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혼란한 세상사에 다소 위안을 주는 그런 드라마가 있었습니다. 재벌 순위 10대 그룹의 손녀딸과 수수한 시골 동네 이장의 막내아들과의 결혼을 둘러싼 이야기입니다. 소재 자체는 남자 신데렐라 성향입니다. 하지만 요새 세상에는 없을 것 같은 요상한 순수한 애정이 드라마에 녹아들면서 잊혀졌던 순수 애정에 대한 향수가 느껴지기도 합니다. 재벌집 손녀가 불치의 병에 걸리고 그런 병 때문에 남편을 멀리하는 아내 그리고 결국 결혼 3년만에 이혼을 하게 되는 사이, 하지만 결코 헤어지고 싶어 헤어진 것 아닌 두 남녀의 애뜻한 사랑 이야기에다 재벌가를 둘러싼 살벌한 재산문제들이 맞물려지면서 시청자들의 관심을 모은 것이 아닌가 합니다. 특히 김수현과 김지원 두 남녀 주인공을 비롯해 박성훈 김갑수 이미숙 정진영 나영희 김정난 등 중견배우들이 대거 등장하면서 극의 무게감을 높인 것이 주효했다고 보여집니다. 또한 전배수 황영희 등 시골 인심을 대표하는 배우들의 진심어린 연기도 재벌과 농촌이라는 양극화를 불편하게 하지 않는 요소였다고 생각됩니다. 박지은 작가의 2013년 별에서 온 그대와 2019년 사랑의 불시착에 이은 2024년 눈물의 여왕이기에 시청자들의 관심도가 지극했을 것으로 분석됩니다.
저는 이 드라마를 보면서 그동안 매우 의문스러웠던 다소 쌩뚱맞은 사안을 다시 한번 생각했습니다. 드라마의 성공이나 작가와 연출자의 역량 그리고 배우들의 활약은 다른 분들이 많이 언급했을테니 말이죠. 배우들이 선한 역을 하는 것이 어려운가 악한 역을 하는 것이 어려운가 하는 점입니다. 단지 이 드라마뿐 아니라 다른 수많은 영화나 드라마에는 당연히 선한 자와 악한 자가 나오게 마련입니다. 그것이 바로 우리네 인생이니까 말입니다. 주변을 둘러보면 숱한 악인들이 존재합니다. 선한 사람들은 그다지 눈에 띄지않습니다. 예전 성선설과 성악설 논쟁이 벌어졌을 때 많은 사람들이 성선성을 주장했지만 갈수록 이제는 성악설이 대세라는 생각입니다. 그만큼 인간이 진화되면서 악인들은 생존하고 선인들은 도태하는 그런 현상때문일 것입니다.
이 드라마의 대표적인 선인은 바로 백현우(김수현)이고 악인은 윤은성(박성훈)과 모슬희(이미숙)일 것입니다. 물론 홍해인(김지원)은 선인과 악인의 중간에 서 있는 인물이지요. 바로 일반적인 우리네와 같은 캐릭터일 것입니다. 제가 몇몇 스타급 연기자들이 언급한 것을 토대로 살펴보면 선한 역할을 하는 것이 악한 역할을 하는 것보다 더욱 어렵다는 것입니다. 물론 그냥 보기 편한 사람처럼 이래도 허허 저래도 호호하는 것이 아니라 선한 사람들의 그 오묘한 연기가 정말 어렵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악한 역은 상대적으로 표현하기기 수월하다는 이야기도 있습니다. 그 이유는 아마도 우리 인간자체의 삶이 선한 측면보다는 악한 측면이 더 많기 때문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악한 역은 그냥 인간 본연의 모습을 드러내면 되지만 선한 역은 실로 평생 살면서 별로 해본 적이 없기 때문이기도 할 것입니다. 우리 인간이 살면서 제대로 선한 역을 몇차례나 해 볼 수 있을까 생각해 보니 그 말이 상당히 설득력이 있음을 느낄 수 있습니다. 뭔가 마음이 좋은 그런 사람으로서의 선한 역이 아니라 그토록 악인들에게 시달리면서도 그 흐트러지지 않는 선함에 대한 지조라고 할까요. 저는 살면서 선한 역을 한 것이 잘 생각이 나지 않을 정도입니다. 그래서 김수현배우의 선한 연기가 기억에 새겨지고 마음속에 자리잡게 되는 것이 아닌가 느껴집니다.
정말 요즘 생에 이토록 지고지순한 사랑이 실제로 있겠습니까 마는 그 잊혀졌던 그런 단어의 의미가 떠오르면서 요상하게 마음 저 아랫쪽에 잠자듯 존재해 있던 그 사랑의 마음이 솟아오르면서 이 드라마에 대한 여운이 길게 이어지는 것처럼 여겨집니다. 우연이 이어지면 인연이 되고 인연이 연결되면 운명이 된다는 그 상투적인 문장이 그대도 그렇게 유치하지 않게 다가온 드라마였다고 저는 판단합니다. 16회 8주 그러니까 두달동안의 사랑의 중거리 여행이 마감을 했습니다. 이 드라마로 그동안 선한 역할을 거의 못하고 살았던 생활태도를 바꾸어 이제는 선한 역할도 좀 하고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들게 하는 드라마였습니다. 주변에 존재하는 사람들을 가끔은 조금 깊게 생각하는 그런 태도로 살아야겠다는 마음이 들게하는 드라마였습니다.
2024년 4월 29일 화야산방에서 정찬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