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듀서가
만화책을
읽어
보라고 해서
봤다. ‘공포의 외인구단’ ‘북경의
갈가마귀’
이후 만화를 본 것은 오랜만이다. 그런데 감독이 박찬욱이란다. ‘복수는 나의 것’처럼 감독이 자기만의 논리와 색을 표현하는사람은 적다. 그의 열정, 스타일에 전적으로 믿음이 갔다. 당연히 해야 했다.”
(최민식)
“영화사에서는 최민식씨가 주연을 맡기로 했다’며 이래도 안 할 거냐고하더라. 우리는 그러니까 속아서 만난 셈이다.” (박찬욱)
한국 영화계의 손꼽히는 스타일리스트인 박찬욱(40) 감독과 누가 꼽더라도연기로는 세 손가락 안에 드는 배우 최민식(41)이 만났다. 동명
일본 만화를 원작으로 한 ‘올드 보이’는 영문도 모른 채 8평 공간에
15년 동안 갇혀 있던 오대수(최민식)와 그를 가둔 이우진(유지태) 등
두 남자의 갈등과복수를 그린 스릴러. 4월29일 제작발표회를 가졌고
12일 촬영에 들어가 10월 말 개봉할 예정이다.
‘공동경비구역 JSA’로 완성도 높은 대중 영화를 만들었고 비록 흥행은부진했지만 감독만의 스타일이 오롯이 살아있는 ‘복수는 나의
것’으로열혈 마니아 팬을 거느리고 있는 박찬욱 감독. ‘취화선’으로 칸 영화제에서 레드 카펫을 밟았고 ‘파이란’으로 관객 가슴에
소주를 병째로 들이부은 연기파 배우 최민식. 이 두 사람이 만났으니
예삿일이 아니다. 이미일본에서 리메이크 판권을 판매하라는 제의가
들어온 것도 이를 증명한다.
두 사람이 영화에서 호흡을 맞추기는 이번이 처음이지만 오랜 지기처럼 친해 보인다. 이유가 있다. 일찌감치 확정된 주인공을 위해 각색을
하는 과정에서 수없이 많은 날을 함께 보낸 때문이다.
“웃지 않을 때도 최민식씨의 눈은 귀엽다. 호소력과 설득력이 담겨
있다. 감정과 표현이 풍부한 배우라면 단연 그를 꼽을 수 있다.” 그래서 시나리오에는 영문도 모른 채 15년 간 갇혀 있다가 이유도 모르고
‘석방’된남자가 보일 수 있는 극단적 감정의 기복을 충분히 살렸다. 수다스럽고,쉽게 격앙되는 그런 캐릭터이다.
이런 캐릭터라면 단연 최민식을 따를 사람이 없음을 ‘파이란’의 ‘강재’는 증명했다. 감독 역시 ‘파이란’의 강재 역을 최민식의 연기 중 압권으로 꼽았다. “겸손이 아니라 그건 아마 강재라는 인물이
본질을 건드려서일 것”이라는 게 최민식의 설명. “마음 속 깊은 곳에 숨어있는 감정을끌어내 표현할 때 관객은 공감한다.
아마 그 영화가 그런 감동을 끌어냈기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자유스러워보이는 연기 또한 감독의 의도였을 것”이라고 말한다. 최민식은
영화는감독의 예술이며, 배우는 내조자라고 믿는 타입이다. 그런데
이 내조자 역할에 그는 매우 충실하다.
박찬욱 감독도 같은 의견이다. “최민식씨가 영화 설정에 대해 이런
저런얘기를 하면 너무 설득력이 있고, 믿고 싶어진다. 며칠 후 ‘이게
아닌데’ 하는 생각이 들 때도 있지만, 그의 얘기에는 빨려 들어가게
된다. 유지태가 고민 끝에 신중하게 던지는 말과는 또 느낌이 다르다.”
15년 간 갇힌 남자 역을 제대로 연기하기 위해 최민식은 ‘취화선’을 촬영할 때 ‘방기했던’ 몸을 추슬러 술도 끊은 채 감량에 들어갔다. 지난해12월부터 계속 올림픽 금메달리스트인 김광선의 도장에 다니며 권투로 몸을 단련하고 있다.
며칠 술을 마셔 몸이 불었다며 제작 발표회 전날 땀 옷을 3시간 동안이나입고 하루에 3㎏을 뺐다. “먹고 살려면 누구나 하는 일”이라지만 마흔넘은 중년의 그에게는 쉽지 않은 일이다. 그래도 “요즘 배우들이 무슨다이어트 홍보대사처럼 비쳐지는 게 싫다”고 가볍게 넘긴다.
이미 잃어버린 오래 전의 잘못, 그것으로 인생이 바뀐 한 남자의 사적인복수, 그리고 복수를 당한 자의 또 한 번의 앙갚음. 박감독의 전작
‘복수는 나의 것’에 이은 ‘또 복수는 나의 것’? 박 감독은 “복수극이란 고대부터 존재해 온 드라마 양식으로 가장 상업적인 코드”라고 설명하면서“이번 영화는 전작과는 많이 다르다”고 강조한다. “
‘복수…’가 차가운 영화였다면, ‘올드 보이’는 뜨거운 영화다.
앞의 것이 과묵한 영화라면, 이건 수다스런 영화다.”
‘영화 시나리오를 외부로 유출시키지 않는다’는 조항을 배우와 스태프의계약서에 명기하고, 철저히 비밀에 가려진 채 제작되는 이 영화가 올 하반기 어떤 성과를 낼지 벌써부터 궁금해 진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