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정현목사 예견과 수경스님의 내려놓음
6월 두 번째 주일, 두 달간 안식을 취하고 돌아온 오정현목사는 자신이 예견한 축구승리(2:0)에 대해서 자랑스럽게 설교했다. 앞으로 더 은혜를 받으면 4강까지 가능성이 있다는 승리의 논리를 은혜로 연결시켰다. 허정무감독 자녀들이 사랑의교회를 다닌다며 특별 기도까지 당부하는 자상함도 잊지 않았다. 6월 두 번째 주일은 교회마다 월트컵 경기가 이슈로 등장하며 승리의 깃발을 들고 모두가 환호했다.
이렇듯 우리가 월드컵 승전보에 취해있을 때, 산사 깊은 곳에서 애통해하며 길을 떠나는 한 수도승이 있었다. 바로 수경 스님이 화계사 주지직과 조계종 승적을 반납하고 돌연 ‘다시 길을 떠나며’라는 글을 남기고 잠적해버렸다.
수경 스님은 문수 스님의 소신공양(자기 몸을 태워 부처 앞에 바치는 것)을 보면서 괴로워하며 자신의 문제가 더욱 명료해지며 “대접받는 중노릇 하면서, 스스로를 속이는 위선적인 삶을 이어갈 자신이 없다”고 밝혔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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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수 스님 소신공양에 애통해하는 수경 스님의 심정 |
최근 문수 스님의 소신공양 이후, 장례를 축소하려는 조계종단을 강하게 비판하며 4대강 사업 중단을 촉구해온 수경 스님은 환경 운동을 통해 정치권력과 대척점에 서긴 했지만, 그것도 하나의 권력이라는 사실을 깨닫는 데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는 것이다. 대접받는 중노릇 하면서, 스스로를 속이는 위선적인 삶을 이어갈 자신이 없다며 이글을 남기고 떠났다.
다시 길을 떠나며
모든 걸 다 내려놓고 떠납니다. 먼저 화계사 주지 자리부터 내려놓습니다. 얼마가 될지 모르는 남은 인생은 초심으로 돌아가 진솔하게 살고 싶습니다.
"대접받는 중노릇을 해서는 안 된다." 초심 학인 시절, 어른 스님으로부터 늘 듣던 소리였습니다. 그런데 지금 제가 그런 중노릇을 하고 있습니다. 칠십, 팔십 노인 분들로부터 절을 받습니다. 저로서는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일입니다. 더 이상은 자신이 없습니다.
환경운동이나 NGO단체에 관여하면서 모두를 위한다는 명분으로 한 시절을 보냈습니다. 비록 정치권력과 대척점에 서긴 했습니다만, 그것도 하나의 권력이라는 사실을 깨닫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제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무슨 대단한 일을 하고 있는 것 같은 생각에 빠졌습니다. 원력이라고 말하기에는 제 양심이 허락하지 않는 모습입니다. 문수 스님의 소신공양을 보면서 제 자신의 문제가 더욱 명료해졌습니다. '한 생각'에 몸을 던져 생멸을 아우르는 모습에서, 지금의 제 모습을 분명히 보았습니다.
저는 죽음이 두렵습니다. 제 자신의 생사문제도 해결하지 못한 사람입니다. 그런데 어떻게 제가 지금 이대로의 모습으로 살아갈 수 있겠습니까. 이대로 살면 제 인생이 너무 불쌍할 것 같습니다. 대접받는 중노릇 하면서, 스스로를 속이는 위선적인 삶을 이어갈 자신이 없습니다.
모든 걸 내려놓고 떠납니다. 조계종 승적도 내려놓습니다. 제게 돌아올 비난과 비판, 실망, 원망 모두를 약으로 삼겠습니다. 번다했습니다. 이제 저는 다시 길을 떠납니다. 어느 따뜻한 겨울, 바위 옆에서 졸다 죽고 싶습니다.(수경 스님의 글)
사실 명진스님과 수경 스님은 종단에서 개혁가이기도 하다. 어느 누구도 감히 지금까지 사찰 재정을 공개하지 않았다. 그런데 적지 않은 예산을 관리하는 봉은사와 화계사 재정을 모두 공개하고 운영도 신도들에게 넘겼으니 당연히 보수 측에서 화살이 날아올 수밖에......,
그런데 놀라운 것은 재정권을 신도들에게 넘긴 후 신도들이 모여들고 사찰 예산도 늘어났다는 것이다. 봉은사는 상징성이 강한 곳이라서 이런 개혁이 다른 사찰로 퍼져 나갈 수 있는 시발점이 되기 때문에 어찌 기득권층에서 구경만 하겠는가. 이곳도 당연히 각자의 밥그릇이 있는 곳 아닌가.
이쯤해서 대형교회 목회자들의 권세를 한 번 생각해보자. 그들은 하나같이 승자의 깃발로 승자들을 부른다. 보여지고자하는 탐욕과 야망으로 권력과 소통하는 폴리페서(polifessor)와 텔레페서(telefessor)정치교수들을 닮아가고 있다. 예수님을 닮아가야 할 사람들이 줄을 서서 조직 안으로 들어가고 있으니 안타까울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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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교회의 조직적인 행사현장이 이 시대 무엇을 대변해 주고 있는 것일까. |
대 조직 안에서 부시 전 미국 대통령을 초청해 ‘한국전쟁 60주년 평화 기도회’를 준비 중이다. 주최 측은 대회장 김삼환 목사(명성교회), 준비위원장 이영훈 목사(여의도순복음교회), 총무 고명진 목사(수원중앙침례교회)로 구성됐다. 기도회 강사는 조용기 원로 목사(여의도순복음교회), 김장환 원로 목사(수원중앙침례교회)등이다.
부시 전 미국 대통령은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에서 생화학무기와 테러방지라는 명목으로 전쟁을 일으킨 자다. 이 전쟁으로 인해 얼마나 많은 무고한 생명이 죽어야 했는가. 전쟁 통에 민간인 사망자 최소 65만 명 난민 450만 명의 피해가 있었다고 추산하고 있다. 이 전쟁으로 인해 부시전대통령은현재국제사회로부터맹비난을받고 있다
당연히 이러한 큰자를 그냥 모셔오지는 않을 것이다. 교인들의 헌금은 6월 22일 마포 월드컵 상암 경기장에서 축포를 터트리며 화약 냄새로 지구를 오염시킬 준비를 하고 있다. 무엇을 위해 그 많은 군중을 모아 과연 무엇을 남기고, 무엇을 보여주기 위함일까? 예수님은 분명 이방인까지도 섬기며 복음을 전하라 했다. 이들은 예수님의 이름을 앞세워 전쟁의 당위성과 합당성을 간증하며 각자가 얻어갈 것을 챙겨 갈 것이다.
또한 여전히 초호화판 유명 빌리지에서 세미나를 개최하고, 고급 호텔에서 포럼을 진행하는 이 시대 공룡들이 있다. 그들은 세상에 크게 보이고자하는 탐욕과 야망으로 권력과 소통하는 공룡들이다. 이 지구상에서 공룡이 왜 사라져 버렸는가? 공룡의 뇌 용량은 60그람밖에 되지 않아 환경적응력과 생태계의 변화에 대처하지 못해서 멸종했다.
이렇게 몸 집이 큰 공룡들이 드디어 천안함재건비를 모금하자 앞장섰다. 대한민국은 분명 국민이 납세의 의무를 감당해야 하는 나라다. 그래서 국방비는 국민 세금 일 부분이 국가의 방위를 위해서 쓰여지는 곳이다. 그런데 한국교회가 국방비까지 감당하겠다고 발 벗고 나섰다. 참으로 오지랍이 넓어 보인다.
여전히 먹음직한 설교와 보여주기 위한 과시로 건물만 높이려 하고 있으니, 이들은 내려놓음보다 더 높아지려는 야망으로 자신을 보고 나를 믿으라 하고 있다.
지금 한국교회에 명진스님과 수경스님같은 영성을 가진 사람이 있는가? 무소유의 비움으로 시대를 밝혀가는 진리를 실천하는 자가 있는가? 교단마다 감투싸움에 휘말려 세상법정에서 비웃음을 당하고 있는 복음이 부끄럽지 않은가.
이 시대 맘몬의 자리에 앉아있는 공룡들은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그들은 잘 생긴 외모와 감성을 자극하는 찬양, 연기력 넘치는 설교, 사람을 설득하는 설득력, 수만 명 성도들, 웅장한 건물 등 가진 것이 너무 많아 아주 작은 주님은 보이지 않는다.
더 높은 곳에 있는 자들이 어디 이뿐인가. 자신의 감정대로 축복과 저주를 남발하며 맘몬의 자리에서 십자가에 바퀴를 달고 질주하고 있다. 분명 복음은 숫자와 건물이 아닌 방향 아닌가.
이것도 부족해 웅장한 건물을 지어 교회가 아닌 비즈니스장소로 이미 전락해 가고 있는 실정이다. 심지어 초 대형교회 담임목사 위력은 대단하다. 대기업 인사청탁은 대형교회와 이권이 개입되는 황금어장이기에 담임목사 말 한 마디가 핫라인으로 통하는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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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교회 대형화 앞에서 지극히 작은 목소리로 외치고 있다 |
여기에 발을 맞추어 드디어 사랑의교회가 수천억을 쏟아 부어 초대형교회를 짓게 되었다. “우리헌금으로 우리 집 짓는데 도와주지는 못 할망정 왜 그렇게 말이 많으냐?”이렇게 말 할 수도 있다. 그러나 그것은 교회자체를 내 것으로 착각한 어리석은 짓이다. 교회가 대형화 될수록 내려놓는 겸손은 선교와 구제로 방향을 바꾸는 것이 복음일 것이다.
왜 사랑의 교회만이냐고?”또다시 묻는다면, “사랑의 교회니까!”제발 내려놓자는 것이다. 그동안 사랑의교회는 어느 한 개인의 교회가 아니라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지금 한국교회가 방향을 잃고 서로 높아 지려만 할 때, 속도와 방향을 복음 중심으로 맞추어 나가야 할 교회였기에 애정을 가지고 아파하고 있는 것이다.
오정현 목사는 월드컵 축구 승패를 예견할 정도로 예민한 영성을 지녔다. 세상 게임도 예측하는 영감을 지녔기에 진정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사역이 무엇인지는, 더 깊은 영성으로 더 크게 깨달을 것을 기대해 본다.
진정 하나님은 사람이 지어놓은 건물안에 거하시는 분이 아님을 성서에서 말씀하고 계신다.(사도행전7장 48-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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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인남, 당당뉴스 행정실장 |
역사는 승자들의 기록이기에 승자의 입장에서 영원히 승자로 남아있다. 그러나 복음만은 패자들의 기록으로 부활의 소식을 땅 끝까지 전해야 한다. 십자가는 분명 패자들의 자리다. 제자들이 패자로서 십자가에 거꾸로 매달려 순교한 것은, 바로 패자의 자리에서 부활의 영광을 보았기에 패자로서 순교 했다.
최근 수경스님의 버리고 떠남에서, 개신교는 다시 패자의 자리로 내려가 예수님의 내려놓음을 닮아 가는 길만이 천성을 향한 내려놓음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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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그 사람의 예견이 축구결과 보고 애기한거야 아니면 보기전에 이야기 한거야.4강까지? 그러면 좋겠수.5만명의 머리들을 거느렸으니 그 교회내에선 할만도 하겠지.
경기 다 끝나고 나서 "내가 2:0 으로 이길 거라고 생각했어요" 이런 말을 누가 못하랴? 나는 아르헨티나에게 대패할 줄 알았지롱~ 오목사가 자신 있으면 나이지리아:한국의 점수를 공개적으로 예언을 해 보던가.......
4강 못가면 박수무당 취급할거여..ㅋㅋ
아...! 수경스님이 떠나 셨군요.
가시기 전에 한 번 뵙고 싶었는데...
원고청탁을 드린 적이 있는데, 바빠서 못 해주겠다고 하시더군요.
부디...
인간이 아무리 선한들 하나님 악함만도 못하고 인간이 아무리 지혜로운들 하나님 미련함만 못하다
아멘! 우리에게 다림줄이 되시는 성령이 오시어서 인도하시지 아니하면 세상의 모든 일은 들에 핀 백합화 만도 못한 일입니다.
너희가 내 안에 거하라 나도 너희 안에 거하리라 가지가 포도 나무에 붙어있지 아니하면 절로 과실을 맺을 수 없음 같이 너희도 내 안에 있지 아니하면 그러하리라(요15:4)
이것은 아마도 불교 포교를 전재로한 글같읍니다
왜 이런글이 여기에 실리는지 이곳이 자꾸 이상한곳이아닌가하는 생각이듭니다 절이좋으면 절로가면될것을
이 글은 한마디로,
"중도 저러는데 우리 목사님들 뭐하세요?"라는 얘기랍니다.
중이 좋다는 얘기가 아니구요.
목사질이든 중질이든 편하게 먹고 살 방도로 진리를 허울삼아 자신과 남을 속이는 것은 근본적으로 잘못된 것이다.
그런 충격을 경험하고 주지자리도 훌훌 털고 떠난 저 사람은 진정 용기있는 사람이다.
말로는 중생구도를 외치면서도 속으로 썩어나는 자신의 본 모습을 커밍아웃 하는것은
평생을 짊어져온 번뇌인 것이다.
그런 용기앞에 잔잔한 박수를 보낸다.
예수님 말씀중 "인자가 올 때 믿음을 보겠느냐" 라는 말씀이 항상 마음에 걸립니다. 많은 사람이 그 길을 간다고 맞으려니 했다가 틀릴수 있습니다. 사람을 두려워하면 올무에 걸리지만 예수님의 말씀은 두려움으로 행해야 합니다. 인생 칠십,강건하면 팔십인데 삶의 우선 순위를 분명히 하고 삽시다. 혹시 교회에서 잘못된 길로 가는 사람들이 있다면 그들을 위해 기도 해 줍시다. 심은대로 거두는 것이 절대 불변의 성경 법칙입니다. 주님의 주권을 절대 인정하며 살아 갑시다. 훗날 행한대로 심판하실 주님 앞에 설 날을 두려워 하면서...
수경 스님이 애통해하는 모습이 참 가슴깊이 와닿네요
어제는 컴이 불안하여 댓글을 남기지 못했습니다만
개인적으로 저는 승려가 무슨 선행을 했던 말았던 아무 관심도 없습니다.
이 글을 가져온 이유는 자세히 읽어보면 유익한 면들이 다양하게 있는 글 이기 때문 입니다.
복음을 모르는 그저 종교인일뿐인 한명의 승려가 자신의 세속적 기득권을 포기한 모습에 대하여
한국 교회의 자칭 큰 목사님들이라고 칭하는 이들에게 반면교사로 삼기를 바람에 있습니다.
또한 읽는 분들이 각각 깨닫는 부분 들이 있으시리라 믿기 때문입니다.
저마다 이기려고만 드는 강자만의 세상에서 약한 모습으로 패배를 당한듯한 주님의 모습을 묵상하다보면
생각이 많아지더군요.....
같은 글을 읽고도..찔리는 사람도 있고.. 거부감을 느끼는 사람도 있습니다..
이것이 숨길수 없는 그 사람의 신앙고백일 것입니다.. 좋은글 감사합니다..
옳으신 말씀입니다.
그래도 불교하고 교회하고 비교는 좀;; 요새 종교다원주의 운동하는 목사도 있고해서 거부감 듭니다.
개신교의 가장 큰 병패중 하나는 세상과의 단절입니다...교회가 그 본질(진리)에는 관대하면서 외형과 형식에는 엄격하여 기독교인이 절에 다니는 사람과 친구할 수 없고, 인간적으로 존경해서도 않된다는 사상이 마치 성경의 진리인냥 고래고래 떠들어 댑니다..한미디로 저들은 다 지옥갈 사람들인데 왜 두둔하고, 왜 좋게 평가하느냐..이런식이죠..
그래서 믿지 않는 사람들은 교회오기가 힘들고, 교인들은 세상에서 기독교인이라는 사실을 떳떳하게 밝히길 꺼려하고...
이분법적 사고는 종교의 특징입니다. 뭐든지 둘로 나눠야 직성이 풀리는 이들은 니편과 내편을 성령과 악령으로 쉽게 갈라 말하고 선악의 구분에 극명하면서도 막상 자신에게 있는 더러움은 생각을 하지 않습니다. 사람은 그저 핏덩이며 더러운 오물을 몸에 담고 겉으로 아름답게 꾸미는 존재들일 뿐임에도 이미 천사쯤 된다고 생각들을 하지요.
반면 우리의 신앙은 말하기를 동방의 의인인 욥이 그 고난을 딱 2주 버티고 즉시 하나님을 원망함같이 우리는 내재된 자기의(義) 덩어리며 선악의 혼재이며 깨끗함과 더러움의 범벅탕이며 회칠한 무덤같음을 말합니다. 이것을 깨닫는 순간이 깨어나는 순간임에도 교리적 고백이 자기 신앙인줄로
착각들을 하지요. 그래서 하나님의 자녀인 우리는 늘 선에만 속해있고 도무지 악을 전혀 찾을수 없기에 회개는 평생 한번 혹은 죄를 지은 그 행위를 회개하는 것으로 오해들을 합니다. 자아에 대한 존재적 착각에서 기인하기에 자기 진단의 극명한 말씀들을 쉽사리 외면해버립니다. 그래서 요모양 요꼴의 대한민국 교회들이 되었는지도요.
해답을 불교의 중들에게서 얻다니...여기 불교 카페죠? 그렇죠?
어떤 부분이 해답을 중들에게 얻는 것으로 보이시는지요.
지금 시비 거십니까? 다중 아이디인지 아닌지 확인해 줄수 있습니까?
인터넷의 익명성에 기대어 무수한 비난을 개인감정을 담아 남발하는
희안한 사람들이 있는데요....회원정보만 보고도 많은것을 알고 있습니다.
적절한 답변이 없으면 그대로 두지 않을것입니다. 질문은 자게판에 이미 댓글로 남겨 놓았으니 알아서 하시지요. 어디다 남겨 놓았느냐는 질문 따위는 받지 않습니다. 까페 활동이 장난 이십니까?
참 안타깝네요. 예수님을 닮아가야할 기독교인들이...
저부터 우리부터 예수님을 닮은 진정한 그리스도인들이 되기를 기도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