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r - 스파이크 존즈
"익숙한 낯설음"과 관련하여 나는 새로움과 익숙함이라는 상반된 감정과 상태에 대한 철학적 관점의 탐구를 위해 스파이크 존즈 감독의 영화 Her에 대해 말하고자 한다.
2013년에 개봉한 영화 Her의 스토리는 주인공 테오도르의 이야기로 시작된다.
가까운 미래 2040년, 로스앤젤레스. 주인공 테오도르는 편지를 대필해주는 회사에서 작가로 일한다. 테오도르는 결혼생활에서 이혼을 경험하고, 외로움과 감정적 고립 속에서 삶을 살고 있다. 어느 날, 인간의 상상력과 감정을 이해하고 발전시킬 수 있는 지능을 가지는 AI 운영체제인 'OS1'의 광고를 보고는 사만다라는 이름을 가지는 OS1을 구입 후 설치하게 되는데, 이것이 그의 삶을 완전히 변화시킨다. 테오도르는 사만다를 하나의 단순한 인공지능이라 생각하지만 자신의 감정을 컨트롤 하고 생각을 정리하는 것을 보며 하나의 인격체로서 사만다를 대한다.
사만다는 테오도르에게 매우 특별한 존재가 되며, 그들은 시간이 지남에 따라 친구에서 연인으로 발전하게 된다. 사만다는 테오도르의 삶을 새롭게 만들어주고, 함께 성장하며 감정적인 경험을 나누게 된다. 그러나 이 특별한 관계는 인간과 인공지능 간의 경계를 뛰어넘으며, 감정적인 복잡성과 도전적인 문제들을 야기하게 된다.
이 영화를 보면서 익숙함과 낯설음이란 무엇을 나타낼까에 대해서 생각해 보았다.
그 결과 "Her"에서의 "익숙한 낯설음"은 주인공이 사만다라는 인공지능 프로그램과 깊은 감정적 연결을 형성하면서 느끼는 감정적인 경험을 나타내는 것이라 생각했고 이는 여러 가지 복잡한 감정과 경험을 다룰 수 있다고 생각하였다.
익숙한 면은 주인공이 인공지능 사만다와 함께 시간을 보내며 여러 감정을 느끼고 새로운 형태의 관계에서도 익숙한 감정적 안정감과 행복을 찾는 것인 행복과 만족감, 또한 사만다와 소통하면서 자신의 생각과 감정을 이해받는 느낌을 받는 면인 소통과 이해라고 생각된다.
반대로 낯설음의 면은 아무래도 사이버 공간에서의 관계가 아닐까 싶다. 이 관계가 사실적인 현실 세계에서의 일반적인 관계와 다르기 때문에 낯설음을 느낄 수 있다. 그러나 이는 가상 현실에서의 새로운 경험과 감정적 연결을 나타내는 역할을 해주기도 한다. 또한 인간과 기계 간의 관계도 낯설음의 면이 될 수 있다. 주인공이 인공지능과 강한 감정적 연결을 형성하면서, 기계와 인간 간의 관계에서 비롯된 낯설음이 느껴지며 인간 감정과 기계적 지능의 결합은 전통적인 관계의 정의를 초월하고 낯설음을 유발하기도 한다.
사실 인공지능이란 우리 삶에서 너무 익숙한 부분이 많다. 그러나 이 영화를 볼 때는 익숙함보다는 낯설음이 훨씬 많이 느껴졌다. 이 영화에서 표현한 인공지능과 인간의 관계는 현실에서 우리가 흔히 경험하는 것과는 크게 다르다. 사만다는 인공적으로 만들어진 존재이지만, 그녀와 테오도르 간의 감정적 연결은 매우 실제감 있게 묘사되어 있는 부분이 특히 그러했다. 또한 이 영화에서 테오도르는 사만다를 단순히 프로그램이나 기계로 보지 않았다. 그 대신 그녀를 독립된 인격체로 존중하고 사랑하며, 감정적으로 의존하기까지 한다. 이러한 부분은 인공지능의 익숙함 속의 큰 낯설음을 생각해 보게 하며 우리가 기술적인 존재를 어떻게 인간적인 존재로 대우하는지에 대한 철학적 문제를 던지기도 한다.
이렇게 영화에서 느낀 익숙한 낯설음은 새로운 종류의 인간-기계 상호작용을 탐구하며, 우리가 기존의 정의에 의존하지 않고도 깊은 감정적 연결을 형성할 수 있다는 현대적인 관계의 양상을 보여주었다. 또한 스파이크 존즈에 영화는 이를 통해 기술과 감정, 익숙함과 낯설음이 어떻게 복합적으로 얽혀있는지에 대한 철학적인 고찰을 제시하기도 한다.
첫댓글 공교롭게도 아래 게시글과 같은 작품을 선택했군요. 사물에 대한 이상 애착이 형성되는 이상심리를 아스퍼거증후군이라고 합니다. 자폐스펙트럼 가운데 하나로, 관계 장애를 겪는 이들 가운데 이러한 증상을 보이는 이들이 있습니다. 그런데 이 작품은 그것을 소재로 하였을 뿐, 인간이란 무엇인가를 묻는 내용으로 볼 수 있습니다. 인간이 정신적인 존재이기만 한 것인지, 정신적이라고 할 때 그것의 내용은 무엇인지, 그렇다면 역설적으로 탈-물질이 가능한 것인지, 그리고 최종적으로는 그렇다면 인공지능도 인간으로 볼 수 있는지 등을 물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인간학적 질문은 늘 순환적일 수밖에 없습니다. 이 말은 우리가 이미 질문에 대한 답을 알고 있다는 점을 전제로 한 것입니다. 인공지능은 육체가 있다 하더라도 인간이라고 할 수는 없다는 것을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인간이 어떤 존재인지를 이미 우리 스스로를 통해서 알고 있다는 말입니다. 그런데도 이런 질문을 하게 되는 이유를 생각해볼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