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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야말로 디지털 세상이다. 주변을 둘러보면 온통 모바일·디지털 기기다. 사람들은 종이 신문 대신 모바일 기기나 PC로 뉴스를 접한다. 음악을 감상할 때에도 카세트테이프나 CD 대신 온라인 음원 사이트에 접속한다. 지도를 펼치기보다 스마트폰 지도 애플리케이션에 접속하고, 친척과 둘러앉아 명절에나 하던 게임을 휴대전화로 언제든 즐긴다.
‘너무 빠르고 전면적인’ 디지털 물결이 두려운 사람들
급격한 디지털화(化) 현상은 수치로도 확인된다. 영국 소셜 미디어 전문 기업 ‘위아소셜(We Are Social)’에 의하면 2017년 1월 현재 세계 인구는 74억7600만 명. 그중 약 절반(37억7300만 명)이 인터넷을, 37%(27억8900만 명)가 소셜 미디어를 활발하게 쓰고 있다. 스마트폰 등 모바일 기기 사용자는 66%(49억1700만 명)에 이르며 모바일 기기로 소셜 미디어를 즐기는 사람은 34%(25억4900만 명)다.
이 같은 추세엔 점점 가속도가 붙고 있다. 2016년 한 해 동안 인터넷과 모바일 기기 사용자 수는 각각 10%와 5% 증가했다. 사실 전체 규모를 떠올리면 이것만 해도 엄청난데 소셜 미디어 사용자 전체(21%)와 모바일로 소셜 미디어를 즐기는 인구(30%)의 증가세는 더 가파르다. 웬만한 사람은 누구나 디지털 기기를 사용하고 이를 통해 세상과 활발히 연결돼 있다 해도 무방한 수준이다.
디지털 물결이 세상을 휩쓸기 시작하면서 사람들의 일상도 일파만파로 달라지고 있다. 대규모 변화가 갑자기 감지되면 사람들은 대부분 일단 경계하고 본다. ‘뭐가 또 잘못돼가고 있는 건 아닐까?’ 덜컥 걱정부터 앞선다. 너무 빠르고 전면적인 변화에 대한 경고의 목소리도 높다. 가장 첨예한 관심사는 역시 ‘먹고 사는’ 일, 즉 생계다.
올봄 출간돼 전 세계적으로 관심을 모았던 책 중 ‘2030 고용절벽 시대가 온다’가 있다. 일본 경제학자 이노우에 도모히로(井上智洋)가 쓴 이 저서를 관통하는 메시지 역시 ‘새로운 시대적 흐름에 대한 경고’였다. ‘4차 산업 혁명은 일자리를 어떻게 변화시킬까?’란 부제가 붙은 책은 디지털 세상(digitalized world)을 사는 현대인의 마음속 은밀한 불안을 대변했다. (삼성전자 뉴스룸 역시 지난 5월 10일자 스페셜 리포트 ‘4차 산업혁명 시대, 내 일자리는 무사할까?’를 통해 이 책이 제시한 질문과 그 타당성 여부를 검토한 적이 있다.)
LP·종이·필름… 디지털화되지 않은 ‘진짜 사물’이 온다
그런데 ‘2030 고용절벽…’보다 더 근본적으로 디지털 세상에 반기를 드는 것처럼 보이는 책 한 권이 최근 출간됐다. 캐나다 출신 프리랜서 저널리스트 데이비스 색스(David Sax)가 쓴 ‘아날로그의 반격’(어크로스)가 그것. 한국어판 제목엔 ‘반격’이란 단어가 쓰였지만 원제(‘The Revenge of Analog’)를 직역하면 ‘아날로그의 복수’가 돼 느낌이 한층 강해진다. 부제는 ‘Real Things and Why They Matter’, 즉 ‘진짜 사물과 그들이 중요한 이유’다. 여기서 ‘진짜 사물(Real Things)’이란 디지털화되지 않은 아날로그적 사물을 뜻한다. 뒤집어 말하면 ‘디지털화된 건 진짜 사물이 아니다’란 뉘앙스도 포함한다.
상당히 도발적인 제목을 앞세운 이 책은 모든 게 디지털화되고 있는 듯 느껴지는 요즘 세상에서 보란 듯이 건재를 과시하는 아날로그적 요소를 광범위하게 조명한다. △레코드판 △종이 △필름 △보드게임 △인쇄물 △오프라인(매장) △일(로봇이 아닌 인간 노동자) △학교(스마트 기기가 아닌 인간 교사) △실리콘밸리(디지털 하드웨어·소프트웨어 제조 기업의 아날로그적 기업 문화) 등 아홉 가지 분야 키워드를 중심으로 ‘브레이크 없이 디지털로 향해가는 세상에서 여전히 죽지 않을 뿐 아니라 오히려 더 큰 기세로 살아나는’ 아날로그적 요소가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
‘반격’까진 몰라도 아날로그의 ‘부활’을 가장 잘 보여주는 사례 중 하나가 플라스틱 LP(Long Playing) 열풍이다. 책에서 ‘스마트폰을 탈출한 미래 세대의 음악’이란 소제목과 함께 등장하는 이 장의 주인공은 ‘유나이티드레코드프레싱(URP)’. 미국 테네시주(州) 내시빌에 위치한 LP 제작 공장이다.
1949년 설립, 한때 하루에만 수십 만 장의 음반을 찍어냈던 이 공장은 1990년대 CD와 인터넷 스트리밍 음악에 치여 고용 인원을 대폭 감축해야 했다. 공장주는 대출을 받아가며 하루 평균 몇 천 장의 LP를 근근이 찍어내며 버텼다. 상황이 역전된 건 2010년. 매출이 조금씩 늘기 시작하더니 2015년엔 직원 수가 가장 적을 때의 3배까지 늘었다. 요즘 이곳은 주 6일(일요일 제외) 하루 24시간 쉼 없이 가동된다. 쏟아지는 주문량을 제때 소화, 납기를 맞추기 위해서다.
‘레코드 부활’의 조짐이 비단 URP에서만 나타나고 있는 건 아니다. 유럽의 한 LP 공장주는 2015년 생산된 LP 수를 3000만 장 이상으로 추산했다. LP 수요 급증을 체감하게 하는 건 미국을 대표하는 음악 도시인 내시빌을 비롯, 세계 각국 대도시와 문화 중심지를 중심으로 늘고 있는 LP 소매점. 색스는 오늘날 LP 구매 고객 대부분이 10대와 20대, 여성에 치우쳐 있단 사실에서 “LP 관련 수요는 향후 더 크게 늘어날 것”이라고 단언한다. 정말 그의 말대로 아날로그는 되살아나 디지털에 대한 반격을 시작한 걸까? 그 기세에 (설마!) 디지털이 휘청거리고 심한 경우 쓰러져 패배할 수도 있게 될까?
‘디지털 경도 사회’ 속 현대인, 그들의 인생 균형 잡기
올 1월, 삼성전자 뉴스룸은 ‘디지털 세상을 뒤집다 ⑤몸과 마음_인간은 그리 호락호락하지 않다’란 제목의 스페셜 리포트에서 ‘퀴블러-로스 변화 곡선(The Kübler-Ross change curve)’<아래 참조>을 소개한 적이 있다. 스위스 출신 미국 정신병리학자 엘리자베스 퀴블러-로스(Elizabeth Kubler-Ross, 1926~2004)가 제안한 이 개념은 강도가 높거나 규모가 큰 변화를 겪는 인간 심리 상태 변화를 그래프로 나타낸 것이다(당시엔 ‘디지털이 인간의 몸과 마음에 끼치는 영향’을 설명하기 위한 배경으로 활용됐다). 오늘날, 특히 기업 경영에서 인간 심리를 설명하는 메커니즘 중 하나로 요긴하게 참조되는 이론이기도 하다.
인간은 자신이 감당하기 힘들 정도로 큰 변화 앞에서 일단 ‘충격’을 받는다. 그 다음엔 달라진 상황에 대해 “이건 분명 사실이 아닐 것”이라 ‘부정’하며 그 생각을 뒷받침할 만한 증거 수집에 나선다. 그러다 아무리 봐도 변화가 지속되고 있단 사실이 확실해지면 그 사실에 ‘좌절’하기 시작한다. 바로 이 단계에서 분노가 일어나는데 그때 에너지를 너무 많이 소모하면 에너지 부족 상태에 빠진 후 깊은 침체기로 들어가며 ‘우울’해진다. 그 상태로 일정 시간이 흐르면 다시 에너지가 모이면서 무수한 ‘실험’과 ‘결정’을 통해 새로운 상황에서 적응하는 방법을 찾아간다. 그 결과, 한 단계 높은 수준으로의 ‘통합’을 이룰 수 있게 된다.
‘디지털 경도(傾倒) 사회’를 살아가는 현대인의 심리에 퀴블러-로스 변화 곡선을 적용해보면 어떨까? 최근 수십 년간 디지털화가 급물살을 탄 건 주도하는 쪽(공급자)과 호응하는 쪽(수요자) 간 호흡이 제법 잘 맞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모든 수요자가 그 기간 중 일어난 변화를 두 팔 벌려 환호한 건 결코 아니다. 고용절벽이니, 아날로그의 반격이니 하는 키워드를 녹여낸 책이 서점가에서 심상찮은 호응을 얻고 있는 것만 봐도 그 사실은 충분히 입증된다.
명상 용어 ‘마음챙김’ 유행, 왜 실리콘밸리서 시작됐을까?
새로운 흐름이 이전 흐름의 단절을 의미하는 건 아니다. 이는 인류 역사를 통해 입증된 사실 중 하나다. 신기술은 이전 기술을 어느 정도 대체한다. 하지만 대개의 경우 양자는 ‘보완적 공존’ 형태로 존재한다. 5000년 전 쓰인 걸로 간주되는 신석기시대 돌(石) 가공법 중 일부가 현대 첨단 산업에서 응용되기도 하는 세상이다. 석기시대가 끝나고 청동기시대가 시작됐을 때에도, 청동기시대가 퇴장하고 철기시대가 막을 올렸을 때에도 사람들은 불안에 떨었다. ‘안온했던 지금까지의 세상이 새 시대 도래와 함께 무너져버리면 어쩌지?’ 제1차 산업혁명의 여파로 생겨난 러다이트 운동[1]이 대표적 예다.
하지만 오늘날 “인간 삶이 기계 때문에 벼랑 끝으로 내몰렸다”고 믿는 사람은 없다. 기계는 인간이 지정했거나 피하고 싶은, 단순하고 위험하며 힘든 작업에 주로 투입된다. 기계가 제대로 작동되려면 지속적 관리와 보수는 반드시 필요하다. 보다 효율적 작업을 수행하려면 끊임없는 개발과 혁신도 병행돼야 한다. 그 작업은 모두 인간의 몫이다. 대부분의 사람이 그 사실을 너무도 잘 알고 있다.
디지털 기술도 마찬가지다. 정보통신 기술의 비약적 발전은 인간 사회를 확 뒤집어놓을 정도로 강렬한 것이다. 하지만 냉정하게 관찰하면 그중 상당수는 아날로그적 요소와의 공존을 통해 조금씩 앞으로 나아가고 있다. 데이비드 색스의 책도 좀 더 찬찬히 들여다보면 실은 (‘아날로그의 무조건적 반격’이 아니라) ‘디지털과 아날로그의 조화로운 공존’을 말하고 있단 사실을 금세 깨달을 수 있다.
실제로 책에 등장하는 아날로그 기반 상품이나 아이디어의 부활 사례는 예외 없이 ‘디지털 문화 확산’ 덕에 더 큰 힘을 받았다. 2007년 이후 뚜렷한 성장세를 보이고 있는 LP 산업 부흥의 1등 공신도 인터넷이었다. “좀 무겁거나 거추장스러워도 바늘이 홈을 건드리며 내는 소리 울림이 좋다”는 소비자는 처음부터 소수였다. 이들 ‘LP 마니아’가 인터넷으로 본인이 원하는 LP를 검색하고 구매하는 과정이 확산되며 아날로그 음악을 ‘제2의 전성기’로 이끈 것이다.
색스의 책 마지막 장 ‘실리콘밸리; 낮에는 코딩, 밤에는 수제 맥주’는 디지털과 아날로그가 ‘이상적 공존’으로 나아가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보여준다. 실제로 이 장에 등장하는 미국 실리콘밸리 골드칼라들은 ‘디지털 문화의 선도자’란 별칭에 어울리지 않게 (디지털 기술 개발에 집중하는) 업무 시간을 제외한 나머지 시간을 대체로 아날로그(적 행위)에 할애한다.
멀리 갈 것도 없다. 명상의 일종인 ‘마음챙김(mindfulness)’이 실리콘밸리를 중심으로 크게 유행했단 사실은 의미심장하다. 명상이야말로 반박하기 힘든 아날로그적 행위의 대표 격이기 때문이다. (삼성전자도 올봄 경북 영덕군에 ‘삼성전자영덕연수원’을 짓고 마음챙김 명상으로 임직원 심리 건강을 돌보는 교육 프로그램 운영에 나섰다.) 어쩌면 현대인은 지금 퀴블러-로스 변화 곡선의 저점(低點)을 일찌감치 통과, 결정과 통합을 향해 나아가고 있는지도 모른다.
‘대세’ 디지털과 ‘부활’ 아날로그, 이기적 유전자의 선택은
영국 행동생물학자 겸 진화론자 리처드 도킨스(Richard Dawkins)는 ‘진화심리학의 고전’으로 꼽히는 자신의 저서 ‘이기적 유전자’(원제 ‘The Selfish Gene’)에서 인간을 비롯한 생명체가 살아가는 이유를 이렇게 정리했다. “자신이 성공적으로 생존하기 위해서, 그리고 자식을 낳아 그 자식 역시 성공적으로 생존해가도록 도와주기 위해서”. 모든 생명체는 자기 유전자의 영속을 위해 살아가는 존재이며, 그 때문에 늘 자신의 생존에 가장 유리한 방향으로 전략을 짜서 이행할 수밖에 없단 얘기다.
숨가쁘게 달려온 디지털화도, 뒤이은 아날로그의 반격도 그 주체는 변함없이 인간이(었)다. 그리고 도킨스에 따르면 가장 진화된 생명체인 인간 역시 예나 지금이나 큰 흐름에서 보면 궁극적 진화의 법칙에서 벗어나지 않았다. 디지털과 아날로그가 흥미롭게 뒤섞이는 지금 상황은 훗날 어떤 역사로 기록될까? 그 과정에서 인간이 선택한 ‘생존에 가장 유리한 전략’은 또 어떤 형태가 될까? 반격에 나선 아날로그의 미래 역시 그 흐름 어디쯤에 위치하고 있을 것이다.
첫댓글 저는 고전음악을 좋아해서 LP, CD, Tape, 음원 형식 등으로 다양하게 음반을 소장하고 있습니다. 다 합치면 5000장 정도 되는데 LP는 1000여장, Tape 200여개, 음원으로 리핑된 것은 500장 정도, 나머지는 4000장 정도가 CD입니다.
상호 비교해서 들어보면 소리는 LP-Tape-CD-음원 순서이고 편리함은 정반대 순입니다.
다만 고음질 파일의 경우(SACD) 소리가 LP에 육박하므로 음질면에서는 이제 LP가 비교 우위에 있다고 보기 힘듭니다. 다만 고음질 파일은 용량이 커서 외장하드가 용량이 큰 게 필요합니다. 그래도 LP보다는 부피의 중압감이 없다고 봐야죠.
요즘 세상이 편리하긴 하지만 가끔씩 예전이 그립기도 하네요~
과학기술이 발달하면서 점점더 직접 체험할 수 있는 아이템들이 각광 받을거라
생각 됩니다. SF장르의 영화들을 보면 과거 유물들을 보면서 신기해 하고 만져보고
느껴보고 하는거에 흥분들하고 그러는거 보면 아날로그 아이템들과 체험할 수 있는
아이템들이 돈이 될 듯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