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미로같이 얽혀 똑같은 모양의, 눈에 착시가 일어날 정도로 똑같은 모양의 문이 반복되고 또 반복된다. 아니, 눈에 착시가 일어나 비슷한 모양의 문을 똑같은 모양이라 착각하고 있는 줄도 모른다.
누군가가 사라진다 해도, 그 어둠속으로 끌려들어간다 해도, 아무도 알 지 못한다.
그리고, 과거 저편에 그렇게 여럿이 어둠속으로 사라지기도 했던 곳, ‘주군’을 암살하려고 했던 자라면 누구나 거쳐들었던 곳.
이곳은 밤의 일족의 왕인 ‘주군’의 사적 공간, 밤의 미궁 속이다.
보통 복도라면 밖의 풍경을 바라볼 수 있는 창문이 있기 마련, 하지만 이 미궁 속엔 창문도 아무 곳도 존재하지 않는다. 존재하는 것이라고는 어둠과, 끝없이 얽힌 미로와 착시를 일으킬 만한 비슷한 문들의 연속.
과거 뱀파이어사회가 혼란할 무렵, ‘주군’이 손쉽게 암살되고 교체되어가던 시절. ‘주군’에 오른 누군가가 목숨을 부지하고 자신을 지키기 위해 만든 미궁.
그리고 카인은 자칫 하나라도 발걸음을 잘 못하면 끝도 없이 계속되는 미로 속을, 미궁 속을 걷고 있었다.
“정말 이 곳은 여전하군.”
정말 깊은 어둠 속이지만, 밤의 일족인 그에게는 훤히 보이는 풍경들. 우습다는 듯이 희미하게 웃으며 혼잣말을 하고는 카인은 어린 시절의 기억과 정확히 일치되어가는 광경을 기억해나가며 한 치의 주저함도 없이 이 미궁 속을 걸어 나갔다.
그 깊이를 알 수 없는 어둠, 비슷비슷하게 얽혀있는 여러 갈래의 길들. 자신이 살아온 이 성의 추악한 어둠의 역사 중 하나가 있는 곳.
비릿하면서도 어딘가에서 불쾌한 냄새가 나는 듯 하기도 했다. 자신의 착각인지, 아니면 그 특유의 소름끼치는 분위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멈칫―.
걸음을 멈추지 않던 카인이 어느 문을 본 순간, 걸음을 멈춘 채 움찔했다. 그러자 그 바람에 그의 허리춤에 매달린 붉은 장미의 펜던트가 흔들렸다.
그동안의 문과는 비교할 수도 없는 압도적으로 다른 크기의 문. 손잡이도 장식도 공을 들인 듯 정교하게 다듬어져있었다. 그리고 맨 끝에 자리 잡은 위치가 카인이 마침내 목적지에 도착했음을 알려주고 있었다.
수도 ‘크로스’의 왕가의 성의 주인이자, 모든 밤의 일족의 주인이자 왕. 현 ‘주군’, 카르인 폰 크로스―. 세상에 드러나지 않은 그의 사적 공간.
떨리는 두 손이 알 수 있듯이 카인은 그 손잡이를 당기기를 원치 않는 듯 보였다. 하지만 어쩔 수 없다는 듯이 그는 손을 뻗어 손잡이를 잡았다.
주인과 이 주위 풍경이 말해주듯이 손잡이는 무척 차가웠다. 허락되지 않는 자의 방문은 용납하지 않는 것 마냥.
“오랜만에 뵙는 군요.”
손잡이를 당기자마자 보이는 익숙한 존재의 모습에 카인은 간단하게 손을 가슴팍으로 뻗어 세우고는 약식 예를 갖추었다.
“아버님.”
좀 뜸을 들이고는 그는 예를 마치고 눈앞의 존재를 차가움과 경멸의 감정이 담긴 눈으로 바라보며 말문을 열었다.
“6년만이로구나, 카인.”
방안의 장식으로 있던 초의 촛불이 흔들리며, 낮고도 깊은 위엄을 드러내는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어둠 그 자체인 검은 머리카락, 그리고 붉은 눈동자. 오랜 시간을 살아가는 밤의 일족의 수장 특유의 기백과 위압감. 카인을 닮은, 아니 카인이 닮은 존재.
모든 뱀파이어들의 왕이자, 지배자. 누구도 그를 거스를 수는 없고 그의 명령 앞에선 그 누구도 무력해진다.
‘주군’ 카르인은 방 안에 붙인 소파에 앉고는 자신을 노려보고 있는 아들을 향해 시선을 옮겼다.
그러자 그에 응답하듯이 카인은 아버지의 근처 소파에 앉아 그의 반응을 기다렸다.
“얘기는 들었다. 네가 인간출신계집을 데리고 왔다고?”
엄청난 기백의, 상대를 압도할 만큼 불쾌하다는 감정이 깊게 담긴 목소리가 카인에게 들려왔다. 하지만 그의 그런 반응을 예상하기라도 했듯 카인은 아무렇지도 않게 그를 계속 매섭게 경멸하는 눈을 한 채 그와 눈을 맞추었다.
“네, 그렇습니다.”
“그 계집 노엘 카를리아라고 했던가? 보고를 듣자하니 그 계집은 헌터라더군. 그런데 헌터 계집을 물고 피까지 나누어주었다고 하더군.”
말에서 알 수 있듯이 헌터, 즉 인간을 하찮게 여기는 아버지의 말을 들으며 카인은 참을 수 없는 모욕을 느꼈다. 자신도 의식할 수 있듯이 모욕의 감정에 짙게 물들어가는 붉은 눈동자를 아버지를 향해 향하고는 그는 겉으로 감정을 내보이지 않은 채로 굳은 표정으로 대답했다.
“아버님께서 알고 계시다면야 제 권한으로 귀족의 지위를 내려도 되겠군요. 그럼 실례하겠습니다.”
짧은 대화를 뒤로 하고 카인은 더 이상 용무는 남아있지 않듯이 미련 없이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리고 문 쪽으로 향했다.
“그렇다면 이곳으로 돌아온 의미는 알고 있겠군. 곧 연회가 있을 예정이다. 후계자가 될 준비와 함께 약혼 준비도 하도록 해라.”
카인의 의견은 안중에도 없이 통보하는 식의, 아버지의 말에 카인은 발걸음을 멈춘 채 뒤돌아섰다. 그리고 아버지의 앞에서 비릿한 미소를 지어보였다.
“더 이상 전 아버님의 뜻대로 하는 인형이 아닙니다. 후계자는 제가 필요로 하기에 받아들이겠지만 약혼은 아닙니다. 저에게 참견하지 말아주십시오. 어머님과 동생을 죽게 만든 그 더러운 손으로 그 아이에게 마저 손대면 용납하지 않습니다.”
카인의 대답에 그는 조금은 놀란 듯 인상을 찡그리고는 대답을 하지 못했다. 세게 닫혀져 가는 문 틈 사이로, 카인을 바라보며 그는 소파에서 몸을 일으켰다.
“알고 있었던 건가?”
만족한다는 듯이 기쁨의 웃음을 띤 채 카르인은 창밖을 향해 시선을 돌렸다. 그러고 나서 그렇게 그는 바라보았다. 하늘에 뜬 하나뿐인 빛인 은빛의 달을.
탁―.
탁자 위 펼쳐진 흰 색과 검은 색의 나열. 검은 색의 말과 흰 색의 말. 흰 색의 킹을 들어 앞에 놓인 검은 색의 비숍을 해치운 채 흰 색의 킹이 그 자리를 차지했다.
체스(chess)―. 놓인 말들이 서로를 잡고 잡아먹히고 가 반복되는 게임. 게임은 상대방의 킹이 잡히기 전까지 끝나지 않는다.
상대편에 아무도 없이 혼자 상대방의 몫까지 하면서 그는, 천사와 같이 흰 머리카락의 그는 체스판위를 바라보았다. 잔뜩 재미있다는 듯이 흥미 있다는 표정으로.
“게임 스타트인가?”
천진난만한 표정을 하다가 그는 체스 판의, 자기가 앉아있는 자리의 반대편, 즉 상대방 쪽을 바라보았다.
검은 색의 우두머리, 킹―.
“기분 나빠.”
순간, 그의 표정이 종이를 뒤집듯이 찔러도 바늘 하나 들어가지 않을 매서운 표정으로 바뀌었다.
그리고 한 순간, 열린 창문 틈 사이로 불어왔는지 불어온 바람에 건너편의 검은 킹이 박살이 났다.
“감사할게. 그 점에 대해서는―. 하지만 말이지. 내 것을 빼앗는 것은 용납하지 못 해.”
박살나 가루만이 맴돌고 있는 검은 킹의 자리를 바라보며 그는 천진난만하면서 어딘가 무서움이 담긴 미소를 지어보이며 큰 소리로 웃어보였다.
이윽고 그는 다시 한 번 손을 뻗어 상대편의, 검은 퀸을 자신에게로 가져왔다. 그러고 나서 그는 검은 퀸을 소중히 다루듯이 손으로 잡고는 장난을 치며 빙글빙글 돌렸다.
“잠시만 거기 있어. 곧 원래자리로 되돌려 줄 테니까. 나의 퀸.”
사랑스럽다는 듯이 퀸을 돌리는 것을 멈추고 그는 퀸에 입을 맞추었다.
이윽고 다시 한 번 불어온 바람에, 자리에서 몸을 일으킨 그의 허리춤에 펜던트가 흔들렸다. 살아있는 것처럼 빛나는 붉은 장미의 펜던트가―.
그의 시선은 하늘에 뜬 은색의 달로 향하고 있었다.
「괜찮으니까……. 불안해할 거 없어.」
그 한 마디가 얼마나 위안이 되었는지, 얼마나 큰 용기를 주었는지―. 나의 손을 꼭 잡은 채 놓지 않는 그 두 손이 얼마나 따뜻했는지―.
“카인.”
처음 오는 곳, 낯선 방. 작은 목소리로 노엘은 카인을 나지막하게 불러보았다.
들리지 않으리라는 것은 알고 있었다. 아마도 큰 목소리로 외쳐도 그것은 마찬가지일 것이다. 그 곳은 그가 있는 곳과는 큰 거리를 두고 있는 곳이기에.
그래도 그의 이름을 부르고 싶었다. 처음 보는 낯선, 자신이 그토록 두려워하던, 자신의 목을 물어뜯으려고 했던 상급 뱀파이어들이 존재하는 곳에 있는 두려움과 불안감을 달래기 위해서.
그녀는, 노엘은 무의식적으로 창밖의 풍경을 바라보았다.
성 안에서 바라본 광경, 그것은 무척이나 낯설었다. 처음 보는 광경이기에 그런 것일 수도 있지만 무척이나 자신과는 거리가 있는 풍경과 같았다.
마치 다른 사람의 시야를 통해서 빌려 보는 듯한, 자신이 보는 것 같지 않는 풍경.
이질적인 느낌이 들었다. 펼쳐지는 광경은, 자신이 인간이던 때 바라보던 도시의 풍경과 조금 다를 뿐인데. 그저 건물들이 조금 옛날과 같고, 그때와는 다른 존재들이 한산할 밤에 북적일 뿐인데.
“나도 같은데―. 뭘 그리 겁내지?”
창밖으로 보이는 그들과 같은 일족. 그런데 순간, 거리감을 느끼며 겁내는 자신.
자신이 우습다는 듯 노엘은 순간, ‘피식’하며 웃고 말았다.
“으음.”
시선을 위로 향해 보이는 하늘. 밤이 되어 어두워진, 늘 바라보던 어두운 푸른빛의 하늘. 그리고 하늘에 뜬 은색의, 달.
달은 변하지 않았다. 변할 수가 없는 게 당연할 것이다. 어느 곳에 떠있어도 달은 같으니까. 가끔씩 모양이 변해갈 뿐이다.
“아름답다.”
그런 은빛이, 신비할 정도로 묘하게 매력적으로 느껴졌다. 그렇게 노엘은 넋을 잃은 채 달을 계속 바라보았다.
손에 쥔 붉은 장미 펜던트가 달빛을 받아 아름답게 반짝거리며 빛나는 줄도 모른 채.
◈◈◈
‘기록하는 자’, 그녀는 그 곳에 있었다. 여러 존재들의 생각이 교차하고 마음이 교차하는 그곳에. 그곳의 중심이 되는 축인, 수도 크로스의 성에.
그녀는 뭔가 허무하다는 표정으로 달을 바라보았다. 아무런 감정도 없이 그냥 멍하게.
“엇갈리는 생각, 교차하는 마음.”
무언가를 떠올리는 듯 눈을 감고는, ‘기록하는 자’는 중얼거렸다. 무언가를 의미하는 것인지, 아니면 그냥 혼잣말인지 알 수 없는 이상한 말을.
“그들이 말하는 체스 판의 말은 전부 모였어. 그래, 그가 말한 대로 게임은 시작되었어.”
앉아있었던 성의 지붕에서 일어나, 위태롭게 불어오는 바람을 맞으며 그녀는 진지하게 심오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얕은 옷가지 하나를 입어 이가 덜덜덜 떨릴만한 바람을 맞으면서도.
그녀는 표정 하나 바뀌지 않았다. 추위를 느끼지 못해서인지도 모른다. 아니, 아니면 이곳에 존재하면서도 존재하는 존재가 아니라서 일지도 모른다.
그녀는 단지 한 손에 낡은 노트 같은 것과 펜을 들고서 성의 지붕에 일어서서 주변을 응시하고 있을 뿐이었다.
“체스. 어느 쪽의 킹이 체크 메이트 당하지 않는 한 끝나지 않는 게임.”
어느 마술사가 트릭을 사용해서 없던 물건을 감쪽같이 나타나게 만드는 것처럼 그녀의 아무것도 없던 손에서 체스 말이 하나 나타났다. 정확히는 검은 색의 퀸이.
그녀는 여전히 멍한 듯, 아무런 느낌이 없는 눈동자로 검은 색의 퀸 말을 만지작만지작 거렸다.
“서서히 움직여가던 수레바퀴가 빠르게 움직이기 시작했어. 이제 두 번 다시 멈출 수 없어. 운명의 끝에 이르기 전에는―.”
멀리서 들려오는 소리. 그녀의 뇌리 속에만 들려오는 그 시작의 소리가 조용히 울려 퍼지다가 점점 큰 소리로 바뀌어갔다.
“그래, 운명의 수레바퀴는 움직이기 시작했어.”
계속해서 들려오는 소리. 급격하게 운명이 변화해감을 알리는 그 소리는 결코 멈추지 않았다.
이윽고 그녀의, 만지작만지작 체스 말을 움직이던 손이 움직임을 멈췄다. 그리고 응시하던 달을 뒤로 하고, 그녀는 체스 말로 시선을 옮겼다.
짙게 칠해진 검은 색. 자신의 머리색과 같은 색. 저 밑의 어둠과도 같은 색.
‘기록하는 자’는 그것을 응시했다. 그렇게 그녀는 그것을 오랫동안 응시하다가 쥐고 있던 손을 폈다.
아득히 먼 지면으로 검은 빛이 추락하고 있었다. 하강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것은 무게 탓에 금세 시야에서 사라져 저 밑, 지면 속 어둠으로 사라져갔다. 그녀는 사라진 그것에 금방 흥미를 잃어버렸다.
그리고 그녀는 다시 지상에 뜬 달을 응시하기 시작했다. 자신과 같은 은색의 빛깔을 한 달빛의 빛을 받아 은색 눈을 빛내며.
자, 피의 노래 Two Night 완결입니다. 뺨빠라밤!!!
이번 Two Night는 5편만에 끝나게 되었는데요.
지난번 One Night를 작은 분량으로 끊어올려서 12편이 된 것과는 대조적이군요.
참고로, 이번 화 분량만 해도 6페이지 나오더군요...-_-;
One Night에 비해 훨씬 분량이 많이 나올 거 같습니다. 사실 별 내용은 없는데 말이지요.
아직은 발단-전개-위기-절정-결말 과정 중에 전개과정입니다.
Three Night가 위기과정이 되겠군요...
아직 Three Night는 한글자도 쓰지를 않았습니다.-_-;
그동안 Two Night 쓰느라고 힘들어서 좀 휴식중입니다.
다음 Three Night의 막은 3주나 2주후에 올리도록 하겠습니다.
ps. 그럼 날카로운 오타지적이나 어색한 점, 감상평을 남겨주시면 감사드리겠습니다.
|
첫댓글 조회수 0의 상콤말콤함>_<!! 문득 보면서 카인이 코드기어스의 루루슈같단 생각이 들었습니다 ... 이거, 또다시 복잡해지는군요
코드기어스 루루슈...참고로 걔 나오기 전에 우리 카인이 나왔습니다... 루루슈가 따라한 거라는...<-착각하지마...-_-
맞아요 ㅠ 쓰다보면 다른 애니에서 내 소설에 있는 캐릭이랑 닮은애들이 나와서 ... 막 어떤사람은 그 캐릭터 따라한건가요? 라고 묻는데 정말 짜증..<< 아무튼 ㅠ 카인 불쌍해요 흑흑흑
그러게 말이에요. 속상해요...ㅠ
감상평을 쓸 시간을 줄여 내용 파악 중... 아, 카린님 소설은 은근히 어려운 느낌이란 말입니다.
으음. 어려운가요? 참고로 본인의 두뇌는 단순한지라 그리 어렵지는 않을 겁니다만...
이번편 역시 재미있게 읽고갑니다 !! 다음편이 위기부분이 될거라 하니 더욱 기대가 되는군요 !! 다음편도 기대할게요 !
네, 감사드립니다.
잘 읽었습니다. 흐음, 중간부에 체스의 검은 말을 보며 기분 나쁘다고 했던 그 남자는.. 카인인가요?
카인은 아버님이랑 대면하고 있었습니다. 그 시간에...
자세히 읽어보시면 카인이랑 말투랑 행동이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카인은 저런 유치한 말투 안 써요.
피의 노래는 항상 길다고 하면서도 짧은 것 같은 아쉬운 느낌이 강해 ㅇㅅㅇ 잘 읽고 갈게에 ㅇㅅㅇ
응! 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