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튜버 '이십이세 상진'의 '그저, 걷기 ; 의미를 찾는 것은 우리가 해야할 일' season3
좋아하는 유튜버 '이십이세 상진' 의 영상 중 '여행사를 만든 이유' 라는 영상을 통해서 철학사상의 흐름을 찾아보기로 결심했다. 이십이세 상진은 자신의 소박한 일상을 영상으로 기록하는 사람이다. 이런 영상 속에서 어떻게 철학적인 내용을 짚어낼 수 있는지 의문이 들 수도 있지만, 철학은 모든 것에 스며들어 있기에 철학적인 내용은 나름대로 찾아내고자 한다면 찾을 수 있었다.
'그저, 걷기'는 무엇을 하는 프로그램인가?
그저걷기는 상진과 프로그램 참가자들이 3박 4일간 제주도 일대를 오직 두 발을 통해서 걸으며 정해진 스케쥴 없이 모두 함께 만들어가는 국토종주이자 즉흥여행 프로그램이다.
여행사를 만든 이유
보통 여행을 간다라고 하면 좋은 숙소, 예쁜 음식이 나오는 맛집, 관광 명소 등 이런 것들을 떠올릴 수 있다.
하지만 상진이 추구하는 여행은 상진의 몸의 한계를 실험하고 고난을 이겨냄으로써 앞으로 살아갈 동기를 얻는, 스스로가 살아있음을 느끼는 여행이라고 한다.
혼자서 여행을 하는 것에 지쳐갔을 때 쯤, 여행사를 만들어 사람들에게 상진이 느끼는 감정들을 공유해보는 것이 어떨까 생각이 들어 '제작소' 라는 여행사를 만들어 '그저, 걷기'라는 국토종주 프로그램을 운영하기 시작했다.
그저, 걷기 1일차
상진은 “제가 보통 1일차에 사람들을 가장 많이 걷게 해요. 왜냐면 처음부터 많이 힘들어야 더 빨리 친해진다고 느끼거든요? 아무리 천천지 원수여도 같이 힘을 모아서 고난을 이겨내면 베스트프렌드가 되고 그런 것도 있잖아요. 낯선 사람들이 모였을 때 가장 먼저 서로의 벽을 허물 수 있는 방법은 서로의 힘들어 하는 모습을 보는 거라고 생각합니다.” 라고 한다.
그렇게 상진의 추구하는 방향대로 그저, 걷기 1일차는 무려 35km를 걸으며 마무리된다.
그저, 걷기 2일차
상진은 참가자들에게 국토종주(그저, 걷기)에 온 이유를 묻는다.
이유들은 다양했다. 그저 재미있기 때문에, 모르는 사람들과 생고생해보고 싶어서, 새로운 설렘을 찾기 위해, 새로운 자극을 찾기 위해, 추억을 위해 등등 다양한 이유들이 있었다.
그 중 공통적인 이유가 존재했는데 그 것은 바로 ‘한계에 도전하고 강해지기 위해서‘ 였다.
나는 여기서 니체의 철학사상을 찾아냈다. 니체는 인간을 강자(귀족)와 약자(노예)로 나누어 본다. 이 둘의 차이점은 자신의 가치를 스스로에게서 찾느냐 상대에게서 찾느냐 이다. 귀족들은 자신의 가치를 스스로 좋은 것으로 평가한 후 그렇지 못한 사람들을 나쁜 것으로 평가한다. 이와 반면, 노예는 귀족을 보고 느낀 무력감에서 비롯된 복수심에 차올라 자기들끼리 이렇게 말한다. "우리는 저 악한 자들과는 다른 존재, 선한 존재가 되자! 선한 인간이란 능욕하지 않는 자, 그 누구도 해치지 않는자, 공격하지 않는 자, 보복하지 않는 자, 우리처럼 인내하고 겸손하며 올바른 자이다." 즉 자신들이 못 하는 것을 안 하는 것이라며 자기합리화를 하는 것이다.
참가자들의 자신의 한계에 도전하고 강해지기 위함은 외부의 어떠한 가치를 비롯해 자신의 가치를 생성하는 것이 아닌, 자기 자신 내부 안에 존재하는 가치를 초점으로 둔 채로 그 가치를 더 발전시키기 위함이였다.
변태라는 것은 보통 일상생활에서는 이상성욕자를 지칭하는 말이다. 위에 사진에서도 마찬가지로 변태를 맥락상 이상성욕자까지는 아니라도 정상이 아니거나 특이한 취향을 갖고 있는 사람 정도의 의미로 말을 한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나는 이 영상에서 말해지고 있는 변태를 곤충의 성장과정으로 불리우는 변태로 해석하고 싶다. 왜냐하면 참가자들이 말하는 한계라는 것은 각자의 육체적 그리고 정신적 고통을 의미하는 것인데, 그 한계에 도전하는 그러니까 맞선다는 행위가 곤충들이 성충이 되는 데에 모든 에너지를 쏟아부어 탈바꿈을 하는 과정과 유사해보이기 때문이다.
번데기나 애벌레 때 성충이 되려는 의지가 있기에 에너지를 쏟아부어 탈바꿈이 가능한 것이다. 이와 같은 비유로 기존의 가치에 순응하지 않고 새로운 가치를 살펴보고 스스로를 위한 가치를 만들어 낼 수 있는 사람만이 고귀한 인간, 즉 니체가 말하는 강자가 될 수 있는 것이다.
2일차에는 가장 힘든 구간이 있었다. 창피함을 뒤로하고 누워서 쉬는 참가자도 있었고 발톱이 빠진 참가자, 물집이 잡힌 참가자 등 많은 참가자들이 육체적 또 정신적 고통을 겪으며 25km를 기록하며 2일차는 마무리 되었다.
그저, 걷기 3일차
3일차에도 어김없이 걷는다. 3일차에는 20km를 걸어서 총 80km 여정이 마무리 된다. 참가자 전원이 완주에 성공하고 마지막으로 머물 숙소에서 파티를 하며 그저걷기 프로그램은 종료된다.
그저, 걷기 운영자 상진의 소감
상진은 그저, 걷기를 마치고 운영자이자 참가자로서 소감을 말한다.
상진은 걷는 여행을 추천해주며 ‘그저, 걷기‘가 왜 ’그저, 걷기‘인지 이유를 남겼다.
“거창한 단어를 쓰기보다 정말 그저 걷는 여행인 건데 그 이유는 의미를 찾는 것은 스스로 해야하는 것이기 때문이었어요.”, “남들을 통해서도 삶의 의미를 찾을 수도 있겠구나 싶었던 좋은 시간이었습니다.” 라고 하며 영상이 마무리 된다.
느낀 점
영상의 내용과 과제를 엮다보니 니체의 철학사상인 '귀족 도덕'이 두루뭉실하게 떠올랐다. 그래서 이번 기회에 귀족도덕을 더 자세히 공부해보니, 귀족도덕은 자존감과 자존심에 대해서도 생각해볼 수 있는 철학이라고 생각했다. 자존감과 자존심은 비슷해보이면서도 니체가 말하는 귀족과 노예처럼 그것의 원천이 나인가 외부인가에 로 나눠진다고 생각했다.
자존감이라는 것은 '자신이 사랑받을 만한 가치가 있는 소중한 존재이고 어떤 성과를 이루어낼 만한 유능한 사람이라고 믿는 마음' 이다. 자존감의 원천은 무엇인가? 진정한 자존감을 갖는 사람들은 자신의 가치를 외부에서가 아니라 내부 즉 자기 자신에서 찾고 발전해나간다. 이 과제에서 다뤘던 영상 속 참가자들처럼, 자기 자신을 이기는 성취감이나 다양한 경험 등이 내면을 풍성하게 해줌으로써 '나'에 대한 긍정적인 마음으로 가득 차있을 때 높은 자존감을 갖게 된다. 자존감의 주체는 스스로가 되는 것이다.
자존감이 낮으면 외부의 것에서부터 나를 찾는다. 그렇기 때문에 그 외부의 것이 높은 가치를 갖는 것(예를 들어, 돈 명예 등)이라고 해도 그것이 없어져버리면 나를 잃게 된다. 그 외부의 것이 좋지 않은 가치를 갖을 때도 그것으로 인해 나 자신을 낮고 부정적으로 본다. 이렇게 흔들리는 외부 가치들을 통해서 나를 만들게 된다면, 나 또한 흔들리기 마련이다. 그런 흔들리는 나를 외부에서부터 보호하기 위한 어설픈 마음이 바로 자존심이라는 것이다. 니체가 말한 노예도 귀족들의 가치에 비롯하여 자신들을 평가하기 때문에 무력감과 복수심에 자존심을 세워 자신들을 자기합리화하기 바빴던 것이다.
이러한 자존감과 자존심을 니체 철학에 연결시켜보고 나는 어떠한가? 라는 생각을 가져보았다. 나는 대체적으로 높은 자존감을 갖고있다고 확신한다. 하지만 자존감이 결여되어 있는 부분도 분명히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나는 그 결여되어 있는 부분이 어떤 부분인지 찾아야하고 그 부분에 대해서 자존감을 갖기 위해 나의 내면이 더욱 풍성해질 노력을 해야할 것이다. 내가 실패해보지 못 한 부분에서 실패를 해보고 경험해보지 못 한 것을 경험해보는 것 그리고 자신의 한계에 도전하는 것, 나로부터 발산하는 것들로 내면을 채워나가야한다고 생각한다.
첫댓글 인간은 관계적인 존재입니다만, 다양한 관계 속에서 만나는 타자를 대하면서 '자신'을 잃어버리게 되기도 한답니다. 돌이켜보면 '자존감'을 잃어버리게 되기도 하고, '자존감'을 내세우다 상대를 소외하기도 합니다. 걷기는 아마도 자신에게 집중하는 시간을 위한 방법 가운데 하나이겠지요. 그리고 그 속에서 평소에 자기가 타자를 대하는 방식에 대해서도 반성하는 기회를 찾기도 하겠지요. 따라서 걷는다는 행위가 목적이 아닌 수단이라는 점에서는 충분히 공감가는 내용입니다. 다만, 자신을 찾아가는 여정이 꼭 걷기일 필요는 없을 뿐더러, 그것이 가장 효과적이지만도 않습니다. 그리고 그것으로 완성되지도 않습니다. 그러한 과정에서 우리가 우리 자신을 어떻게 이해하고 찾아가는지, 그리고 그것이 수행되었을 때 무엇을 깨달았는지, 얼마나 일상에서 지속될 수 있도록 애쓰는지 하는 것들이 이어지고, 종합될 때 비로소 우리는 우리 자신을 이해하는 첫걸음을 걸을 수 있다는 점도 함께 생각해보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