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에 내리는 눈
-별바라기-
그립다 말은 안 해도
뿌리에서는 그리움이 쌓이는 것을
보고 싶다 말은 못해도
가지에서는 꽃눈이 몸트는 것을
햇살마루에 핀 진달래처럼
그치지 못하는 그리움 전하고 싶은데
3월이 매정하게 눈을 내린다.
월화수목금.. 새벽마다 모닝 벨이 울리면
기계적인 아침이 시작됩니다.
잠깐의 스트레칭..
간단한 세수와 스피드 있는 옷 입기
차에 시동을 걸고 나가는 시간도 일정하지요.
그러나 오늘은 출발을 하고 집 앞 방지 턱 하나를 못 넘고
차를 다시 주차장에 넣어야만 했습니다.
간밤에 눈이 엄청 온 것입니다.
기상청 공식집계로 13.5cm
그걸 못 넘고 차가 미끄러지네요.
어제 오후 내내 비가 내렸기에 망정이지
그것까지 다 눈이 되었다면 오늘 출근길은 대란이었을 겁니다.
하긴 강원도는 나흘째 눈밭이라지요.
40cm를 넘었다는 뉴스입니다.
아직은 여진(餘震)처럼 눈발이 내리는 아침 길을 걸어서 나갑니다.
다른 날과는 다른 시간표들이 보입니다.
새벽시간이라는 것이 일정해요.
교회 앞에 도착할 즈음이면
청소부 아저씨가 3동이나 4동 사이를 쓸고 있습니다.
호남식당 아주머니가 빵떡모자를 쓰고
찬거리 사러 나가는 시간도 그 시간이지요.
교회에 도착해서 기도하는 동안에 토스트 아주머니가
14년째 그 자리에서 리어카 판을 엽니다.
곧 이어 오토바이를 탄 삼립빵 아저씨..
빙그레 우유 아줌마..
전기재료집, 냉동부속가게, 골동품상 순으로 가게 문을 엽니다.
기도를 마치고 나올 즈음이면
길 건너 롯데캐슬에서 사는 부부가 다정하게 손을 잡고
교회 앞에서 버스를 기다리는 시간과 일치합니다.
젊은 부부의 그윽한 눈동자가 미소 짓게 만듭니다.
교회 앞을 거쳐 동묘, 숭인동 버스정류장 쪽으로 걸어가는
150cm가 되지 않는 분이 걸어가는 시간도 그 시간입니다.
이런 시간들이 오늘은 헝클어졌습니다.
눈 때문입니다.
그래도 좋았습니다.
걸어서 나가는 길 코끝이 상쾌합니다.
눈꽃이 아름답습니다.
하나님 참 재간도 좋으시지
밤새 환희의 세상을 만들어 놓으셨습니다.
아파트 밖에 세워둔 차들마다 고운 솜이불을 가득 덮고 서 있습니다.
놀이터 수돗가에도 소복합니다.
운동기구에도 평화로운 실타래가 걸렸습니다.
자전거 바퀴에까지 고운 테가 쌓입니다.
새벽길..
미끄러워 힘들 것이란 생각은 안 듭니다.
좋은 것만 생각하기로 했습니다.
고운 걸 곱게 볼 수 있고..
우는 자와 함께 울 수 있는 감성..
그걸 잃지 말고 살아야 할 것 같습니다.
차도 없이 나간 아침이 여유로워
다른 날보다 오랫동안 하나님께 조잘조잘 사정을 아뢰었습니다.
통장 잔고가 늘어난 것 같은 뿌듯함이 밀려옵니다.
조금만 더 기도해도 이렇게 행복해지는데
그걸 못 늘리는 자신이 좀 부끄럽기도 합니다.
나무들마다 눈꽃을 이고 서 있습니다.
그냥 지나치고 말기에는 너무 아까워
카메라를 들고 나왔습니다.
공원의 벤치에도 부지런한 손길들은 있는 법이어서..
그새 벤치를 털어내고 길을 내고 있습니다.
서설(絮雪)을 즐기고픈 계획이 깨져서 속상했습니다.
한참을 눈 위에서 웃고 뛰놀았습니다.
가슴이 환하게 밝아졌습니다.
아침을 즐긴 후 끓여먹는 동태찌개 또한 일품입니다.
저절로 ‘감사해요, 주님’ 했습니다.
행복한 아침이었습니다.
3월에 내리는 눈이 주는 보너스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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