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산신씨(平山申氏=平州 申氏)는 황해도 평산군을 본관으로 하는
한국의 성씨로, 시조는 고려의 1등 개국공신 신숭겸(申崇謙)장군이다.
신숭겸(?~927)장군의 초명은 능산(能山)이며 전남 곡성현에서 태어났다.
고려태사 장절공 신숭겸장군상
신숭겸은 태봉(국)의 장군으로 있다가 홍유, 배현경, 복지겸 등과 함께
궁예를 축출하고 왕건(王建)을 왕으로 추대하여 고려를 세웠다.
신숭겸은 활쏘기가 뛰어나 왕건과 함께 황해도 평산으로 사냥을 나갔다가
왕건이 날아가는 기러기떼를 가르키며 "저 기러기떼 중 앞에서 세번째
기러기 왼쪽 날개를 맞춰보라"고 명하자 그대로 쏴서 떨어뜨렸다고 한다.
신숭겸장군 묘역
왕건은 기러기를 화살로 맞추는 모습과 비슷한 한자인 신(申)자를
성(性)으로, 숭겸(崇謙) 을 이름으로 하사(사성,賜姓) 하였으며,
평산=평주의 땅 3결을 봉지로 내렸는데 곧 평산신씨의 본관이 되었다.
신숭겸장군 묘소
신숭겸장군은 927년 대구 공산 동수동에서 견훤과의 전투 중 태조를
대신하여 장렬하게 전사하였는데, 이에 태조 왕건은 순절한 신숭겸에게
벽상호기위태사 개국공 삼중대광 의경대광위 이보지절저정 공신
(壁上虎騎衛太師 開國公 三重大匡 毅景戴匡衛 怡輔砥節底定功臣)
으로 추봉하였다.
고려태사 장절공 신숭겸 지묘 (묘비)
장절공 신숭겸 묘역(申壯節公墓域)은 춘천 서면 북한강변에 있다.
이곳은 도선국사가 왕건의 묘자리로 점찍어둔 조선의 8대명당 자리인데
왕건은 자신을 대신한 신숭겸에게 양보하여 이곳에 장사지내게 했다.
목이 없는 신숭겸장군 시신은 황금으로 두상을 만들고
이를 지키고자 봉분 3개를 만들어 안장했다.
뒤편에서 본 신숭겸장군 묘(3봉분)
평산신씨는 조선시대에 정승 8명, 대제학 2명, 문과 급제자 186명,
무과 급제자 307명과 종묘배향공신(宗廟配享功臣) 4명을 배출하였다.
역대 주요인물로는 시조인 신숭겸을 비롯해 신립, 신각, 신호,
신경진, 신헌, 신팔균, 신돌석 등 전통적으로 무반들을 많이 배출하였다.
장절사(壯節祠) 입구 홍살문
이외에도 신사임당, 신위 등 유명한 문장가, 예술가들과
신흠(조선 중기 영의정이자 명문장가) 등을 배출하였다.
유명 역사인물로는 신석구(독립운동가. 민족대표 33인 중 한사람)가 있다.
대한민국 건국후에도 해병대 초대사령관과 국방부차관보를 역임한
신현준 장군(중장)을 비롯해 장성급 장교만 18명을 배출하였다.
장절사(壯節祠=사당)
근현대 유명 인물로는 신익희(독립운동가, 정치인, 대통령후보),
신현확(제13대 국무총리), 신병현(부총리 겸 경제기획원장관),
신직수(법무부장관, 중앙정보부장), 신영국(제13,15,16대 국회의원),
신철균(11,12,13대 국회의원), 신태환(서울대총장,통일부,건설부장관),
신상옥(영화감독), 신현수(전 청와대 민정수석), 신영균(베우),
신동우(만화가), 신구(배우,본명 신순기), 신동엽(시인) 등이 있다.
전사청(典祀廳) ~ 제사 준비를 하는곳
평산신씨 인구는 53만 여명으로 전국 13위에 달하는 거족이며,
분파는 크게 19개파가 있는데, 1)신성부원군파, 2)군수공파, 3)참판공파,
4)판윤공파, 5) 감찰공파, 6)진사공파, 7)판사공파, 8)이상공파, 9)전서공파,
10)제정공파, 11)온수감공파, 12)대제학공파, 13)사간공파, 14)한성윤공파,
15)정언공파, 16)문희공파, 17)장령공파, 18)봉상윤공파, 19)밀직공파가 있다.
대구 팔공산 신숭겸장군 유적지 홍살문
이곳은 고려시대의 충신 신숭겸장군이 공산(현 유적지) 전투에서
후백제군과 치열하게 맞붙어 고려군이 패하게 되자 목숨이 위태로운
왕건과 옷을 바꿔입고 왕건을 대신하여 순국한 바로 그 자리이다.
신숭겸장군 기마상
이때 신숭겸과 함께 유인 작전에 나선 김락, 호의, 전이갑, 전의갑 형제와
그 사촌동생인 전락, 개국공신 평장사 호원보, 대상 손행을 포함한 8명의
장수가 전사했고, 와중에 김철만 유일하게 생존해서 후백제 멸망전인
일리전 전투에도 참전하는 등 후삼국 통일 이후에도 살아남았다.
이때 8명의 장수가 전사하였다고 공산의 이름이 팔공산이 되었다.
표충서원입구
당시 후백제의 견훤은 신라의 수도인 경주를 점령하고 경애왕을 죽여
신라가 위기에 처하게 되자 왕건은 직접 군사를 이끌고 내려갔는데,
견훤은 왕건의 목을 노리고 있는 긴박했던 상황이었으며, 이후 왕건은
후삼국통일 후 신숭겸장군의 죽음을 안타깝게 여겨 장군이 전사한
그 자리(현재 위치)에 그의 업적을 기린 지묘사를 세우고
봉전을 내려 매년 춘추로 제향을 지내게 하였다.
표충재(표충서원) 정문인 충렬문
그때의 지묘사는 조선시대에 들어서 없어지고
조선 선조 때 이곳에 표충사와 표충단, 충렬비를 세워 공을 기렸고
헌종 때 사액서원이 되었지만 고종때 서원 철폐령에 의해
훼철되었다가 1988년부터 복원을 시작하여 2019년 9월 21일
표충서원(表忠書院)으로 복원하는 행사를 가졌다.
태조 왕건나무(수령 400여 년의 팽나무)
평산 신씨 문중이 관리하고 있는 표충재의 총 면적은 45,180㎡ 이며
주요 시설은 장절공 충절비, 표충단, 표충재와 동재. 서재 등이 있다.
상절당(尙節堂) ~ 표충서원
표충재
건물은 사당인 표충사(表忠祠), 강당(講堂), 동재(東齋), 서재(西齋),
상절당(尙節堂), 내삼문(內三門), 솟을 대문인 충렬문(忠烈門)이 있다.
신숭겸장군 관련 자료
표충재와 상절당 앞
표충단과 순절비각
표충단
순절비각
고려 장절 신공 순절지지(高麗 壯節 申公 殉節之地)
신숭겸장군의 충절과 절개를 읊은 시
상촌(象村) 신흠(申欽,1566~1628)
오동나무는 천년을 지나 늙어도 항상 곡조(의리,절개)를 지니고
매화는 일생을 추위에 떨어도 향기를 팔지 않는다네.
달은 천 번을 이지러져도 그 본질은 여전히 남아있고
버드나무는 백번을 꺾여도 또한 새 가지가 돋아난다네.
동천년노항장곡(桐千年老恒藏曲) / 매일생한불매향(梅一生寒不賣香)
월도천휴여본질(月到千虧餘本質) / 유경백별우신지(柳經百別又新枝)
신숭겸장군 유적지 설경
첫댓글 표충재는 현재는 표충서원으로
바퀴였읍니다
정보 감사합니다.
건강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