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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성경적 창조론
자료원 : 양승훈 교수 기독학술연구소장 목양신문
발행일 : 96년 01월 13일
성경이 하나님의 감동으로 쓰여졌고 자연을 하나님께서 만드신 피조세계라고 믿는 기독교인은 성경과 과학은 원리적으로 모순되어서는 안되며 모순될수도 없다고 믿는다. 이는 하나님은 미쁘신 분이기 때문에 한 하나님께로부터 나온 성경과 자연이 서로 상치될 수 없다고 보기 때문이다. 종교개혁자 칼빈(Jean Calvin,1509-1564).근대과학 정신을 기초한 베이컨(Francis Ba-con,1561-1626),과학문명의 주역들인 케플러(Johannes Kepler, Galilei ,1564-1642), 뉴톤(Isaac Newton,1642-1727),등은 성경과 자연은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자신을 나타내기 위해 주신, 다른 언어로 기록된 책이라고 생각하였다.
그러나 아직도 많은 사람들이 성경과 과학은 여러 부분에서 양립될 수 없으며 심지어 일부 지성인들은 기독교 신앙의 수략은 곧 지적인 자살이라고 까지 생각하고 있다. 이러한 오해가 생긴 원인의 하나는 중세 후기에서 르네상스를 거쳐 근대과학의 탄생에 이르는 동안 교회와 케플러, 갈릴레오 등의 과학자 공동체 사이에 있었던 갈등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최근 과학사가들의 과학혁명 재평가 작업을 통해 갈릴레오 재판은 종교와 과학의 갈등이 아니라 당시 종교계와 정치계에서 보수주의와 진보주의,혹은 성경의 축자적 해석과 은유적 해석 간의 마찰, 혹은 갈릴레오의 논쟁적 성격 때문에 생긴 것임이 드러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두차례에 걸친 교황청의 갈릴레오재판(16,1633)은 종교와 과학 간의 갈등의 전형으로 간주되고 있다.
과학과 신학이 갈등관계에 있는 듯이 알려진 또 하나의 이유를 든다면 신학과 과학의 분리를 들 수 있다. 지식이 폭발적으로 증가하고 학문의 분야가 세분됨에 따라 학문의 분리는 어찌할 수 없는 현상이라고 할지모른다. 특히 갈등관계로 알려진 신학과 과학은 13-15세기의 르네상스,16,17세기의 과학혁명, 18세기의 계몽정신과 19세기의 낭만주의,20세기의 자연주의등의 영향하에서 활발하게 분리작업이 이루어졌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종교개혁 이후 개혁주의 신학자들은 학문은 본질적으로 신앙과 분리될 수 없으며 또한 분리되어서도 안된다는 주장을 하고 있다. 특히 이 시대에 가장 커다란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 과학과 기술의 경우 바른 가이드라인을 제시해 주는 신학의 필요성이 점증하고 있다. 신학은 과학의 의미, 목적, 기원, 방향등에 관한 기본적인 골격을 제공하고 있기 때문에 반드시 이 두 분야는 통합적으로 연구되어져야 한다는 것이다.
과학과 신앙의 상호작용이 가장 활발하게 일어나고 있는 분야는 역시 기원에 관한 영역이라 할 수 있다. 다생스럽게도 우주와 인류를 포함한 생명의 기원에 관한 논의에 있어서는 최근 신학자와 과학자들 간에 비교적 활발한 학문적 교류가 이루어지고 있다. 그러나 기원에 관한 신학적 측면과 과학적 측면에서의 고찰에는 아직도 상당한 거리가 있음이 사실이다. 기원에 관한 신학자 및 철학자들의 신학적,논리적 증명 역시 고학적 증거를 요구하는 현대인들을 설득시키는 데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기원에 관한 이론들을 올바로 이해하고 이들을 효과적으로 전파하기 위해서는 과학과 신학 간의 긴밀한 유대 관계가 필수적이라고 할 수 있다.
1. 창조에 관한 용어
진화론에는 수 많은 형태가 있듯이 창조론에도 수 많은 이론이 있다. 본 절에서는 먼저 성경의 창조론을 논할 때 흔히 문제가 되는 몇몇 용어들을 간단히 설명하고 창세기를 중심으로 제시된 여러 신학적 이론들을 논의하고자 한다.
(1) 바라(bara)
이 단어는 구약에서만 55회 나타나는 특별한 의미의 히브리어 동사이다. 이 단어가 사용될 때 거의 항상 무에서부터 어떤 새로운 것을 존재하게 한다는 엄밀한 의미의 창조를 뜻한다. 또한 성경에 전체를 통하여 바라의 주어는 하나님 외에는 어느 것도 찾아 볼 수 없다. 성경에서 바라가 사용된 예를 보면 크게 창세기 1장에 나타난 세가지 용법으로 구분할 수 있다.
첫째는 우주의 기본요소, 즉 시간과 공간과 물질의 창조를 나타낼 때 바라가 사용되었다. 예를 들면 "태초(시간)에 하나님이 천지(공간 물질) 을 창조 하시니리라"(창1:1) 혹은 "대저 산들을 지으며 바람을 창조하며"(암4:13),"보라 네가 새 하늘과 새 땅을 찾아 볼 수 있다.
둘째는 의식(히브리어 naphesh:혼)의 창조를 나타낼 때 바라가 사용되었다. 예를 들면 "하나님이 큰 물고기와 물에서 번성하여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그 종류대로, 날개있는 모든 새를 그 종류대로 창조하시니 하나님 보시기에 좋았더라"(창1:21)를 들 수 있다.또한 히브리에서는 네페쉬(nephesh)를 "혼"이나 "생명"으로 번역하였는데 이 말은 "생기"(히브리어 neach:영,생각,호흡)란 단어와 관련이 있다. 다른 곳에서 비슷하게 사용된 예로는 "하나님이여 내 속에 정한 마음을 창조하시고"(시51:10)등이 있다.
셋째는 "하나님의 형성"을 따른 사람의 창조를 나타낼 때 바라가 사용되었다. 예를 들면 "하나님이 자기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고"(창 1:27)을 들 수 있다. 여기서 하나님의 형상(Imago Dei)은 인격적, 영적 특성을 말한다(엡4:24). 하나님께서 흙으로 사람을 지으신 것(창2:7)은 이미 존재하는 흙을 사용하셨기 때문에 바라라는 동사를 사용하지 않았다. 이와 비슷한 용례는 "... 창조함을 받은 백성이 여호와를 찬송하리로다"(시 102:18)등이다.
(2) 아사(asah)
아사는 성경에서 2600여 회나 사용된 히브리어 동사로 "한다"(do),"짓다", "만들다"(make)"일한다"(work)등의 의미로 번역되었다. 이 단어는 일반적으로 이차적인 원인과 자연의 힘을 통하여 역사하거나 그저 변화시키기만 하는 하나님의 섭리적인 행위를 표현할 때 사용되었다. 또는 하나님의 섭리와 관계없이 인간의 활동을 나타내는데 사용되기도 했다. 예를 들면 "하나님이 궁창을 만드사..."(창 1:7),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창1:26),"그들이 무화과 나뭇잎을 엮어 치마로 하였더라" (창3:7), "너는 잣나무로 너를 위하여 방주를 짓되...(창6:14)."..그를 깊이 사랑하여 위하여 채색옷을 지었더니"(창37:3)등이다.
바라와 아사를 가장 잘 대비하여 사용한 귀절은 창세기 2장 3절이다. 여기에서 기자는 "하나님이 일곱째 날을 복 주사 거룩하게 하셨으니 이는 하나님이 그 창조하시며(바라) 만드시던(아사) 모든 일을 마치시고 이날에 안식하셨음 이더라."고 말함으로 무에서 유의 창조와 창조된 원재료를 사용한 이차적인 제조를 구별하고 있다.
(3) 민(min)
이 단어는 창세기 1장 11,12,22,24,25절에 나오는 "그 종류대로"란 귀절에서 "종류"를 의미하는 히브리어다. "하나님이 가라사대 땅은 풀과 씨 맺는 채소와 각기 종류대로 씨 가진 열매 맺는 과목을 내라 하시매 그대로 되어"(창1:11)등 "그 종류대로"라는 말이 창세기 1장에만도 10여회 나타난다. 성경에서 같은 귀절을 자주 반복하는 것은 같은 하나님께서 특히 중요한 교훈을 주기 위함일 때가 많다.1장에서 "그 종류대로"란 말을 10여회 반복하는 것은 모든 생물은 처음부터" 그 종류대로" 만든것임을 강조하기 위함이라고 생각된다. 즉, 현존하는 생물들은 처음부터 있었으며 결코 진화의 과정으로 생겨난게 아니라는 말이다.
창세기 1장의 "종류"는 현대 생물학에서 사용되고 있는 '종' (species)의 개념과는 다소 차이가 있다. 생물학에서의 "종"개념은 생물분류학의 시조인 스웨덴의 식물학자 린네(karl von Linne,1707-1778) 이래 계속적으로 변해왔으며, 현재도 학자들간에 의견이 일치하지 않고 있다. 클로츠(John Klotz) 박사는 "아마 유능한 분류학자의 수 만큼이나 종에 대한 수많은 정의가 있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현재 대체로 인정되고 있는 "종"의 의미는 공통된 형질을 갖고 있고 대를 이어 생식이 가능한 자손을 만들 수 있는 하나의 군을 말한다. 이에 비해 성경에서의 "종류"는 수정에 의한 생식가능성, 즉 생식질의 조화성을 말하는 듯하다(창6:20,11:13,16,19,레19:19).이것은 생물분류학에서 때로 "種"또는 "屬"에 대응된다고 볼 수 있다.
종에는 자연적인 것과 인공적인 것이 있으며 교배에 의해 인공적인 종이 생겨날 수 있다. 하지만 라이거(liger=lion+tiger)나 타이온(tion=tiger + lion), 노새등과 같은 인공적인 종은 더 이상 번식할 수 없으므로 새로운 종의 郡을 형성할 수 없다. 새로운 "종류"가 생겨날 수 없음은 생물학에서 멘델 (Gregor Johann Mendel,1822-84)의 유전법칙으로도 분명한 사실이다.
그러나 미생물학 분야에서는 종의 정의가 불확실하다. 금세기 중반 이후 시작된 유전 공학의 결과 새로운 미생물의 탄생이 일상적인 일로 되어가고 종래의 거시 생물계의 종의 개념을 미생물계의 적용하는 것이 점점 어렵게 되어가고 있다. 과연 성경의 개념이 그대로 적용될 것인지는 불분명하다 성경에서의 종류는 문맥상 거시 생물계에 대한 것이기 때문이다.
2,.창조에 관한 이론들
(1) 창세기 1장
창세기 1장 1절의 해석에는 크게 세가지 이론이 있다. 첫째는 제목설로서13절이 그 이하의 창조사역에 대한 총제목이라는 견해이다. 그러나 제목설로 2절에 나오는 땅의 창조 사역과 땅의 존재를 설명할 수 없다는 단점이있다. 물론 성경이 하나님의 창조를 빠짐없이 모두 기록한 것이 아니라고도 할 수 있으나 하나님의 창조 사역에서 땅은 언급하지 않고 그냥 지나치기에는 너무나 중요한 피조물이다.
둘째는 1절을 독립된 창조사역으로 보고 그 이하 6일간의 창조사역은 두번째 창조라고 보는 소위 재창조설이다. 재창조설에서는 2절의 "땅이 혼돈하고 공허하며 흑암이 깊음 위에 있고" 는 창조의 결과가 아니라 1절에서 창조한 피조물,즉 타락한 천사를 심판한 결과를 본다(렘 4:23,26,히1:13).즉 이 이론에서는 천사의 창조 및 타락으로 인한 사탄의 출현을 1절과 2절 사이에 추가한다.
그러나 재창조설은 1절과 2절 사이에 새로운 내용을 추가함으로 성경해석자가 아닌 성경기록자가 되려한다는 비난을 받는다. 특히 우리말 성경에는 드러나 있지 않지만 1절과 2절 사이에 "그리고"에 해당하는 와우(waw)라는 히브리어 접속사가 있는 점으로 미루어 1절과 2절 사이에 천사가 타락하고 하나님께서 처음 창조한 세계를 심판하는 등의 엄청난 사건들이 있었다고 보는 것은 어색하다.
셋째는 1절과 2절을 첫째날 빛의 창조사역에 포함시키는 견해이다. 1절을 첫째날 사역에 포함시키려는 견해에서는 1절의 "태초"(bereshith)라는 원어에 사용된 정관사의 용법,엑센트의 위치 및 2절의 접속사 "그리고"(waw)로 연결되는 것으로 보아 1,2절은 연속적으로 이어지고 있다고 말한다. 또한 2절의 혼돈과 공허, 흑암은 심판의 결과라고 보기보다 창조의 한 상태라고본다. 이 이론은 제목설과 재창조설에 비해 복음주의 진영에서 비교적 많은 지지를 받고 있다.
(2) 간격(間隔)이론(Gap Theory)
이것은 창세기 1장 1절과 2절 사이에 지질시대의 시간적 간격이 있었다고 보는 이론이다. 이 이론은 앞에서 말한 재창조설과 비슷한데 재창조설은 신학적 이론인 반면 재창조설은 지질학적 이론이라는 점이 다르다. 이 이론이 일부 학자들에 의해 받아 들여지는 이유는 성경으로 설명할 수 없는 모든 지질학적 결과들을 이 미지의 간격 속에 다 집어 넣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 간격은 지질학적 수수께끼를 삼키는 특이점이요, 블랙홀과 같은 존재이기때문이다. 구체적인 예로 진화론에서는 현재 우주 진화론자들이 주장하는 170억년이라는 우주 연대와 지구 진화론자들이 방사능 붕괴법으로부터 추정한 45억년의 지구연대, 생물진화를 위해 생물 진화론자들이 주장하는 수 억내지 수십 억 년의 시간을 이 간격 속에 집어 넣는다.
그러나 후에 연대측정에 관한 장에서 다루는 바와 같이 생물학, 지질학, 천문학 등에서 통용되고 있는 긴 우주 연대는 연대 측정에 사용된 가정들의 정확성에 관한 신뢰도가 높지 않다는 문제가 있다. 그리고 오늘날 우주가 젊다는 것을 보여주는 연대측정 방법도 많이 있으므로(물론 이 방법들도 여러가지 가정들 위에 근거하고 있지만) 오랜 연대와 지질시대의 존재를 증명하기 위해 간격이론을 지지해야 할 이유는 전혀 없다. 특히 간격 이론은 앞에서 언급한 재창조설의 문제점과 같이 1절과 2절 사이에 나타나는 연속성으로 인해 성경적인 근거도 분명하지 않다.
(3) 날 - 시대 이론(Day-Age-theory)
이 이론은 천지창조가 이루어진 창조주간의 하루하루를 현재와 같이 태양일 24시간으로 보지 않고 상징적으로 해석하여 지질학적 시대를 포함한 오랜 세월로 본다.이 주장은 창세기 1장의"날"이라는 히브리어 명사 욤(yom)이 "시대" 등으로도 번역 될 수 있을뿐만 아니라 창조주간의 하루하루의 사역이 24시간만에 일어나기는 어렵다는 등의 성경 해석에 근거한다. 욤의 해석에 관해서는 후에 창조 연대 논쟁에서 좀 더 자세히 다룰 것이다.
어떤 사람들은 창조주가 중 넷째 날에 日月星辰이 창조되었기 때문에 처음 사흘은 오늘날과 같은 날이 아니었을 것이지만 나중 사흘은 현재와 같은 태양 일이었을 것이라고 주장한다. 이 주장에 대하여 욤을 24시간 하루로 해석하는 사람들은 처음 사흘이 지질 시대였다면 셋째날 창조된 식물이 태양없이 수천만년을 살아야 한다고 반박한다. 여기에 대하여 날-시대 주장자들은 처음 사흘 동안 태양은 빛나지 않았지만 빛과 어두움, 아침과 저녁을 나누는데 필요한 미지의 빛의 근원은 분명히 있었을 것이라고 본다. 그 빛의 근원이 무엇이든지 처음 사흘동안도 저녁과 아침이 규칙적으로 된 듯하다.
(4) 골격 가설(Framework Hypothesis)
이 이론은 1924년 화란의 우트렉트 대학의 노트르지가 제시한 가설이다. 그는 성경이 언제 창조를 구속의 중심적 사실 -예수 그리스도의 관점에서 취급하고 있으며 창세기 1장을 성경의 다른 부분과 비추어 보면 1장의 의도는 창조과정에 대한 연구가 아니고 하나님의 창조행위를 구원 역사에 비추어 보도록 하는데 있다고 말한다. 따라서 성경은 무에서부터의 창조를 가르치는게 아니고 하나님의 뜻으로부터의 창조를 가르치고 있으며, 창세기 기자가 자료를 수집하는 과정에서 창조 주간의 6일과는 무관하다고 생각한다.
이 이론에서는 창세기 전반부의 기록에 대한 목적론적,의미론적 측면만을 강조하고 방법론적 측면은 무시한다.
위의 가설은 창세기 1장에서 11장 까지를 창조, 인간의 타락, 순종의 영적 주제로 골격을 세우고 이러한 특수 골격 체계에 대한 해석은 사람마다 다를수 있다는 여지를 남겨두었다. 그래서 어떤 사람은 창세기가 우화적이라고 하며 어떤 사람은 시적, 어떤 사람은 초자연적이라는 등등의 해석을 한다. 그러나 모두가 창세기를 과학적.역사적 사실이 아니라고 보는 점에서는 대동소이하다. 이들은 창세기가 "창조"와 "타락"만을 가르치며 그 방법을 말하고 있지는 않다고 하여 과학적(진화론적)인 난점을 피하면서 동시에 신학적인 함의를 포함시키려고 한다.
골격가설에 대해 화란 자유대학의 알더스(G.Ch.Aalders)교수는 하나님의 창조 사역에 관한 근본적인 지식이 중요치 않다는 것을 암시하는 어떤 구절도 없으며 출애굽기 20장 11절에서 하나님의 창조사역이 인간에게 엿새동안 힘써 일하고 이레째 되는 날은 쉬라는 패턴으로 제시된 것으로 미루어 창조사역은 현실적인 것을 보여주고 있다고 반박한다. 또한 창세기11장이 유사이후의 기록으로 모든 사람들이 사실로 받아들이는 12장으로 논리의 비약없이 연결되고 있음을 볼 때 11장의 내용을 문학적인 이야기로 보는 것은 타당치 못하다는 반박도 있다. 이렇게 볼때 골격가설 역시 진화론을 염두해둔 견해라는 비난을 면할 수 없다.
(5) 유신론적 진화론 (Theistic Evolution)
이것은 진화론의 일종으로 하나님께서 진화의 과정을 통해 모든 생물을 창조했다는 이론이다. 다시 말해서 하나님의 창조사역이 진화라는 섭리 사역의 방법으로 조종되며 동시에 섭리 사역의 일부분을 이루고 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창세기 1장과 2장에서는 매우 분명한 경계선을 하나님의 섭리과정과 창조 과정을 구별하고 있다. "... 이는 하나님이 그 창조하시며(bara) 만드시던 (asah) 모든 일을 마치시고 이 날에 안식하셨음이더라"(창2:3)는 이의 한 예이다. 앞에서 설명한 것처럼 바라는 재료를 사용하지 않고 無에서 有의 창조 사역을 나타내는 특별한 단어이며 아사는 주로 창조된 것을 변화시키는 섭리 사역을 나타낸다. 그러므로 유신론적 진화론은 하나님의 창조와 섭리의 차이를 무시한 이론으로 비성경적이라 할 수 있다.
특히 유신론적 진화론에 근거한 인간론에서는 인간 타락의 역사와 인간에게 속죄가 필요하다는 사실을 받아들일 수 없다. 성경에서는 분명하게 사람은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되었으나 범죄함으로 타락한 것이라고 못박아 진화적 과정의 개입을 불허한다.
또한 창세기 2장 21,22절의 하와의 창조기사도 성의 진화에 관한 어떤 학설과도 조화되지 않는다. 영적인 측면에서도 유신론적 진화론은 빛과 어두움, 신앙과 불신앙, 계시와 철학을 혼합시키려는 시도로 비난받는다. 즉, 유신론적 진화론이란 말 자체가 이미 "무기체의 신진대사" "기독교적 무신론" 따위의 말처럼 자기모순적이라는 것이다.
(6) 진행적 창조론 (Progressive Creation)
이 이론은 생물체가 오랜 시간에 걸쳐 진화를 하다가 진화 과정만으로는 완성시킬 수 없는 부분은 하나님이 그 때마다 중재하여 창조하신다는 주장이다. 예를 들면 인간도 처음에는 원숭이 같은 조상으로부터 점점 인간의 모양으로 진화하여 가다가 때가 오자 하나님께서 창조한 영원한 혼을 받아 오늘날의 인간이 되었다는 것이다. 이 이론 역시 성경적 근거나 과학적 증거가 없음은 물론 진화를 위해 지질학적 연대를 인정하여 진행적 창조기간을 엿새 대신 수십억년으로 보고 있으므로 메타니즘만으로 보편적 진화론과 본질상 다를바 없다. 날-시대 이론을 주장하는 사람들 중에 생물의 기원으로서 이 이론을 지지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은 흥미로운 일이다.
위에서 제시란 이론들 외에도 창세기가 만물의 기운에 관한 이스라엘의 민족적 신화라고 보는 신화설(Mythical Therory), 창세기 1장을 풍류적이고 시적이라고 보는 이론들 중의 하나인 바르트(Karl Barth)의 사가이론(Saga Theory), 창조주간의 각 날의 길이(낮의 길이)는 그대로 두고 날과 날 사이(밤)의 간격을 거대한 지질시대로 보는 '期間이론(Inter-Period Theory) 등등 많은 이론이 있다. 그러나 어느 이론이든지 모든 사람들이 찬성할 수 있는 이론은 아직 존재하지 않는다. 어떤 이들은 창조의 과정이나 창조 날들의 길이에 대해 지나치게 집착하는 것은 주제넘은 일이라고 비판하기도 한다.
(7) 국부홍수론(Local Flood Theory)
이 이론은 노아의 홍수가 지구를 뒤덮은 전세계적 홍수(Global Flood)가 아니라 단지 중동지방만 덮은 홍수였다고 주장한다. 사실 지층의 존재와 화석의 발굴을 성경과 모순없이 설명할 만한 유일한 길은 노아의 홍수를 연구하는 것이다. 그러나 성경에서 말하는 대로 노아의 홍수가 그처럼 거대했다면 진화의 증거로 제시된 화석의 모든 증거나 지질연대의 증거는 하루 아침에 무너지고 말기 때문에 소위 정통 지질학자들과 고생물 학자들은 지질연대, 나아가 진화론을 옹호하기 위해 전세계적 홍수를 부인한다.
국부홍수론은 '진화론 학계에서 전지구적 홍수를 강력히 부인하기 때문에, 혹은 성경의 일부분의 해석 때문에 복음주의자들 중에서도 지지자들이 많다. 성경적인 이유로는 창세기 6장, 노아 홍수가 일어나기 전에 네피림이라는 존재가 등장하는데 문맥으로 보아 이 네피림은 분명히 노아의 아들들이 아니며 노아는 더더욱 네피림이 아니었다. "당시에 땅에 네피림이 있었고 그 후에도 하나님의 아들들이 사람의 딸들을 취하여 자식을 낳았으니 그들이 용사라 고대에 유명한 사람이었더라"(창6:4).
그런데 이들의 이름이 홍수 후 1000년 이상 지나서 민수기에 다시 등장한다. 출애굽 하던 이스라엘이 가나안 땅에 들어가기 전에 12명의 정탐군을 보냈는데 그들 중에는 "거기서 또 네피림의 후손 아낙 자손 대장부들을 보았나니 우리는 스스로 보기에도 메뚜기 같으니 그들의 보기에도 그와 같았을 것이니라"(민13:32)고 보고한 자들이 있었다.그렇다면 홍수 때 노아의 가족들 외에도 죽지 않았던 사람들이 있었으며 이는 노아의 홍수가 전지구적 홍수가 아닌, 국부적 홍수였음을 시시하는 것이다.
그러나 뒤에 언급하게 되는 것과 같이 노아의 홍수에 대한 성경의 언급들과 지질학적 증거로 미루어 볼 때 대체적으로 노아의 홍수는 전세계적 홍수였다고 보는 것이 더 자연스럽게 보여진다. 지질학적 증거들에 관해서는 후에 자세히 언급할 것이므로 아래에서는 전지구적 홍수에 대한 몇몇 성경적증거를 살펴보자.
창세기 7장 19,20절에 의하면 대홍수로 인해 가장 높은 산들도 덮혔으며 창세가 8장 5절에 의하면 홍수가 열달동안 계속되었다고 한다. 현재 아라랏산의 높이가 5,000m 이상임을 생각할 때 방주가 그 산봉우리에 머물렀다는 말은 홍수가 국부적일 수 없다고 볼 수 밖에 없다. 설사 그 당시에는 아라랏산이 현재와 같이 높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성경은 명백히 천하의 높은 산이 다 묻혔음을 말하고 있다.
또한 창세기 6장 15절의 방주의 크기나 방주를 만드는데 소모된 120년의 세월 등은 결코 국부적 홍수에 대비한 것이 아님을 알 수 있다. 가로-세로-높이가 각각 130-50-23m인 배는 결코 작은 홍수를 대비한 것이 아니다. 다음으로는 7장 3절에서는 "그시를 온 지면에 유전케"하기 위해 큰 배를 만들었다고 했는데 만일 홍수가 나지 않는 다른 지역이 있었다면 그곳에 서식하는 동물들도 많을텐데 구태여 그 많은 동물을 방주 속에 넣을 필요가 있었을까?
7장 21-23절에는 중동지역의 생물 뿐 아니라 땅 위의 모든 생물을 쓸어버렸다고 분명하게 기록되어 있다. 그리고 홍수가 국부적이었다면 창세기 9장15절의 다시 이런 홍수가 없을 것이라는 약속은 거짓말이 된다. 왜냐하면 오늘날도 국부적인 홍수는 얼마든지 일어나기 때문이다.
신약에 와서도 베드로와 (벧후 2:5,3:6) 바울은 (히11:7)물론, 예수께서도 "홍수가 나서 저희를 다 멸하셨으며"(눅 17: 27)라고 말씀하심으로 대홍수가 나서 온 인류를 멸망시켰음을 말씀하셨다.
3.성서적 창조론
앞에서 제시한 창조에 관한 여러 이론들의 고찰 및 비판으로 인해 본 장에서 다룰 성서적 창조론의 향방과 내용은 대체로 정해졌다고 할 수 있다. 본고에서는 욤에 대한 정확한 의미는 불확실하지만 창세기 1장의 창조가 역사적인 사건이라는 입장을 취한다. 창세기 1장은 물질계 창조이며 1절은 6일 창조 주간중 첫날의 창조사역이라는 해석을 취하면 하나님께서는 첫 사흘동안 기본 재료들을 존재하게 하셨고 나머지 사흘동안은 그 재료를 바탕으로 땅 위를 채우시는 사역을 하신 후 이레째 날은 쉬셨다 좀 더 자세히 말하면 첫째 날에는 천지를 창조하시고, 그 가운데 빛과 어두움을 있게 하셨으며, 넷째 날에는 첫째 날 창조한 우주공간에 일월성신을 채우심으로 하늘을 주관하게 하였다. 둘째 날에는 궁창과 바다를 나누고, 다섯째 날에는 둘째날 창조한 하늘과 바다를 물고기들과 새들로 채우셨다. 셋째날에는 육지식물을 만드시고, 여섯째 날에는 셋째 날 만든 육지식물을 먹고 살도록 인류와 육지동물을 채우셨다.
창조주간에 일어난 창조사역의 순서나 방법 등에 대해서는 많은 이론들이 제시되고 있다. 예를 들면 태양은 넷째 날 창조되었고 그 이전인 셋째 날에 식물이 창조된 것이나 일월성신이 없었던 첫째 날 창조된 빛의 본질, 태양와 달이 없었던 사흘 간의 아침과 저녁의 구별과 수 만, 수십 만 광년 떨어진 별에서 출발한 별빛이 지구에 도달하는데 걸리는 시간(아마 하나님께서는 오고 있는 빛을 만들었을지도 모르지만)등등이다.
우리는 이러한 창조 과정의 세세한 부분들에 대해 잘 모른다.그러나 현대 과학이나 우리의 이성적 논리로 설명할 수 없다는 것이 그러한 난제들을 거부하거나 비성경적 입장에서 재해석 해야한다는 주장을 정당화하지는 못한다. 이해도 안되는 것은 모른다고 하는게 바른 태도일 것이다. 사도 베드로가 지적한 것처럼 잘 모르는 것을 억지로 풀려다보면 멸망에 이르게 된다. "... 그중에 알기 어려운 것이 더러 있으니 무식한 자들과 굳세지 못한 자 들이 다른 성경과 같이 그것도 억지로 풀다가 스스로 멸망에 이르느니라"(벧후 3:16).
(1) 성서적 창조론의 독특성
많은 사람들은 성경의 창조기사가 다른 나라의 창조신화들과 본질적으로 다르지 않은 이스라엘 민족의 신화라고 생각한다. 여기서는 대표적인 몇 나라의 창조신화를 알아보고 성경의 창조론이 그들과 어떻게 다른지 살펴본다.
1) 바벨론 신화를 살펴보자 바벨론 신화에서는 마르독(Mardoek)이란 신이 티아맛(Tramat)이란 용과 싸워 이긴 후 그 시체로 궁창과 땅, 일월성신을 만들었고 티아맛의 군대장관 킹고(Kingoe)의 피로 인간을 만들었다.
2) 이집트 신화에 의하면 물가운데 있었던 아톰(Atome)이란 신이 자기 몸에서 쇼(Sjoe)와 테프네스(Tefnet)란 신을 생산하였다. 물 속에는 이미 켑(Keb:땅)과 노트(Note:하늘)가 있었고 쇼가 노트를 땅 위에 달아 메어 천지가 생겼다.
3) 페니키아 신화에 의하면 맨 처음에는 캄캄한 혼돈체와 기운이 있었으나 거기서 좀과 진탕이 생겼고 또 생물도 생겼다.
4) 인도 신화가 기록된 리그베다(Rig-Veda)경에 의하면 맨 처음에는 타드(Tad)라는 절대(絶大)가 있었고 그 뒤에 의지,법,진리, 바다,시간,주야,일월,천지,대기 등이 순차적으로 발생되었다.
5) 페르시아 신화를 기록하고 있는 아베스타(Avesta)경에 의하면 맨 처음에 지혜의 신 아후라 막스다(Ahura Maxda)가 선한 세계를 창조했으나 그후 앙그라 메이뇨(Angramainyoe)라는 악신이 반대 세력을 창조했다.
6) 그리이스 신화에 의하면 맨처음 우주에는 혼돈(chaos)이 있었고 그 혼돈으로부터 땅과 사람이 생성되었다. 또한 그 혼돈에서 어두움과 밤이 생겼는데 이 둘의 연합으로 공기와 낮이 생겼다. 그리고 땅(Gaia)과 하늘(Uranos)의 결혼으로 인해 각종 신들이 생겼다.
7) 중국의 창조 신화에 의하면 반고하는 원초적 거인이 있었는데 그가 죽은 후 그의 몸의 모든 지체들이 만물을 형성하였다.
위의 신화들이 성경의 창조론과 본질적으로 다른 특징은 크게 다음 몇가지 요약할 수 있다. 첫째, 다른 창조신화들은 모두 기존 물질로부터의 창조인데 비해 성경의 창조는 무에서부터 창조(Creatio ex nihilo)이라는 점이다. 시간,공간,물질이 없는 절대무(絶大無)라는 개념은 사람들이 시간과 공간과 물질의 상호의존성과 가변성을 인정하기 시작한 이십세기 현대물리학의 탄생 이후에 비로소 생겨났다고 할 수 있다.
둘째, 다른 모든 창조신화들이 범신론적 혹은 다신론적 사상에 기초하고 있는 데 반하여 성경의 창조는 유일신론적이다(25). 구약성경이 기록되던 때 세계의 강국들은 하나같이 다신교 내지 범신론을 숭배하고 있었는데 이들의 틈바구니 속에 있었던 작은 히브리 민족이 수천년 동안 유일신 신앙을 유지했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라 할 수 있다.
셋째, 동서양을 막론하고 대부분의 고대 사상들(예를 들면 고대 희랍사상이나 중국의 노장사상)이 물질세계를 경시한데 비해 성경의 창조기사에서는 어디에서도 물질세계를 경시했다는 흔적이 없다. 하나님께서는 창조주간에 하루하루의 창조사역을 마칠 때 마다 창조된 세계가 보기에 좋았다(Good to see)고 말했다. (창1:4,10,18,21,25).그리고 마지막 날 모든 창조사역을 마친 후에 하나님은 그의 창조세계가 '보시기에 심히 좋았더라'고 말했다.(창1:31).신약에서도 사도 바울은 하나님께서 지으신 모든 것이 선하므로 감사함으로 받으면 버릴 것이 없다고 하였다(딤전 4:4).
넷째, 대부분의 고대 창조신화들이 창조를 우발적인 사건으로 취급하고 있는데 비해 성경의 창조는 명백히 목적을 가진 창조였음을 지적할 수 있다. 창조된 모든 것들이 피조세게 내에서뿐 아니라 하나님 앞에서 나름대로의 목적과 의미를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사도바울은 창조의 절정이라고 할 수 있는 인간에 대해서는 창세 전부터 계획을 가지고 창조하였음을 말하고 있다(엡 1:5-6).
이러한 창조의 독특한 곧 창조의 독특한 의미와 관련된다. 창조의 가장 중요한 의미는 무에서부터 유의 창조와 관련된다. 무로부터 유가 창조되었다는 것은 창조주와 피조물의 근본적인 이질성을 말한다. 이방 모든 종교들의 특징이 하나님과 피조물 사이의 근본적인 차이를 인정치 않는 범신론적이고 다신교적인데 비해 창세기의 창조는 조물주 하나님만이 독특한 사역임을 보여준다.
이와같은 창조의 의미로부터 우상숭배를 정의할 수 있다. 즉, 피조물인 일월성신이나 강, 바다, 산, 나무, 바위 등을 창조주 하나님과 혼돈하여 숭배하는 것이 우상숭배이며 우상숭배는 비단 이러한 가시적인 자연계의 일부을 숭배하는데 국한되지 않는다. 현대에 와서 우상의 형태는 훨씬 더 교묘하고 다양한 형태로 나타나고 있다. 하나님의 피조물인 돈, 권세, 지식을 전능한 창조주인 것처럼 섬기는 것이나 특정한 논리, 정치제도, 이데올로기, 사상을 전능한 것처럼 추종할 때 그것 역시 우상숭배의 일종이 된다고 할 수 있다.
4. 진화는 더 큰 믿음을 요구한다.
창조의 사실성과 역사성을 받아들이는 데는 상당한 믿음이 필요한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무신론적 진화론을 받아들이기 위해서는 훨씬 더 커다란 믿음이 필요함을 인정해야 한다. 이는 진화론도 일종의 믿음이기 때문이다. 현존하는 현상으로부터 보지 못한 사실을 유추할 때는 항상 가정과 신념이 수반된다. 기원에 관한 이론들은 인간의 역사시대와는 너무나 먼 과거의 사건들에 대한 설명이므로 다른 어떤 이론들보다도 더 많은 가설들 외에 세워져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아무리 명성이 높은 과학자라도 관찰과 실험,그러므로 우리는 아무리 명성이 높은 현상의 분석을 넘어서 어떤 사건에 대하여 설명을 하려고 한다면 그것은 문외한으로서나 철학자의 입장에서 설명하는 것이지 과학자의 입장에서 이야기하는 것은 아님을 기억해야 한다. 철학적인 신념을 과학적 사실과 구별되어야 한다.
진화론자들은 오래 전부터 무신론적 진화론으로 성경을 정면 공격할 뿐 아니라 진화론을 창조론과 조금씩 섞어감으로 진화론과 기독교 신앙의 통합을 시도하고 있다. 물론 창조론의 지평을 넓히기 위해 진화론자들이 발견한 많은 과학적 사실들을 재해석하는 것까지 비판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진화의 개념으로 창조를 설명하려는 시도는 마치 새 술을 낡은 부대에 넣으려는 것처럼 보인다. 현재까지의 성경연구로 미루어볼때는 성경에 진화론적요소를 도입해야 할 여지는 별로 없다. 하나님께서 회오리 바람 가운데서 욥에게 하신 질문은 오늘날도 진화론자들은 물론 성경을 자기 마음대로 해석하거나 성경에 없는 내용을 두려움없이 첨가하는 사람들에게 던져지고 있다. "내가 땅의 기초를 놓을 때에 네가 어디 있었느나?"(욥38:4).
출처 : 네이버
P.S) 위의 자료들은 창세기 강해(4강)를 돕기위한 자료로 올려드립니다. 이 글만 읽어보셔도 창세기강해에는 많은 이론들이 존재한다는 것을 아실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그러므로 자신의 이론만을 주장하지 마시고, 여러가지 이론이 있다는 것을 배우는 계기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이 내용은 저자의 동의가 없이 가져 온 자료이므로 막았습니다. 공부하는 일에만 사용하시고 퍼 가지 마세요. 별이야 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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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아멘
주님께 영광! 댓글 감사합니다.
잘 읽고 갑니다.감사드립니다.하나님이 주신 능력으로 많은 사람들은 하나님을 부인하는데 힘을 쓰고
있다는 생각이 문득 드네요.
주님께 영광! 댓글 감사합니다.
좋은 자료 감사합니다.
귀한 자료 감사합니다!! 여호와 샬롬!!!
자료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