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 앞에 나의 이름이 불려질 때
나는 어떻게 응답하겠습니까?
기쁨과 즐거움으로 달려가겠습니까?
아니면 당혹감으로 어찌할 줄을 모르겠습니까?
날마다 주님앞으로 달려가는 복된 경험들이 이어지길 축복합니다.
나는 무엇을 위해 살아왔습니까?
나는 무엇을 사모하며 살아왔습니까?
나는 무엇을 추구하며 살아왔습니까?
정말 내 마음 깊숙이 품고 살았던 것은 무엇입니까?
“내가 보니 왕좌가 놓이고 옛적부터 항상 계신 이가 좌정하셨는데 그의 옷은 희기가 눈 같고 그의 머리털은 깨끗한 양의 털 같고 그의 보좌는 불꽃이요 그의 바퀴는 타오르는 불이며 불이 강처럼 흘러 그의 앞에서 나오며 그를 섬기는 자는 천천이요 그 앞에서 모셔 선 자는 만만이며 심판을 베푸는데 책들이 펴 놓였더라”(단 7:9-10)
나의 삶에 주님을 신실히 믿었다고 하는 증거는 무엇입니까?
나의 입술의 주장외에 주님을 신실히 믿었다고 하는 증거는 도무지 발견할 수 없는 것입니까?
주님께서 나의 삶을 보시고, 진정한 믿음의 열매를 어떻게 발견하실 수 있을까요?
주님께서 보실 때 산 믿음을 내 삶에서도 발견하실 수 있을까요?
믿음의 산 열매는 무엇입니까?
결국 믿음의 산 열매는 우리가 억지로 만들어내는 결과물이 아니라, 하나님 안에 깊이 거할 때 자연스럽게 맺히는 삶의 고백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1. 내면의 변화: 성령의 열매가장 먼저 나타나는 열매는 믿는 사람의 인격과 성품의 변화입니다. 갈라디아서 5장 22~23절에 기록된 '성령의 9가지 열매'가 대표적입니다.
관계적 열매: 사랑, 화평, 오래 참음, 자비, 양선
내면적 열매: 희락(기쁨), 충성, 온유, 절제이러한 열매는 환경이 좋아서 생기는 것이 아니라, 믿음을 통해 하나님과 연결되어 있을 때 자연스럽게 맺히는 인격적인 향기입니다.
2. 삶의 실천: 행함의 열매살아있는 믿음은 반드시 행동으로 이어집니다. 이웃을 향한 구체적인 사랑의 실천이 바로 산 열매입니다.
사랑의 실천: 소외된 이웃을 돌보고 나눔을 실천함 (마태복음 25:40)
말의 변화: 비난과 원망 대신 감사와 격려의 말을 전함
순종: 자신의 유익보다 하나님의 뜻을 우선시하며 삶의 방향을 조정함
3. 영적 성숙과 전도: 생명의 열매
믿음이 살아있다는 것은 성장하고 있다는 뜻이며, 이는 또 다른 생명을 낳는 결과로 이어집니다.
인내와 연단: 고난 속에서도 흔들리지 않고 하나님을 신뢰하며 소망을 품는 것 자체가 귀한 열매입니다.
복음의 전파: 자신이 경험한 믿음의 기쁨을 다른 이에게 전하여 그들도 생명을 얻게 하는 '영혼의 열매'를 맺게 됩니다.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라 그가 내 안에, 내가 그 안에 거하면 사람이 열매를 많이 맺나니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것도 할 수 없음이라" (요한복음 15:5)
주님의 사랑안에 깊이 뿌리를 내리는 복된 안식일 되세요.
🍀 어느 한 마을에, 평생을 성실하게 신앙생활하며 살아온 한 신사가 있었습니다.
그는 누구보다 예배를 빠지지 않았고, 찬양 시간마다 가장 큰 목소리로 하나님을 높였습니다.
그렇게 세월이 흐르고, 마침내 그는 인생의 마지막 순간을 지나 천국 문 앞에 서게 되었습니다.
한 천사가 그를 맞이하며 조용히 말했습니다.
“당신의 삶을 기록한 두 권의 장부를 살펴보겠습니다.”
신사는 조금 긴장했지만, 평생 하나님을 잘 섬겨 왔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자신감도 있었습니다.
천사가 먼저 한 권의 장부를 펼쳤습니다.
그 안에는 그가 평생 입술로 고백했던 말들이 가득 적혀 있었습니다.
“나의 모든 것은 주님의 것입니다.”
“저는 하나님의 말씀을 가장 소중히 여깁니다.”
“무엇보다 하나님을 먼저 구하겠습니다.”
신사는 그 장부를 보며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그런데 천사는 곧이어 훨씬 더 무거워 보이는 또 다른 장부를 꺼냈습니다.
첫 장에는 ‘시간’이라는 제목이 적혀 있었습니다.
“하나님이 가장 중요하다고 말했지만, 실제로는 가장 좋은 시간과 가장 많은 에너지를 세상의 염려와 개인적인 유익에 쏟았음.”
다음 장에는 ‘재정’이라는 제목이 있었습니다.
“모든 것이 주님의 것이라 고백했지만, 실제로는 자신의 안락함과 욕망을 먼저 채우고 남은 것만 하나님께 드렸음.”
그 다음 장에는 ‘가치관’이라는 제목이 적혀 있었습니다.
“성경대로 살겠다고 말했지만, 진로를 결정할 때도, 소비를 할 때도, 중요한 선택의 순간마다 체면과 사람들의 시선과 세상의 기준을 더 따랐음.”
장부가 한 장 한 장 넘어갈수록 신사의 얼굴은 굳어졌습니다.
마침내 천사가 장부를 덮고 물었습니다.
“객관적인 관찰자가 이 두 번째 장부를 본다면, 당신이 진정으로 예배한 대상이 하나님이라고 말하겠습니까? 아니면 다른 무엇이라고 말하겠습니까?”
그 질문 앞에서 신사는 아무 대답도 할 수 없었습니다. 그 순간 그는 비로소 깨달았습니다. 하나님께서 보시는 것은 내가 얼마나 옳은 말을 했는가가 아니라, 내가 실제로 무엇을 선택하며 살았는가라는 사실을 말입니다.🌱
[야고보서 1:22~25] ~ 누구든지 말씀을 듣고 행하지 아니하면 그는 거울로 자기의 생긴 얼굴을 보는 사람과 같아서 제 자신을 보고 가서 그 모습이 어떠했는지를 곧 잊어버리거니와 자유롭게 하는 온전한 율법을 들여다보고 있는 자는 듣고 잊어버리는 자가 아니요 실천하는 자니 이 사람은 그 행하는 일에 복을 받으리라
우리는 매주 예배를 드리고, 설교를 듣고, 성경을 읽으며, 때로는 감동의 눈물도 흘립니다. 그런데 문제는 거기서 끝나버릴 때가 많다는 것입니다.
말씀이라는 거울 앞에서는 잠시 자신을 보는 것 같지만, 막상 삶의 자리로 돌아가면 금세 잊어버립니다. 그리고 여전히 예전 방식대로 선택하고, 예전 방식대로 반응하고, 예전 방식대로 살아갑니다.
결국 하나님 앞에서 진짜 나를 드러내는 것은 입으로 내가 말한 신앙이 아니라, 내가 삶으로 살아낸 신앙입니다.
물론 우리는 행위로 구원받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나 우리의 믿음이 어떤 열매나 행함 없이 홀로 있다면, 그것은 애초에 참된 믿음이 아닐 가능성이 높습니다.
오늘날 세상이 교회를 향해 실망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복음이 틀려서가 아닙니다. 말씀이 힘이 없어서가 아닙니다.
오히려 말하는 복음과 살아내는 삶이 너무 다를 때, 세상은 교회를 통해 하나님을 신뢰하지 못하게 됩니다.
입으로는 거룩을 말하면서 실제로는 세상의 욕망을 좇고, 입으로는 사랑을 말하면서 실제로는 자기 유익을 붙드는 모습이 세상을 떠나게 만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삶은 설교보다 더 큰 설교가 되어야 합니다.
그렇다면 왜 우리는 이렇게 말씀과 삶 사이에 간극이 생길까요?
세 가지 방해물이 있습니다.
우리는 은혜를 값싼 것으로 오해할 때가 있습니다. 복음은 공짜이지만, 순종은 가벼운 것이 아닙니다. 주님을 따르는 삶은 선택 사항이 아니라 부르심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만 동시에 세상의 가치관을 그대로 받아들일 때, 신앙은 점점 흐려집니다. 깨끗한 물에 조금의 오염된 물만 섞여도 결국 전체가 흐려지듯이, 우리의 영혼도 세상의 기준이 섞이면 방향을 잃어버립니다.
말씀을 알고도 미루는 것입니다. 알지만 움직이지 않고, 깨달았지만 바꾸지 않는 상태입니다. 이것은 조용하지만 무서운 영적 병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다시 말씀을 행하는 자가 될 수 있을까요?
시선을 바꾸는 것입니다. 우리의 마음은 늘 시선이 머무는 곳을 따라갑니다. 무엇을 자주 바라보는지, 무엇에 가장 오래 머무는지, 무엇을 가장 자주 생각하는지가 결국 우리의 습관을 만들고, 그 습관이 우리의 성품을 만들며, 그 성품이 우리의 인생을 만듭니다.
그러므로 오늘 우리는 스스로에게 물어야 합니다.
나는 요즘 무엇을 가장 많이 바라보고 있는가?
무엇이 내 마음의 첫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가?
내 시간표와 소비와 선택은 정말 하나님이 우선이라는 사실을 증명하고 있는가?
주님은 우리에게 더 진실한 순종을 원하십니다. 거울 앞에서 감동하고 돌아서는 사람이 아니라, 말씀 앞에서 자신을 고치고 삶을 바꾸는 사람을 찾고 계십니다.
우리 모두 입술의 고백과 삶의 실천이 하나 되어 말씀을 듣는 자에서 말씀을 행하는 자로 나아가길 기도합니다. (2026년 봄 특새 애즈버리 대학교 총장 캐빈 브라운 박사 설교 참조)
🙏하나님 아버지, 제 입술의 고백과 삶의 실제가 다를 때가 많음을 고백합니다. 하나님이 제 삶의 우선순위라고 말하면서도, 정작 시간과 마음과 시선은 다른 것들에 빼앗겼던 저를 불쌍히 여겨 주옵소서.
거울 앞에서 나를 속이는 자가 아니라 말씀 앞에서 나를 바꾸는 자가 되게 하옵소서.
제 안의 혼란을 거두어 주시고, 세상의 가치로 오염된 마음을 씻어 주시며, 무관심으로 굳어버린 영혼을 다시 깨워 주옵소서.
제가 무엇을 가장 사랑하는지, 무엇을 가장 바라보는지, 무엇을 가장 우선하는지 정직하게 보게 하시고, 오늘부터 작은 것 하나라도 하나님을 첫자리에 모시는 순종을 시작하게 하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그대가 자신을 그에게 바치고 그를 그대의 구주로 받아들이면 그대의 생애가 아무리 악하였을지라도 그의 공로로 인하여 그대는 의롭다 하심을 얻는다. 그리스도의 품성이 그대의 품성을 대신하게 되고 그대는 죄를 도무지 범하지 않은 것처럼 하나님의 앞에 받아들이는 바 된다.
이뿐만 아니라 그리스도께서는 마음을 변화시키신다. 그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대의 마음 가운데 거하신다. 그대는 이 그리스도와의 연합을 믿음으로 말미암아 또는 그대의 마음을 항상 그에게 바침으로 말미암아 유지해야 할 것이다. 그대가 이렇게 하는 동안에는 그는 그대의 원하고 행하는 것을 당신의 기쁘신 뜻대로 하게 하실 것이다. 그러므로 그대는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몸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갈 2:20)고 말할 수 있게 될 것이다. ”(정로, 62-63)
https://youtu.be/6uJXCVivAPw
https://youtu.be/OLujCuZ3h1I?list=RDEAbmuJ4u8Rg
https://youtu.be/2fBKZVjVA-I
https://youtu.be/889lUzbnEYc