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하의 날씨가 세상을 얼어붙게 했던 지난 11월 18일, 홍대앞 복합문화공간 ‘KT&G 상상마당’은 라이브 밴드의 열기로 뜨겁게 달아올랐다. “Go Go, 예~!” 묵직한 메탈 사운드가 흘러나오자 10대에서 30대까지 다양한 연령층의 남녀들이 환호했다. 이들은 연방 팔을 휘두르고, 리듬에 몸을 맞추며, 목청껏 노래를 따라불렀다.
경기도 성남에서 공연장을 찾은 남공혜정씨는 “지난 번 밴드 인큐베이팅 공연에도 왔었는데 생생한 현장감이 느껴지는 소공연 특유의 분위기가 너무 좋아 단짝 친구(박은정씨)의 손을 잡고 다시 찾았다”고 했다. 공연 내내 이 둘은 누구보다 열심히 몸을 연방 흔들어댔다.
이강배(28)씨는 사귄 지 얼마되지 않은 여자친구와 공연장을 찾았다. “평소에도 홍대 공연장을 자주 찾는다”는 이씨는 “새로운 음악과 뜨거운 분위기에 취하다 보면 인간적으로 서로 가까워질 수 있어 좋다”고 했다.
▲ 지난 18일 KT&G 상상마당에서 열렸던 인디밴드 ‘모투’ 의 공연장면. / photo 이경민 조선영상미디어 객원기자
이날 공연은 KT&G 상상마당이 마련한 7번째 밴드 콘서트 ‘뜨거운 라이브 Hot Dog’. 상업형 밴드와 달리 인기나 돈에 연연해하지 않고 자신들만의 독특한 음악세계를 추구해 가는 이른바 인디밴드(Independent Band)들을 지원하기 위해 2007년 KT&G가 시작한 ‘밴드 인큐베이팅 프로그램’의 일환이다.
“이런 프로그램이 절실했어요. 인디밴드는 주류 음악을 추구하는 사람들이 아니어서 대형 기획사에 소속되기가 쉽지 않습니다. 우리는 우리가 원하는 음악을 하고 싶거든요. 그런데 그걸 마음껏 할 수 있는 환경이 별로 없었어요. 그러다가 이 프로그램을 만난 거죠.” 이날 공연을 마친 인디밴드 ‘모투’의 리더 양상렬씨가 말했다.
“저희는 이제 막 시작한 신예 밴드입니다. 그동안 독립적으로 활동하다 보니 솔직히 실력을 검증받을 기회도 별로 없었거든요. 그런데 이 프로그램을 통해 이곳저곳 여러 무대에 서보기도 하고 선배들을 통해 멘토링을 받을 수도 있어서 실력이 많이 향상된 것 같습니다.”
‘모투’와 함께 이날 공연을 가진 ‘애플윙’도 인큐베이팅 프로그램의 지원을 받은 팀이다. 애플윙의 고용석씨는 “이런 프로그램이 있다는 얘기를 듣고 준비했던 게 엊그제 같은데 벌써 1년이 지났다”면서 “음악을 할 수 있도록 연습실을 지원해 주고, 음반을 발표할 수 있게 해주고, 공연을 할 수 있도록 무대를 마련해주신 점에 감사한다”고 말했다. 고씨는 “하지만 뭐니뭐니 해도 최대 장점은 이 프로그램을 통해 만난 선배들, 관계자들과의 뜨거운 정”이라며 “이따금씩 마련됐던 뒤풀이 자리를 영원히 잊지 못할 것”이라고 말했다.
KT&G 상상마당이 인디밴드를 지원하기 시작한 것은 지난 2007년부터. 이 회사는 매년 60억~70억원가량의 예산을 마련해 음악, 영화, 사진 등 각 분야 예술가들의 창작 활동을 지원해 왔다. 인디밴드 인큐베이팅 프로그램 역시 그중 하나. 실무책임자인 KT&G 사회공헌부의 김태성 과장은 “인디밴드들에 실질적 도움이 될 수 있는 방향으로 지원을 모색하다가 이 프로그램을 마련, 매년 2억~3억원가량의 지원금을 집행하고 있다”고 말했다.
지원 내용은 다양하다. 선발된 팀엔 100만~200만원의 상금을 제공하고, 1년간 연습실을 마음껏 사용할 수 있게 해주며, 음반을 낼 수 있게 도와주고, 콘서트를 가질 수 있도록 지원해준다. 선발된 팀은 윤도현밴드의 전 기타리스트인 ‘비갠후’의 리더 유병렬씨로부터 노하우를 전수받는다. 동료 팀들과 매달 상상마당 공연장에서 콘서트를 가지며 무대 경험을 쌓을 수도 있다. 자라섬 재즈 페스티벌, 대한민국 라이브 뮤직 페스티벌 등 국내 정상급 라이브 무대에 설 수 있는 기회도 마련된다. 또 1년의 지원 기간이 끝날 때엔 동료 밴드들과 함께 옴니버스 앨범을 만들 수 있게 해주고, 우수팀에는 자신만의 EP음반(Extended Play·싱글 음반보다는 길고 일반 음반보다는 짧은 15~20분 길이의 음반)을 낼 수 있도록 해준다.
지원 내용이 충실한 만큼 경쟁률도 치열하다. 2007년 처음 실시됐던 ‘제1회 인큐베이팅 프로그램 콘테스트’에선 무려 112개팀이 참가를 신청, 각자 기량을 겨눠 최종적으로 11개팀이 선발됐다. 열띤 경쟁은 2008년 콘테스트로 이어졌다. 100개 팀이 참가를 신청, 6개 팀이 선발된 것이다.
오는 12월 실시될 예정인 2009년 콘테스트는 재즈, 록, 힙합, 국악 등으로 장르를 넓히고 밴드 부문 외에 보컬 부문까지 분야를 확대해 개최된다. 상금도 총 1000만원 규모로 늘어나며, 일본으로 건너가 후지록페스티벌을 참관하고, 일본 클럽공연에 참가하며, 우리나라 전국 클럽투어 콘서트에 나가는 등 공연 기회가 확대된다. 전문 프로듀서 및 분야별 외부 트레이너로부터 관련 교육을 받을 수 있는 기회도 주어진다.
1기 인큐베이팅 프로그램의 지원을 받은 밴드 ‘케인즈토닉’의 박민우씨는 “윤도현밴드, 이한철씨 등 선배들 공연의 오프닝 무대에 섰던 것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며 “1기 동기팀들과 함께 했던 공연 또한 잊을 수 없다”고 말했다.
KT&G의 지원을 받은 또 다른 밴드인 ‘에이첼인어스토리’의 김우람씨는 “치열한 경쟁과 까다로운 심사절차가 있었지만 그에 수반되는 지원 내용이 너무 좋았다”며 “그중에서도 오는 12월 발매되는 음반을 제작할 기회를 얻게 된 것이 가장 기쁘다”고 말했다.
음악평론가 임진모씨는 “우리나라에서 인디밴드들이 주목받게 된 계기는 1990년대 ‘크라잉넛’이나 ‘언니네이발관’ 같은 밴드들이 인기를 얻게 되면서부터”라며 “상업적 가치에 물들지 않은 개성있는 음악인을 육성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다양한 음악을 들을 수 있고 만들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해 주고 이를 지원해줄 제도적 장치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임씨는 “클럽이나 전문 공연장을 찾는 일부 매니아를 제외하면 일반인들이 인디 음반을 구입하거나 들을 수 있는 환경은 턱없이 부족한 것이 현실”이라며 “인디 음악에 대한 우리 정부의 정책적 지원은 2007년 이후 전무하다시피 한 것이 사실이기 때문에 인디 음악의 활성화를 위해서는 음악인들의 노력과 함께 정부·기업의 후원이 절실하다”고 말했다.
KT&G 상상마당을 책임지고 있는 서정일 사무국장은 “프로그램 지원 내용을 점차 확대해 밴드들에 보다 많은 혜택이 실질적으로 돌아갈 수 있게 하겠다”며 “인큐베이팅 프로그램을 통해 배출된 음악인들이 국내는 물론, 해외 록페스티벌 무대에 오르는 모습을 보고 싶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