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풍잎 멜로디 / 이수
단풍잎의 음표들이 바닥에 쏟아져 있어
멜로디가 되지 못한 휴지의 나날들
헤어짐을 직감한 순간, 침묵할 수밖에 없는 것처럼
색은 앙다물고 있다가 뱉어낸 붉은 한숨이야
낙화로써 시위하고 있는 낙엽들의 무덤
헤어질 때 아름다울 수 있다는 것을 보이기 위해
단풍잎처럼 입가에 환한 미소를 지어본다
어느 순간부터 불협화음을 두려워하고 회피하면서
내 신체에서는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어
눈빛 하나에도 출렁이던 나뭇잎이었는데
중고 악기점에서 몇 년째
음정을 잃어버리고 늙어가는 바이올린처럼
이파리들이 바람의 활을 들어 연주하던 지난여름
서투른 음정과 폭풍우 같은 멜로디에도 귀는 춤을 추었지
서둘러 겨울 속으로 떠난 애인은 돌아오지 않으므로
나의 귀는 어둠으로 꽉 차 있어
어느 날 공원에서 노인이 바이올린을 켜고 있었어
모자를 앞에 놓고서
그것은 단풍잎이 날아오르는 소리였어
아니 그것은 마지막을 알리는 비명이었어
ㅡ 반년간 《시에티카》 2023년 상반기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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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수 시인
충남 태안 출생.
2017년 《시작》 등단.
시집 『오늘의 표정이 구름이라는 것은 거짓말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