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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LG 트윈스 잠실 개막 경기 현대 김재박 감독과 LG 이순철 감독이 악수를 나누고 있다 [잠실=박교원기자 KWPAK@] 2004.4.6 | '첫 승을 축하합니다. 신교식 증', '축 첫 승, 후배.' 빨간 장미 바구니에 긴 노란 리본이 여고생의 갈래 머리처럼 옆으로 내려져 있다. LG 이순철 감독의 방 풍경이다.
잠실구장 중앙 출입구에서 왼쪽은 LG, 오른쪽은 두산이 각각 사무실과 라커룸으로 사용하고 있다. 그 끝자락에 감독실이 있다. 주인은 둘다 초보 사령탑.
두산 김경문 감독은 지난 5일 잠실 기아전, LG 이순철 감독은 같은날 인천 SK전에서 각각 데뷔 첫 승을 올렸다. 롯데 양상문 감독도 대구 삼성전에서 기쁨을 맛봤다.
한결같이 무덤덤하게 첫 승의 변을 이야기했지만, 기다림은 꽤 긴 시간이었다. 지난해 감독으로 계약하고, 스프링캠프를 지휘하고, 시범경기에서 실전을 경험했다.
개막 이틀만에 나란히 승리했기에 망정이지, 그렇지 않았다면 어땠을까. 첫 승에 대한 강박 관념 때문에 또다른 고통의 밤을 보내야 했을 것이다.
야구는 참 섬세한 운동이다. 공 하나에 경기의 흐름이 바뀌고, 승패가 뒤집힌다. 사령탑 역시 마찬가지다. 드러내지 않으려 해도 승패의 명암은 금세 나타난다.
'그라운드의 여시'로 통하는 현대 김재박 감독은 이미 첫 승의 기억을 잊어버렸다. 첫날 밤의 기억을 시나브로 잊어버리는 것처럼 그렇게 흘려보냈다.
"언제였더라. 글쎄…, 느낌이…."
우리는 처음, 첫날에 많은 의미를 담는다. 시간이 흘러, 세월이 지나면 단지 추억의 편린에 지나지 않는 것을, 그래도 그때는 무척이나 집착한다. 그런 까닭에 늘 역사를, 지난날을 이야기할 때면 '처음 어쩌구 저쩌구' 장황하게 늘어놓는다.
가장 더디게 첫 승의 짜릿함에 빠져든 프로야구 사령탑은 MBC 허구연 해설위원이다. '역대 최연소 감독'이란 훈장 아닌 훈장을 달고 지금은 이름조차 기억에서 사라진 청보 핀토스의 지휘봉을 잡았지만 삼미 슈퍼스타즈로부터 이어진 '도깨비팀'의 악령에 시달렸다. 이 수를 써보고 저 수를 써보고…, 이 칼도 꺼냈다가 저 칼도 꺼냈다가…. 결과는 패배의 연속이었다.
86년 3월29일 대구 개막전에서 삼성에게 5대6으로 지더니 4월5일 인천 빙그레전까지 내리 8연패. 6일 9번째 경기에서 천신만고 끝에 빙그레를 9대8로 꺾고 첫 승 신고식을 가졌다.
지금은 티칭 프로로 골프 꿈나무를 양성하고 있는 유백만씨와 LG 2군 사령탑인 이광환 감독도 각각 88년, 89년 MBC와 OB에서 처음으로 작전권을 행사했지만 7게임, 6게임만에 첫 승을 따내는 어려움을 겪었다.
그에 비하면 올해 데뷔한 3인의 초보 사령탑은 모두가 '행운아'. 감독 첫 승에 매달리지 않고 자신의 야구를 펼칠 수 있는 시간을 앞당겼기 때문이다.
이순철 감독은 6일 현대전에서 1대4로 패한 뒤 오랫동안 잠실구장을 떠나지 못했다. 경기는 오후 9시26분 끝났다. 하지만 이런저런 걱정이 이 감독의 발길을 감독실에 묶어 놓았다. 황병일 수석코치, 이상군 투수코치와 머리를 맞대고 있던 이 감독은 최정우 전력분석팀장까지 불려 심야 전략회의를 했다.
이날 선발이었던 베네수엘라 출신의 후타도에 대한 이야기였을 것이란 추측만 할 뿐 정확한 내용은 입을 열 수 없는 미팅이었다. 미팅은 오후 10시40분쯤까지 이어졌고, 이 감독은 그 후에도 유니폼을 벗지 못한 채 첫 승 축하 꽃다발이 놓여 있는 감독실과 코치실을 오가며 상념에 잠겼다.
일년 133경기 중 이제 겨우 3경기 밖에 지나지 않았는데 감독들의 머리는 복잡하다. 초보 감독들은 더욱 그렇다. < chang@>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