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유세 현장 찾아간 장애계, 장애인권 법안 제·개정 요구
장애계 “이준석과 이미 면담했지만… 지금까지 뭐 했나?”
면담 약속한 국민의힘, 다음 주 국토위 소위 열 예정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후보가 국민의힘 국회의원과 여당을 설득해서 다음 해 초 임시국회 때 장애인권 관련 제·개정안이 여야 합의로 통과될 수 있도록 하겠다고 약속했다.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는 장애계와 국민의힘 의원과의 면담 자리를 마련하겠다고 말했다.
윤석열 후보와 이준석 대표는 8일 오후 4시, 서울시 종로구 플랫폼74에서 청년문화 예술인과의 간담회 일정이 있었다.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아래 전장연) 등 장애인운동단체 활동가들은 3시 30분부터 플랫폼74 앞에서 윤 후보와 이 대표를 기다렸다. 윤 후보와 이 대표는 간담회 전후로 활동가들을 만나 “장애인권 관련 법안이 최대한 빠르게 통과될 수 있도록 하겠다”고 약속했다.
윤석열 후보와 이형숙 회장이 악수를 하고 있다. 이 회장은 윤 후보에게 ‘제20대 대통령 선거 장애인정책 요구안’을 전달했다. 사진 하민지
- 장애인들이 윤석열 찾아간 이유, 국민의힘이 약속 안 지키고 장애인권 부정해서
장애계는 네 가지의 장애인권 법안 제·개정을 요구하고 있다. 이들은 탈시설지원법안, 장애인권리보장법안, 장애인평생교육법안의 제정과 교통약자이동편의증진법 개정안(심상정 정의당 의원안, 천준호 더불어민주당 의원안)의 연내 통과를 꾸준히 요구해왔다. 국회 앞에서 탈시설지원법과 권리보장법 연내 제정을 위한 농성도 268일째(8일 기준) 이어지고 있다.
장애계는 이 같은 요구안을 가지고 지난 8월 24일 이준석 대표와 면담했다. 당시 이 대표는 네 가지 장애인권 법안이 통과될 수 있도록 국민의힘 의원들을 설득하기로 약속했다고 한다. 그러나 면담한 지 4개월이 다 돼 가도록 네 가지 주요 법안은 아직 제대로 국회 논의가 이뤄지지 않았다.
국회 논의가 지지부진하고 이준석 대표는 약속을 지키지 않는 가운데, 이종성 국민의힘 의원은 탈시설·자립생활 권리를 부정하기까지 했다. 이종성 의원은 지난달 24일 열린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제2법안심사소위원회에서 탈시설지원법에 반대하는 의견을 설파한 것으로 알려졌다. 또한 지난 10월 7일 열린 보건복지부 국정감사 때는 정부의 탈시설로드맵 정책에 거듭 반대 의사를 밝히기도 했다.
따라서 장애계는 다시 한번 장애인권 법안 연내 제·개정에 대한 책임있는 약속을 받고자, 윤석열 후보를 찾아갔다.
현장에서 국회 국토위 간사인 송석준 국민의힘 의원에게 전화 중인 윤석열 후보. 사진 하민지
- 면담 약속한 국민의힘, 윤석열 후보 “다음 해 초 법안 통과되게 할 것”
장애계가 윤 후보와 이 대표를 만나러 가는 길은 순탄하지 않았다. 장애인운동단체 활동가들이 플랫폼74로 향하던 3시 15분경, 경찰 수십 명은 휠체어 탄 장애인 활동가를 보자마자 방패로 강경 진압했다. 한 경찰이 방패를 휘두르다 이형숙 서울시장애인자립생활센터협의회 회장의 목을 가격하기도 했다.
활동가들이 플랫폼74 앞에서 윤 후보와의 만남을 기다리자 보수 유튜버들이 다가와 “이재명한테 가서 얘기해라”, “왜 우리 후보님(윤석열 후보) 유세 현장에 나타나 방해하냐”, “경찰이 좌파 단체랑 짜고 일부러 방해하는 거 아니냐”는 등 언성을 높이기도 했다.
3시 45분경, 윤석열 후보가 등장하자 이형숙 회장은 장애인권 법안 연내 제·개정을 요구하면서, 20대 대통령 선거에 대한 12대 장애인 정책 요구안을 설명했다. 주요 요구안은 장애인 예산을 OECD 평균으로 상향하고, 장애등급제 진짜 폐지, 부양의무자 기준 완전 폐지 등이다.
이 회장의 설명을 들은 윤 후보가 “장애인이 ‘정상인’과 동등하게 살 수 있는 사회를 만들겠다”고 하자 이 회장이 그 자리에서 “(‘정상인’이 아니라) 비장애인”이라고 고쳐줬다. 윤 후보는 바로 단어를 정정하긴 했지만 구체적 약속보다는 ‘잘하겠다’는 식의 선언만 반복했다. 이 회장이 “법안 제정을 위해 약속을 해 주셔야 한다”고 거듭 요구하자 윤 후보는 그 자리에서 송석준 국민의힘 의원에게 전화했다. 송 의원은 교통약자이동편의증진법 개정안을 논의하는 국회 국토교통위원회(아래 국토위) 간사다. 장애계에 따르면 송 의원은 윤 후보의 전화를 받고 다음 주 중에 국토위 소위원회를 열기로 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준석 대표와 윤석열 후보가 박경석 전장연 상임공동대표의 말을 듣고 있다. 주변에 수많은 시민과 취재진이 있다. 박경석 대표의 머리 위에 ‘국민의힘 윤석열 후보님, 20년을 기다렸습니다. 장애인 이동권, 접근권 완전 보장! 교통약자이동편의증진법 개정을 약속해 주십시오!’라고 적힌 작은 현수막이 펼쳐져 있다. 오른쪽 건물에는 건물 외벽을 뒤덮을 만큼 큰 크기의 현수막이 걸려 있고 ‘장애인권리보장법, 장애인탈시설지원법 제정하라’라고 적혀 있다. 사진 하민지
박경석 대표의 말을 듣고 있는 이준석 대표와 윤석열 후보. 사진 하민지
윤 후보를 만난 박경석 전장연 상임공동대표는 “거대 양당 대표와 국회의원, 대선후보를 휠체어 바퀴가 닳도록 만나러 다녔다. 장애인권 법안 연내 제·개정을 수도 없이 요구했지만 정기국회는 내일 끝나고, 발의된 제·개정안들은 아직 국회 논의도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 이 와중에 이종성 의원은 장애인권을 부정하는 말까지 하고 있다. 윤 후보가 대통령 후보인 만큼 장애인권 법안 통과를 약속해 달라”고 요구했다. 이 대표를 향해서는 “지난여름에 장애계와 면담해서 (법안 통과를 위해) 국민의힘 의원들 설득하기로 약속하지 않았나. 지금까지 뭘 하셨는지 궁금하다”고 따져 묻기도 했다.
이에 윤 후보는 “정기국회가 내일로 끝나기 때문에 연내 제·개정은 어렵게 됐다. 우리 당(국민의힘) 의원들에게 말해서, 다음 해 초에 열리는 국회 임시회 때 여야 합의로 최대한 빠르게 법안이 통과되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이 대표는 “국민의힘 의원들과의 면담 자리를 마련하겠다”고 약속했다.
한편 장애계는 지난 2일,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를 만나 장애인권 법안 연내 제·개정을 요구하고 동일한 정책 요구안을 전달했다. 이재명 후보는 교통약자이동편의증진법 개정안 통과를 위해 민주당 천준호, 유기홍, 최혜영 의원과 장애계와의 면담 추진을 약속했다. 면담은 8일 오후 4시에 진행될 예정이었으나 민주당 의원들 개인사정으로 미뤄진 것으로 알려졌다.
장애인운동단체 활동가들은 장애인권 법안 통과를 촉구하는 내용의 전단지 수백 장을 뿌렸다. 사진 하민지
바닥에 떨어져 있는 전단지. ‘윤석열 대통령 후보와 국민의힘은 교통약자이동편의증진법, 장애인탈시설지원법, 장애인권리보장법, 장애인평생교육법 2021년 연내 제·개정을 하라!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라고 적혀 있다. 사진 하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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