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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 중 하나가 독특한 금관일 것이다.
찬란한 순금 금관에 수없이 매달린 조그만 원형의 금판 구슬들은 미동에도 반짝이고 함께 매달린 비취색 곡옥(曲玉)들은 신비감을 더한다.
이 신비한 신라 금관의 곡옥은 어디서 기원한 것일까.
신라금관에 신비스럽게 달려있는 수많은 곡옥들.
일본 천황가의 세 가지 보물 중 하나로 그것도 신이 하사한 보물로 신성하게 여겨지는 이 곡옥이 우리나라에서 왜 수없이 발견되는 것일까.
그 기원은 무엇이며 그 기원이 밝혀주는 비밀은 또 무엇인가?
고고학을 전공한 백운국 PD가 던지는 질문이다.
<소리 없는 전쟁, 문화재반환>으로 4개의 상을 석권한 바 있는 백운국 PD는 또 다른 역사 다큐멘터리 <곡옥(曲玉)의 비밀>을 준비하고 있다.
안압지를 통해 한국 정원 문화의 원류를 조망한 ‘우리 조경’과 ‘소리 없는 전쟁 문화재 반환’에 이어 이번에도 역시 우리 문화재를 소재로 한 다큐멘터리이다.
문화재를 소재로 일관성 있게 고집스러운 작품 활동을 해 온 백운국 PD를 만나, 중국과 일본으로 1차 해외출장을 다녀오고, 러시아로의 2차 해외출장을 앞두고 있는 <곡옥(曲玉)의 비밀> 이야기를 들어봤다.
곡옥(曲玉)이란 무엇인가?
구부러진 옥이란 뜻의 이 곡옥에 대해 그 독특한 형상이 어떤 기원을 두고 생겨났는지 현재까지 확실치 않으며 또한 많은 설이 있다.
쉼표(,)를 확대한 것처럼 생겼으며, 머리 부분에 1개의 구멍이 뚫려 있어 어형(魚形)같이 보이지만, 원래는 동물의 이빨 모양에서 생겨난 형태라고도 한다.
곡옥은 고대의 패옥사상, 즉 옥을 몸에 차기 좋아하는 습성에서 생겨난 장신구인 것은 틀림없지만 원시의 장신구를 모방한 「동물의 이빨 기원설」, 일본과 같은 해양민족은「어형 기원설」이 있으며 또한「월신 기원설」 및 종족 보존의 의미를 지닌「태아 모방설」등이 있다.
구멍이 있는 굵은 쪽을 머리라 다른 가는 쪽을 꼬리라 부르기도 한다.
크기는 여러 가지가 있으나 간혹 8cm가 넘는 것도 있다.
거의 비취(翡翠) 제품이지만 마노(瑪瑙) ? 수정 ? 유리 ? 벽옥(碧玉) 등으로 만든 것도 있다.
머리 부분의 구멍 외에 몇 줄의 선을 새기기도 하고 또 금은제(金銀製)의 장식을 씌운 것도 있다.
대개 목걸이에 거는 중심 구슬로 쓰였지만, 귀고리나 금관(金冠)에 달린 것도 있어 금관총(金冠塚)에서는 130개 이상이나 출토되었다.
우리나라의 곡옥(曲玉)에 특유한 색은 흰색이 많이 섞인 백록반색이 대종을 이루고 있다.
왜 곡옥(曲玉)인가?
신라 황금보관에는 수를 헤아리기 어려울 만치 많은 곡옥이 매달려있다.
찬란한 황금문화를 이룩한 신라인들은 금관뿐 아니라 모든 장신구에 황금으로 장식한 곡옥을 즐겨 채용했으며, 오랜 세월동안 일본국에 까지 전파되면서 곡옥문화를 형성해온 것을 볼 수 있다.
경주 무령왕릉에서 만 무려 800여 개의 곡옥이 유물로 발굴된 것만으로도 신라 1000년 동안 얼마나 많은 곡옥이 만들어지고 사용되었는지 상상할 수 있다.
곡옥은 왕권의 상징이었기 때문에 왕족이나 귀족 모두가 몸에 지니고 다니던 부적과도 같은 것이었으니 우리가 곡옥을 가볍게 보지 말아야 할 이유가 여기에 있는 것이다.
곡옥은 신라왕실의 상징이었으니 그 속에는 신라의 정신이 배어있다.
신라인의 꿈과 염원이 담겨있는 것이다.
곡옥은 한국 최초의 옥(玉)공예 유물이다.
곡옥은 태극기의 원형이라고도 한다.
곡옥 두개를 상하로 맞추어보면 태극이 된다.
신라인이 그토록 애장하면서 보물로 신성시 여겨온 곡옥이 바로 한국의 상징인 태극이 될 수도 있음을 감안한다면 이 ‘곡옥의 비밀’이라는 프로그램이 가져다 줄 흡인력은 실로 대단한 것이 아닐 수 없다.
그러면 이 태극이 바로 그 ‘곡옥의 비밀’이냐는 기자의 질문에 백운국 PD는 방송을 통해서 그 대답을 제시할 것이라고 넌지시 웃으며 말했다.
그렇다면 도대체 곡옥의 비밀은 무엇인가?
곡옥(曲玉)으로 보는 우리 고유의 문화
“우리의 곡옥문화는 상당히 발전했지만, 그에 대한 국내의 연구는 아주 미비합니다.
그 점이 안타까웠죠.
지금껏 한번도 곡옥문화가 집중적인 조명을 받은 적이 없었습니다.
신라금관의 곡옥에는 상당한 역사적 의미가 있을 텐데도 말이죠.”
라고 프로그램을 기획하게 된 계기를 밝히는 백운국 PD.
그는 우리의 역사를 한 눈에 보여주는 곡옥문화가 한국 ? 일본, 그리고 중화권을 제외한 중국의 요녕성 지역을 포함한 동북아시아의 찬란한 곡옥문화의 한가운데 서 있음을 보여주려 한다.
그리고 그 곡옥문화로 동북아시아의 역사가 한데 묶여 있다는 것도 함께 밝히려 한다.
영롱한 비취 곡옥은 주로 백제, 신라, 가야 등 한반도 남쪽과 일본에서 대량으로 제작됐다고 한다.
그러나 곡옥은 신석기시대에도 만들어졌다.
고고학자들은 시대적 차이 때문에 이를 직접 연결시키는 것을 꺼리지만, 백제 무령왕릉에서는 금관 장식과 목걸이 장식 등에 쓰였던 금장식의 화려한 곡옥들이 출토되고 있다.
이들 신석기 곡옥의 형태는 물고기 모양을 띠는 것도 있어 삼국시대 곡옥(曲玉)의 형태적 상징적 기원을 시베리아가 아닌 우리나라 안에서도 찾을 수 있게 한다고 생각한다.
현재로는 곡옥이 신라에 가장 많으며 특히 금관에 집중적으로 장식되고 있다.
고구려에서는 아직 확인된 바 없지만 삼국이 공유하는 바가 많기 때문에 앞으로 발견될 가능성은 충분히 있다고 백운국 PD는 말한다.
또 하나의 역사 다큐멘터리
2부작으로 진행되는 <곡옥(曲玉)의 비밀>.
제1부는 ‘일본천황가의 삼보(三寶)’ 이야기로 꾸며진다.
일본 건국신화에 의하면 곡옥은 하늘의 동굴에서 두문불출하는 아마테라스를 밖으로 끌어내기 위한 제사에서 마사가키의 상단에 걸리는 구슬로 그 안에 영혼의 정수가 담겨져 있다고 일컬어진다.
하지만 한반도의 도래문화에 의해 형성된 4세기 야요이(?生) 시대에 축조된 전방후원분에서 그 부장품으로 드물게 출토되고 있다.
이런 연유로 청동거울, 칼과 더불어 일본 천황이 가지는 3종의 신기(神器)에 속하는 곡옥은 한반도에서 전래되어 그 신성한 속성으로 인해 일본 건국신화에까지 영향을 미쳤다고 여겨진다.
제2부 ‘무너지는 중국의 동북공정’은 중국이 역사적으로 차별해왔던 동이(東夷) 문화를 중국 역사의 일부라고 태도를 바꾸기 시작하는 이른바 동북공정(東北工程)의 허점에 대해 지적한다.
동북공정의 시발점을 제시해주는 홍산문화 유적의 발견에 대한 내용이 이 부분에서 다뤄질 예정이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곡옥의 비밀이 밝혀지게 된다.
몇 편의 역사 다큐멘터리를 제작한 경험이 있는 백운국 PD. 그에게 이번 작업은 어떤 의미일까.
“이번 다큐멘터리 제작은 곡옥이라는 코드로 일본, 우리나라, 중국, 러시아에 걸친 수만 킬로미터를 거쳐 민족의 원형을 추적하는 작업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한마디로 민족의 원형과 역사 찾기죠.”
고고학을 전공한 그가 역사 다큐멘터리를 제작하는 것이 어쩌면 당연한 일일 듯 보이나, 민족의 역사를 따라 그 뿌리를 찾는 것은 그에게도 어려운 작업일 것이다.
하루하루 눈코 뜰 새 없이 바쁘게 살아가는 현대인에게 역사를 돌아보고, 민족의 뿌리를 찾아보는 일은 중요한 일이다.
아니, 어쩌면 인류의 가장 큰 과제가 아닐까 싶다. 백운국 PD의 역사 다큐멘터리 <곡옥(曲玉)의 비밀>이 우리 문화의 우수성과 신비의 베일에 싸인 곡옥을 새로운 시각으로 알아볼 수 있는 계기가 되리라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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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적 > 시대 | 한국 > 신라(新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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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질 | 유리/보석 > 옥(玉) |
크기 | 길이 1.8cm |
용도 · 기능 | 사회생활 > 의례생활 > 상장 > 고대부장품(古代副葬品) |
출토지 | 경상북도 경산시 |
소장처 | 대구한의대학교 박물관 |
유물번호 | 경산교촌리(경산교촌리) 000242-000 |
쉼표(,)를 확대한 것처럼 생겼으며, 머리 부분에 1개의 구멍이 뚫려 있어 어형(魚形)같이 보이지만, 원래는 동물의 이빨 모양에서 생겨난 형태라고 한다. 크기는 여러 가지가 있으나 간혹 8cm가 넘는 것도 있다. 거의 비취(翡翠) 제품이지만 마노(瑪瑙)·수정·유리·벽옥(碧玉) 등으로 만든 것도 있다. 머리 부분의 구멍 외에 몇 줄의 선을 새기기도 하고 또 금은제(金銀製)의 장식을 씌운 것도 있다.
대개 목걸이에 거는 중심 구슬로 쓰였지만, 귀고리나 금관(金冠)에 달린 것도 있어 금관총(金冠塚)에서는 130개 이상이나 출토되었다. 한국에서 출토된 것의 특색은, 활색이 많이 섞여 그 빛깔이 백록반색(白綠斑色)이 많다는 것이다.
고분(古墳)에서 나온 곱은옥은 충남 공주시 금성동(錦城洞)의 공주 송산리(宋山里) 고분군 제7호분과 제8호분에서 1개씩, 우금리(牛禁里) 제1호분에서 3개가 출토되었고, 무령왕릉(武寧王陵)에서는 특수한 것이 여러 개 출토되었는데, 탄화(炭化)된 나무 토막을 편평(扁平)한 원형으로 자르고 둘레를 금테로 돌려 그 금테에 서로 맞뚫리게 구멍이 뚫려 있다.
특히, 백제의 곱은옥에서 관심을 끄는 것은 딸린곱은옥[母子曲玉]이다. 이것은 곱은옥의 표면에 더 작은 곱은옥 여러 개를 붙여서 만든 것이다. 이와 같은 곱은옥은 일본의 고분시대 유적에서 활석제(滑石製)가 많이 발견되어 일본의 특산물로 간주되었으나, 최근에 부여에서 활석곡옥 1개가 나왔고, 경남에서도 출토된 보고가 있어 한국에도 딸린곱은옥이 만들어졌음이 입증되었다. 한편, 함북 웅기(雄基)의 송평동(松坪洞) 유적에서 천하석(天河石)으로 만든 2.2cm의 작은 곱은옥 2개가 나왔는데, 모두 머리 부분에 1개의 구멍이 뚫려 있어 삼국시대 곱은옥의 원형임을 시사해 준다.
또 충남 부여군 규암면(窺岩面)에서 경옥제(硬玉製) 곱은옥조각이 발견되었고, 부여 근처의 돌널무덤[石棺墓]에서도 결형(?形) 곱은옥이 출토되었다.
이것은 중국 동만주(東滿洲) 지린[吉林] 지방의 청동시대 석총(石塚)에서도 발견되어, 앞에서 든 고분기(古墳期)의 곱은옥은 선사시대의 곱은옥과 연결되는 것이라고 추정된다.
청색유리옥의 곡옥이다. 기본형태는 “J” 형태이다. 상단부에 투공이 된 것으로 보아 경식의 장식으로 추정된다
[네이버 지식백과] 곡옥 (e뮤지엄, 국립중앙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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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母子曲玉]
국적 > 시대 | 한국 > 청동기(靑銅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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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질 | 유리/보석 > 기타(其他) |
크기 | 길이 10.6 너비 5.6 두께 3 |
용도 · 기능 | 의 > 장신구 > 신체장식 > 경식(頸飾), 사회생활 > 의례생활 > 상장 > 선사부장품(先史副葬品) |
출토지 | 전라남도 순천시 |
소장처 | 국립광주박물관 |
유물번호 | 광주(光州) 002952-000 |
순천 월산리(順天 月山里) 사비 고인돌(支石墓) 4호 주변에서 수습되었다. 이 유물은 모옥(母玉)의 등과 양측면의 긴 돌기부(突起部)에 각각 6, 3, 3개의 작은구슬(子玉)이 붙어 있으며 일부 파손되었으나 양호한 편이다. 모자곡옥(母子曲玉)은 곱은옥(曲玉) 종류의 하나로 구부러진 안쪽이나 바깥쪽에 지느러미 모양의 작은 곡옥이 붙어 있는 것을 말한다. 모자곡옥은 일본(日本)의 고분(古墳)에서 많이 출토되고 있으며 우리 나라에서는 출토 예가 드물다.
[네이버 지식백과] 모자곡옥 [母子曲玉] (e뮤지엄, 국립중앙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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곡옥의 비밀/일본 천황의 보물
곡우(曲玉)는 단순히 금관의 화려함을 더하는 장식물이기만 한가?'
박물관에 전시된 신라금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비치빛의 구부러진 옥. 방송위원회의 제작지원을 받아 지난 1년간 '곡옥의 비밀'을 쫓은 대구MBC 백운국 PD는 이 곡옥이 중국이 주장하는 동북공정의 허구를 증명하는 단초라고 말한다.
일본 왕가에 대대로 내려오는 세 가지 보물 가운데 하나인 곡옥이 한반도에서 전래된 유물이고 특히 이 곡옥이 중국인들이 동이(東夷)라고 불렀던 동북아시아 문화의 신석기 유적지에서 발견된 점은 곡옥문화 한가운데 우리 민족이 서 있었다는 사실을 증명해주고 있다는 것.
그는 한반도 신석기 문화를 대표하는 빗살무늬 토기가 대량으로 발견된 중국 요서지방의 홍산문화(紅山文化) 유적지에서 곡옥의 기원을 알려 줄 만한 옥룡들이 발견된 점, 무엇보다 이 같은 곡옥이 중국의 중원지방에서는 전혀 발견되지 않았다는 사실에 주목한다.
"홍산문화 유적지의 봉분들이 중국의 분묘양식과는 달리 한반도의 적석총, 즉 돌무지무덤 형태를 띠고 있고 진주 남강 일대에서 홍산문화 유적과 유사한 곡옥을 비롯한 돌무지무덤, 빗살무늬 토기 등이 발견되고 있어요."
이 같은 사실로 미뤄 홍산문화 유적지 일대가 중국과는 다른 별개의 문화를 이뤘다는 것을 증명해주고 있다는 것.
"동아시아의 역사를 중국역사의 한 갈래로 보는 중국의 동북공정은 동북아시아 곡옥문화의 중심에 우리 민족이 있음이 증명되면서 다시 한번 그 허구성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왕관의 부속물로 다뤄지긴 했지만 '곡옥'자체가 방송전파를 타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라는 백 PD는 "박물관에서만 마주할 수 있는 유물인 줄 알았던 곡옥이 생명성 있는 유물로 존재하고 있고, 특히 이 프로그램을 통해 중국의 동북공정을 논리적으로 반박할 수 있는 근거들을 보여주는 자료가 될 것"이라고 했다.
'곡옥의 비밀'은 한반도에서 전해진 곡옥이 일본에서 종교적, 의식적 대상으로 신성시되고 있는 모습을 조명하는 1부 '천황의 보물'과 홍산문화 유적을 더듬으며 중국의 동북공정 주장의 허구를 밝히는 2부 '무너지는 동북공정'편으로 제작되었다.
(출처 : 대구MBC문화방송)
(아래내용은 대구 MBC 문화 방송에서 제작한 내용이 아님,본인이 이해를 돕기위해 곡옥의 자료를
발췌하여 기재함)
日 천황의 삼종신기(三種神器)
일본황권의 상징으로,이를 소유한 사람이 천황이 된다는 삼종신기(三種神器). 일본천황의 즉위식에 절대로 빠뜨릴 수 없는 의식이 바로 삼종신기를 전수받는 것이다. 이 보물을 전수받는 것은 하늘로부터 정통성을 인정받은 천손(天孫)임을 입증하는 것이다. 따라서 선대(先代) 천황이 사망하고 황세자가 천황위에 오르면 반드시 이 삼종신기를 전수받는다.
이 의식은 일본 건국신화에서 유래되고 있다. 일본신화에서는 천손(天孫)인 니니기노미코도가 세 가지 보물을 갖고 내려온다. ‘고사기’, ‘일본서기’에 따르면 태양의 신 ‘아마테라스(天照大神)’가 천손강림(天孫降臨)할 때 손자 니니기노미고토에게 “나의 혼이 담긴 것”이라며 이 3개의 보물을 전달했고 태양신의 후손인 천황은 이를 보물로 삼았다.
아마테라스는 손자에게도 자신의 혼으로 알고 제사지내도록 일렀다. 3종의 신기는 아마테라스오미카미의 절대적인 신격화와 관련된 것이다. 그녀가 이들 유물을 하사했다는 것은 제사권과 절대권을 부여한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천황가의 신사인 이세신궁에 이 보물이 안치되어 있고 황위를 계승할 때도 이 보물을 전달하는 의식을 치른다. 이것을 갖지 못한 천황은 정통성이 없는 것으로 간주되었다.
천부삼인과 삼종신기
곡옥(曲玉)과 팔지경(八咫鏡), 초치검(草치劍) 3종의 보물을 가지고 세상으로 내려왔다는 신화는 우리의 고기(古記)에 환인이 환웅에게 천부인(天符印) 3개를 주었다는 것과 매우 유사하다.
이 신화는 가락국의 김수로왕 신화와도 그 내용이나 구조가 동일하다. 우리 민족의 혈통과 문화를 가진 집단이 그대로 보존한 것이다.
이 세 가지들 중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거울이다. 거울 다음에 칼, 그 다음이 방울이나 곡옥이다. 우리 같은 경우는 금관이 될 수도 있고, 동북시베리아 계통에서는 북이라고 볼 수도 있다.
곡옥
야요이시대가 되면서 곡옥이 3종신기의 하나로 당당히 등장한다. 옥은 신석(神石), 영석(靈石), 행운의 상징으로 전해져 내려오고 있으며 동양을 상징하는 보석으로까지 발전했다.
사람이 옥에 좋은 마음을 베풀면 건강을 지켜주고, 반대로 사악한 사람이 옥을 지니면 단명 하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중국 신강성(新疆)의 백옥 및 청백옥을 천자 (天子)만이 독점물로 사용했다. 천자의 왕관이나 앞이마에는 옥을 장식하고 옥의자(玉座)에 앉았다.
곡옥이 나타나기 시작한 청동기시대에는 하늘색 바탕에 하얀 결이 흐르는 천하석(아마존스톤)이 주요 재료였다. 천하석은 밤 하늘을 은은하게 밝히는 달 같은 빛깔을 띠고 있다. 곡옥의 기원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설이 있다. 선사시대에 태양과 함께 숭상의 대상이었던 달 모양을 형상화했다는 학설이 있다.
한병삼 전 국립중앙박물관장은 “곡옥은 달에서 기원한 것으로 보인다. 곡옥의 기원형태인 청동기시대 곡옥은 반달모양에 숭상의 대상이었으나, 후대에 와서 초승달 모양으로 변형됐고 장식기능을 하게 됐다”고 말한다.
구석기시대부터 전래한 이빨장식의 변형이라는 설도 있으며, 아랍지역에서 유래한 물고기 장식의 변형이라는 주장도 있다.
그러나 바이칼호 주변 민족들은 물론 신라의 금관에서도 나타나는 곡옥은 고대인들의 영원한 생명을 관장하는 권위의식에 사용되어왔다는 것으로 볼 때 태아의 모습에서 기원했다고 보는 것이 설득력이 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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