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9년 7월 20일 협정 세계시(utc) 기준 오후 8시17분40초.
아폴로 11호의 달 착륙선 '이글'이 목적지에 도착했다.
달의 앞면에 위치한 '고요의 바다' 북위 0.8도, 동경 23.5도 지점에 착륙한 것이다.
인류 역사상 가장 먼 곳을 향한 유인 탐사, 아폴로 계획이 송공하는 순간이었다.
존 F 케네디 미국 대통령이 의회에서 '인간이 달에 착륙한 후 무사히 지구로 돌아오는 계획을
10년 이내에 달성해야 한다'고 선포한 지 8년 만의 일이었다.
이미 결말을 아는 우리는 당연히 미국이 해낼 수 있었으리라 생각하게 마련이다.
하지만 당시로써는 무모한 도전으로 보였다.
미국은 최초의 인공위성도 유인 우주 비행도 소련에 빼앗긴 후발 주자였다.
심지어 달에 우주선을 보내는 괒베 역시 소련이 앞섰다.
1959년 무인우주선 루나1호가 달에 근접했고, 루나 2호는 달에 충돌했으며,
루나3호는 인류 최초로 달의 표면을 촬영하기까지 했던 것이다.
소련이 하지 못했던 일을 단번에 해내야 한다는 그 목표를 위해 온나라가 달려들었다.
1960년대 초부터 1973년까찌 약 14년간 공식적으로 사용된 예산만 해도 총254억달러에 달했다.
당시 전체 미국 연방 정부 예산의 10%, 대한민국 GDP의 두 배에 달하는 비용이었다.
비전을 제시한 케네디부터 우주선 승무원과 말단 엔지니어까지, 약 40만 명의 인력이 한마음으로 달려들었다.
그렇게 아폴로11호는 달에 도착할 수 있었다.
그리고 다음 날인 7월21일 오전 2시56분15초, 닐 암스트롱 선장이 달 표면에 발을 디뎠다.
'이것은 한 인간에게는 작은 한 걸음이지만, 인류에게는 거대한 도약이다.'
암스트롱의 이 말과 함꼐 아폴로 계획은 새로운 의미를 얻었다.
비록 미국과 소련의 냉전 속 체제 경쟁에서 시작되었지만, 온 인류에 희망과 끔을 주는 역사적 사건이 된 것이다.
달 착륙과 같은 도전정신이 있다면 인류에 닥친 갖가지 문제도 결국 극복할 수 있을 것이다.
노정태 작가.경제사회연구원 전문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