띄어쓰기 규정 알고 쓰기
모 방송국의 우리말 퀴즈 프로그램에 ‘우리말 겨루기’라는 것이 있다. 이 프로그램의 마지막 관문이 띄어쓰기인데 여기서 많은 참여자가 떨어진다. 그만큼 띄어쓰기가 어렵다는 얘기다. 아무려나 이 프로 때문에 띄어쓰기에 대한 시청자들의 관심이 많아진 것은 좋은 일이다.
한글 표기에 띄어쓰기가 처음 등장하는 건 1877년 스코틀랜드 출신의 존 로스 선교사가 출간한 “조선어 첫걸음(Corean Primer)”이다. 그 다음으로 박영효의 “사화기략(使和記略)”(1882)과 “한성주보(漢城周報)”(1886년)에서 불규칙적으로 구절이나 문장 단위로 띄어 썼다. 본격적으로 어구(語句)를 띄어 쓴 것은 “독립신문”(1896년)과 “ᄆᆡ일신문”(1898년)이다. 1920년에 창간된 조선일보와 동아일보는 1933년 조선어학회에서 한글 맞춤법 통일안을 제정하여 공표하기 이전까지는 띄어쓰기를 거의 하지 않았다.
우리 어문 규정 중에 띄어쓰기를 규정한 것은 1988년에 문교부에서 고시한 한글 맞춤법의 띄어쓰기 규정이다. 한글은 표의 문자인 한자와 달리 표음 문자이기 때문에 단어들을 붙여 쓰면 읽는 이가 문장의 의미를 이해하는 데 어려움을 겪는다. 단어는 하나의 독립된 개념을 지니고 있기 때문에 단어를 한 덩어리로 표기하여야 독자가 그 개념을 쉽게 파악할 수 있다.
그러면 띄어쓰기에 대한 개략을 살펴보기로 하자.
서로 다른 단어는 띄어 쓰는 것이 띄어쓰기의 기본 원칙이다. 그러나 단어라는 개념이 그리 녹록지 않다. ‘큰집’, ‘집안’과 같은 합성어는 단어와 단어가 합쳐진 하나의 단어이므로 띄어 쓰지 않고 붙여 쓴다. 그런데 ‘큰집’과 ‘큰 집’ 그리고 ‘집안’과 ‘집 안’은 의미가 다른 단어이므로 띄어 쓸 때와 붙여 쓸 때가 있다.
아침은 큰집에서 먹었다. (맏이가 사는 집 곧 큰아버지가 있는 집)
그는 대궐 같은 큰 집에서 산다. (규모가 커다란 집)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났다. (가정)
집 안을 샅샅이 청소했다. (건물의 안)
‘띄어쓰기’는 합성어이기 때문에 붙여 쓰지만 ‘띄어 쓰다’란 말은 두 단어이기 때문에 띄어 써야 한다. 합성어인지 혹은 서로 다른 단어인지는 표준국어대사전에 등재되어 있는 단어인지 여부로 구별하는 것이 가장 정확하다. 휴대전화에 표준국어대사전의 앱을 깔고 활용하면 편리하다. 그만큼 띄어쓰기에 대한 공부는 관심을 가져야 하는 영역이다.
조사는 앞말에 붙여 쓴다. ‘들어가기는커녕’, ‘학교에서만이라도’와 같이 조사 뒤에 조사가 연속적으로 붙는 경우에도 조사는 모두 앞말에 붙여 쓴다.
의존명사는 띄어 써야 한다.
‘것, 걸, 깐, 나름, 나위, 나절, 대로, 따름, 딴, 데, 만큼, 무렵, 바, 뿐, 수, 적, 지, 쪽, 채, 탓, 터, 턱, 통, 편’ 등 의존명사는 앞말과 띄어 쓴다. 그런데 의존명사는 조사나 접사와 구별하는 것이 쉽지 않다. 예를 들어 ‘대로’, ‘만큼’, ‘뿐’은 의존명사인 경우에는 ‘법에 있는 대로’, ‘아는 만큼’, ‘공부를 잘할 뿐만 아니라’와 같이 띄어 쓰지만, 조사인 경우에는 ‘법대로’, ‘지식만큼’, ‘공부뿐만 아니라’와 같이 붙여 써야 한다. ‘뿐’이 체언(명사, 대명사, 수사) 아래 올 때는 조사이기 때문에 붙여 쓰고, 용언(동사, 형용사)의 어미 ‘―을’ 뒤에 올 때는 의존명사가 되어 띄어 쓴다. 아래에 몇 가지 예를 덧붙인다.
• ‘뿐’의 경우를 보자
조사일 경우: (체언이나 부사어 뒤에 붙어) ‘그것만이고 더는 없음’ 또는 ‘오직 그렇게 하거나 그러하다는 것’을 나타내는 보조사.
이제 믿을 것은 오직 실력뿐이다.
우리 민족의 염원은 통일뿐이다.
가진 것은 이것뿐이다.
의존명사일 경우: (어미 ‘-을’ 뒤에 쓰여) 다만 어떠하거나 어찌할 따름이라는 뜻을 나타내는 말.
소문으로만 들었을 뿐이네.
그는 웃고만 있을 뿐이지 싫다 좋다 말이 없다.
모두들 구경만 할 뿐 누구 하나 거드는 이가 없었다.
이와 같은 몇 가지 예를 더 살펴보자.
• 들: 남자들, 학생들 (접사)
쌀, 보리, 콩, 조 들 (의존명사)
• 대로: 법대로, 약속대로 (조사)
아는 대로 말한다. 약속한 대로 하세요. (의존명사)
• 만큼: 중학생이 고등학생만큼 잘 한다. 키가 전봇대만큼 크다. (조사)
볼 만큼 보았다. 애쓴 만큼 얻는다. (의존명사)
• 만: 하나만 알고 둘은 모른다. 이것은 그것만 못하다. (조사)
떠난 지 사흘 만에 돌아왔다. 세 번 만에 합격했다. (의존명사)
• 지: 집이 큰지 작은지 모르겠다. 어떻게 할지 모르겠다. (어미)
그가 떠난 지 보름이 지났다. 그를 만난 지 한 달이 지났다. (의존명사)
• 차: 인사차 들렀다. 사업차 외국에 나갔다. (접미사)
고향에 갔던 차에 선을 보았다. 마침 가려던 차였다. (의존명사)
• 판: 노름판, 씨름판, 윷판 (합성어)
바둑 두 판, 장기를 세 판이나 두었다. (의존명사)
‘겸, 대, 등, 등등, 등속(等屬), 등지(等地)’는 의존명사이므로 띄어 쓰고, ‘내지’, ‘및’은 접속 부사이므로 띄어 쓴다.
단위를 나타내는 명사는 앞말과 띄어 쓴다. 따라서 ‘차 한 대’, ‘연필 두 자루’와 같이 띄어 쓴다. 다만 ‘순서를 나타내는 경우’나 ‘아라비아 숫자와 어울리어 쓰이는 경우’에는 아래와 같이 앞말과 띄어 쓰지 않고 앞말과 붙여 쓰는 것도 허용한다.
제삼 항 (원칙) ⁄ 제삼항 (허용)
삼 학년 (원칙) ⁄ 삼학년 (허용)
오십팔 회 (원칙) ⁄ 오십팔회 (허용)
제1 연구실 (원칙) ⁄ 제1연구실 (허용)
칠천 원, 7천 원 (원칙) ⁄ 7,000원 (허용)
수는 ‘십이억 삼천사백오십육만 칠천팔백구십팔’, ‘12억 3456만 7898’과 같이 만 단위로 띄어 쓴다.
각 단어는 띄어 쓰는 것이 원칙이나. 1음절 단어가 연속될 경우 의미 파악이 어려울 수 있으므로, 붙여 쓸 수 있다.
좀 더 큰 것(원칙) ⁄ 좀더 큰것(허용)
이 말 저 말(원칙) ⁄ 이말 저말(허용)
보조 용언은 본용언 뒤에 위치하여 본용언의 뜻을 보충하는 역할을 한다. 보조 용언의 예로는 ‘먹어 두다’, ‘가 버리다’ 등을 들 수 있다. 보조 용언은 띄어 쓰는 것이 원칙이나, 아래와 같이 붙여 쓰는 것도 허용한다.
불이 꺼져 간다 (원칙) ⁄ 불이 꺼져간다 (허용)
비가 올 듯하다 (원칙) ⁄ 비가 올듯하다 (허용)
그 일은 할 만하다 (원칙) ⁄ 그 일은 할만하다 (허용)
그릇을 깨뜨려 버렸다 (원칙) ⁄ 그릇을 깨뜨려버렸다 (허용)
그러나 ‘앞말에 조사가 붙거나’ ‘앞말이 합성 동사인 경우’, 그리고 ‘중간에 조사가 들어갈 때’에는 보조 용언은 아래와 같이 띄어 써야 한다.
책을 읽어도 보고 (O) 책을 읽어도보고 (X)
덤벼들어 보아라 (O) 덤벼들어보아라 (X)
잘난 체를 한다 (O) 잘난 체를한다 (X)
성과 이름, 호, 관직명 등은 띄어 쓴다.
김양수 정송강 채영신 씨 박동식 박사 이순신 장군
다만 성과 이름, 성과 호를 분명히 구분할 필요가 있는 복성인 경우에는 구양 수(歐陽修), 남궁 억(南宮檍), 독고 성(獨孤成), 동방 삭(東方朔), 사마 광(司馬光), 제갈 공명(諸葛孔明) 황보 인(皇甫仁) 등과 같이 띄어 쓸 수 있다.
성명 이외의 고유 명사는 단어별로 띄어 쓸 수 있다.
대한 초등 학교 ⁄ 대한초등학교
대한 대학교 예술 대학 ⁄ 대한대학교 예술대학
한국 국어 교육 연구회 ⁄ 한국 국어교육 연구회
그런데 표준국어대사전에는 ‘초등학교, 고등학교, 전문대학’이 단어로 올라 있으므로 이들은 한 단어로 붙여 써야 마땅하다.
그리고 ‘용언의 관형사형+명사’ 혹은 ‘명사+조사+명사’ 형식으로 된 고유 명사도 붙여 쓸 수 있다.
즐거운 노래방 ⁄ 즐거운노래방
부부의 날 ⁄ 부부의날
부설(附設), 부속(附屬), 직속(直屬), 산하(傘下) 따위는 고유 명사에 속하는 것이 아니므로, 원칙적으로 앞뒤의 말과 띄어 쓴다.
한국 해양 과학 기술원 부설 극지 연구소(원칙) ⁄ 한국해양과학기술원 부설 극지연구소(허용)
다만, ‘부속 학교, 부속 초등학교, 부속 중학교, 부속 고등학교, 부속 병원’과 같이 교육 기관 등에 딸린 학교나 병원은 하나의 단위로 다루어 붙여 쓸 수 있다.
한국 대학교 의과 대학 부속 병원 (원칙) ⁄ 한국대학교 의과대학 부속병원 (허용)
한편 고유 명사 가운데에는 둘 이상의 단어로 이루어졌어도 띄어 쓸 수 없는 경우가 있다. 예를 들면 강 이름, 산 이름, 산맥 이름, 고원 이름 등은 굳어진 지명이므로 띄어 쓰지 않는다. 이들은 합성어로서 하나의 단어로 굳어진 것이다.
북한산, 에베레스트산
영산강, 미시시피강
소백산맥, 알프스산맥
나주평야, 화베이평야
전문 용어 가운데는 둘 이상의 단어로 이루어진 경우라도 띄어 쓸 수 없는 것들이 있다. 예를 들어 한자로 된 고전 책명은 띄어 쓰지 않는다. 이들은 합성어로서 하나의 단어로 굳어진 것이거나, 구(句)라고 하더라도 띄어 쓰는 것이 별로 의미가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서양의 고전 또는 현대 책명이나 작품명은 구와 문장 형식인 경우 단어별로 띄어 쓴다.
분류두공부시언해(分類杜工部詩諺解), 동국신속삼강행실도(東國新續三綱行實圖), 번역소학(飜 譯小學) (한문 고전 책명)
베니스의 상인 (서양의 고전 작품명)
고용, 이자 및 화폐의 일반 이론 (현대의 책명)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서양의 현대 작품명)
한편 두 개 이상의 전문 용어가 접속 조사로 이어지는 경우는 전문 용어 단위로 붙여 쓸 수 있다.
자음 동화와 모음 동화(원칙) ⁄ 자음동화와 모음동화
이상에서 한글의 띄어쓰기에 대하여 간략히 살펴보았다. 구체적인 예를 들어 설명할 것이 많지만 다 밝혀 적을 수가 없으므로 관심을 가지고 익혀나가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