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총새가 지은 시
시인은 시를 통해 사물과 만난다. 이전까지 나와 아무 상관이 없던 사물이 시 속으로 들어오면 문득 달라진다.
나와 사물들 사이에 대화가 오고 가고, 마음을 주고받을 수 있게 된다. 내 마음이 그대로 사물에게 전달되기도 하고,
사물들이 품은 생각이 내게로 옮겨오기도 한다.
다음은 조선 시대 시인인 이경동이 지은 <사근역(沙斤驛)에서>란 작품이다.
피곤한 나그네는 턱을 괴고 누워서 (倦客支頤臥 권객지이와)
날이 다 새도록 시를 짓고 있다. (探詩日向中 탐시일향중)
비취새의 울음소리 한 번 들리니 (一聲聞翡翠 일성문비취)
역창의 동쪽에서 울고 있구나. (啼在驛窓東 제재역창동)
사근역은 경상남도 거창에 있던 역 이름이다. 역은 조선 시대에 나라에서 운영하던 여관이다.
암행어사가 마패를 보여 주고 마패에 새겨진 숫자만큼 말을 빌리던 곳도 이곳이다. 말은 금세 지쳐
먼 길을 못 가므로 역에서 말을 바꿔 타고 가곤 했다.
위 시에서 보이는 나그네는 전날 먼 길을 힘들게 왔던 모양이다. 해가 훤히 떴는데도 이불 속에 누워 있다.
턱을 괴고 있다는 것은 그가 잠이 깨 있었다는 뜻이다. 무언가 생각에 잠겨 있다는 말이다. 그는 아침부터
무슨 생각에 잠겨 있는 걸까?
그는 시를 짓고 있었다. 새벽 이불 속에서 갑자기 시상이 떠올랐다. 그런데 이 시가 될 듯 말 듯 마무리되지
않았던 것이다. 그는 해가 중천에 떠올라 오는 것도 잊은 채 온통 시에 정신이 뺏겨 있다. 아예 안 될 것 같으면
훌훌 털고 일어나겠지만 금방이라도 될 듯 말 듯 하면서도 막힌 생각이 열리지 않으니 답답해서 견딜 수가 없다.
바로 그때 그는 창밖에서 우는 비취새의 울음소리를 들었다. 시인은 저도 몰래 소리 나는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순간 그는 정신이 번쩍 들었다. 동쪽 창이 벌써 환히 밝았던 것이다.
“날 샜다. 빨리 떠나거라. 그깟 시 때문에 낑낑대지 말고.”
비취새는 아마도 시인에게 이렇게 말한 것만 같다. 그 순간 신통하게도 시인의 시도 순식간에 이루어지고 말았다.
비취새는 물총새다. 파랑새목 물총샛과 물총새속에 속하는 여름 철새다. 작은 몸에 큰 머리, 길쭉한 부리로 물고기를
잡아먹고 산다. 비췻빛의 푸름을 지닌 아름다운 깃털 때문에 푸른 보석인 비취에 견주어졌다.
물고기 잡는 솜씨가 워낙 탁월해서 대장 어부(kingfisher)라는 영어 이름을 가졌다. 낚시꾼이란 별명도 있다.
모두 뛰어난 물고기 사냥 솜씨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다.
다음 시는 당나라 때 육구몽이란 시인의 물총새를 노래한 <물총새(翠鳥)> 작품이다.
붉은 옷깃 푸른 날개 알록달록 고운데 (紅襟翠翰兩參差 홍금취한양참치)
안개 꽃길 날아와 가는 가지 앉았다. (徑拂煙花上細枝 경불연화상세지)
봄물이 불어나 고기 잡기 쉬우니 (春水漸生魚易得 춘수점생어이득)
비바람도 싫다 않고 앉았을 때가 많구나. (不辭風雨多坐時 불사풍우다좌시)
첫 번 구절에서 ‘붉은 옷깃’을 말한 것은 이 새의 앞가슴이 주황색이기 때문이다. 물총새가 물가 나뭇가지
위에 앉아 있다. 봄이 왔고, 물이 불었다. 물고기들이 수면 위로 자꾸만 입을 뻐끔거린다. 비바람에 옷깃이
젖어도 물총새는 꼼짝 않고 앉아 있다. 물고기만 나타나면 곧장 수면 위로 차고 내려 물고기를 낚아채려는 속셈이다.
다음 시는 정약용의 <또한 통쾌하지 아니한가> 20수 중의 한 수이다.
흰 종이 펴고 술 취해 시를 못 짓더니 (雲牋闊展醉吟遲 운전활전취음지)
풀 나무 잔뜩 흐려 빗방울이 후두둑 (草樹陰濃雨滴時 초수음농우적시)
서까래 같은 붓을 꽉 잡고 일어나서 (起把如椽盈握筆 기파여연영악필)
멋대로 휘두르니 먹물이 뚝뚝 (沛沿揮洒墨淋漓 패연휘쇄묵림리)
또한 통쾌하지 아니한가 (不亦快哉 불역쾌재)
시를 지으려고 종이를 펼쳐 놓고 붓에 먹을 찍었다. 술에 취해서인지 생각이 좀처럼 떠오르지 않는다.
붓을 들고 한 글자도 쓰지 못한 채 붓방아만 찧고 있다.
창밖은 소나기라도 한바탕 오려는지 잔뜩 흐렸다. 답답한 내 마음과 같다. 한순간 천둥 번개가 우르릉 꽝 하고 친다.
하늘에 구멍이라도 난 듯이 소나기가 퍼붓는다.
그 순간 답답하게 꽉 막혔던 내 생각도 걷잡을 수 없이 터져 나온다. 큰 붓을 움켜쥐고 자리에서 벌떡 일어난다.
한 글자 한 글자 또박또박 쓸 겨를도 없다. 마구 붓을 휘두르니 여기저기 먹물이 뚝뚝 떨어진다. 답답하던 마음이
시원스레 뚫린다.
앞서는 물총새의 울음소리가 막혔던 생각을 뚫어 주었고, 여기서는 쏟아진 소나기가 내 생각을 열어 주었다.
시에서 이렇게 바깥 사물이 내게로 와서 나와 하나가 되는 것은 흔히 볼 수 있는 일이다. 이것은 시 속에서만
가능한 마술이다. 반대로 시인의 행동이 사물에게로 옮아가는 경우도 있다.
다음은 박은의 <밤에 누워 시를 짓다가>라는 작품이다.
베개 베고 시를 얻어 계속 읊조리는데 (枕上得詩吟不輟 침상득시음불철)
마구간에 마른 말이 길게 따라 울음 운다 (羸驂伏櫪更長鳴 리참복력갱장명)
밤 깊어 초승달은 그림자를 만들고 (夜深纖月初生影 야심섬월초생영)
고요한 산 찬 소나무는 절로 소리를 낸다 (山靜寒松自作聲 산정한송자작송)
사실 내가 시를 읊조리는 소리와 말 울음소리, 달빛과 솔바람 소리는 아무 상관없이 동시에 일어난 우연한 일이었다.
그런데 시인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자기가 낭랑하게 읊은 시 소리를 듣고 마구간에 지친 말은 갑자기 빨리
길 떠나자고 힝힝거리기 시작했고, 달빛도 무슨 일인가 싶어 고개를 디밀고 있으며, 마침내 소나무까지도 소리를 내며
내 목소리에 박자를 맞추더라는 것이다.
보고 듣는 것이 시인의 눈과 귀를 거치고 나면 모두 시의 재료로 된다. 마구간의 말이 말을 건네 오고, 물총새가
시비를 걸어온다. 소나무도 같이 놀자고 하고, 소나기도 내 마음을 알겠다고 한다. 시 속에서는 안 되는 일이 없다.
시인은 하지 못하는 일이 없다.
[참고문헌]
정민,『정민선생님이 들려주는 한시이야기』(2003, 보림), pp. 159-166.
[출처] 정민 교수의 한시이야기 <17> 물총새가 지은 시|작성자 옥토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