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로를 받았더라
(사도행전 20 : 7-12)
바울을 유월절이 다가오고 고린도교회의 후원금을 예루살렘에 전하려 출발한다 하지만 유대인들이 몰리게 되자 바울은 길을 돌아가기로 합니다. 그래서 도착하게 된 드로아에서 주일 예배를 드리게 되었습니다. 식사를 마친 후에 늦은 저녁까지 강론의 시간을 가졌습니다. 듣고 있던 유두고가 졸아서 창밖으로 떨어져 죽고 맙니다. 바울은 주님의 능력으로 유두고가 다시 살아나게 합니다.
초대교회의 예배 시간과 모습 사도행전을 보면 초대 교회의 예배 풍경을 볼 수 있다 오늘 말씀 7절에 보면 그 주간의 첫날은 일요일을 말합니다. 사도행전을 기록한 누가는 로마식 시간 계산으로 자정에서 자정까지 하루를 기준을 삼고 있습니다. 유대력으로 따지면 토요일 저녁이라 해석할 수 있지만 로마식으로 따지면 일요일로 해석됩니다.
초대교회는 식사의 자리였다 저녁식사 후에 말씀을 나눕니다. 이 시간은 바울의 일반적인 설교시간이 아니었습니다. 질문과 대답 형태의 토론이었습니다 토론할 때 쓰이는 장시간에 걸친 진지한 이야기로 해석됩니다.
설교자나 회중 모두가 말씀에 갈급함이 없으면 결코 만들어질 수 없는 장면입니다.
1. 하나님의 말씀을 밤중까지 계속하여 사모합니다.
본문 7절에 “그들에게 강론할새 말을 밤중까지 계속하매”
바울은 드로아 지역 주민을 만나고자 6일을 기다렸다가 7일째 예배를 드리고 다음날 바로 떠나야 돼서 시간이 없었지만, 밤이 새도록 열정을 가지고 간절한 마음으로 말씀을 전했습니다. 본문이 묘사하고 있는 예배에 무엇이 느껴지십니까? 바울과 드로아 사람들에게는 예배에 대한 열정이 살아있었습니다.
유두고라 하는 청년이 창에 걸터 앉아 있다가 깊이 졸더니 바울이 강론하기를 더 오래 하매 졸음을 이기지 못하여 삼 층에서 떨어지거늘 일으켜보니 죽었더라
그런데 예배 중에 유두고라는 청년이 죽는 사고가 났습니다. 여기서 유두고에 쓰인 청년(παίς, 파이스)은 종이었다는 의미이고, 유두고라는 이름도 당시 노예에게 흔히 사용되었습니다. 노예로서 그의 하루가 힘들었을 것이고 저녁 집회에 참석하다가 이런 일이 벌어진 것입니다.
당시 사도행전을 기록한 저자는 누가이고 그는 의사였기 때문에 유두고가 죽은 것이 확실한 사실이었습니다. 바울은 생명이 그에게 있다고 말하고 청년이 다시 살아나는 역사가 예배 중에 있었습니다. 누가는 이 사건을 통해서 무엇을 말해주는 것일까요? 우리가 드리는 예배 속에 참 생명이 있다는 것을 보여준 것입니다.
그 증거로 7절에 그 주간의 첫날에 떡을 떼러 모였다고 기록하고, 11절에는 떡을 떼어 먹었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놀랍게도 바울은 유두고를 살린 후에 다시 제자리로 돌아가서 계속해서 예배를 드렸고, 예배는 날이 새기까지 계속되었습니다.
본문의 시작과 끝은 예배입니다. 그들은 성찬을 통해 예수님을 예배하기 위해 모였고, 성찬으로 예수님을 기념했습니다. 그 예배 중간에는 유두고의 죽음과 소생에 대한 사건이 있습니다. 그 의미는 예배 안에는 죽은 자를 살리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있고, 우리가 드리는 예배 안에 하나님이 거하시고 계시고, 예수님 부활처럼 그의 이름으로 드리는 예배 안에는 죽은 자에게 생명을 주는 능력과 사건이 있음을 보도합니다.
떨어진 유두고를 보며 그 순간 교회는 얼마나 철렁했을까요? 우리도 그런 일들이 수시로 있고, 흔드는 자가 많아 교회가 흔들립니다. 그러나 본문은 말씀하듯 바울의 예배도 온전하지 않았습니다. 밤중까지 전하는 열정과 즐거이 듣는 청중이 있었지만, 조는 자도 있고 사고도 있었습니다.
온전한 예배가 아니여서 모두가 만족하는 예배가 아니었지만, 그곳에 하나님이 계시며 죽은 자를 살리시는 역사가 있었습니다. 우리는 예배의 초라함, 설교자의 부족함, 청중의 불량함, 교회의 불화와 다툼을 보며 교회가 죽었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바로 그때 우리는 바울의 말을 기억해야 됩니다. "떠들지 말라 생명이 그에게 있다.“
요한복음 4장 23절에 ”아버지께 참되게 예배하는 자들은 영과 진리로 예배할 때가 오나니 곧 이 때라 아버지께서는 자기에게 이렇게 예배하는 자들을 찾으시느니라“
로마서 12장 1절에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라 이는 너희가 드릴 영적 예배니라“
2. 생명이 살아나는 기적이 있습니다.
본문 10절에 “떠들지 말라 생명이 그에게 있다”
본문의 청년 유두고가 살아난 것을 주목하십시오. 복음과 참된 예배가 있는 곳에는 예외 없이 반드시 생명이 살아나는 기적이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교회에 생명이 있다."라고 말할 수 있어야 됩니다. 우리 예배의 하나님이 계시며 그분의 능력이 현존함을 믿으십시오.
바울이 유두고를 살리고 자기 자리로 돌아가 복음을 계속 강론한 것처럼 우리도 사명의 자리로 돌아가서 예배를 위해 힘써야 됩니다. 예배를 준비하는 자, 드리는 자 모두 간절한 마음으로 예배에 참여하게 됩니다. 본문에는 졸다가 은혜를 놓치고 실족사 한 자를 은혜의 최고 수혜자로 만드셨습니다.
우리에게도 이와 같은 은혜가 있을 것입니다. 전혀 생각하지 못했던 자가 어느 날 은혜로 인해 변화되고, 아무도 기대하지 않았던 자가 제자가 되어 주님을 따르고, 절대 예수 믿지 않을 것 같은 자가 예수를 영접하고 주님께 나아오는 그런 놀라운 일들이 부족하고 모자라더라도 복음을 말하려고 애쓰고, 잘 듣지 못하고 놓치는 일이었어도 듣고자 하는 청중이 있는 자리에 생명이 살아나는 역사가 있습니다.
설교를 못할수 있습니다.
복음만 있으면 됩니다.
설교를 잘 듣지 못하면 어떻습니까?
간절한 마음으로 귀만 기울이면 됩니다.
그러면 죽었다고 생각한 자리에서 부활 생명과 꺼지지 않는 영생이 예배 중에 일어나 우리의 삶에서 역전 승으로 하나님께 영광이 되고, 세상에는 유익되는 놀라운 인생을 만들어감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요한복음 1장 4절에 “그 안에 생명이 있었으니 이 생명은 사람들의 빛이라”
요한1서 5장 12절에 “아들이 있는 자에게는 생명이 있고 하나님의 아들이 없는 자에게는 생명이 없느니라”
사무엘상 22장 23절에 “두려워하지 말고 내게 있으라 내 생명을 찾는 자가 네 생명도 찾는 자니 네가 나와 함께 있으면 안전하리라 하니라”
3. 위로를 받았습니다.
본문 12절에 “사람들이 살아난 청년을 데리고 가서 적지 않게 위로를 받았더라”
예배에서 생명을 얻고, 부흥(revival, 되살아남)을 경험합니다. 교회가 정체기를 넘어 쇠퇴기에 접어들었다고 하지만, 하나님을 참되게 예배하는 자들은 하나님이 찾으시며 그 속에 생명을 부어주십니다. 그래서 여전히 생명력 있고 성장하는 교회가 있습니다.
주님이 어떻게 세상을 이기셨습니까? 그분은 교회가 완전히 몰락해가고 있는 시대에 홀로 수시로 자주 예배하셨습니다. 그래서 3년 공생애를 살아내시고 끝에서는 십자가를 지셨습니다. 그 결과 이 땅에 성령이 오시고 교회가 세워졌습니다.
바울은 삶이 곤고하고 박해가 매섭고 모든 것이 견디기 힘들 때마다 그는 하나님과 예수님과 성령님의 은혜를 자주 묵상했습니다.
우리의 예배와 교회 안에 생명이 있다는 것을 믿고, 우리 인생에 무한한 가능성을 믿고, 그 주일에 첫날 떡을 떼고 말씀을 듣기 위해 초대교회 성도들이 열정을 가지고 모인 것처럼 믿음으로 모여야 됩니다.
예배를 통해 생명을 공급받는 것이 있기에 살았난 사람 때문에 적지 않는 위로를 얻게 됩니다.
격려와 칭찬은 삶의 활력소가 됩니다. 화학을 전공하는 한 학생이 중간고사를 치르게 되었습니다. 시험문제는 ‘석탄으로 알코올을 얻는 방법을 쓰라’ 였습니다. 그 학생은 아무리 생각을 짜내보아도 해답이 나오지 않았습니다. 이것을 풀어내는 화학공식이나 부호가 도무지 떠오르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이렇게 대답을 썼습니다. ‘석탄을 팔아서 알코올을 사면 됩니다’. 그후 그 학생은 교수로부터 호되게 야단을 맞고 낙제할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담당교수는 그 학생을 불러서 말했습니다. ‘너는 석탄으로 알코올을 얻는 가장 손쉬운 방법을 찾아 냈다’면서 충분한 점수를 주었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너그러움과 사랑이었습니다. 칭찬과 격려였습니다.
마태복음 5장 4절에 “애통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위로를 받을 것임이요”
고린도후서 1장 4절에 “우리의 모든 환난 중에서 우리를 위로하사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께 받는 위로로써 모든 환난 중에 있는 자들을 능히 위로하게 하시는 이시로다”
이사야 40장 1절에 “너희 하나님이 가라사대 너희는 위로하라 내 백성을 위로하라”
여러분! 드로아, 그곳에 있는 성도들은 죽었다가 살아난 유두고를 보면서 예수 그리스도 안에 생명이 있다는 걸 날마다 발견해 갔어요. 유두고를 보면서 부활의 능력이 있다는걸, 부활의 생명이 있다는걸, 유두고를 보면서 위로를 받았어요. 피곤한 인생, 지친 인생, 처절한 인생이지만, 힘겨운 인생이지만, 유두고를 볼 때마다 하나님은 살아계시지! 부활은 있다. 부활의 생명은 있다. 그는 증인으로서, 살아 있는 증인으로서 움직여 갔어요.
그래서 이 드로아의 성도들은 유두고를 보면서 위로를 받습니다. 우리에게도 저 생명이 있어! 우리도 부활할 거야! 여러분! 이것이 놀라운 은혜가 아닙니까?
승리교회 성도여러분!
여러분 속에 부활의 생명이 있음을 믿으십시오.
그 생명력 있게 인생을 살아가십시오.
우리에겐 성령께서 부활의 생명을 갖고 우리와 함께 하십니다.
그 예배속에 참된 위로가 있습니다.
참된 기쁨과 참된 소망이 있습니다.
졸더라도 예배의 자리에 앉으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