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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입시 이야기.
분량 고려 안 하고 그냥 쓰여지는는 대로 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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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에 고2였다. 1학기 기말고사가 끝나고, 기말 끝 ~ 여름방학까지의 공백기간 중에
학교에서 여러 조촐한 행사?가 열렸다.
그리고 7월 14일. 당시 교내 강당에서 재즈 반주에, 어떤 예쁘장한 여자느님이 노래를 부르는 공연이 있었고
주위 애들은 여자가 이쁘네마네. 재즈가 어떻네 떠들고 있었다.
그렇지만 내 머릿속에는 한 가지 생각이 계속 맴돌았고 (그래서 공연 내용이 거의 기억 안 난다.),
공연 이후에 일찍 집에 가서 어머니한테 말했다.
'이과로 전과할래요. 문과 공부도 맘에 안 들거니와, 문과가서 도대체 뭘 해야 할 지를 모르겠어요.'
이미 고1 때 문/이과 고를 때부터 문과가서 뭐하나 싶었고,
일단 고1까지 17년 인생을 문과로 생각하면서 살았기에 일단 문과를 갔으나 (법대 지망...but. 신의 한 수=법대 폐지)
아무래도 잘못된 듯 싶어서 고2 시작하자 마자 고2담임한테 이과로 간다고 했다.
그러나 관련업무를 총괄??하는 담당선생이 '껒혀' 라고 말해서 3월의 전과시도는 간단히 씹혔었다.^^
고1 때 이과로 간다고 했을 때에는 적극 반대했고, 3월에 전과한다고 했을 때는 찬/반을 명확히 표시 안했던 부모님은
이번에는 찬성하셨다.
고2 문과 1학기 때, 성적은 별도로 치고( 내신이나 고2 모의는 잘 나왔다.)
의지나 공부태도가 완전히 망가진 걸 보셨기 때문이다. ( 실제로 문과에서 어문쪽 공부할 때는 30분을 채 못앉아 있었던 듯 싶고, 정신적으로도 다소 붕 떴었다.)
그리고 7월 15일. 고2 담임에게 '3학년 탐구 선택지'에서 '경제+한지' 를 '화2+생2'로 바꿔달라고 했고,
고2 담임도 이미 3월일이 한번 있던 터라, 부모님 동의 정도만 확인했었다.
이후, 고2 2학기 문과생활은 완전한 '자유인' 생활을 했다. 그래도 내신 조금 삐끄덕한 것 빼면, 성적 자체는 나온 편이었다.
http://cafe.daum.net/posthoolis/IHsc/12693
--> 문과로써의 마지막 모의고사 (사탐 2개본이유 = 탐구 시험시간 1시간만 줬다. 그래서 항상 고2이과보다 빨리끝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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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고2애들에게 절대로 안 올거라고 느껴지는, 고3 겨울방학이 왔다.
전과한 후 목표는 서울대 화생공이었다.
위에도 썼다시피 법대 지망자였고, 변리사 직업이 여러 모로 나에게 제일 잘 맞을 듯 싶었다.
게다가 문과 기준으로 오래 살아서, 서울대 로망이 컸다.
전과자 주제에 1년만에 가능할까 싶었지만, 당시 문도리였던 내 인식에는
'설공 = 올1등급 컷이면 합격가능' 이라는 전형적인 문도리 개념이 박혀있었다. ( 07정도까지만 통했던 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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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고3 겨울방학. 당시 수1+수2 정도만 완성되어 있던 나는 (수2 공도벡 제외)
방학 때 수리+과탐에 집중했다. 수리는 동네학원에서 심화미적과 수2를 집중적으로 했고
과탐은 인강을 끼는 수 밖에 없었다. (타 이과애들은 적어도 과학1과목은 왠만큼 된 반면, 나는 물1+생1 정도만 아주 조금 아는축). 과탐 인강은 주로 화1+화2 쪽에 많이 투자된 듯 싶다. (화학은 거의 몰랐으니까)
공부는 수학학원에서 수학하는거 아니면, 집에서 했다.
방학이 끝나고. 2009년 3월에 고2 같은반애들은 문과반으로 다 들어갈 때. 나 혼자 이과반으로 배정났고,
그러면서 고3 입시가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고3담임은... 교내에서 다소 빡세기로 유명했다. ( 그렇지만 실제로는 자기 반에서는 안 그랬고, 타반에서 좀 빡쏀듯)
하여튼 3월 모의고사까지, 반 분위기는 진짜 엄숙했다.
<고3 시절을 기억해보길. 2일부터 3월 모의까지 반 분위기 개조용함. >
그리고 3월 모의고사. = 개 X망했다. 그나마 수1범위만 들어간 수리가형은 1등급이 떴으나 (1컷이 85? 내 점수 89)
언어/외궈/과탐이 지랄맞게 나왔다. (언어 1컷짤린 2등급. 외궈 2등급 하위권 + 과탐이 2124 였나. 4등급은 지1이니까 버리고)
이과에서 교내 20등 밖으로 날라갔다. 개쪽이었다.ㅋㅋㅋㅋㅋㅋㅋ 지금 생각해도 개쪽ㅋㅋㅋㅋㅋ
문과에서 패기좋게 이과 전과해서 처음 본 시험이 개ㅋ패ㅋ망ㅋ
3월 성적은 나중에 보면 아무런 의미가 없다고 하고, 실제로도 맞는 말이다.
그렇지만 당시에는 삼반 때 겪은 멘붕에 비하면 조족지혈이다만 쇼크를 엄청 크게 먹었다.
그래도 모의에 드러난 , 내 문제점을 최대한 고치려고 했다. 방학 동안 너무 놓은 언/외를 잡았고
과탐은 아직 완성이 덜 되었으니까 시간이 지나면 괜찮아지리라 생각했다.
그냥 마음은 잡지 못했으나 쭈욱 공부했다.
그리고 4월 모의.
2009년 실시된 4월 모의는 그 해 치뤄질 모든 헬모의 시작이었다.
언어 1컷이 78 ? 수리가형 1컷이 69점 + 외궈는 물 + 탐구가 1컷이 죄다 40점대 초반 + 화2가.. 30점대였는데
일단 감이 되살아난 언어는 잘 버텼지만
( 88점이어서 백분위가 99.7인가 떴다. 웃겼던건 저 백분위로 언어 반에서 3등ㅋㅋㅋ. 위에 89점과 94점이 있었다.)
[수2+미적 범위가 들어간 가형 ] 첫경험 이었는데. 개패닉이었다. 처음으로 수리 시험에서 5개 이상 찍었다.
( 09수능 체험단할 때도, 나형은 다 맞았었다. 하물며 고2 수리 나형 풀 때는 발연산으로 날린거 제외하면 틀린것도 딱히 없었고, 항상 1시간 이면 다 풀고 복습하는 데 충분했다.)
그나마 점심 이후에 나온 외궈가 물이어서 멘탈이 복구되었고, 과탐은 화2빼고는 죄다 다 맞거나/1개 틀렸다. (화2는 34점 맞았는데 2등급 중반 떴다.)
채점 할 때, 언어 원점수가 비루해서 1차쇼크 먹었고, 수리가형이 71점 뜰 때는 진심 아무 생각이 안 들었다.
수리가형의 쓴 맛을 처음으로 체험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이제 내신 (미적+수2)를 보았는데...
이 내신도 지옥이었다. 당시 우리 고교에서 수리가형 1등급이 평균 25명 내외였는데.
내신 1등급 = 9등까지 / 내신 2등급 = 24등인가 25등까지 이었다. 이걸 등급 구분하려고 내신을 미친듯이 어렵게 냈다.
객관식/주관식/서술형으로 구성되었고, 수학2랑 미적분 과목 시험을 봤는데
미적 같은 경우, 객/주 푸니까 시간 없어서 (객관식 1번부터 개낚시로 시작 ~ 주관식 1번은 헬계산으로 시작)
오죽하면 서술형 문제도 안 읽고 그냥 미적 선생이 x나게 강조하던 '평균값 정리 정의'나 써놓고
서술형은 백지로 냈다. (여기서 -17점 확보. 애들 점수가 오죽 개판이면, 서술형 문제와 전혀 관계없는 평균값 정리에 서술형 3점을 줬다.)
심화미적분 = 60점대 / 수학2 = 72점?? 인가 맞고 둘다 내신 2등급 떴다. (15등 내외)
고3 중에서 제일 ㅗ같았던 시기였던 4월이 지나고,
5월에... 는 열심히 6평 준비를 했던 거 같다. 우리 반에는 나 포함해서 8명 정도가 공부 주축을 잡았던 듯 싶다.
반 분위기는 진짜 괜찮은 축이었다.
나 같은 경우는 딴 거 조지더라도, 일단 수리+과탐에 집중을 하기로 했다. <언어는 감빨을 믿었고, 외궈는... 그냥 수리/과탐으로 메꾸기가 가능하다고 생각했다.>
2010학년도 6평도 입시사에 길이 남을 헬파이어였다. (1컷 기준 언82 / 수가 71 / 외 94?? / 화2 37 / 물1하고 화1이 39 )
지금 보니까... 전과 타이밍이 심하게 안 좋았구나.
딴 건 기억 안나고, 5월 내내 수리/과탐에 시간 꼬라박았는데도 ( 10시간 공부했다고 하면 수5+과4 +언/외 합쳐서 1시간)
수리하고 과탐 팍팍 찍고 나서, 초탈한 기분으로 애들과 같이 웃었던 것만 기억난다.
여전히 내 가형 점수는 1컷에 덜렁덜렁 걸친 상태였고(6평 기준 74점) 과탐은 2~3등급을 헤맸다.(백분위 기억 안 남.2223 등급)
이후에 본 기말에서도 씐나게 수2와 미적이 털렸지만, 1학기 내내 털려서 면역이 생겼는지 잘 기억도 안 난다.
<내신은 둘다2등급으로 결국에 끝낫다. 수2가 2컷 등수에 걸친걸로 기억>
그렇지만 7월 모의에서 처음으로 가형이 안정적인 점수가 나왔다. (93점이었나.. 하여튼 1컷이 70점대였다. 여태까지 쳐 부은 시간이 드디어 뜨는듯 했다.)
처음으로 지원가능권에 서울대와 지방 의학계열이 떴다.
고3 기말 끝나고 모두 막장인 상태에서 본 시험이지만, 일단 여름방학 때 공부 원동력 역할 정도는 충분히 해준 시험이었다.
여름방학 때는, 학교 수학 보충수업 < 이 때 쌓은 수학실력이 반수 때 베이스 역할을 톡톡히 해주었다. > 을 끼면서
월~금까지는 매일매일 학교에 나가서 공부를 했다. (보통 아침 8시까지 가서, 저녁 먹을 즈음에 돌아왔다.)
혼자했으면 다소 ㅗ같았겠지만,
학교에서 문과25명 이과25명뽑아서 따로 자리마련을 해놨길래, 걔들과 같이 공부하게 되었다.
1달의 고3 여름방학은 칼같이 지나갔고, 9평이 왔다.
2010학년도 때는, 수능만 모평과 달리 갑자기 쉬워져서 물수능으로 평가받지.
모의평가나 교육청은 레알 헬이었다.
9평 결과는 과탐이 2243 ㅄ되었고, 외국어가 2등급 하위를 맴돌았다. (안 하니까...)
그렇지만 수리 백분위가 100%였고 (당시에 정답률이 비참했던 23,24번 맞춘게 컸다. 사칙으로 쓸데없이 4점 날려서 문제였지만..)
언어도 원점수가 거의 고정이었지만 (88~92점 사이), 1컷이 지랄맞아서 백분위가 잘 나왔다.
단순 표점합으로 9평에서 서울대 농생/바시조. 이런 과와 지방 하니대 몇몇곳이 나왔던 걸로 기억한다.
9평 이후에 수시를 써야했다. 한 가지 알아두어야 할 게,
불과 2년전 입시인, 2010학년도 입시까지 수시가 이렇게까지 많지 않았다.
(처음에는 45:55로 수시가 조금 우세지만, 이월하면 정시에서는 결국 6:4 ~ 7:3 정시 우세)
고3 담임이 연대1차와 고대랑 한대 수시2차를 쓰랬다.
배경 정황은 기억 안 나는데, 하여튼 내가 당시에 수시 쓸 마음이 전혀 없던 상태였다.
정시 올인을 한다고 했다. (지금 정시올인 소리 하면, 담임한테 '내년에 또 보자' 라는 말 듣기 딱 좋다.)
담임이 고대 2차라도 쓰라고했지만,
'수능 망해서 고대 점수 안 나오면 1년 더 할께요' --> 이런 식으로 대답했고, 결국 정시 올인을 가게 되었다.
( 고3 담임이 신경 많이 써주기도 했다. 내가 정시올인 간다고 하니까 부모님한테 나 몰래 수시 쓰라고 말해줄 정도였으니)
여하튼,
9월 이후 최종마무리는 과탐 올인이었다. (당시에는 ebs 듄아일체 이딴거 없었다. 10수능까지는 듄 체감반영률 = 0% )
언어는 안 봐도 점수 나올 듯 했고 => 악수
외궈는 어차피 2등급은 찍을 듯 하니까 냅뒀다. (이과 공부하면서 어문쪽 공부가 완전히 버려졌다.) = > 패착
수리 유지하면서 과탐을 끌어올리면 서울대 농대라도 어떻게 비빌수 있지 않을까 싶었다.
이후 수능날까지는 기억에 남는 일이 별로 없었다.
10월 모의고사날에 같이 붙어있는 중학교에서 체육대회해가지고, 사람 야마돌게 한 것과
수능 전주에 갑자기 감기걸려서, 수능 전주가 날아간 거 외에는...
그리고 수능날.
시험 장소는 내 고등학교에서 5분거리로, 바로 코닿을 곳에 있었다.
우리 학교 이과애들 중, 가형치는 학생들은 죄다 그 학교로 배정이 났고,
반에서 쭈욱 3등했던 나와, 반에서 쭈욱 2등했던 절친과 같이 차 타고 가서 그런지
가면서 떨리는 건 없었다. 고3 때 수능시험은 시험 보기전까지는 긴장감이 거의 없는 상태로 끝까지 갔다.
(수능 시험 1주전에 속 울렁거리고 집중 안되는건, 세번째 수능볼 때 뿐이었다. 고3때와 반수때는 셤장에 패기좋게 갔다.)
1교시 언어 시험.
=> 풀면서 모평보다 쉬움을 여실히 느꼈다. 다만 기술 배수구 지문에서 3점짜리랑 어휘문제 1개가 발목을 잡았고,
시험 도중에 페이지가 꼬여서, 시험지 순서가 뒤죽박죽 된 거 바로 잡느라, 고생한 것만 기억이 난다.
2교시 수리 시험.
=> 풀 때 당시에는 절대 쉽다고 안 느꼈다. 처음에 머리가 굳어서 계산을 몇번 말아드셔가지고, 시간에 쫓기게 된 것도 있었고 공도벡 문제 (25번이었나...) 가 헬이었다. 미적분은 계산 더러운 ㄱㄴㄷ 문제가 하나 있었다.
3교시 외국어...
=> 진짜 쪽팔린 일이지만 풀 때 개쉽다고 느꼈다. 실력이 모자르니까 문제가 잘 풀린다는 게 당시 내 상황에 적합했을 것이다. 같은 시험장에 얼굴 정도는 잘 아는, 같은 고3반 애가 있었다.
걔가 외국어 끝나고 시험 어렵다면서 나한테 난도를 물어봤다.
진짜 걔의 머릿속에서 내가 한 말이 지워졌으면 싶다. 당시에는 내가 뭐라고 답했냐면
'내가 다 풀었으니까 쉬웠겠지.' --> 이랬다.
객관적인 제3자가 당시 나를 봤으면 '이 새낀 태도보니까 외궈 개망ㅋㅋㅋ' 이라고 느끼기 딱 좋았을 것이다.
4교시 과탐.=> 10학년도 수능이 언수외는 몰라도 과탐 자체는 헬이었다.
물리 1 ==> 시1발시1발 하면서 풀었다. 시간 후달려서 답이 2옴 (저항단위) 인 객관식 문제 하나 있었는데, 그걸 기억해서 화1 풀 때 풀었다.
화학1 => 딴건 기억 안 나고 아스팔트의 끓는점이 350도냐 이거 묻는게 있었는데, 그거 보면서 화1도 막장되었구나.. 생각이 들었다.
생1 => 유전문제가 개빡쳤다. 그리고 상당히 풀면서 짜증이 났었다.
화2 => 어떤 기억도 안 난다. 4페이지는 완전 신세계였던 걸로 어렴풋이 느껴진다.
그냥 마지막 페이지에서 2개를 쌩으로 찍고, 화2를 가채점에 옮겼다.
(물1,화1,생1은 시험지 교체시간 2분동안 다 옮겨놨었다.)
그리고 드디어 마지막일 줄 알았던 첫 수능이 끝났다.
결과는 수리는 93점. 98%에 과탐이 96/97/89/95 (물화생화2 순서)에
언어 2등급 망테크 + 외궈 3등급 좆망테크를 탔다. 막판에 기어이 언외가 쌍으로 같이 무너졌다.
게다가 외궈는 가채점보다 2점 더 깎여나왔다. 외궈 볼 때 태도가 막장이었으니, 성적도 막장일 수 밖에...
주위 이과애들도 같이 수능을 쌈싸먹었다.
그나마 그 아해들은 수시 준비하느라 대치동이랴, 대학이랴 마구 뛰어다녔으나,
정시 올인한 나는 집에서 3-2학기 기말고사나 준비했다.
'정시학교' 라던 우리 모교에서 수시로 많은 합격자를 만들었다.
문과에서는 언수외 232 등급에 사탐이 122 --> 고대 경제 합격해서 같은 반 애들을 죄다 재수로 내몰았다.
이과에서도 언수외탐에 2~3등급 곁들이거나, 도배한 애들이 잭팟이 많이 터졌다.
(고대 2차쪽에서 많이 터졌다. 고대 이과논술 특징상 그랬을 것이다. )
그런데, 우리 반에는 수시1차로 붙은 경우 제외하면 수시 2차는 몰살 당했다.
이과반 중 유일하게 정시 순혈주의를 지키게 되었다.
1등 : 연-중-한. 다 붙고 당연 연의갔다.
2등 : 서울대 + 다군 지방의 붙고 지방의 갔다.
3등 : 나 / 연대 자과 지구과학 계열 중 하나 ===> 표점합이 동일했었고, 고대식으로는 연자과애가, 연대식으로는 내가 유리했다.
4등부터 = 재수 < 재수 후에 한대/건대/시립대 등등으로 알아서 갔다. >
내 원서는...
수능 시험 끝나고 결과 대충 알자마자 반수를 하기로 했다.
처음에 서울대 식산이라도 들어가서 바로 휴학 때리고 반수를 하려했으나... 무지했었다.
원서쪽을 전혀 몰랐다. 지낚과 메가컷만 믿었고, 메가가 좀 높게 나온다는 정도만 아는 유형이었다.
맨 처음 원서예정은 연대 비비기 - 서울대 비비기 - ?? 였으나 (반수테크)
< 원서를 제대로 알았다면, 그냥 나군에 한양 응화생(63명) 넣고, 가군에 연대 화공/화학쪽을 질렀을 것이지만,
당시 원서에 관해서는 초딩수준이었다. >
가장 일찍 원서접수가 끝난 서울대부터 꼬였다.
10 서울대 농대는 설공 하위학과(건환.건축) 과 더불어서 쌍으로 폭발했고,
서울대 경쟁률을 보자마자, 내 나군은 광탈이란 걸 알았다. (원서 쓸 줄은 몰랐지만, 원서 결과는 바로 감이왔다.)
식산과 바시조 중에서 고민했던 나는 그냥 qt인증을 한 셈 이었다. (어차피 둘다 못갔다. 나중에 보니까 555 (2.6%)점 안 되면, 간호대/생과대까지 포함해서 하위과는 전부 1차 광탈)
이후 가군을 적성 맞춰서 다시 썼다. 재수하기는 싫었고, 한양대가 그 때까지 1학기 휴학이 안 되던 상태였지만
( 들어가고 나서, 1학기 휴학 가능하게 바뀜)
그래도 고3 때, 전과 생활을 했는데, 무휴학 반수는 못하랴 싶어서 가군에 한대 응화생을 썼다.
가군 : 한양 응화생
나군 : 1차 광탈
다군 : 강원대 수의예 썼다. ===> 정시 원서비가 2만원으로 싸길래 넣었다.
나군 제끼고, 다군은 1차추합되었으며
가군은 다음 링크와 같이 되었다.
http://cafe.daum.net/posthoolis/O4VB/937
그리고 2010년 1월 21일이었나... 하여튼 20일대. 가군 일반선발 최초합하면서 고3 입시는 마무리되었고,
내 반수가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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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리 치이고 저리 치이다가 시험 보게된 고3 입시는 이렇게 끗.
2일동안 나눠 썼는데, 딱히 물어볼 거 있으면 댓글 ㄱㄱ
ps. 라모스 쨔응 이과 전과하려는 모양인데, 홧팅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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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와우 잘읽엇음 근데 원서영역은 어떻게 공부햇음??
10때 입시자료 최대한 모아서, 2011학년도 때부터 올해랑 동일하게 활용해 봄
문->이 ㅋ 나름 목표가 뚜렷했고만 ㅎㅎ
대단하십니다. 자료분석과 조언의 댓글들 통해 알았지만 범상한 인물은 아닙니다. 삼반수까지 가시면서 많은 것을 배우셨겠습니다. 그래서인가요? T.R.G님의 댓글은 뜨금하면서도 따듯한 면이 있습니다. 이어지는 글 기대됩니다.// 문과가 적성인 우리집 아이, 이번에 재수하여 가군 성균관 공학 들어갑니다. 2011년 1*111, 2012년 13111 점수인데, 스나이핑이라는 단어는 생각도 하지 않은 이유로는 이과적성이 아닌 아이를 엄마의 욕심으로 이과를 보냈다라는 자책으로 삼수는 절대로 피하자는 마음뿐이었답니다. 재수하는 동안에, 언어샘께서 논술만으로도 sky는 문제없는 아이인데..라는 말만 계속 뇌에 있었답니다. 이번 수능 끝나고
아들말 '수능 수학은 지긋지긋해'라고 하는데, 모의고사 때는 수학이 언제나 1등급, 못하며 2등급의 아이가 큰 시험때인 수능에선 여지없이 트라우마와 소심이 발동하는 것을 보면, 이제 그만 수능봐야할 것같아요..성대공학 경쟁률로 노심초사하여 님께 한 번 예상컷 물었답니다. 비록 이번 성대가 조금 달리 나왔어도, 님의 댓글로 편히 보낸점 감사드립니다. 님의 수학일대기를 보니 댓글 욕심이 나서 적어봅니다...^^
가군 성대 붙었다니 다행입니다.
대학생활 잘 보내기를 기원합니다.
T.R.G 쨔응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