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 욕심에 가려진 행복들 -
권다품(영철)
마음 속에 욕심을 담고 있는 사람은 그 욕심만큼 불행해질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그 욕심이 지금 내게 와 있는 행복을 자꾸 가리기 때문일 것 같다.
내가 학원을 경영할 때다.
내가 버는 한 달 순수익이 최소 몇 천은 되었다.
그러나 나는 만족할 수가 없었다.
"사나이는 꿈이 클 수록 기다리는 성공도 크다."
"자신의 스케일은 자신의 꿈만큼이라고 보면 거의 틀림없다."
"풍족하지는 못해도 그냥 가족들끼리 평범하게 살려면, 직장 생활만 해도 사는데는 지장이 없을 거야. 그런데, 다른 사람들에게 자기 이름 내놓고 살려면 우선 꿈이 커야 해."
아내와 자식들에게 이런 말을 했다.
그런데 사실은 내가 싫어하는 어떤 사람을 이기고 싶어서 부리는 내 욕심의 합리화였다.
일반인들에 비하면 내 수입이 적은 돈은 아니었지만, 그 사람에 비하면 내 수익은 4분의 1내지 5분의 1정도밖에 안 되었다.
솔직히 말하면 나는 내 재산이 얼마나 되는 지도 모르고 살았다.
학원은 학생 수로 대충 수입이 나온다.
학생 수가 그 사람보다 훨씬 적었다.
소문에 그 사람은 학원을 몇 개를 더 오픈을 했는데, 잘 된다는 말까지 들린다.
다른 사람들이 볼 때는 내가 부러웠지만, 나는 그 사람보다 돈을 적게 번다는 이유만으로 졌다고 생각하며 매일 술로 살았다.
술 때문에 집이 시끄러울 때도 있었다.
나 한 사람의 욕심 때문에 전 가족들이 불안했을 것이다.
내가 그 사람을 떨쳐낼 수 있었던 것은 55세이후 나이가 들면서부터였다.
읽기싫은 책을 억지로 읽었다.
'그 미운 사람 때문에 내가 이렇게 산다는 게, 바보 아닌가?'
'내가 이렇게 산다는 건 그 사람에게 졌다는 말 아닌가?'
어느 절 스님에게 "사업에 실패해서 처저식들이 있으면서도 가족들을 앞에 나서지 못하는 노숙자들을 본 적이 있느냐?"는 말을 들었다.
그들에 비하면 너무 행복하다는 걸 알았다.
더 결정적인 순간이 있었다.
어느날, 태어나서 단 한 번도 일어나 앉아보지 못한 21살짜리 뇌성마비 청년을 아버지는 겨드랑이를 잡고, 엄마는 늘어뜨려진 양다리를 잡고 차에서 내리는 모습을 보았다.
너무 놀랬다.
너무 불쌍했다.
세상이 다르게 생각되었다.
내가 엄청나게 큰 행복을 가졌음을 깨달았다.
우리 자식들이 돈을 많이 벌어서 행복한 것이 아니었다.
팔다리 성하게 뛰어다닐 수 있고, 자기 생각 똑똑하게 말할 수 있는 것만으로도 그렇게 고맙고 행복했다.
그때부터 한 달에 200만원~300만원 받는 사람들이 많다는 말을 듣고는 한 달에 몇 천만원씩을 버는 것은 결코 그냥이 아닐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내게 책을 읽게 하고, 노숙자들을 생각하게 하고, 그 뇌성마비 환자를 보내서 나를 깨우치게 한 것은 결코 우연은 아닌 것 같았다.
어떤 절대자가 나를 깨우쳐주기위한 배려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때부터 욕심을 조금씩 버렸다.
이제부터라도 겸손을 배워야 겠다는 생각도 하게 되었다.
몸에 익은 가식들도 털어내기 시작했다.
내 마음에 들지 않는 사람도 참고 이해하려고 노력을 했다.
경망스러운 말을 잘하는 사람과도 술도 마셨다.
나는 지금도 변해가려고 노력중이다.
오늘도 나와 내 가족이 건강함에 감사하게 생각한다.
누군가에게 욕 안 먹고 살 수 있는 것도 감사하고, 또, 누군가가 내 욕을 하는 사람이 있으면, 그 사람을 통해서 내 잘못을 돌아보려고 애를 쓴다.
누군가를 만나 같이 저녁을 먹을 수 있고, 비록 건강 땜에 술은 못 마시지만 술자리에 같이 앉아 즐겁게 놀 수 있음에도 감사한다.
맞는지는 모르겠다.
어떤 글을 읽다가 '감사가 쌓이면 행복이 될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감사할 줄 아는 사람에게는 감사 할 일이 자~꾸 생길 것 같다'는 생각도 들고....
2023년 6월 9일 오후 3시 13분 초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