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벨의 피부터 즈카르야의 피에 이르기까지 예언자들의 피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할 것이다.>
+ 루카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11,47-54
그때에 주님께서 말씀하셨다.
47 “너희는 불행하여라! 바로 너희 조상들이 죽인 예언자들의 무덤을 너희가 만들기 때문이다. 48 이렇게 너희 조상들은 예언자들을 죽이고 너희는 그들의 무덤을 만들고 있으니, 조상들이 저지른 소행을 너희가 증언하고 또 동조하는 것이다.
49 그래서 하느님의 지혜도, ‘내가 예언자들과 사도들을 그들에게 보낼 터인데, 그들은 이들 가운데에서 더러는 죽이고 더러는 박해할 것이다.’ 하고 말씀하셨다. 50 그러니 세상 창조 이래 쏟아진 모든 예언자의 피에 대한 책임을 이 세대가 져야 할 것이다. 51 아벨의 피부터, 제단과 성소 사이에서 죽어 간 즈카르야의 피에 이르기까지 그렇게 해야 할 것이다. 그렇다,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이 세대가 그 책임을 져야 할 것이다.
52 불행하여라, 너희 율법 교사들아! 너희가 지식의 열쇠를 치워 버리고서, 너희 자신들도 들어가지 않고 또 들어가려는 이들도 막아 버렸기 때문이다.”
53 예수님께서 그 집을 나오시자, 율법 학자들과 바리사이들은 독한 앙심을 품고 많은 질문으로 그분을 몰아대기 시작하였다. 54 예수님의 입에서 나오는 말씀으로 그분을 옭아매려고 노렸던 것이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주임신부님 강론
연중 제28주, 10월 19일, 목, 루카11,47-54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이 세대가 그 책임을 져야 할 것이다.”(루카11,51)
+찬미예수님
“우리는 자살의 원인이 절망이라고 많이 이야기하지만 알고 보면 절망은 자살과 그다지 가까운 심리는 아닙니다. 절망은 ‘희망이 꺾인 상태’를 말합니다. 하지만 무망은 ‘다른 희망을 만들어낼 동력이 없는 상태’이지요. 언론에서는 ‘기초 수급 연금이 끊긴 후 절망하여 자살하였습니다.’라는 표현이 종종 나오지만 정확한 말은 아니지요. 제대로 심리를 분석하면 절망이 아니라 무망이거든요. 절망은 좋은 걸 가지고 싶은데 그 욕구가 끊긴 상태예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막아내고 싶은 게 있을 수도 있겠지요? 그러나 무망은 나쁜 걸 막아내려는 욕구, 좋은 걸 가지고 싶은 욕구, 두 가지 모두 없는 상태입니다. 만약 두 욕구 중 어느 한 욕구라도 강하게 있다면 자살은 일어나지 않습니다. 좋아하는 것을 갖고 싶은 욕구, 나쁜 것을 막아내려는 욕구, 그 욕구 중에 하나만 있어도 사람은 쉽게 무너지지 않습니다. 인간에겐 강렬하게 살고자 하는 본능이 있기 때문이에요”(김경일, 마음의 지혜)
솔직히 희망이나 절망에 대해서는 알아도 무망이라는 말을 처음 접합니다. 무망감이란 내가 처한 상황 자체에 힘들어 하는 것이 아니라 나의 노력과 의지에도 앞으로의 미래가 달라지지 않을 것이라는 일종의 좌절감에서 나오는 감정이라고 합니다.
아무런 희망을 발견하지 못하는 무망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율법교사들과 바리사이를 꾸짖습니다. “불행하여라. 너희 율법 교사들아! 너희가 지식의 열쇠를 치워 버리고서, 너희 자신들도 들어가지 않고 또 들어가려는 이들도 막아 버렸기 때문이다.”(52절)
율법교사들과 바리사이들은 지식의 열쇠 즉 하느님 나라를 사람들에게 치워 버리고 또 자기들도 사람들도 들어가지 못하게 막아 버린 사람입니다.
사람들에게 하느님 나라에 대한 희망을 치워 버리고 만다면 사람들은 어떤 희망을 가지고 살아야 하겠습니까?
사람에겐 희망이 있어야 합니다.
“희망 없는 사랑은 살아남지 못하고, 믿음 없는 사랑은 아무것도 바꾸지 못합니다. 사랑은 희망과 믿음에 힘을 줍니다.”(Jonas Salk)
하느님 사랑은 인간에게 최고의 희망이며 믿음입니다.
〔꽃피는 말- 박노해〕
【우리 시대에
가장 암울한 말이 있다면
“남 하는 대로”
“나 하나쯤이야”
“세상이 그런데”
우리 시대에
남은 희망의 말이 있다면
“나 하나만이라도”
“내가 있음으로”
“내가 먼저”】
그리스도인 하느님 사랑으로 희망을 살고 희망을 주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내가 먼저 하느님 나라의 희망을 사는 사람입니다. 아멘
무태성당 이민락 라우렌시오 신부
첫댓글
+ 찬미예수님
" 뜻이 있는곳에 길이 있다."
했으니, 좋은 뜻이 있는 곳에
분명 좋은 길이 열릴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또한 말 한마디로 천 냥 빚도
갚는다.고 도 했습니다.
좋은 뜻 지닌 좋은 말 한마디가
온통 막혀 있던 대화의길이
열리는가 하면, 세치 혀 밑에 숨어
있는 한마디 폭언이 인간의
생사를 갈라 놓기도 합니다.
이것이 있음으로 해서 저것이
있고,저것이 있음으로 해서
이것이 있고,너가 있슴으로
해서 내가 있을 수 있으니
너와 내가 함께 더불어 살 수
있는 사랑의 공동체에 참사랑의
길이 항상 열릴 수 있을 것이니
절망을 지나 무망에 빠진
사람들을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를 바르게 알 수 있는
지혜를 주시기를 간구 드립니다.
아멘.
신부님 감사합니다.
하느님의 부르심에 응답하며 사는 저희는 결코 절망하지도 무망하지도 않습니다.
먼저 주님께서 저희를 사랑하시어 독생성자를 보내주시어 복음을 듣게 하시고 하느님을 알게 해주시어 저희는 오직 주님께 의탁하며 온갖 은혜로 살게 해주신 은총 무어라 감사 드리오리까?
다만 말씀을 살고 하느님을 경외하고 흠숭 드리며 이웃과 더불어 하늘나라를 살게 하소서.
어릴때 기도가 떠오릅니다.
주보 성인님과 수호천사는 제 머리맡을 지켜 주시고 성모 어머니께서는 저를 재워 주시고 열두 사도님은 저희 대문을 지켜 달라 기도한 산골 소녀의 집에 정말 그런 기적이 일으남을 믿고 기도 드렸습니다.
죽음의 골짜기를 간다해도 주님함께 계시니 두려울것 없사옵니다.
저희에게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하심을 믿습니다.
주님 복음 전하고 복음을 살아 주변에 결코 절망과 무망에 힘든 사람이 없도록
저희가 살피어 돌보게 하소서.
이제는 성모님께 이제와 저희 죽을때에 저희 죄인을 위하여 빌어 주시길 기도드립니다.
믿음과 소망과 사랑으로 살게하소서.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이 세대가 그 책임을 져야 할 것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