짜장면 한 그릇

[망실봉]

  유희경의 흑백풍경

  짜장면 한 그릇

  
며칠 전 한 모임에서 서점을 운영하는 데 있어 가장 큰 고민이 무엇이냐는 질문을 받았다. 그럴듯한 답변을 하고 싶었지만 달리 떠오르는 고민이 없었다. 서점 업무라고 해봐야 대단할 것이 없기 때문이다. 책 주문하기, 새로 도착한 책을 책장에 꽂기, 찾아오는 사람들을 응대하기, 재고를 관리하고 월말마다 수출입을 관리하기, 자금자금한 일들이 뭉쳐 눈덩이 같은 걱정이 되는 게 문제라면 문제겠지만 낱낱이 떼어 특정하자면 별일인가 싶게 사소해지고 만다. 그렇다고 모종의 기대로 가득한 눈빛들을 차마 외면할 수는 없어 불현듯 "식사 메뉴 고르기입니다"하고 답해버렸다.
 
대기업에 다니는 친구들이 부러운 까닭은 높은 연봉과 우수한 복지 말고도 그들 회사마다 구내식당이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정작 급식을 먹다 보면 물리고 만다고들 하지만, 내 입장에서는 배부른 투정이다. 서점 가까이 구내식당이 딸린 공공기관이라도 있어서 그곳을 이용할 수 있다면 바랄 것이 없겠다. 메뉴 선정이나 건강 식단에 대한 고민도 있거니와 요즘에는 그에 드는 비용도 만만치 않기에 걱정이다. 김밥 한 줄에 컵라면을 사서 대충 때웠던 얼마 전에는 영수증을 보고 화들짝 놀랐다. 불과 1, 2년 전 식당에서 치른 밥값에 버금가는 금액이 찍혀있었다.
 
어릴 적에는 외식을 좋아했다. 어머니의 요리 솜씨가 빼어난 축이었는데도 틈만 나면 나가서 밥을 먹자고 조르던 그때의 나를 떠올리면 절로 실소가 나곤 한다. 집밥이란 얼마나 큰 호사였던가. 알 수 없었지, 그때는. 아침과 저녁은 물론이고 두 자녀의 도시락까지 챙겨야 했으니 그 버거움은 헤아리기도 어렵다. 그럼에도 어머니는 외식을 달가워하지 않으셨는데 토요일만은 예외였다. 일종의 보상이었는지도 모르겠다. 나나 내 동생이 아닌, 매 끼니 식단을 고민했던 어머니 자신에게 말이다. 외식 메뉴는 다양했다. 무엇을 골라야 하나 늘 고민했지만 우리가 가장 선호했던 음식은 단연 짜장면 혹은 짬뽕, 운 좋으면 탕수육이었다.
 
시인 함성호는 시에 '짜장면은 전화선을 타고 온다'고 적었는데 과연 그렇다. 전화 한 통이면 30분 안에 신속히 배달되어 오는 마법의 음식. 집 전화번호 마냥 외웠던 당시 중국집 전화번호를 나는 여태 기억한다. 집 주소를 부르면 '너로구나' 하고 알아주던 주인 부부의 호쾌한 목소리나 철가방 속에서 척척 음식을 꺼내주곤 군만두 접시를 화룡점정으로 놓고 가는 배달원의 모습이 생생하다. 그릇을 덮은 비닐 랩을 나무젓가락으로 살살 비벼 벗기면 집 안을 너머 아파트 복도까지 가득 풍기는 그 냄새는 언제나 짜릿했다.
 
지금도 중식은 여전히 미각과 후각을 기분 좋게 자극하지만 그때는 무언가가 달랐다. 그게 무엇일까. 어른대기만 할 뿐 또렷하진 않다. 그저 그것이 그리운 빛, 그리운 온도라는 것만은 알겠다. 누가 내게 다시 돌아가고 싶은 시간을 묻는다면 신문지를 덮어 문 앞에 내다 놓으면 순식간에 사라지고 마는 빈 그릇처럼 이제는 없는, 작은 상을 하나 펴놓고 동생과 마주 앉아 아삭거리는 단무지를 씹던 그 순간을 떠올릴 것이다.
 
중국요리의 참맛은 붉은색으로 장식한 가게로 직접 찾아가서 먹어야 알 수 있다. 제아무리 번개처럼 배달되어 온다 해도 면은 불게 되어 있으며, 갓 볶은 춘장의 풍미는 어느 정도 떨어지기 마련이다. 소위 '중국집'이라 불리는 가게에서 먹던 중식의 기억은 수없이 많지만 그중 가장 특별한 기억은 아버지와 함께했던 어느 일요일 저녁에 있다. 달고 짠 감각에 얼큰한 취기가 더해진 이야기다.

아버지는 주말이 되면 어김없이 나를 데리고 목욕탕으로 향했다. 초등학생일 적에는 불만 없이 따랐지만 어느덧 고등학생이 된 내가 순순했을 리가. 이런저런 핑계로 주말 의례를 피하던 내가 그날만은 어찌 된 일인지 군말 없이 아버지를 따라나섰다. 그런 내가 기특했는지 아버지는 목욕을 마치고 건너편의 막 개업한 중국집으로 나를 이끌었다. 마땅히 할 말도 없이 어색해서 텔레비전에 눈을 두고 있던 내게 아버지는 "어때, 술 한잔하지 않을래?" 하곤 채 무어라 대답도 하기 전에 여기 고량주 작은 병 하나, 주문을 했다. 종업원은 내 쪽을 흘깃 보았으나 별말 없이 자그마한 술병 하나와 잔 두 개를 내려놓았다.
 
"이렇게 독한 술은 사레들리면 큰일이니까 숨을 '후' 내뱉고 난 다음 마시는 거야." 마치 시범을 보이듯 당신의 잔을 비운 아버지는 내 잔에 그 독한 술을 채웠다. 아버지를 따라 한 잔을 마시곤 화들짝 놀라 켁켁거리는 나를 보고 연신 싱글싱글 웃으셨더랬지. 얼굴이 빨개진 우리는 그 어느 때보다 다정하게 집으로 돌아갔다. 저 멀리 별이 총총 떠 있고 가까이서는 개가 짖었으리라.
 
내가 운영하는 서점 옆에는 아주 오래된 중국집이 있다. 일이 많거나 고민하기 귀찮은 날에는 그곳의 문을 열고 들어선다. 짜장이든 짬뽕이든 볶음밥이든 이젠 그 맛이 그 맛인 중국 음식. 그저 허기를 달래는 수단에 지나지 않는 중국요리. 예전처럼 귀하지 않고 더러는 피하고 싶어지는 음식
 
문득, 이제야 알겠다 싶다. 그때는 있었고 지금은 없는 것. 그것은 특별함과 소중함이다. 전화기를 내려놓자마자 언제쯤이나 도착하려나 안절부절하던 그 시절의 조바심은 사라진 지 오래다. 매사가 그렇다. 삶의 모든 부분을 나의 판단과 나의 결정으로 꾸려가는 지금, 짜장면 한 그릇을 오매불망 기다릴 일은 이제 없다. 과연 한 끼 식사를 소중히 여긴다면 식사 메뉴를 결정하는 일이 고충이 될 수 있을까. 마음을 고쳐먹는다고 다시 특별해질 리는 없으니 분명 나는 소중한 감각 하나를 잃어버리고 만 것일 테다. 왜 이토록 가난한 기분이 드는 것일까. 너무 많은 것을 잃어버렸다. 잃어버린 채 살고 있다. 소중한 내 짜장면 한 그릇.

 
  글·유희경(시인)
 

  The Sound of Silence | The Bands of HM Royal Marines

[동트는아침]

좋은글 감사 합니다

[망실봉]

반갑습니다
동트는아침 님 !
공유하여 주셔서
감사합니다 ~
휴식이 필요한 휴일
즐겁고 여유롭게
보내세요
~^^

[망실봉]

[정 읍 ↑ 신 사]

중국 사람들이 짜장면 사주면
엄청 잘 먹습니다.
처음 먹어본 맛이어도
맛있다고 탐복합니다.

종로 2가 YMCA 뒷골목엔,
중국집 간짜장 곱빼기
맛있게 먹었던 학생시절이
그립습니다.

[망실봉]

반갑습니다
정읍 ↑ 신사 님 !
오늘도 귀중한 멘트
남겨주셔서 감사합니다 ~
푸르럼이 점점 더해가는
신록의 계절,,
평안한 휴일보내시고
늘 건승하십시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