문에 예수님을 믿고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르며 영원한 천국에 들어갈 자격을 얻었습니다. 사람에게 하나님의 은혜는 너무나 중요합니다. 은혜는 물과 같습니다. 우리의 몸에서 물이 사라지면 우리는 미라처럼 되고 말 것입니다. 마치 북어처럼 말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는 산소와 같습니다. 우리 중에 누구라도 산소 없이 살아갈 수 있습니까? 몇 분 정도는 버티겠지만 곧 죽고 말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는 햇빛과 같습니다. 햇빛이 없다면 이 세상은 어둠 속에 빠지고 온기는 사라질 것입니다. 모든 것이 얼어버리고 결국은 모든 것은 죽고 말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는 그 보다 중요합니다.
오늘 설교의 제목은 “노아가 받은 은혜의 혜택”입니다. 노아가 노아 될 수 있었던 것은 하나님의 은혜 때문입니다. 노아가 하나님의 은혜로 살았던 것처럼 우리도 하나님의 은혜로 살아야 합니다. 그러려면 은혜를 받아야 합니다. 오늘 설교는 노아가 받은 은혜의 혜택을 통해서 이 시대를 사는 우리가 하나님의 은혜로 인하여 어떤 혜택을 누리지 나누겠습니다.
1. 하나님과 동행하는 혜택
창 6:9입니다. “이것이 노아의 족보니라 노아는 의인이요 당대에 완전한 자라 그는 하나님과 동행하였으며” 노아는 하나님의 은혜로 의인이 되었고, 의로운 삶을 살았으며, 하나님 동행했습니다. 여기서 사용된 동행이라는 단어는 הָלַךְ(할라크)라는 단어인데 그 뜻은 ‘가다, 오다, 걷다’라는 뜻입니다. 그러니까 하나님과 동행한다는 말은 하나님과 함께 가고, 오고, 걷는 것을 말합니다. 그래서 영어 성경에서는 노아가 하나님과 함께 걸었다고 말하는 것입니다(Noah walked with God.).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이 가장 든든한 삶입니다. <베어>라는 영화에 보면 어린 곰 두스는 엄마를 잃고 혼자 숲을 헤매다가 표범을 만납니다. 그 표범이 자신을 공격하려 하자, 어린 곰은 표범을 이길 수 없지만 앞발을 들고 울부짖었습니다. 그러자 기세등등하던 표범이 꼬리를 내리고 줄행랑을 칩니다. 어떻게 된 일일까요? 사실 표범이 도망친 것은 어린 곰 뒤에 있던 큰 숫곰 바트 때문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등 뒤에서 우리를 도우시는 분입니다. 우리는 모든 면에서 연약하지만 하나님은 연약한 우리들을 도와주십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이 복된 삶이며 가장 든든한 삶입니다.
제가 어릴 때는 길에 가로등이 별로 없었고, 있다 하더라도 희미한 노란색 전구였기 때문에 밤길은 무서웠습니다. 그 당시에는 귀신 이야기를 많이 했기 때문에 밤길을 가면 마치 귀신이 등 뒤에 나타날 것 같아서 오싹오싹 했습니다. 그런데 아버지랑 함께 길을 가면 너무나 든든했습니다. 얼마나 든든한지 모릅니다. 우리의 인생길은 험한 길입니다. 캄캄해서 한 치 앞도 내다볼 수 없습니다. 마귀라는 강도가 호시탐탐 우리를 노리고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든든합니다.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시기 때문입니다. 은혜 받은 우리는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특별한 혜택을 받고 삽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믿는 인생은 든든합니다.
하나님과 동행하면 인생의 짐이 가벼워집니다. 왜냐하면 주님이 나를 도와주시기 때문이죠. 어린 아들과 아빠가 무거운 짐을 함께 들어요. 아들은 자기 힘으로 물건을 들었다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아빠의 힘으로 그 짐을 드는 것입니다. 마 11:28입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많은 사람들이 지치고 피곤한 인생을 살아갑니다. 반면 주님과 동행하는 사람은 인생의 짐을 주님이 대신 짊어져주시기 때문에 인생이 쉽고 가벼워집니다. 성령충만하면 인생이 깃털처럼 가볍게 느껴집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함께 하시기 때문입니다.
정교회에서 성인으로 인정하는 크리스토퍼 이야기입니다. 어려운 환경 속에서 고달픈 길을 가는데 길거리에 어린아이가 보채고 있었습니다. 사람들은 혼자 가기도 힘들기에 그 아이를 거들떠보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성 크리스토퍼가 어린아이를 업고 강을 건넜습니다. 그런데 이상했습니다. 어린아이를 업고 가니 더 피곤하고 고달파야 하는데 오히려 발걸음이 더 가벼워졌습니다. 콧노래를 부를 수 있었습니다. 이상하게 여긴 그가 말했습니다. “네가 누구니? 너를 업고 가니 발걸음이 가볍구나” 등에 업힌 어린아이가 말했습니다. “네가 업고 가는 나는 네가 그토록 사랑하는 나사렛 예수다” 크리스토퍼는 부지중에 예수님을 업고 간 것입니다. 왜 그의 발걸음이 가벼웠을까요? 등 뒤에 업히신 예수님이 도와주셔서 가벼웠다는 이야기입니다.
하나님과 동행하면 하나님의 뜻을 이루게 됩니다. 내가 하나님의 뜻을 알면서 하나님의 뜻을 이룰 때도 있지만 어떤 때는 나도 모르게 얼떨결에 하나님의 뜻을 이루게 됩니다. 왜 그럴까요? 내가 하나님과 동행하면 하나님이 나를 통해서 당신의 뜻을 이루시기 때문입니다.
교회를 몇 십 년을 다녀도 전혀 변화가 없는 사람들이 있어요. 교회를 다니기 전이나 후나 별로 달라진 것이 없어요. 남들은 성령 받고 새로워졌다는데 그는 늘 그 타령이죠. 왜 그런지 아세요. 교회는 다녔지만 주님을 만나지 못해서 그렇습니다. 하나님을 만나지 못했으니 하나님과 교제가 안 되고 하나님과 교제가 안 되니 늘 신앙이 제 자리에 있는 것입니다. 진짜 예수님을 믿고 은혜를 받아서 하나님과 동행하면 하나님과 교제하는 삶을 살기 때문에 변화가 일어납니다. 그가 생각하고 말하고 행동하는 것이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모습으로 변합니다.
저희 부부는 33년째 결혼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저는 목회자이기 때문에 거의 하루 종일 같이 있습니다. 제가 아내랑 33년을 늘 함께 살다보니 어떤 상황 속에 들어가면 동시에 같은 말을 할 때가 자주 있습니다. 왜 그럴까요? 부부가 함께 살며 계속 교제하다 보니 닮는 것입니다. 심지어 생각이 일치합니다. 신앙생활도 그런 것입니다. 성도가 하나님께 은혜를 받고 하나님과 동행하며 늘 하나님과 교제하다 보면 하나님을 닮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과 동행하는 사람은 시간이 갈수록 경건해지고 더 신령해지는 것입니다. 이것이 동행의 축복인 것입니다. 은혜의 혜택은 하나님과 동행하는 것입니다.
2. 하나님의 말씀 듣는 혜택
노아 당시에 인구를 적게는 10억 명, 많게는 100억 명으로 잡습니다. 그렇게 많은 사람들 가운데 오직 노아만이 하나님의 은혜를 입었습니다. 그래서 오직 노아만이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습니다. 하나님은 노아에게 홍수로 세상을 쓸어버리실 것을 말씀하셨고, 홍수 심판을 대비해서 방주를 만들라고 명하셨습니다. 하나님은 노아에게 방주를 고페르 나무로 만드는데 방주 안에 칸들을 만들라고 하셨고, 역청을 칠하라 하셨습니다. 방주의 길이는 약 135M, 넓이는 약 22.5M, 높이는 약 13.5M입니다. 심지어 창문의 높이까지 말씀하셨습니다. 노아는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기 때문에 방주를 예비하여 홍수 심판을 면한 것입니다.
신앙생활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생활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들어야만 믿음이 생깁니다. 롬 10:17입니다. “그러므로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았느니라” 믿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을 들을 때 생기는 것입니다. 교회를 수십 년 다녀도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않으면 믿음이 생기지 않습니다. 반면에 교회 다닌 지 얼만 되지 않아도 믿음이 쑥쑥 잘 자라는 사람들이 있어요.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잘 듣는 사람들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를 통해서 열매를 맺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들어야 하고 깨달아야 합니다. 마 13:23을 보십시오. “좋은 땅에 뿌려졌다는 것은 말씀을 듣고 깨닫는 자니 결실하여 어떤 것은 백 배, 어떤 것은 육십 배, 어떤 것은 삼십 배가 되느니라 하시더라” 누가 옥토입니까? 말씀을 듣고 깨닫는 사람입니다. 누가 말씀의 열매를 풍성하게 맺을 수 있나요? 말씀을 듣고 깨닫는 자입니다.
사람이 하나님의 말씀을 들으면 사는 역사가 있고 그에게 성령의 역사가 나타납니다. 에스겔 37장에 보면 여호와께서 권능으로 에스겔에게 임재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에스겔을 뼈가 가득한 골짜기 가운데 두셨습니다. 그리고 에스겔에게 대언하게 하셨습니다. 에스겔은 하나님을 대신해서 말했기 때문에 그때 에스겔의 말은 하나님의 말씀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에스겔에게 “너희 마른 뼈들아 여호와의 말씀을 들을지어다. 주 여호와께서 이 뼈들에게 이같이 말씀하시기를 내가 생기를 너희에게 들어가게 하리니 너희가 살아나리라. 너희 위에 힘줄을 두고 살을 입히고 가죽으로 덮고 너희 속에 생기를 넣으리니 너희가 살아나리라 또 내가 여호와인 줄 너희가 알리라”고 대언하게 하셨습니다. 에스겔은 여호와의 말씀을 대언했습니다. 그러자 뼈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들었습니다. 그리고 뼈들이 움직이며 이 뼈, 저 뼈들이 서로 연결되었습니다. 그리고 그 뼈에 힘줄이 생기고 살이 오르며 가죽이 덮였습니다. 에스겔이 다시 하나님을 대신해서 말했습니다. “생기야 사방에서부터 와서 이 죽음을 당한 자에게 불어서 살아나게 하라” 그러자 생기가 그들에게 들어가서 곧 살아나 일어나 서는데 극히 큰 군대였습니다. 이 사건은 두 가지를 예언하는 것입니다. ①완전히 망해버린 이스라엘이 훗날 다시 회복 될 것에 대한 예언입니다. 하나님은 이 뼈들이 이스라엘 온 족속이라고 하셨습니다. 사람들은 망했던 이스라엘이 회복 되는 것을 보고는 여호와를 알게 될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②성령의 역사에 대한 예언입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영을 사람들 속에 두시겠다고 하셨습니다. 감사한 것은 이 두 가지 예언이 지금 이 시대에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완전히 망했던 이스라엘이 약 2천 년 만에 회복 되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성령을 유대인들 가운데 부어주셔서 유대인들 중에 믿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이 일은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에 유대인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듣게 되어서 일어나는 것입니다.
저와 여러분은 하나님의 말씀을 들어야 합니다. 성경은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이기 때문에 믿음으로 성경을 읽으면 하나님의 역사가 읽는 사람에게 일어납니다. 설교는 하나님의 말씀의 선포이기 때문에 설교를 믿음으로 들으면 듣는 사람에게 하나님의 역사가 일어납니다. 성령님은 전능하신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성령의 음성을 들으면 그는 역동적인 신앙생활을 하게 됩니다. 성경에 나오는 믿음의 사람들이 하나님을 만나고 하나님과 동행하고 하나님을 누렸던 것처럼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때 그런 역사가 일어납니다.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순종하면 그것이 복이 됩니다. 오래 전에 지방에서 목회하시다 서울에서 목회를 크게 하셨던 목사님이 계셨습니다. 그 목사님께서 어려우실 때 영양실조에 걸려 얼굴이 노리끼리했답니다. 그 모습을 보고 한 집사님이 목사님께 해드리라며 닭 한 마리를 사모님에게 드렸습니다. 사모님께서 그것을 받아 폭 고아서 식사 준비를 했습니다. 목사님께서 일 년에 한 번이나 겨우 먹는 귀한 닭을 먹으려 하는데 “먹을 것을 좀 주시오. 배가 고픕니다.”라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문을 여니 아주 험하게 생긴 걸인이 서 있었습니다. 목사님께서 속으로 ‘거지가 하필 이때 오냐?’라고 생각하는데, 성령님께서 ‘너는 그래도 일 년에 한 번이라도 이런 것 먹을 수 있지만 저 거지는 언제 먹겠느냐?’라는 감동을 주셨습니다. 그래서 마지못해 “들어오시오. 마침 여기 닭 한 마리가 있으니 같이 먹읍시다.”라고 했더니, 걸인이 들어와 “감사합니다.”라고 하더니 양손에 닭다리를 들고 먹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얼마나 빨리 먹는지 삽시간에 다 먹어버렸습니다. 목사님께서는 입맛만 다셨습니다. 걸인이 “잘 먹었습니다.”하고 나가는데 이상한 생각이 들어 목사님께서 따라 나가보았습니다. 그 목사님 댁이 외딴 곳에 있어 1km 반경 안에는 집이 한 채도 없었습니다. 그런데 걸인이 온데간데없이 사라졌습니다. 혹시 화장실에 갔나 하고 화장실에 가 보아도 없었습니다. 목사님께서 교회로 돌아와 ‘하나님, 참 이상한 일입니다.’라고 하는데, 마음에 평안이 넘치고 기쁨이 샘솟았습니다. 그 때부터 성경을 읽으면 해석이 잘 되고 설교를 하면 행복이 넘쳐나고 교회도 부흥되기 시작했습니다. 닭 한 마리를 대접하고 그렇게 큰 복을 받으신 것입니다. 억지 구제였지만 성령님의 음성에 순종해서 복을 받은 간증입니다.
노아는 심판과 방주에 관한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습니다. 그리고 그 음성에 순종했습니다. 아마도 사람들은 종말을 외치고 많은 돈을 써가며 방주를 만드는 노아를 미친 늙은이라고 조롱했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노아는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했습니다. 그랬더니 홍수 심판 때에 노아와 그의 가족들이 구원 받는 복을 받았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듣기만 해도 복이 되지만 믿음으로 순종할 때 놀라운 일들이 일어납니다. 성경에 일어난 기적들을 보십시오. 주의 음성을 듣고 순종할 때 일어난 기적들이 대부분입니다. 저와 여러분도 하나님의 말씀을 듣기를 바랍니다. 성경을 읽고, 설교를 경청하고, 성령의 음성을 들읍시다.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대로 순종합시다. 그럴 때 성경에 나오는 믿음의 사람들처럼 하나님을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은혜의 혜택 중에 하나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혜택입니다. 풍성하게 하나님의 음성을 듣기를 축복합니다.
3. 멸망에서 구원받는 혜택
노아는 하나님의 은혜로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음성에 순종하여 홍수 때 구원 받았습니다. 그래서 노아의 구원은 하나님의 은혜의 혜택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예수님의 십자가 공로를 믿어 구원을 받은 것은 믿음 때문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행할 수 있는 것도 믿음 때문입니다. 그런데 그 믿음이 어떻게 생긴 것입니까? 하나님의 은혜로 생겼죠. 엡 2:8입니다. “너희는 그 은혜에 의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으니 이것은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로 믿음이 생겼고 그 믿음으로 구원을 받았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구원은 하나님의 은혜의 혜택입니다.
하나님은 경건한 노아를 대홍수로부터 구원해주셨습니다. 그리고 노아의 가족들도 구원해주셨습니다. 우리는 나를 구원하신 하나님은 나의 가족도 구원하신다는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그것이 성경적인 믿음입니다.
행 16:31입니다. “이르되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받으리라 하고” 바울 사도는 빌립보에서 귀신들린 여종에게 역사하는 귀신을 쫓아낸 것 때문에 감옥에 갇혔습니다. 감옥에 갇힌 바울은 옥중에서도 찬송하고 기도했습니다. 그때 옥 터가 흔들리고 옥문이 열리고 착고가 풀어졌습니다. 그리스도인은 바울처럼 고난 중에도 찬송하고 기도하는 예배자가 되어야 합니다. 그럴 때 옥문이 열리듯이 문제가 해결 될 것입니다. 고난 중에도 찬송하고 기도할 때 열리고 풀리는 역사가 일어나는 것입니다. 옥문이 열린 것을 안 옥사장은 죄수들이 도망친 줄 알고 자결하려고 하였습니다. 그 모습을 보고 바울이 크게 소리 질렀습니다. “네 몸을 상하지 말라 우리가 다 여기 있노라” 간수가 무서워 떨며 바울과 실라 앞에 엎드렸습니다. 그리고 “선생들이여 내가 어떻게 하여야 구원을 받으리이까?”라고 물었습니다. 이 때 바울이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받으리라”고 답했습니다. 주 예수를 믿을 때 구원을 받습니다. 그리고 그의 가족들도 구원 받습니다.
저는 장기동성도가 생각납니다. 전에 우리 교회에 나오던 장점숙 집사의 아버지입니다. 장집사의 어머니와 언니들은 우리교회를 출석했는데, 그 아버지는 교회에 대해서 적대적이었습니다. 아주 엄하신 분인데, 딸이 교회에 가는 것을 싫어하셨습니다. 가족들의 기도 제목은 아버지가 예수님을 영접하는 것이었는데, 도무지 바늘 하나 들어갈 틈을 주지 않으셨습니다. 그런데 그분이 말기 암 판정을 받으셨습니다. 그분은 죽음 앞에서 주님을 선택하였고 교회에 나오셨습니다. 그분은 믿음으로 죽음을 준비하셨습니다. 그분이 소천 하시던 날이 주일이었는데 제 기도를 받고 돌아가시고 싶으셔서 저를 기다리셨습니다. 제가 교회 예배를 마치고 그 집에 가서 기도를 해드리자 주님의 품에 평안히 안기셨습니다. 그분의 구원은 가족들의 기도를 들으신 하나님께서 사도행전 16:31 말씀이 이루어지게 하신 것입니다.
성경의 핵심 구절은 요한복음 3:16입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이 말씀에는 복음의 3대 핵심이 있습니다. 복음의 3대 핵심은 첫째,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둘째, 예수 그리스도의 희생입니다. 셋째, 사람의 믿음입니다. 이 복음의 3대 핵심의 결과는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는 것입니다. 그런데 사람이 멸망하지 않고 구원 받고 영생을 얻는 것은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하나님의 사랑도 예수님의 희생도 우리의 믿음도 다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그래서 은혜의 혜택 세 번째가 구원입니다.
오늘 설교는 노아가 받은 은혜의 혜택에 대해서 나눴습니다. 노아는 하나님의 은혜를 받아서 하나님과 동행하며 하나님의 말씀을 들었고 멸망으로부터 구원을 받았습니다. 우리도 하나님의 은혜로 하나님과 동행하며 하나님의 말씀을 들으며 구원을 받았습니다. 할렐루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