죄송한 마음 / 황인찬
지난 겨울에는
많이 슬펐습니다
식은 밥을
미역국에 말아 먹었습니다
다시는 그러지 않겠습니다
저는 자주 헷갈립니다
숟가락에 붙어버린 미역은
어떻게 해야 합니까
입으로 떼어 먹으면 되는 것입니까
아니면 국물에 풀어버려야 하는 것입니까
죄송합니다
그런 마음을 담아 이 글을 씁니다
.......
오늘은 모처럼 일찍 눈을 떴습니다
창밖에는 눈이 내리고 있습니다
미역은 생각보다
더 많이 불어납니다
물기를 짜낼 때는
어쩐지 서글퍼지지만
저는 종종 믿을 수 없습니다
저기 눈 속을 뚫고
지나가는 사람들에게도
나름의 인생이 있군요
제가 모르는 새에 태어나
또 모르는 새에 죽어버리는 것이군요
부엌에는 저 혼자뿐입니다
정신을 차려보면
흰쌀이 물속에 잠겨 있습니다
.....죄송합니다
지난겨울에는
많이 슬펐습니다
친척의 별장에서 많은 일이 있었습니다만
그것에 대해서는 달리 말하지 않겠습니다
슬픔은 인생의 친척이라고 합니다
그런 말을 책에서 읽었습니다
그렇다면 인생은
슬픔의 친척이 되는 것이겠지요
친척에 대해 생각하면
어쩐지 죄송해지는 군요
증기 배출이 시작된다고
모르는 여자가 말해줍니다
아침은 흰쌀밥과 소고기를 넣은 미역국입니다
흰쌀밥에 미역국은 아주 맛있고 매우 뜨겁습니다
너무 뜨거워서 잠시 식게 둔 것이
어느새 완전히 식어버렸군요
허옇게 굳은 기름이
국물 위에 떠 있습니다
더 이상은 슬퍼지지 않습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내 친구의 집은 어디인가 / 황인찬
용수는 내 친구, 어릴 적에 자주 놀았다
골목에 온종일 나와 있었다.
주말 아침에도 용수가 있었고
저녁의 귀갓길에도 용수가 있었다.
용수를 만나면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잠자리도 잡고 돌도 던졌다
여우비 맞으며 술래잡기하던 날,
나는 용수가 나를 찾지 못했으면 해서 집으로 돌아갔다
그후로 용수를 다시 볼 수 없었고
지금도 맑은 날에 비가 내리면 그때가 떠오른다
누가 내게 첫사랑에 대해 물으면
나는 이 이야기를 들려준다
황인찬 경기도 안양 출생 중앙대 석사
한양대 문창과서울예대 문창과 출강
제 31회 김수영 문학상. 제66회현대문학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