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 1-6 아브라함이
본문은 아브라함이 후처를 취한 사실과 그 후처의 자손들에 대한 기록들입니다. 그리고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뜻을 받들어서 먼 훗날까지를 바라보고 집안의 중대사를 신중하게 처리합니다.
1. 본문 1-5절은
“① 아브라함이 후처를 취하였으니 그 이름은 그두라라
② 그가 시므란과 욕산과 므단과 미디안과 이스박과 수아를 낳았고
③ 욕산은 스바와 드단을 낳았으며 드단의 자손은 앗수르 족속과 르두시 족속과 르움미 족속이며
④ 미디안의 아들은 에바와 에벨과 하녹과 아비다와 엘다아니 다 그두라의 자손이었더라
⑤ 아브라함이 이삭에게 자기 모든 소유를 주었고” 입니다.
1) 사라가 죽기 전 이미 38년 동안이나 아브라함은 실상 죽은 몸을 지니고 있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 아브라함이 이제 사라가 죽자 다른 아내를 얻었다는 것은 아주 이상하게 보입니다. 분명히 이 같은 행동은 그의 체통을 높여 줄 만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더욱이 바울이 그의 믿음을 칭찬하여 말할 때(롬4:19) 사라의 태가 이미 이삭이 태어날 무렵부터 죽었을 뿐만 아니라 아브라함 자신의 몸도 죽어 있었다고 주장합니다. 그러므로 아내가 죽었다 하여 노쇠한 몸으로 또 다시 결혼을 했다면 아브라함의 큰 어리석음에 틀림없습니다. 더 나아가서 아브라함이 100세 되어서 몸이 차고 무력해졌다고 했는데 그후 40년동안 많은 자식을 두었다는 것은 바울의 말과도 일치하지 않습니다. 이런 부조리를 피하기 위해 많은 주석가들은 그두라가 하갈과 같은 인물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이들의 상상은 본문에 의해서 곧 논박되고 맙니다. 모세의 말에 의하면 아브라함은 자기 첩들의 아들들에게 선물을 주었기 때문입니다. 이 점은 역대상 1장 32절에서도 분명합니다. 다른 추측은 사라가 아직 살아 있을 때에 아브라함이 다른 아내를 얻었다고 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대단히 나무랄 만한 일이긴 해도 전혀 믿지 못할 일은 아닙니다. 사람들이 지나친 방탕으로 인해서 대범해지는 경우는 드물지 않습니다. 이리하여 나중에 하갈에 대해서 말할 때 나오겠지만 아브라함이 일단 결혼의 율법을 범하고 났을 때는 일부다처의 관습을 떠나지 못했던 것입니다.
2) 또 사라가 하갈과 이혼을 강요했기 때문에 아브라함의 마음이 깊이 상심해 있었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 같은 처신은 수치스런 것이며 신앙의 조상에게는 어울리지 않는 행동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위에 나온 그 말의 모든 추측들보다는 더 그럴듯해 보입니다. 그렇게 본다고 한다면 그 설명은 다른 곳에 와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모세는 종종 시간적으로 앞서 일어난 일도 나중에 말하는 수가 있습니다. 왜 이런 일이 생겼는지 결론을 짓기는 불가능한 것 같습니다. 그러나 이 사건 자체가 역사적으로는 순서대로 된 것이 아니라는 사실이 분명합니다. 사라는 90세에 아들 이삭을 낳았습니다. 그리고 127세에 죽었습니다. 그리고 이삭은 40세에 결혼했습니다. 따라서 그의 모친의 죽음과 이삭의 결혼 사이에는 4년 간의 간격이 있습니다. 이 결혼식 후에 아브라함이 다시 아내를 얻었다 한다면 그렇게 오랫동안 혼자 사는데 익숙해진 그가 무엇을 생각하고 재혼했겠습니까? 그러므로 이렇게 생각하는 것이 옳을 것입니다. 모세는 아브라함의 전기를 쓰는 중, 거의 마감에 와서 이전에 빼먹었던 것을 삽입해 넣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역시 문제가 해결된 것은 아닙니다. 바울 사도께서 하신 증언에 의하면, 아브라함의 몸은 연로하여 오랫동안 무력해 있었다고 하니 도대체 언제 그의 정력이 갱신되었다는 것인가? 하는 것입니다. 어거스틴의 견해는 ‘이삭을 낳을 만큼 잠시동안은 큰 정력이 아브라함에 있었고, 그의 여생에도 하나님의 회복에 의해서 그의 정력이 다시 솟아났다’ 고 합니다.
3) 우리는 어느 입장이든 기적적인 영광을 잘 설명해 주며, 또 그 밖의 다른 이유도 있고 해서 어거스틴의 견해를 기꺼이 수락합니다.
아브라함의 그두라와의 결혼이 살아있는 동안인가, 사후인가 하는 문제에 대해서는 서로 의견이 구구합니다. 어느 편을 택하든 난제는 많으며 극복하기 어렵습니다. 인간적인 추측으로 생각해 본다면 증거가 칼빈의 가설에 유리한 것처럼 보이는데 이것은 A. Clarke 박사와 Bush 교수의 지지를 받고 있습니다. 후자의 이론은 주로 칼빈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너무 억지입니다. 다른 한편 Patrick Le Clere Kiddre 및 Scott 같은 사람들의 권위도 여기서 상당히 참작되고 있습니다. 이들은 성경의 현 순서를 그대로 유지하려하여 여기에 기록된 사건을 기적적인 힘의 소생과 지속에 입각해서 설명하려 합니다.
칼빈 역시 힘의 기적적인 소생과 지속이 실제로 일어났던 것으로 봅니다. 후자의 해석을 따를 경우 모든 것은 다른 가설에 비해 아브라함의 일반적인 성격과 일치하며 성경이 그의 신앙에 대해서 입증하는 내용과도 어울립니다. 이 문제를 제외한다면 본 이야기의 순서는 그대로 남게 됩니다. 이삭은 신령한 자손으로서 기적적으로 태어났다는 사실은 이 견해와 모순되지 아니합니다. 특히 쇠약해진 그의 몸이 다시금 원기를 되찾았다는 점에서 그러합니다. 그 후에 다른 자식이 태어났다는 것은 그 기적 사건에 부수적인 것입니다. 이리하여 결혼에 분명히 따라가는 하나님의 축복 선언, ‘생육하고 번성하라’ 는 말은 역시 불법적인 결합에도 미치게 된 것입니다. 아직 사라가 살아 있을 때 아브라함이 또 아내를 얻었다면 우리 생각으로는 그랬을 가능성이 가장 많습니다. 그의 음행적인 결합은 결코 하나님의 축복을 받을 값어치가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왜 하나님께서 주신 공정한 은혜에 이 같은 일이 따라붙었는지는 모르지만 하나님의 놀라운 섭리는 이 일 속에도 드러나 있습니다. 그의 다른 아들들로부터 대단히 중요한 많은 민족이 태어났지만 신령한 계약, 다른 아들들도 육체의 표징은 지니고 있었지만 전적으로 이삭에게만 해당되었다는 점입니다.
2. 본문 6절은
“자기 서자들에게도 재물을 주어 자기 생전에 그들로 자기 아들 이삭을 떠나 동방 곧 동국으로 가게 하였더라” 입니다.
1) 모세는 말을 계속합니다.
아브라함은 자기가 죽게 되었을 때, 자기 사후에 있을지도 모르는 불화를 제거하기 위해서 이삭이 자기 유일한 상속자이라는 사실을 밝히고 있습니다. 또 다른 아들들은 적당한 선물을 나눠주고 좇아낼 계획을 세웠다는 사실을 볼 수 있습니다. 사실 겉으로 보기에는 이같이 좇아낸다는 사실은 가혹하고 잔인할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하나님의 명령에 부합되는 일이었습니다. 하나님은 그 땅 전체 소유권이 이삭의 후손에게 돌아갈 것을 원하셨습니다. 따라서 이삭에게만 주어진 것을 아브라함이 자기 마음대로 분할한다면 그것은 정당한 일이 못됩니다. 그러므로 아브라함이 다른 아들들을 위해서 할 수 있는 일이란 여기에 나와 있는 것 이외에는 없습니다. 누구든 자기 아들들 중에서 하나를 독점적인 상속인으로 선택해야 한다면 그것은 다른 아들들에게는 권리를 침해하는 셈입니다. 그런 자는 자기 자녀의 일부에게서 권리를 빼앗아 버림으로써 불의의 봉화를 들게 하여 자기 집안에 악독한 투쟁의 불씨를 가져오게 합니다. 따라서 아브라함이 자기 다른 아들들에게서는 상속권을 박탈해야 했고 그들을 멀리 추방시킬 수밖에 없었던 그 이유를 알아야겠습니다. 즉 하나님이 이삭에게 내려 주신 것이 그들의 방해로 인해서 곤란을 겪는 일이 없도록 하기 위해서였던 것입니다. 히브리인들은 재산은 나눠 가지지 않고 잠자리를 같이하는 여자를 첩이라고 불렀다는 사실을 지적한 일이 있습니다. 이와 똑같은 구별이 모든 나라의 법률에 의해서 관습으로 채용되었고 또 인정되어 왔습니다 따라서 나중에 보게 되겠지만, 레아와 라헬은 주된 아내였으나 빌라와 실바는 제2급의 아내(첩)였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따라서 부부의 침실이 그들에게도 허락되긴 했지만 그들의 처지는 여전히 종의 신분으로 남아 있었던 것입니다.
2) 아브라함이 이러한 조건 하에서 하갈과 그두라를 자기 아내로 삼았으며 따라서 그들의 아들들에게는 자기 재산의 작은 일부만 나누어 주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자기 재산을 아들들에게 똑같이 나누어 주었다면, 그것은 공정한 일도 바른 일도 못될 것입니다. 아마 상속에 대한 불화가 더 이상 계속되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을 멀리 추방시켜 버림으로써 조금 전에 말한 그 같은 위험에 대처했습니다. 즉 하나님이 이삭의 자손에게만 주신 땅을 그들이 차지하는 일이 생기지 않도록 조처를 취한 것입니다. 그러니까 아브라함이 이삭을 특별하게 취급한 것입니다. 그것은 그가 자기 모든 소유를 주었다는 말로 잘 알려집니다. 이렇게 한 것은 하나님께서 이삭을 특별히 취급했기 때문에 아브라함도 달리할 방도가 없었을 것입니다.나머지 서자들에게는 그들에게 알맞은 유산을 주어서 팔레스틴 동부쪽, 동남쪽 등지에 흩어져 살게 하였습니다. 이것은 하늘의 하나님의 경영 방식이 아브라함에게서 구체적으로 구현된 것으로 보아야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