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15주일설교 시편85:1-13
본문: 시편85:1-13
제목: 정의와 평화가 입맞추는!
오늘은 시편85:1-13의 말씀을 가지고
“정의와 평화가 입맞추는!”이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나누겠습니다.
오늘 말씀 제목이 무엇입니까?
“정의와 평화가 입맞추는!”
대한민국 사람으로 처음으로 노벨문학상을 탄
한강은 이런 말을 했습니다.
“우리는 과거에 의해 도움받았다.
죽은 자가 우리를 살렸다.”
우리는 지난 12월 3일에 있었던 비상계엄 사태 때
그것이 6시간 만에 끝날 수 있었던 것은
5.18이라는 과거의 경험으로 인해
그때의 죽은 사람들로 인한 것이라고 합니다.
그때의 경험이 사람들을 움직이게 했고
그래서 악을 회책하려는 자들이
그것을 행하지 못하게 했습니다.
그때 피 흘림이 오늘에 피 없이
끝날 수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악한 자들의 계획이 성공하지 않고
실패로 돌아갔다는 사실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국가 반란죄로
체포되고 수사를 받고 있습니다.
어떻게 해서 이렇게 풀려가게 되었을까요?
그렇게 이 험악한 상황이 이렇게
극복 되어가는 과정이 된 것은
우리가 역사 속에서 지난날들 속에서 있었던
여러 경험들이 지금에 일어난 일을
악으로 치닫지 않고 그래도 큰일 일어나지 않도록
막아낼 수 있었다고 합니다.
우리가 경험했던 민주화 과정과
지난 44년전에 있었던 비상계엄의 경험이
이렇게 만들어 냈다고 합니다.
과거의 경험은 참으로 중요합니다.
과거의 경험은 지금을 이기는 힘이 됩니다.
과거의 경험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게 합니다.
과거의 경험은 지금을 잘 살 수 있도록 합니다.
하지만 과거를 경험하고도
똑같은 일을 만나고도
같은 실수를 하고 실패를 한다면
그것은 참으로 부끄럽고 비참한 일입니다.
물론 이번 일을 보면서
하나님의 은혜가 있었다는 사실입니다.
30분만 계엄군이 빨리 국회에 왔다면
사람들이 국회에 오기 전에 군인들이
먼저 국회를 점령했다면
큰일이 있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날씨나 계획한자들이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이 일어나
계획대로 되지 않아 실패를 하고 말았던 것입니다.
하나님을 믿는 나로서는 이런 일들을 보면서
아 하나님의 역사하심이었구나
하나님께서 우리나라를 보호하셨구나라고 생각했습니다.
악한 계획을 악한 자들이 세웠지만
그 계획을 무너뜨린 것은 하나님의 역사하심이었습니다.
시편 속에 시인들은 그것을 늘 말하고 있고
오늘 말씀 속에서도 그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오늘의 역사를 생각하며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말씀을 나누고자 합니다.
1.하나님을 향한 부름과 역사 회고(과거) (1-3절)
1-3절은 하나님을 부르면서
지나간 은총의 역사를 회고하는 내용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은혜를
회고할 필요가 있습니다.
아니 잊지 말아야 합니다.
잊지 말고 감사해야 합니다.
시인은 과거에 하나님이 그분의 땅과 백성에게
보여주셨던 은혜, 즉 포로 생활의
“종결” 과 “회복”을 회상하면서 이 시를 시작합니다(1절).
하나님의 은혜로 포로로 잡혀간 야곱 곧 이스라엘을
돌아오게 하셨다고 찬양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포로된 땅에서 귀환하리라는
여러 예언자들의 구원 약속이 드디어 성취된 것입니다.
그래서 시126편의 시인은 이렇게 노래하고 있습니다.
여호와께서 시온의 포로를 돌려 보내실 떼에
우리는 꿈꾸는 것 같았도다(시126:1)
포로로 잡혀서 먼 타국에서
고통과 억압 속에서 살던 그들이
하나님의 은혜로 자유를 얻어 고향으로 돌아올 때
얼마나 꿈꾸는 것 같았겠습니까?
그래서 시인은 그 상황을 2절에서
“죄악을 사하시고”라고 말합니다.
직역하면 “죄의 짐(죄책감)을 들어주시고”가 됩니다.
실상 이스라엘의 죄악은 크고 무거웠습니다.
그것을 다 감당하기에는 몇백 년도 적었습니다.
하지만 이스라엘이 지은 “죄악”은 곧 그들이 감당해야 할 무거운 짐을 하나님이 대신 들어 주셨습니다.
뿐만 아니라 그들이 죄를 “사하시고”는
“치워주시고, 제거해 주셨습니다.
하나님은 그분의 백성을 억누르고 있던
무거운 죄의 짐을 제거해 주셨습니다.
자신들을 구원하시고 은혜를 주신 하나님을 배신하고
우상에게 절하며 세상과 짝하며 살았던
죄악의 짐을 제거해 주신 하나님이셨습니다.
모든 죄가 용서될 때 운명은 변화가 시작합니다.
하나님의 분노와 진노가 거두어져야
죄인의 진정한 회복이 가능해집니다(3절).
이스라엘 공동체는 과거에
하나님이 베풀어주신 은총을 언급함으로써
그분의 도움을 요청하고 있습니다.
과거에 누렸던 은혜를 생각하면서
그런 기억이 되새기면서
지금 은혜를 바라고 있습니다.
2) 백성의 간구와 탄원(현재)(4-7절)
4-7절은 현재 상황에 대한
백성의 간구와 탄원을 담고 있습니다.
여기서는 간구와 탄원이 섞여 있습니다.
포로 생활에서 풀려나 구원을 얻었지만
백성들의 삶은 아직 회복되지 않았습니다.
포로에서 돌아와 이스라엘 땅에 돌아왔지만
여전히 고통과 어려움의 시간들이었습니다.
그래서 이사야 선지자는 이렇게 외치고 있습니다.
”우리가 곰 같이 부르짖으며
비둘기같이 슬피 울며
정의를 바라나 없고
구원을 바라나 우리에게서 멀도다(사58:11).“
그래서 백성들은 다시 한번 구원의 하나님께
분노를 거두어 달라고 간구합니다(4절).
그들의 삶의 모습을 보면 여전히 하나님의 분노에서 벗어나지 못한 것 같습니다(5절)
4-5절에서 분노, 노, 진노라는 표현을 통해
하나님의 분노를 세 번이나 강조하여 서술합니다.
하나님의 분노가 완전히 풀려야
온전한 회복이 이루어질 것입니다.
그들은 ”다시 살리사 주의 백성이
주를 기뻐하도록 하지 아니하시겠나이까?“라며
하나님께 탄원합니다(6절).
하나님께 나와 죄 사함을 받았지만
그렇다고 모든 문제가 해결 된 것은 아닙니다.
그래서 시인은 주의 인자하심을 보여달라고 합니다.
“주의 인자하심을 보다”라는 7절의 표현은
하나님의 강력한 개입을 의미합니다.
사무엘에서 보면 압살롬이 죄를 짓고
도망갔다가 다윗이 돌아오라고 하여 돌아왔습니다.
하지만 집에 왔지만 다윗이 압살롬을 돌아보지 않습니다.
어쩔 수 없이 돌아오게 했지만 마음이 안풀려
압살롬을 사랑을 베풀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사랑을 갈구해서 사랑을 얻게 됩니다.
물론 압살롬이 또 배신했지만요!
”인자하심“은 하나님의 특성이며
은혜의 근본 토대가 됩니다.
즉 인자하심이 이 은혜의 뿌리가 됩니다.
그러므로 여호와께서 분노를 거두시고
그들에게 인자하심을 보여주신다면
반드시 구원이 이루어질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인자하심이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사랑을 베풀어 주어야 합니다.
그래야 우리의 구원이 완성이 됩니다.
죄사함을 넘어서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에게 넘칠 때
하나님의 밝은 얼굴을 우리에게 비추어 주실 때
우리의 구원이 완성됩니다.
3) 예언자를 통한 하나님의 응답(미래)(8-13절)
8-13절은 예언자를 통한 하나님의 응답을 전합니다.
8절의 ”내가 하나님 여호와께서 하신 말씀을 들으리니“라는 표현은 하나님의 말씀을 소개하는 문구입니다.
하나님께서 무엇을 말씀하십니까?
하나님의 말씀은 ”화평의 메시지“입니다.
“무릇 그의 백성,
그의 성도들에게 화평을 말씀하실 것이라”
평화는 모든 복의 총망라한 것입니다.
평화는 복지이며 번영이며 행복이고 안정입니다.
평화가 없다면 아무리 많은 돈이 있어도
많은 여러 가지를 가져도 건강하다고 해도
그것은 고통입니다.
지금 우리가 힘들어하고 혼란을 겪고 있는 것은
무엇 때문입니까?
평화롭지 않기에 그렇습니다.
왜 이 말씀을 하시려는 것입니까?
하나님의 백성과 성도들이 어리석음으로
돌아가지 않게끔 권고하려는 목적을 갖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않으면
우리는 아무리 좋은 것을 가져도
아무리 좋은 조건 속에 있어도
평화롭지 못합니다.
그렇기에 하나님의 말씀을 들어야 합니다.
9절이 전하는 예언자적 하나님의 말씀은
”하나님의 구원이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에게 가까이 있고“
”하나님의 영광이 땅에 지속적으로 머물 것이다“라는
두 가지 메시지로 압축됩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구원이 누구에게 있습니까?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에게 있습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에게
하나님의 영광이 지속적으로 머물게 됩니다.
“구원이 가깝다”는 표현은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다가오심을 뜻합니다.
“하나님의 영광” 역시 백성과 함께하시는 하나님의 현존
곧 하나님이 가까이 계심을 의미하는 말입니다.
우리에게 하나님의 구원과 영광이 함께 있어야
평화로우며 복된 삶을 누릴 수 있습니다.
10절에 언급된 “인애”와 “진리”, “의”와 “화평”은
하나님이 중요한 속성입니다.
하나님은 인애하신 분이며 진리이신 분입니다.
하나님은 의와 화평이신 분입니다.
그런데 그것은 사람처럼 표현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인애와 진리 그리고 의와 화평은
각각 짝을 이루어 함께 나옵니다.
이들이 같이 만나고 서로 입 맞춘다는 것은
상호적 의미를 지닙니다.
인애와 진실(진리)은 하나님의 사랑과 자비의 특성으로서
하나님의 백성 사이의 신앙적 관계를 나타냅니다.
하나님은 인애 곧 사랑과 자비의 하나님이실 뿐 아니라
진실하신 진리이신 하나님이십니다.
그 어느 것 하나도 소홀이 될 수 없는 분이
하나님이십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믿어서
하나님의 사랑과 긍휼하신 자비를 입었다면
진실하게 진리이신 말씀을 따라 살아야 합니다.
또한 정의와 평화는 법과 질서의 측면에서 본
사람 사이의 윤리적 관계를 나타냅니다.
사람들과의 관계는 정의롭게 이루어져야 하고
그것이 평화로 화평의 관계로 나타나야 합니다.
평화는 정의의 원칙이 실행될 때 이루어집니다.
즉 하나님의 완전한 구원은
인애와 진실이 연합한 토대 위에
정의와 평화가 조화를 이룰 때 성취됩니다.
11절에 따르면 진실은 땅에서
정의는 하늘에서 온다고 합니다.
땅과 하늘은 전체를 가르키는 말로서
온 세계를 가리킵니다.
이 표현은 하나님이 베푸시고 구원의 능력인
진실과 정의가 세계를 에워싸고 있다는 뜻입니다.
한마디로 복의 능력이
세계를 가득 채우고 있다는 말입니다.
하나님은 좋은 것을 주시는 분이라고 말씀하십니다.
12절의 좋은 것은 풍년의 축복을 말합니다.
하나님은 이런 축복을 통해
풍성한 열매를 맺게 하심으로써
백성을 회복시켜 주십니다.
백성의 땅에서 산물을 내어 주시는 것은
9절에 언급된 하나님의 영광이
이 땅에 머물러 계시기 때문에 가능합니다.
우리가 이 땅에서 먹고 살고 있고
자유를 누리며 살고 있는 것은
하나님의 영광, 은혜가 있기 때문입니다.
13절은 “의가 주의 앞서 간다”고 합니다.
의를 의인화 시켜서 의는 왕보다 앞선 선발대가 되어
하나님의 오심을 전합니다.
정의는 하나님보다 그분의 오실 길을 준비합니다.
그 길 위에 하나님이 발걸음을 내딛으시면
구원히 현실이 됩니다.
이처럼 정의는 하나님의 오심을 예비하는 역할을 합니다.
하나님의 영광이 임하고
하나님의 나라가 되는 것은
정의가 이루어질 때입니다.
돈이 많고 건강하고 단순한 평안함이 아니라
정의가 이루어질 때가
하나님의 나라가 이룩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땅에 정의 이루어지도록
그래서 하나님의 나라가 이루어지도록
우리의 자리에서 기도하고 힘쓰고 애써야 합니다.
그 길은 바로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행할 때
이룰 수 있는 길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스라엘 백성들은 과거를 돌아보면서
하나님께서 구원을 통해 자신들을
회복시키셨던 일을 기억합니다.
그들은 실패와 좌절 및 갈등으로 점철된 현실 속에서
또다시 하나님의 도움을 요청합니다.
지금 우리들의 현실과 똑 같은 상황이 아닙니까?
우리에게도 하나님의 은혜로 평화롭고
잘 나가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지금 실패와 좌절과
갈등과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이미 우리는 구원의 은혜를 이뤘지만
온전하지 못하기 때문에 기도를 해야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인애
곧 사랑과 자비를 받고 사는 자들입니다.
그렇다면 그 말씀을 따라 살아감으로
진실된 진리를 따라 살아야 합니다.
또한 우리들의 사회가 우리들의 인간관계가
정의로워서 평화가 이룩되어야 합니다.
이 하나님의 속성 인애와 진리, 의와 평화가
이 땅에서 이루어질 때 우리에게
구원이 이루어지게 됩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인애와 진실이 같이 만나고
정의와 평화가 서로 입맞추는 곳에서
실현되고 완성됩니다.
특히 정의가 이룩된다는 것은
하나님이 오시는 길이 닦여진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하나님을 경외한다는 것이 무엇입니까?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는 정의를 위해
수고를 마다하지 않는 것입니다.
정의를 위해 힘써 행하는 것이야 말로
하나님 나라를 위한 최선의 삶이라는 사실을 알고
살아가는 성도님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