흑두루미 외 1편
권순자
바람을 타고
흑두루미
생의 춤사위 유연하다
한순간 격렬하다
새벽 바다에 풀어지는 비안개 뚫고
차오르는 물고기 춤
빛에 노출된 위험한 춤
춤이 춤을 삼키는 순간
바다는 잘못이 없다
품어줄 뿐
키워줄 뿐
춤이 유죄
불온한 춤사위가 유죄
현란한 춤이 시야를 삼켰으므로 유죄
바람은 허공길 따라
제 갈 길 유유히 간다
고도리
고성 바닷가 터미널 식당에서
고도리를 먹는다
명절날 가족들은 음식상을 물리고 나면
담요를 깔고 화투를 펼쳤다
텔레비전은 노래와 씨름을 번갈아 가며 주인공이 바뀌고
담요 위 카드놀이판도 주인공을 번갈았다
놀이판 고도리와
식판 고도리 사이에서
나도 고도리처럼
덜 자란 생각들이 헤엄치며 식당 안을 돌아다녔다
덜 자란 고등어 새끼 몇 마리
물결에 어쩌다 휩쓸렸을까
짠 고도리 구이를 젓가락으로 발라 먹는다
물결의 등을 타고 노느라
길 잘못 든 줄도 모르고 노닐다가
일찍 배달되어 버린 생의 짧은 주기
고도리 한 판 살 판
생을 주억거리며
가녀린 꼬리 끝에 따라온 바다의
아쉬운 배웅을 씹어먹는다
권순자權順慈
1986년 《포항문학》, 2003년 《심상》으로 등단. 시집으로 『검은 늪』, 『붉은 꽃에 대한 명상』, 『순례자』, 『천개의 눈물』, 『청춘 고래』, 『소년과 뱀과 소녀를』 외 다수, 시선집 『애인이 기다리는 저녁』, 영역시집 『Mother's Dawn』(『검은 늪』영역), 『A Thousand Tears』, 한국저작권협회 오디오북 선정시집 『우목횟집』 등이 있다. 479sky@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