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병의 근원은 스트레스' 우리는 이 말을 불변의 진리처럼 받아들인다.
독소 취급을 받을 만큼 스트레스는 과연 위협적인가?
다양한 연구 결과에 주의를 돌린다면 스트레스를 향한 굳은 살 박인 생각들이 벗겨진다.
서툰 손재주가 '스트레스' 입증
1930년대, 헝가리 출신의 내분비학자 한스 셀리에는 쥐에게 여러 물질을 주사하는 실험을 진행하고 있었다.
그런데 당황스러운 결과를 얻었다.
어떤 약물을 투여하든, 쥐의 몸에선 똑같이 위궤양, 부신 비대, 림프샘 위축이 나타났기 때문이다.
유해하지 않은 묽은 소금물을 주사해도 마찬가지였다.
'약물 성분이 원인이 아니라면, 대체 무엇이 이러한 흔적을 남기는 것일까?'
실험 과정을 더듬어 보니 매번 실험을 진행할 때 한바탕 소동이 벌어졌었다.
주사기를 피해 달아나는 쥐, 그 쥐를 잡으려는 셀리에의 손길, 또 도망치는 쥐...
그의 서툰 손재주 때문에 겪어야 했던 불쾌한 경험들이 쥐의 신체에 부정적인 반응을 일으킨 것이라는 가설을 세웠고,
이를 거듭된 실험으로 입증했다.
셀리에는 생물이 위협이나 긴장 상황에 놓일 때 나타나는 일련의 신체 반응을 '스트레스 반응'이라고 불렀다.
이로써 스트레스는 몸을 해치는 공공의 적처럼 대중에게 각인되었다.
스트레스의 악명이 높아질수록 사람들은 스트레스를 받았다는 그 자체에 스트레스를 느낀다.
하지만 쥐 실험 결과를 인간에게 그대로 적용하는 것은 무리이며,
특히 스트레스는 바이러스가 아닌 인간의 정신적인 영역과도 관련이 깊다.
심리적으로 조절하고 관리가 가능한 영역이다.
스트레스가 무조건 바쁘다는 공식보다는 스트레스를 향한 새로운 사고방식, 조절방식이 필요하겠다.
#'유스트레스'와 '디스트레스'
스트레스를 받으면 우리의 근육은 긴장하고 심장 박동이 빨라지며 손바닥은 축축해진다.
대부분 이런한 반응을 몸이 망가지는 신호로 여긴다.
그러나 생리학적으로 보면 몸이 나를 보호하고 환경에 적응하려는 시스템이 가동되는 것이다.
이때 뇌에서는 분비되는 여러 호르몬 중 대표격이 '코르티솔'이다.
코르티솔은 에너지를 빠르게 동원하고 집중력을 높인다.
시험 직전에 집중력이 올라가거나 위기 상황에서 빠른 판단이 가능한 것은 이런 작용 덕분이다.
또 하나 주목할 호르몬은 '옥시토신'이다.
흔히 '사랑의 호르몬'으로 알려진 이 물질은 신뢰와 사회적 우대를 강화하는데 스트레스를 받을 때도 분비가 증가한다.
힘든 일을 겪을 때 사람을 찾거나 도음을 구하고 싶어지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스트레스가 사람을 서로 연결하도록 만드는 신호가 될 수 있는 것이다.
적당한 긴장 상태에서는 뇌의 기억 중추인 '해마'의 활동도 활발해진다.
중요한 시험이나 특별한 경험이 오랫동안 기억에 남는 것은 그 때문이다.
적절한 수준의 스트레스는 오히려 적응력과 회복력을 키우는 역할을 한다.
이것을 가능하게 하는 뇌의 변화 과정을 '신경가소성'이라고 하는데 근육이 운동을 통해 강화하듯,
뇌 역시 경험을 통해 변화하고 강해질 수 있다.
의학계에서는 적절한 스트레스가 각종 기능을 훌륭하게 수행하며 도움을 주는 '약'이 될 수 있음을 인정하여
이를 '유스트레스(eustress)'라고 부른다.
너무 스트레스가 없어도 몸과 마음의 균형이 무너지고 의욕이 상실되는 '독'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과도한 스트레스가 지나치게 오래 활성화할 경우,
즉 '디스트레스(distress)'는 불안 장애나 신체적인 손상을 일으킬 수 있다고 강조한다.
극심한 스트레스엔 답이 없는 걸까 ?
#스트레스에도 '믿음'의 영역이 존재
1998년, 미국의 연구진은 성인 3만 명을 대상으로 주 가지 질문을 던졌다.
'작년 한 해 동안 경험한 스트레스가 얼마나 컸는가?'
'스트레스가 건강에 해롭다고 믿는가?'
그리고 8년 뒤 참가자들의 건강 상태와 사망률을 추적했다.
결과는 예상을 뒤엎었다.
스트레스 수치가 높은 사람들은 사망 위험이 43% 증가했다.
그렇게 스트레스가 해롭다고 '믿었던' 사람들만 사망 위험이 증가했다.
그렇게 믿지 않았던 사람들은 연구 참가자 가운데 가장 낮은 사망 위험을 기록했고 심지어 스트레스를 거의 받지 않는다고
답한 사람들보다 낮았다.
연구진은 사람을 죽음으로 몰아가는 요인은, 스트레스는 해롭다는 '믿음'이 더해질 때 일어나는 현상이라고 결론지었다.
의학계에서는 이러한 현상을 '심신상관(心身相關)'이라고 해서 어떤 믿음으로 인한 마음의 평온이 호르몬과
면역 반응에 영향을 미치며, 심지어 세포의 노화를 늦추는 가장 강력한 항산화제 역할을 한다고 보았다.
최근에는 나이 듦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이는 사람과 두려워하는 사람의 수명 차이가 7.5년에 이른다는 연구 결과도 있었다.
노화를 두려워하면 호라동량이 줄고 이는 근육 손실로 이어지지만 긍정적으로 수용한 사람은 신체 활동을 더 유지하고
건강 관리에도 적극적인 경향을 보였다.
스트레스 반응은 결코 사람마다 똑같지 않다.
스트레스는 마음을 거쳐 오는 것이기 떄문에 그것을 받아들이는 사람의 해석에 따라 몸은 다른 반응을 한다.
'이건 위험이다.'라고 믿으면 불안이 증가하고, '이건 성장의 기회다.'라고 믿으면 몸에 활기가 돌 것이다.
일종의 플러세보 효과처럼 극심한 스트레스조차 나에게 좋은 것이라고 '믿으면', 호르몬과 육체로까지 전해질 것이다.
스트레스에는 '믿음'의 영역이 존재한다는 것을 기억하길 바란다. 김진숙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