흰 소를 찾는 사람들
허 열 웅
소의 눈은 노스님이 낚시 줄을 드리울 수 있는 호수 같이 맑고 푸르다. 소가 눈을 껌벅일 때 마다 세상 하나씩 지나간다. 소의 고삐를 잡았다고 해서 꼭 주인은 아닐 것이다. 올해는 신축년辛丑年소띠 해다. 오행 중 신辛이라는 글자가 금을 나타내고, 금은 흰색으로 표현하기에 금년을 하얀 소의 해라고 말한다. 나는 일 년에 몇 차례 절을 찾는 경우가 있다. 관광여행에 합류했다가 일정에 따라 가는 경우와 나 혼자 마음을 달래기 위해 방문한 적도 있다. 일주문을 지나 천왕문을 거쳐 대웅전 뜰에 들어서면 법당의 부처님께 절을 하는 사람도 있고 그저 구경만 하는 분들도 있다.
나는 뒤편으로 들어서 심우도가 그려있는지를 살펴본다. 절마다 있지는 않지만 벽화를 발견하면 천천히 감상하며 그 의미를 더듬어 본다. 불교에서는 소를 깨달음의 상징으로 본다. 그 깨달음에 도달하는 과정을 소 찾는 일에 비유하는 그림이 사찰 벽화로 그려져 있다. 열 폭으로 되어 있어 십우도十牛圖또는 목우심우도牧牛尋牛圖라 불린다. 자신의 본성을 찾아 헤매는 동자 이야기를 담고 있다.
첫 그림부터 그 연유를 따라가 보자, ①선을 닦는 동자가 손에 고삐와 줄을 들고 본래 성품인 소를 찾기 위해 산중을 헤맨다(尋牛)②소의 발자국을 발견하게 된다.(見跡))③멀리서 검은 소를 발견한다(見牛) ④동자는 다가가 거침없이 소를 잡는다(得牛), ⑤그러나 검은 소가 거칠어 길들여야만 했다.(牧牛) ⑥어렵사리 길들인 소를 타고 동자는 피리를 불며 집으로 돌아온다.(騎牛歸家) ⑦이 때 소는 검은 색이 아니라 상서로운 흰색이다. 집으로 돌아온 동자는 소가 사라졌음을 깨닫는다.(忘牛存人) ⑧이어 그려진 그림에는 소도 동자도 사라진 채 텅 빈 공간만 남아 있다.(人牛俱忘) ⑨둘 다 어디로 간 것일까? 풍경은 변함이 없다. 나무에는 꽃이 피고 강물은 유유히 흐른다.(返本還源)
⑩아! 드디어 동자를 찾았다. 지팡이에 주머니를 단 동자가 세상 한 가운데 있다.(入塵垂手)심우도의 소 찾기는 한마디로 말해 “불교적 은유인 소를 통해 참된 자기를 찾는 과정이다.발견, 탐구, 갈등, 화해, 변용과 초월의 과정을 거쳐 치유와 깨달음을 확보하는 수행 과정을 구체적으로 보여준다. 수행의 단계를 확인하는 역동적”인 방법론이다. 우리는 모두 자신만의 소를 찾아야하는 신축辛丑년 2021년의 문이 열렸다. 검은 소가 아닌 하얀 소를 찾아야 한다.
많은 동물 중에 왜 소를 선택하여 깨달음의 과정을 표현했을까? 소는 때론 사납고 우직하며 유순한 동물이다. 가축으로 기르기 전의 들소는 거칠고 사나울 뿐만 아니라 먹을거리도 풍성하여 원시인들이 제일 좋아하는 사냥의 표적물이었다. 예술가들에게 영감을 주기도 했다. 2만5천 년 전에 그려진 동굴벽화에 들소의 그림이 프랑스에 있다. 그 뒤로 피카소를 비롯한 많은 화가들이 소의 그림을 그렸고 우리나라 국민화가 이중섭의 그 유명한 ‘흰소’작품도 홍익대학교박물관에 보존되어 있다. 몇 년 전에 덕수궁 미술관에서 이 작품의 원본을 전시할 때 관람한 적이 있다. 성난 소가 그림 액자를 뛰쳐나와 나에게 달려들 것 같은 생동감을 느꼈다.
소에 관한 아름다운 이야기 두 편을 펼쳐본다. 경상도 상주군 마을에 의로운 소 장례식에서 있었던 일이다. 이웃집 할머니가 소를 지극 정성으로 보살펴주다가 세상을 떠났다고 한다. 삼우제 날 외양간을 뛰쳐나온 소는 2Km나 떨어진 산소에 가서 눈물을 흘리고 집에 돌아와서는 할머니 영정을 모신 방 앞에서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다고 한다. 은혜를 자주 저버리는 인간을 부끄럽게 하는 이 소를 동네에서 공동으로 기르다가 수명을 다 하던 날 사람과 똑 같은 절차와 예의를 갖추어 장례를 치르러 주었다는 실화가 있다.
또 한 편의 이야기는 <대지大地>라는 소설로 노벨문학상을 받은 ‘펄벅’ 여사의 한국 방문 시에 목격했던 이야기다. 농촌을 둘러보던 중 짐을 싣고 가는 소달구지 옆에 농부도 지게에 짐을 가득 지고 가는 모습을 보고 의문이 들어 농부에게 물었다고 한다. “지게 위에 있는 짐도 달구지에 싣고 사람도 타고 가면 편할 텐데 왜 힘들게 짐을 지고 걸어가시는가요?” 오늘 우리 소가 일을 좀 많이 해서 힘들까봐 나누어지고 갑니다. 이 말에 펄벅 여사는 동물과 교감하면서 배려하는 한국인의 마음에 큰 감동을 받았다고 기록했다.
펄벅 여사는 미국 선교사의 딸로 중국에서 오래 생활해오면서 아시아의 여러 나라 둘러보았지만 이런 모습은 처음 보는 풍광이었다고 했다. 그 뒤 펄벅 여사는 케네디 대통령을 만났을 때 한국의 정서를 들려주고 미국의 중요한 우방임을 강조하며 도움을 줄 것을 부탁했다는 일화도 있다. 이렇게 소는 인간은 함께하며 많은 일화와 속담을 남겼다. 우리나라에 고아를 돕는 펄벅재단과 경기도 부천에 기념관이 있다.
우생마사牛生馬死라는 말은 소는 살고 말은 죽는다는 뜻이다. 소와 말은 둘 다 헤엄을 잘 치지만 거센 물살에 빠지면 성질 급한 말은 물살을 거슬러 올라가려고 힘을 쓰다 지쳐서 죽지만, 소는 물살의 흐름에 맡겨 서서히 강가로 이동해 살아나오는 지혜가 있다고 한다. 우보호시牛步虎視란 격언도 있다. 소처럼 뚜벅뚜벅 걸으면서도 호랑이처럼 살펴본다는 의미다. 즉 소처럼 우직하고 꾸준하게 진행하지만 호랑이처럼 날카롭게 예리한 판단을 한다는 뜻이다.
잃어버린 소를 찾기 전에 나를 뒤돌아보니 부끄럽고 후회스럽고 허무함이 가득 고여 있다. 인간이 때론 동물보다도 순리를 어기며 그들보다 비도덕적으로 살기도 한다. 금년은 소의 해이니 그가 보여준 유순함, 지혜, 끈기 등 좋은 점을 본받아 한 해를 보내고 싶다. 우리는 각자 자신만의 소를 찾아야 할 사람들인지도 모른다.