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익숙한 낯섦에 대해...
처음 이 과제를 들었을 때 나는 낯섦에 대한 고민은 나중에 하고 먼저 가장 익숙한 것이 무엇일지를 생각해보았다. 내게 있어 가장 익숙한 것은 아마 나 자신이지 않을까 싶다. 그래서 나는 지금부터 나를 찾는 여행을 떠나려고 한다. 나를 찾는 여행이라고 해서 낯선 장소를 가보고 하는 그런 여행이 아닌 내 생각이나 행동을 한번 살펴보는 것이다.
(첫 번째 여행
내가 익숙함에서 낯섦을 찾기 위해 가장 먼저 해본 것은 숨을 쉬어 보는 것이었다. 사람은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숨을 쉬는 것을 멈추지 않는다. 일부로 숨을 참을 수는 있지만 우리는 무의식적으로 계속 숨을 쉰다. 나는 이러한 숨을 쉰다는 행위 자체가 우리에게 가장 익숙한 행위라고 생각해서 온전히 숨을 쉬고 내쉬고를 반복해 보았다. 어렸을 때 운동을 배웠을 때도 호흡을 고르거나 명상을 위해서 몇 번 숨을 들이마시고 내뱉은 적이 있었지만 온전히 숨만을 내쉬면서 느껴본 적은 없었던 것 같다. 이때 처음 들었던 생각은 나는 시원하게 숨을 쉬지 못한다는 것이었다. 비염이 있다는 것은 알지만 내가 그냥 생활할 때는 아무 문제 없이 숨을 쉬고 있었다. 그러나 직접 공기가 들어가는 것을 느끼면서 호흡을 하니 오히려 숨이 잘 안 쉬어진다는 느낌이 들었는데 굉장히 낯설게 느껴졌다.
(두 번째 여행
다음으로는 노트에 아무거나 끄적여 보았는데 처음에는 오른손으로 해보고 다음은 왼손으로 해보았다. 처음 오른손으로 글씨도 써보고 그림도 그려봤을 때는 별다른 감정이 들지 않았다. 애초에 오른손잡이이고 지금까지 오른손으로 필기를 해와서 그런 것 같았다. 그 다음 왼손으로 해봤을 때는 전혀 다른 감정이 들었다. 일단 왼손으로 펜을 잡으니까 왠지 모르게 힘이 많이 들어갔다. 그러나 힘을 준 것에 비해 계속 손이 떨려왔다. 이러한 상태로 오른손으로 한 것처럼 글씨를 써봤는데 분명 같은 한글을 쓰고 있음에도 무언가 색다르고 어색한 기분이 들었다. 마치 한글이 아닌 어떤 퍼즐을 풀고 있는 기분이었다. 이렇게 사용하지 않던 왼손을 사용하고 있으니 문득 다리를 다쳐 깁스했을 때가 생각이 났다. 살면서 처음 해본 깁스였기에 완전히 새로운 경험이었다. 처음 깁스한 상태로 걸을 때는 아기가 처음 걸음마를 뗀 것처럼 어딘가 어색하게 걸었다. 이렇게 계속 걷다가 이러한 상황이 점차 익숙해질 때쯤 깁스를 풀게 되었는데 다시 두다리로 걸었을 때 기분은 무엇인가 허전한 느낌이였고, 내 다리가 낯설다고 느껴졌는데 이러한 낯섦을 왼손을 사용해 봤을 때도 느낀 것 같다.
(세 번째 여행
세 번째로는 거울을 보고 웃는 표정을 지어보고 화난 표정, 우는 표정을 지어보았다. 여러 표정을 지어보면서 최근에 내가 이러한 표정을 지은 적이 있는지를 생각해봤는데 딱히 내 감정이 표정으로 드러날 정도에 사건은 없었던 것 같다. 그리고 내가 언제 가장 밝게 웃었는지를 생각했는데 기억이 떠오르지 않았다. 어느 순간부터 내 표정은 무표정이 되어있었고, 감정을 잘 드러내지 않았던 것 같다. 그러면 나는 왜 내 감정을 드러내지 않게 되었을까? 분명 어릴 때는 내 감정을 서슴없이 드러냈던 것 같다. 행복하면 웃고, 슬프면 울고, 짜증이 나면 화내면서... 그러다 점차 어른이 돼가면서 이러한 감정 표현이 줄어들게 되었는데 대부분의 사람들은 철이 들었다라고 말한다. 그러나 내가 이렇게 된 이유는 철이 든 것이 아닌 불안함이 많아졌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어느 순간부터 내 마음속 깊은 곳에 불안함이 자리를 잡았다. 내가 느끼는 불안함은 어떤 특정한 것에 대한 불안함이 아니라 그냥 왠지 모를 불안함이었다. 이러한 불안함이 생긴 이유를 생각해보니 현실에 대한 생각을 많이 하면서부터 였던 것 같다. 나도 어렸을 때는 동화같은 삶을 꿈꾸며 살기를 바랬었다. 그러나 점차 나이를 먹고 현실을 마주하면서 현실은 마냥 동화같은 얘기가 아니였고, 더욱이 뉴스에서는 어두운 소식이 자주 나오니 내 마음에도 불안함이 생겨난 것 같았다.
(네 번째 여행
네 번째로는 옥상에 올라가 봤다. 나는 무언가 막히거나 안될 때마다 우리 집 옥상에 올라가 옥상을 걸으면서 내 생각을 정리하고 내려오곤 했었다. 그러나 최근에는 옥상을 올라간 기억이 없는 것 같아서 이번 기회에 다시 올라가 보았다. 옥상에 올라가니 구름이 떠다니는 하늘이 보였다. 하늘을 보고 있자니 조금은 쌀쌀한 바람이 지나갔다. 나는 하늘을 좀 더 자세히 보려고 옥상에 누웠다. 고개를 들어 보았던 것이랑은 다르게 훨씬 깊어 보였다. 가을바람이 시원해서였을까? 나는 왜인지 모를 해방감을 느끼게 되었다. 파란 하늘에 흘러가는 구름들을 보고 있으니 바다를 헤엄치는 기분이었다. 그리고 고개를 들어서 보았을 때는 마냥 높게만 느껴지던 하늘이 누워있는 상태로 마주하니 내앞에 있는 것 같고 금방이라도 잡힐 것 같았다.
(여행을 마치며...
이제 내 여행을 마치려 한다. 내가 해본 4번의 여행이 가장 익숙해 보이는 나를 가장 낯선 상태로 마주할 수 있는 기회를 주었던 것 같다. 내가 매일 하고 있는 호흡도, 계속 내 몸에 붙어 평생을 함께할 내 신체들도, 내가 지어본 표정도, 내 불안감 해방도 다른 이가 아닌 나였던 것처럼 가장 익숙한 내가 가장 낯선모습을 하고 있었던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첫댓글 " 내게 있어 가장 익숙한 것은 아마 나 자신이지 않을까 싶다. 그래서 나는 지금부터 나를 찾는 여행을 떠나려고 한다"는 도입부가 인상적이네요. 그리고 그것이 "나를 찾는 여행이라고 해서 낯선 장소를 가보고 하는 그런 여행이 아닌 내 생각이나 행동을 한번 살펴보는 것이다."라고 하는 점에서 자신을 찾아 떠나는 여정이라는 점에서 더욱 흥미가 느껴진답니다. 첫 번째 여행에서는 살아 있다고 하는 것에 대해서, 두 번째 여행에서는 오른손잡이라는 것에 대해서, 세 번째 여행에서는 표정에 대해서, 네 번째 여행에서는 하늘을 바라보는 행위에 대해서 생각해보았네요. 마지막 여행이 "가장 익숙해 보이는 나를 가장 낯선 상태로 마주할 수 있는 기회를 주었던 것"이라고 서술했는데요. 그 이유에 대해서도 생각해보는 것도 좋겠어요. 철학에서는 "타자화"라고 말하기도 하는데요. 나를 내가 아닌 다른 것을 통해서 반추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답니다. 흥미로운 내용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