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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소개
압도적 찬사, 역대급 수상 기록, 영화 〈노매드랜드〉 원작
리베카 솔닛, 바버라 에런라이크 추천
미국에서 고정된 주거지 없이 자동차에서 살며 저임금 떠돌이 노동을 하는 사람들의 삶을 한 노년 여성을 중심으로 밀도 있게 묘사한 논픽션. 이 새로운 ‘노마드’ 노동자들은 미국 전역을 돌아다니고 있는데, 주거비용을 감당할 수 없어 집을 포기하고 길 위의 삶을 택한 퇴직한 노년의 노동자들이 주를 이룬다. 평생을 끊임없이 일했고, 앞으로도 그럴 테지만, 집 한 채 가질 수 없는 사람들.
책은 가장 취약한 계층을 가장 집요하게 착취하는 사회의 어두운 면을 드러내고 있지만, 그 속에서 살아가는 개개인의 삶이 주는 감동 또한 놓치지 않는다. 이들의 이야기는 사회적 불의에 분노하고 문제를 절감하게 하는 한편으로 우리에게 꿈이란 무엇인가, 또 집은 무엇인가를 되묻게 만든다. 이 책은 지금 가장 주목받는 감독인 클로이 자오가 연출하고, 프랜시스 맥도먼드가 주연을 맡아 동명의 영화로 제작되었다. 영화 〈노매드랜드〉는 2020년 베네치아 국제영화제 황금사자상을 비롯해 세계 유수의 영화제들을 휩쓸며, 평론가들의 극찬 속에 수상 기록을 여전히 갱신하고 있다.
👩🏫 저자 소개
제시카 부르더Jessica Bruder
2015 제임스 애런슨 사회정의 저널리즘상 수상 경력이 있는 저널리스트로, 서브컬처와 경제의 어두운 면을 주로 다룬다. 〈하퍼스 매거진〉 〈뉴욕 타임스〉 〈워싱턴 포스트〉에 기고한 바 있으며, 컬럼비아 대학 저널리즘 스쿨에서 강의하고 있다.
『노마드랜드』는 화제를 모은 〈하퍼스 매거진〉 수록 기사 ‘은퇴의 종말’을 토대로, 3년간의 밀착 취재와 풍부한 자료 조사를 더해 차를 집으로 삼아 유랑하는 노마드 노동자들의 면면을 생생하게 담아냈다. 책은 주로 2008년 금융 붕괴의 여파로 타격을 입은 이들의 삶의 형태가 어떻게 무너지고 변화되었나를 차분하고 날카롭게, 그리고 인간미 넘치는 시선으로 조명한다. 정주하지 않는 삶, 이동하는 집, 저임금 단기 노동이라는 급진적인 변화로 내몰린 이들이 마주한 가차 없는 현실과, 그럼에도 결국 그들이 어떻게 길 위에서 전혀 다른 삶, 전혀 다른 꿈에 도달하게 되는지를 밀도 있게 그려낸다.
📜 목차
서문
1부
1장 틈새 호텔
2장 끝
3장 미국을 살아내기
4장 탈출 계획
2부
5장 아마존 타운
6장 집결 장소
7장 타이어 떠돌이들의 랑데부
8장 헤일런
9장 더 이상 사탕무할 수 없는 경험들
3부
10장 H로 시작하는 단어
11장 홈커밍
코다 - 코코넛 속 문어
감사의 말
옮긴이의 말
참고 문헌
📖 책 속으로
임금은 낮고 주거비용은 치솟는 시대에, 그들은 그럭저럭 살아나가기 위한 한 방편으로 집세와 주택 융자금의 속박에서 자신들을 해방시켰다. 그들은 미국을 살아내고 있다.
하지만 다른 누구에게나 그렇듯, 그들에게도 생존이 전부는 아니다. 그래서 필사적인 노력으로 시작된 것은 좀 더 위대한 무언가를 외치는 함성이 되었다. 인간으로 산다는 것은 최소한의 생활 이상의 무언가를 열망하는 일이다. 우리에게는 음식이나 거주지만큼이나, 희망이 필요하다.
-p.14~15
상승하는 집세와 낮은 임금의 충돌, 멈출 수 없는 힘과 움직일 수 없는 대상의 부딪힘이라는 모순. 그들은 마치 바이스에 낀 것 같았다. 영혼을 탈탈 털어가는 소모적인 노동에 자신의 시간을 몽땅 바치는 대가로 간신히 집세나 주택 융자금을 낼 수 있을 만큼의 보수를 받으면서, 장기적으로 상황을 나아지게 할 방법도, 은퇴할 수 있으리라는 전망도 없는 상황에 끼어버린 느낌이었다.
-p.24
나는 린다의 이야기에 최대한 귀를 기울이며 주의 깊게 들었다. 그러면 사라지지 않는 몇몇 질문들에 대한 답을 찾을 수 있을 것 같아서였다. 어떻게 해서 열심히 일하는 예순네 살 여성이 결국 가진 집도, 영구적으로 머무를 장소도 없는 처지에 놓이고, 살아남기 위해 앞날을 알 수 없는 저임금 노동에 의존하게 되는지를. 해발 2킬로미터에 이르는 높다란 삼림지대에서, 오락가락하는 눈과 함께, 또 어쩌면 퓨마들과도 함께, 소형 트레일러에 살면서, 변덕을 부려 근무시간을 삭감하거나 심지어 그를 해고해버릴지도 모르는 고용주들의 뜻대로 화장실을 문질러 닦으며 살게 되는지를. 그런 사람에게 미래란 어떤 그림일까?
-p.55
린다는 궁금했다. 그리고 그 궁금증은 처음이 아니었다. 모두들 어떻게 노년을 살아갈 수 있는 걸까? 린다가 평생 가져본 숱한 직업 가운데 그 무엇도 지속되는 경제적 안정을, 아주 조금도 가져다주지 못했다. “연금을 들 여유조차 없었어요.” 린다가 말했다.
-p.59
2015년, 여성들은 남성들이 1달러를 벌 때 여전히 80센트밖에 벌지 못했으며, 어린 자녀들과 연로한 부모를 돌보는 무임금 노동을 할 가능성은 남성보다 높았다. (린다는 두 아이를 길러낸 데다 1990년대 중반 공격적인 뇌종양에 걸린 자신의 어머니를 위해 나중에 입주 돌봄노동까지 했다.) 여성의 생애임금은 더 적고, 누적 저축액도 적다. 그리고 여성의 수명이 더 길기 때문에ㅡ남성보다 평균 5년 더 오래 산다ㅡ그 돈은 더 먼 미래까지 버텨줘야 한다.
-p.71
둘 중 누구도 그들의 집값보다 높은 대출금을 갚으면서 남은 생을 보내는 일은 상상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그들은 2003년형 피프스휠 트레일러 카디널을 샀고, 길로 나섰다. “우린 그냥 걸어 나왔어요.” 애니타가 말했다. “우리 자신에게 이렇게 중얼거렸죠. ‘우린 더 이상 이 게임 안 해.’”
-p.99
“전 집값이 떨어지는 경험을 한 번도 해본 적이 없었거든요.” 고개를 저으며 밥이 말했다. 그는 새로운 자기 삶의 “천천히 모습을 드러내는 현실”을 영화 〈매트릭스〉 안에서 각성하는 것에, 우리가 살고 있던 즐겁고 예측 가능한 세계가 신기루였고, 잔인한 디스토피아를 감추기 위해 세워진 거짓이었음을 깨닫는 것에 비유했다. “사람들 대부분이 위안으로 삼는 ‘안정감’이라는 것, 그게 환상이 아니라고 확신하지 못하겠어요.”
-p.99~100
최근의 여론 조사는 미국인들이 이제 죽음을 두려워하기보다는 자산이 버텨주는 나이보다 오래 사는 일을 더 두려워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또 다른 조사에서는, 나이 많은 미국인 대부분이 여전히 은퇴를 ‘휴식의 시간’으로 보고 있음에도, 자신이 전혀 일하지 않으면서 말년을 보내리라고 예상하는 사람은 겨우 17퍼센트에 불과하다는 사실이 드러난다.
-p.109~110
“밴으로 들어갔을 때, 사회가 내게 말한 모든 것이 거짓임을 깨달았습니다. 결혼을 해야 하고, 흰색 말뚝 울타리를 두른 집에서 살아야 하고, 직장에 나가야 하고, 그다음엔 삶이 끝나는 바로 그 순간에 행복해야 한다는, 하지만 그때까지는 비참하게 살아야 한다는 이야기가요.” 그가 한 인터뷰에서 내게 말했다. “밴에서 사는 동안 전 태어나서 처음으로 행복했습니다.”
-p.125
“한때는 정해진 대로 하면 (학교에 가면, 직장을 얻으면, 그리고 열심히 일하면) 모든 게 잘될 거라는 사회적 계약이 있었죠.” 그가 방문자들에게 말했다. “오늘날 그건 더 이상 사실이 아닙니다. 사회에서 하라는 대로 모든 걸 제대로 해도 결국에는 파산하고, 혼자 남고, 홈리스가 될 수 있습니다.”
-p.126
그는 유랑하는 삶을 미봉책으로, 사회가 안정되어 사람들이 다시 주류에 통합될 시점까지 그들이 난관을 극복하도록 도와줄 무언가로 포장하지 않았다. 그보다는, 너덜너덜해진 사회질서 바깥에서 작동하거나, 심지어는 그 질서를 초월할 수 있는 사람들로 이루어진 유랑 부족을 형성하기를 염원했다.
-p.133
린다는 자신이 밥의 웹사이트를 발견한 뒤로 얼마나 ‘생존 모드’로 지내왔는지 이야기했다. “이제는 생존만 하는 게 아니에요. 나는 삶을 즐기고 있어요!” 린다가 놀라워했다. “그 말은, 그러니까 이런 거죠, 누구나 노년을 풍요롭게 보내고 싶어하잖아요. 그냥 하루하루 살아남는 게 아니라요.”
-p.245
“걱정 말아요.” 린다는 그렇게 대답했다. “우린 쓰러지지 않게 서로를 붙잡아줄 거예요.”
-p.268
내가 보는 대로의 진실은, 사람들은 심지어 가장 혹독하게 영혼을 시험하는 종류의 고난을 통과하면서도, 힘겹게 싸우는 동시에 낙천적인 태도를 유지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것은 그들이 현실을 부정한다는 뜻이 아니다. 그보다는, 역경에 직면했을 때 적응하고, 의미를 추구하고, 연대감을 찾으려는 인류의 놀라운 능력을 증명해준다. 리베카 솔닛이 책 『이 폐허를 응시하라』에서 지적하듯, 사람들은 위기의 시기에 기운을 내려고 노력할 뿐 아니라, “놀랍고도 강렬한 기쁨”을 느끼면서 그렇게 한다.
-p.272
그들은 법률적 관점에서 보면 자신들이 홈리스임을 알고 있다. 하지만 누군들 그 단어의 무게를 감당하며 살 수 있을까? ‘홈리스’라는 용어는 문자 그대로의 정의를 넘어 전이되면서 끔찍한 위협으로 변해버렸다. 그 말은 이렇게 속삭인다. 추방된 사람들. 낙오자들. 타자들. 빈털터리가 된 사람들. “우리 사회의 불가촉천민들.” 라본은 자신의 블로그에서 그렇게 지적했다.
-p.328~329
그는 밴 생활자들은 망가지고 타락해가는 사회질서에서 빠져나온 양심 있는 이의 제기자들이라고 주장했다. 자의로 선택했건 그러지 않았건, 그들은 자신들의 생활방식을 받아들인 사람들이었다.
-p.329
“저는 여전히 두려움과 즐거움 사이에서 오락가락하는 기분이에요.” 그가 말했다. 우리는 미래에 관해 이야기를 나누던 중이었다. “캠핑을 하거나 밴에서 살기에도 너무 나이가 많아지면, 사람들은 어디로 가게 될까요?” 그가 생각에 잠겨 물었다.
-p.351
미국 곳곳의 집들에서는 부엌 테이블 위에 내지 못한 청구서들이 흩어져 있다. 밤늦게까지 전등은 꺼지지 않는다. 피로 속에서, 때로는 눈물을 터뜨리며, 사람들은 똑같은 계산을 하고 또 하고, 다시 하고 또 다시 한다. 임금에서 식료품 구입비를 뺀다. 의료 요금을 뺀다. 신용카드 사용 금액을 뺀다. 공공요금을 뺀다. 학자금 대출과 자동차 할부금을 뺀다. 그리고 이 모든 지출 중에 액수가 가장 큰 것. 집세를 뺀다.
점점 커지는 예금과 부채 사이의 간극에는 질문 하나가 매달려 있다. 계속 살아가기 위해 당신은 이 삶의 어떤 부분을 기꺼이 포기하겠는가?
-p.400
사람들을 밤늦게까지 깨어 있게 만드는, 계산기를 두드려봐도 감당이 안 되는 가계 상태라는 문제가 왜 생겨나는지는 전혀 비밀이 아니다. 평균 소득을 비교할 때, 상위 1퍼센트에 속하는 사람들은 이제 하위 50퍼센트에 속하는 사람들의 81배를 벌고 있다. 소득 사다리에서 하위 50퍼센트에 속하는, 약 1억 1700만 명에 이르는 성인 미국인의 소득은 1970년대부터 변하지 않은 채 그대로다.
이것은 임금 격차가 아니다. 차라리 하나의 단절이다. 그리고 점점 커지는 그 분열의 대가는 우리 모두가 치르고 있다.
-p.401
“실험실에 있는 문어 본 적 있어요? 그 친구들이 얼마나 똑똑한지” 린다가 감탄하며 말했다. “문어들은 탈출의 명수예요!” (...) 더 많은 실험들이 이어졌다. “조건을 계속 더 어렵게, 더 어렵게 만들었어요.” 린다가 말을 이었다. (...) 무엇을 어떻게 하든 상관없이, 문어는 빠져나갔다.
“가끔은 사람들도 그렇게 할 수 있지요.” 내가 말했다.
“맞아요. 누가 우리를 상자에 가두려고 한다면요.” 린다가 말했다. 그러고는 웃었다.
-p.403
🖋 출판사 서평
평생 쉼 없이 노동하는,
그러나 집 한 채 가질 수 없는 삶에 대하여
린다 메이, 예순네 살, 지프에 작은 연노란색 트레일러를 달고 광활한 국유림으로 달려가는 중이다. 여행을 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트레일러는 그의 집이다. 그는 그 집을 ‘가지고’ 일을 하러 달려간다. 여름 한 계절 동안, 그는 국유림에 있는 캠프장 관리를 맡을 것이다. 운이 좋으면 주당 40시간을 꽉 채워서, 최저임금보다 조금, 아주 조금 더 받으면서. 물론 근무시간은 회사가 원하는 대로 그때그때 조정될 것이고, 언제든 사유나 예고 없이 해고될 수 있다.
지금 미국에는 집을 포기하고 밴이나 RV, 심지어 세단까지, 다양한 차에서 거주하는 사람들이 있다. 이들은 일자리를 찾아 미국 전역을 누비는데, 대부분 더는 주거비용을 감당할 수 없어진 은퇴 연령대의 사람들이다. 이 새로운 노마드 노동자들은 많은 수가 중산층이었고, 누구보다 사회 규범에 충실하게, 안정을 추구하며 살아왔다. 하지만 아무리 애써봐도 집값은 수입을 훌쩍 뛰어넘고, 은퇴는, 일하지 않고 쉬는 삶은 불가능하다. 그들은 마침내 집을 포기하고 길 위로 나선다. 이것은 사회도, 그들 자신도 상상하지 못한 미래다. 그리고 지금, 그와 같은 사람들이 너무나도 많다.
이들은 고용주에게는 필요할 때에, 필요한 만큼만 일을 시키고, 최대한 낮은 임금을 주고, 언제든 해고할 수 있는 노동자들이다. 그중 가장 적극적인 고용주인 아마존은 연말 성수기에 폭증하는 물량을 감당하기 위해 노마드 노동자들을 모집하는 ‘캠퍼포스’라는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몇 년 전 당시 아마존 최고경영자였던 제프 베이조스는 자신만만하게 2020년까지 이런 노동자들 네 명 중 한 명은 아마존에서 일해본 경험이 있게 될 거라고 예견했다. 린다 메이 또한 그 넷 중 하나에 곧 합류하게 될 터였다.
집 없는 삶은, 은퇴 이후의 미래는 선택일까 결과일까
우리의 삶을 되묻는 노마드들의 이야기
아마존 물류 창고에서 일한다는 건, 10시간 이상을 주야간 교대 근무로 일하며, 매일 하프 마라톤 거리 정도를 걷고, 반복되는 단순 동작으로 머릿속이 멍해진 채 진통제를 몇 알씩 삼키며, 그래도 사라지지 않는 끔찍한 통증을 견뎌야 한다는 의미다. 노마드 노동자들이 하게 되는 일 어느 하나도 흔히 상상하는 노년의 ‘소일거리’와는 거리가 멀다. 이들은 산더미같이 쌓이는 사탕무와 씨름하며 12시간을 버티거나, 커다란 캠프장을 관리하며 갖가지 일을 몽땅 떠맡거나, 각종 부상과, 때로는 죽음을 감내하며 놀이공원에서 피곤한 하루하루를 보낸다. 2016년에 이미 900만 명에 달하는 65세 이상의 미국인들이 여전히 일을 하고 있다는 통계가 나왔고, 그 증가세는 멈추지 않고 있다. 몇 년 전 한 여론 조사는 사람들이 “이제 죽음을 두려워하기보다는 자산이 버텨주는 나이보다 오래 사는 일”을 더 두려워하고 있음을 알려주었다. 죽음보다도 두려운 삶, “새로운 은퇴자들의 시대”는 그렇게 와 있다.
아마존과 같은 기업들은 어째서 젊고 건강한 사람들이나 할 법한 고된 일에 고령의 노동자들을 선호할까? 순응적이고 성실한 태도 때문이기도 하고, 사회적 약자를 채용할 때 주어지는 세액 공제를 받기 위해서이기도 하다. 이들은 집을 들고 나타나 작은 기업 의존형 마을을 형성했다가 필요 없어지면 사라진다. 그러니까 아주 맞춤하게, 간편하고 값싼 노동력인 것이다.
이들의 삶은 하나의 질문으로 이끈다. 어떻게 해서 평생 열심히 일해온 사람들이 결국 집도, 영구적인 거주지도 없이 앞날을 알 수 없는 저임금 노동에 의존해 살아가게 되는 걸까. 린다 메이는 갖가지 직업을 전전하며 살았다. 트럭 운전사, 칵테일 웨이트리스, 종합 건설업자, 그 외에도 일고여덟 가지쯤. 근근이, 그래도 끊임없이 살길을 찾으며 두 아이를 거의 혼자서 키워냈다. 아픈 어머니를 돌봤다. 하지만 이 지칠 줄 모르는 베테랑에게도 끝은 찾아왔다. 어디에도 일자리가 없었다. 린다는 궁금했다. 모두들 대체 어떻게 노년을 살아갈 수 있나.
노마드들에겐 저마다 수백, 수천 가지 사연이 있다. 2008년 금융 붕괴로 직격탄을 맞아 집을 압류당하거나 예금이나 주식, 개인연금을 날려버린 사람들도 있고, 그 후 이어진 대침체 기간에 사업이 기울거나 직장에서 밀려난 사람들도 있다. 어떤 이들에겐 경제 위기 속에서 이혼이나 부상 같은 개인적 불행을 견딜 만한 안전망이 없었다. 하지만 국가는 그들에게 개인의 일은 개인이 알아서 하라고 한다. 가난은 당신 탓이고, 당신은 온전히 당신 책임이라고. 하지만 이들은 단순히 실패한 개인들의 합이 아니다. 경제체제의, 국가 시스템의 실패를 말해주는 지표다. 그리고 차량에서 살아가게 되지 않더라도, 많은 미국인들이 그들과 마찬가지의 변화를 강요받고 있다. 빚을 따라잡을 수 없는 수입, 점점 더 벌어지는 임금 격차는 많은 가구들의 가계 상태를 위태위태하게 만들고 있다. 더 이상 사회이동은 불가능하고, 불평등과 단절의 골은 돌이킬 수 없이 깊어진다. 그렇게 시스템이 변화하는 사이,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의 삶이 파괴되고, 사회질서 밖으로 밀려나고 있다.
텅 빈 미래로부터 탈출하기 위하여
길 위에서 찾아낸 전혀 다른 삶, 전혀 다른 꿈
노마드들은 기본적으로 막다른 골목으로 몰리고 또 몰려서 더는 갈 곳도 숨을 곳도 없이 길 위로 내밀린 사람들이다. 대부분은 절망 속에서 이 삶을 시작한다. 몰락한 사람, 홈리스, 실패자, 낙오자, 바닥까지 가버린 사람이라는 생각에 잠들지 못하는 밤들이 이어진다. 이들은 화장실을 처리하고, 샤워를 하는 것부터 숨을 곳을 찾아 주차하는 방법까지 모든 것을 다시 다 배워야 한다. 그리고 그중에 즐겁고 아름다운 일은 별로 없다. 생존을 위해 자조적으로 “노예 노동”이라고 일컫는 일자리들을 전전해야 하고, 때로는 홈리스라는 낙인이 찍혀 가족들로부터도 버림받는다.
하지만 길 위의 삶이 단지 생존인 것만은 아니다. 노마드들은 길 위에서 전혀 생각지 못한 행복, 전혀 다른 삶의 방식을 발견한다. 중산층이라는 환상을 좇는 무리에서 밀려날 때의 막막함과 불안은 이내 사라진다. 오히려 실은 잃은 것이 별로 없음을, 마침내 지긋지긋한 집세와 주택 융자금의 압박에서 해방되었음을 깨닫는다. 밴을 집답게 꾸미고, 생활을 되찾고,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면서 이들은 이 새로운 생활방식을, 자유와 모험의 삶을 다시 한번 받아들인다.
그리고 노마드들은 혼자 떠도는 외톨이가 아니다. 이들에겐 그들만의 공동체가 있고, 동류의식이 있다. 웹사이트에서,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길 위의 만남에서 그들은 정보를 교환하고 서로를 격려한다. 계절성 일자리들의 해고가 시작되는 한겨울에는 황량한 사막을 들뜬 열기로 채우는 그들만의 행사를 열기도 한다. 어떤 이들은 가족보다 더 가족 같은 ‘밴 가족’이 되어서, 함께 휴일을 보내고 생일을 축하하고 아플 때 돌봐주기도 한다.
그렇다고 신산한 가난의 현실을 멋지게 포장할 수는 없지만, 그래도 우리는 이들에게서 험난한 여정 속에서도 여전히 꿈꾸기를 멈추지 않는 끈질긴 용기, 삶의 품격을 지키려는 노력들, 한곳에 정주하지 않는 삶을 하나의 생활방식으로 받아들이는 유연함과 낙천성을 목격하게 된다. 3년간 이들과 함께한 저자는 이 낙천적인 태도가 현실을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고 말한다. “그보다는, 역경에 직면했을 때 적응하고, 의미를 추구하고, 연대감을 찾으려는 인류의 놀라운 능력을 증명”한다고, 위기의 시기에 더욱 빛을 발하는 역설적인 힘을, 순간순간 반짝이는 행복을 발견해내는 능력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말한다.
우린 쓰러지지 않게 서로를 붙잡아줄 거예요
놀랍고도 강렬한 기쁨으로, 그렇게 연결되어
책은 “어디에나 틈은 있어. 빛은 그 틈을 통해 들어오지”라는 레너드 코언의 가사로 문을 연다. 틈은 체제의 빈곳이고, 균열의 흔적이다. 혹은 부서진 삶의 증거일지도 모른다. 어쨌거나 그렇게 벌어진 틈을 통해, 빛은 들어온다. 이들은 막다른 골목에 내몰려 어쩔 수 없이 길로 나선 사람들이지만, 그게 결말은 아니다. 길 위에 선 그 자리에서 삶은 다시 시작된다.
쓰라리고 험난한 고난을 겪으면서도 우리는 혼자가 아닐 수 있다. 사막 같은 땅들과 지평선이 까마득한 길들과, 곡예하듯 구불구불한 산길을 외로이 운전하고 있대도 혼자가 아닐 수 있다. 고된 육체노동을 견딜 수 있을지 걱정하는 한 노마드에게 린다는 말한다. “우린 쓰러지지 않게 서로를 붙잡아줄 거예요.”
혼자가 아니라는 감각, 좋은 일들이, 좋은 사람들이 있을 거라는 믿음. 그렇게 그들은 길 위를 홀로 달리고, 차에서 몸을 구겨 잠들면서도, 끝없이 희망을, 꿈을 갱신한다. 왜냐하면 당연하게도, 누구나 풍요롭게 살고 싶어하므로. 그냥 하루하루 살아남는 게 아니라. 린다는 “모든 것을 곱씹어본 끝에 삶은 멋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리하여 낯설고 불안했던 길 위에서 “나는 행복하고, 기쁘고, 자유롭다”고 말하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